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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아프리카 나우展] 순수에 새로운 문화의 혼합으로, 역동성 창출 - 잉카 쇼니바레의 작품 세계

흑인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을 넣을 골대인 바스켓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바스켓의 링 모양은 있다. 특이하게도  링은 교수대의 목줄이다. 

이 광경은 행크 윌리스 토마스의 영상  작품이다.  노예로 유럽과 미국으로 팔려 강제 이주를 당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극단적으로 그들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강도 아니면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프로농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농구 링을 교수대 목줄로 표현하여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의 참담함을 그렸다. 

이 영상은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나우>전에서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나우>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현대 미술 100여점을 소개하는 한국 최초의 전시회이다. 

전시 작품들은 동일하게 아프리카라는 토양에 근거하지만,  작품의 층은 다양하다. 인종차별문제, 탈식민주의, 그리고 혼성문화등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각각조망한다.  

이 전시회는 우리사회에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측은 “<아프리카 나우>전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에서 다민족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전시 취지를 설명한다. 

한편 문화 정체성과 관련,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작가는 단연 잉카 쇼니바레 (Yinka Shonibare)이다. 그는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으로, 디아스포라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순수 아프리카 전통에 새로운 문화를  접목한 작품세계로 평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모방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기 쉬운 혼성문화를 순수와 저항 그리고  보편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쇼니바레는  작품에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의 슬픔대신 도전과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離散의 개념이다. 원래 기원전 6세기 유대인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을 의미한다.  

현재 디아스포라는 ‘자신이 뿌리를 갖고 있는 모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문화와 사람’을 일컫고 있다.  디아스포라인은  대체로 모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귀속본능을 보이고 있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인들은 주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력 확보 전략에 따라 노예로 팔려나간 노동형 디아스포라들이다.  이들은 고국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의 회귀를 갈망하기보다 이주국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 조작된 정체성

쇼니바레는 끝없이 정체성에 물음을 던지면서 자신의 새로운 혼성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첫째 담론은  강요된 정체성이다. 이는 조작된 정체성을 말한다. 

<부유한 꼬마 아가씨들>에 빅토리아 시대 부유한 집안 아이들이 입었을 법한 복장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의상을 통해 부유층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 의상들은 더치 왁스 버틱 천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버틱천을 사용한다.  이 옷감들은 그가 런던 브릭스톤시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아프리카 고유의 천이 아니다. 디자인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입는 버틱 의상을 본떴다.  네덜란드인들이 이 디자인에 아프리카의 강렬한 색상들을 섞어 아프리카로 수출하였고,  그 결과 아시아, 네덜란드, 아프리카의 혼합물이 탄생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이 화려하고 강렬한 옷들을  자신들의 고유한 옷으로 여겼다. 주하영 홍익대 교수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진짜 같은 가짜 아프리카천으로 된 빅토리안 의상을 제작하여 진실과 거짓, 믿음의 허구, 제국주의 신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 디아스포라인의 박탈감

쇼니바레는 또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들의 상실을 묘사한다.  이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으로 인한 차별과 절망을 의미하고 있다. 

주교수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목이 잘린 마네킹들은 박탈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주지역에서의 인종차별과 디아스포라인의 희망의 상실은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과 다름없다.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인들에게 직면하는 암담한 현실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무릎 꿇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와 관련된 작품이 <Willy Loman : The Rise and Fall>이다.  윌리 로만은 소설 ‘세일즈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김문성 도슨트는 쇼니바레가 이 작품을 통해  대공황등 자본주의의 경기침체의 참담함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자동차에 쓰러져있는 이는 윌리 로만이며 그 마네킹의 목은 잘려 있다. 그는  교통사고를 내어, 사망보험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자한다. 자동차 뒤에는 단테의 ‘신곡’의 지옥과 천국이 묘사되어있다. 윌리 로만은 백인으로, 단테는 흑인으로 그려져 있다.  

쇼니바레는 대공황기의 참담함을 단테의 신곡을 통해서  21세기 현대인의  탐욕과 좌절, 구원을 말하고 있다.   




◆ 특수에서 보편으로 

그는 탈식민주의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가적 초인종적 담론을 말한다.  쇼니바레는  약자 소수자의 모습을 넘어 다양한 변형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흙>은 이에 대한 대표작품이다.  버틱천으로 만들어진 남자바지와 장식적인 여자치마를 동시에 걸치고 있는 마네킹 남자의 머리는 상징적으로 지구의이다.  다리를 벌리고 팔을 들어 올린 채 방어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모습은 지구 환경에 대한 고뇌를 상징한다. 

쇼니바레는 디아스포라인의 현실의 묘사에서  보편성을 담보하는  작품세계로 주제의 확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창의적 혼종 

그렇다면 쇼니바레의 작품의 보폭의 확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그가 스스로 말한 ‘하이브리드’이다. 그는 자신을 탈식민주의의 혼종(hybrid)이라고 말한다. 

이 혼성은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역동성이다. 

주교수는 그가  고정된 정체성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이동과 경계를 넘어 “사이”에 존재하는 유동성을 창조한다고 말한다. 

혼성은  단일함에 반하여 적극적이다. 주교수는 “교류하고 결합하는 혼성성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역사적, 정치적 사건의 복합적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고 지적한다. 

주교수가 지적하는 혼성성의 다른 표현인 ‘사이의 공간’은  단순히 문화의 모방을 뜻하지 않는다.  피식민자가 식민자의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는 것은 검은 피부에 하얀 가면을 씌우는 과정이라는 프란츠 파농의 지적을 인용하면서, 주교수는 ‘사이의 공간’은 새로운 정체성, 혼성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혼성적 정체성은 역동성으로의 승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피식민지인의 슬픔의  재현이 아니다.  방어대신 도전이며, 좌절대