◆ 투표결정의 요인, 전망적 투표 제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승리는 예상 밖의 승리로 평가되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선전하기 힘들다는 예상이 일반적 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집권여당이 일반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과 관련됩니다. 즉 총선은 집권당의 행적 혹은 정책업적에 대한 심판적 선거의 성격이 강한데, 집권여당의 업적은 긍정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의해 평가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미국 하원의원선거에서 여당이 정기적으로 의석을 잃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이론이 부정적 투표이론(negative voting theory)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부정성의 효과’(negative effect)때문입니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부정적 정보가 긍정적 정보보다 전체적인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겁니다. 이처럼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선거의 성격을 가지는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집권여당의 성과 평가에서 부정적 정보가 긍정적 업적보다 크게
투표결정에서 회고적 평가는 전망적 평가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권자의 올바른 투표선택은,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인 총선에서, 제대로 된 정당 평가에 달려 있습니다. ◆ 평가의 기준 일반적으로 효과적이고 올바른 평가를 위해선 적절한 평가 조건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즉 평가의 본질이 전제되어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 조건이란 평가의 공정성입니다. 여기서 평가의 공정성은 평가 대상이 피평가자가 통제가능한 부분일 때 가능합니다. 만약 피평가자의 성과가 자신이 통제불가능한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평가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점이 평가의 본질에 속합니다. 예컨대 최근 농산물 물가의 폭등과 관련하여 정부여당이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야당은 물가폭등의 원인을 정부의 무능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기실 과일 가격의 폭등은 집중호우와 일조량 부족등 자연재해에 따른 공급불안정에 기인합니다. 이점은 유가 폭등이 한국정부의 무능과 무관하고 중동의 현지상황에 의존한다는 사실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이처럼 농산물가격의 폭등이 정부여당의 무능 탓이라는 야당의 비난은 억지 라는 점에서, 유권
밀턴 프리드만은 ‘인플레이션은 통화적 현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재정적 원천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가라는 관심이 90년대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을 일종의 재정 현상으로 이해하는 이론이 재정적 물가이론(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FTPL)로 정립되었습니다. ◆재정적 물가이론 : 재정 → 물가 재정적 물가이론이 작동하는 조건은 재정정책이 非리카도 레짐(Non-Ricardian)하에서입니다. 재정정책 레짐에는 리카도레짐과 비리카도레짐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재정수지의 시간경로가 주어진 물가수준 하에서 정부의 기간 간 예산제약식을 반드시 충족하도록 설계되는 경우를 말하며,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오늘의 지출증가로 인한 재정적자는 반드시 내일의 증세를 통해 메꾸어져야 한다면, 이는 비리카도레짐의 재정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리카도레짐하에서의 재정정책은 적극적 재정정책(an active fiscal policy:AF)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정부가 정부부채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재정을 푼다면, 이는 적극적 재정정책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틀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인간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의 자격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성경은 화목(reconciliation)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화목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유대인의 민족적 교만과 유사한 인간의 교만에 있습니다. ◆ 화목이란 ‘화목하게 되다’는 헬라어 동사 καταλλάσσω(카탈라쏘)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는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관계의 화해는 결혼한 자들의 다툼과 화해와 관련됩니다. 고전 7장11절은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고 화해하라고 촉구합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7:10~11) “To the married I give this command (not I, but the Lord): A wife must not separate from her husband. But if she does, she must r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이후 탄생된 사회주의체제는 동유럽과 동아시아등 제3세계 국가들로 확산될 만큼 자본주의의 대항이념으로 부상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사회주의체제의 종주국인 소련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산력의 퇴보로 곧 망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계속국가 유지의 동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 권력의 지속적 재생산의 요인으로 ‘미시파시즘’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 스탈린주의가 아닌 파시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스탈린주의 대 파시즘 ①전체주의(totalitarianism) 특징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적 체제모형으로 전체주의가 꼽히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와 브레진스키(Friedrich and Brzezinski)는 전체주의의 특징을 “통일적 이데올로기, 일인독재에 의한 단일정당 정치, 비밀경찰 시스템, 무력과 소통의 독점, 계획경제가 상호 지탱해주는 하나의 유기적인 실체”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효과를 발휘
◆ 미시파시즘(micro-fascism)의 동학 ‘미시파시즘’의 개념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개념은 푸코(Foucault)의 통찰에 빚지고 있습니다. 푸코는 들뢰즈와 가타리(Deleuze and Guattari)가 집필한 「Anti-Oedipus」의 서문에서 파시즘의 미시적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략적인 주적은 파시즘, 즉 대중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활용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인 파시즘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즉 우리의 머릿속과 일상행위에 내재된 파시즘, 즉 권력을 사랑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욕망하게 하는 바로 그 파시즘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역사적 국가적 파시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푸코에 의하면, 우리 모두 안에 있고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일상적 행위를 떠나지 않는 파시즘이 존재하는데, 이 파시즘은 우리가 권력을 사랑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욕망을 가지게 하는 파시즘이며, 우리 안에 내재된 파시즘입니다. 미시파시즘, 즉 ‘우리 안의 파시즘’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개인이 권력과 폭력의 파시스트적 사고에 젖어들어 권력과 폭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의 하나로,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흡수하는 차경이 꼽히고 있습니다. 차경은 실내의 문, 창, 또는 누마루등을 통해 자연의 풍광을 프레임화하여 실내에 자연을 담는 기법입니다. 차경은 실내에 거주하는 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기도 하며, 좌절된 자아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담아내고자 한 이유는 자연의 질서와 이치를 4계절 관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누정이 주는 자연의 메시지 차경은 내부자와 외부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여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을 내부자에게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은 간접적으로 누정에 대한 기록인 누정기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樓亭은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정자·정각·누대·누각등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돌이나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운 것을 樓라하고 그 규모가 작은 것을 亭이라고 합니다. 누정기는 누각이나 정자등 누정을 신축하거나 개수할 때 그곳을 방문한 선비들이 누정에 대해 지은 산문을 말합니다) 누정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교통하여 자연의 도를 깨닫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이러한
◆ 차경의 정의와 차경의 목표 차경(借景)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으로, 건축물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실내의 내부자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건축 기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차경은 창, 문, 누마루등을 이용해 달성됩니다. 차경은 ‘산을 빌리고 물을 빌리고 구름을 빌리고 꽃이 필 때는 꽃을 빌리고 눈이 올 때는 눈을 빌린다’는 단순한 아름다운 경관의 이용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차경을 통해, 담이 단절시킨 폐쇄성에 갇혀있는 내부자들이 자연의 환경을 내부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독단성을 극복하고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한옥은 살기위한 집이 아닌 자연과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차경의 원리, 분류 借景은 영어로 ‘borrowed view’ 또는 ‘view borrowing’으로 번역되는데, 풀어쓰면 ‘making use of natural scenery’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차경의 원리는 3차원의 공간에서 2차원의 경관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는 풍경의 일부분을 프레임 형태로 담는 방식에 의해 가능합니다. 즉 사진의 프레임처럼 실내공간에서 외부로 열린 창이나 문을 통해 외부 경관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후, 환경적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신앙적 나태함등으로 인해 하나님과 소원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공동체는 다양한 위기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침체상황에서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신앙공동체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선 영적 부흥이 요구됩니다. 復興은 다시 흥한다는 말로, 영어로 revival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revival은 라틴어 re(다시)와 vivere(산다)로부터 온 말로, 다시 산다는 뜻입니다. 또한 부흥은, 19세기 미국부흥운동의 주역인 찰스 피니에 의하면, ‘하나님을 향한 죄인들의 각성과 회심을 낳는 그리스도인의 첫 사랑의 회복’이란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부흥은 영적으로 침체되어있는 삶과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의 회복이며 하나님을 향해 다시 가까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흥을 가능하게 할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시선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향하게 됩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지금도 신자와 신앙공동체의 영적 부흥의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의 겨울 남자 査經會(성경공부
영적각성운동인 부흥은 성령 운동입니다. 1903년의 원산대부흥운동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주권적인 은혜는 어느 곳에서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땅이 봄비를 기다리듯 성령의 단비가 뿌려질 때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요? ◆ 기도와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성령을 사모하고 계속해서 기도할 때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4~5절에서 주님은 성령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말하십니다.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4b. Do not leave Jerusalem, but wait for the gift my Father promised, which you have heard me speak about. 5. 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a few days you w
신약 성경에는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곧 ‘in Christ(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어구가 자주 발견됩니다. 특히 바울서신에 약 181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에 나오는 비중이 큰 만큼, ‘엔 크리스토’는 바울 신학의 핵심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in Christ’를 기록하고 있는 대표적 구절이 고린도 후서 5:17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새 피조물, a new creation, καινή κτίσις (카이네 크티시스)로 정의합니다. 새 피조물이란 인간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의 중심을 전환시킨 자를 일컫습니다. 즉 의지의 방향을 전환시킨 자가 새 창조물입니다. 자기자랑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전향한 새 피조물이 하나님의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vs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
정치의 공간은 피상적으로 책략과 다툼의 공간으로 비칩니다. 그런데 정치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현실’과 ‘의미’의 간극에서 서로 밀거나 당기는 변증법의 과정이 벌어지는 곳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정치란 정치 행위자들이 각자 신봉하는 신의 ‘의미’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 서서 정치를 이해할 때, 베버의 통찰을 원용한다면, 정치는 현실을 의미로 착각하는 신비주의정치와 현실과 의미사이를 좁히고자 하는 금욕주의 정치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공간에서 부각되는 문제의 하나는, 특히 증오와 혐오의 현실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신비주의자들이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구축 확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조화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러한 혐오의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원칙의 정치행위자들과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 신비주의 종교 vs 금욕주의 종교 (박영신) 베버에 의하면 삶의 의미지향성의 기초를 마련해주는 것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겁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가에 따라,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의 의미가 차이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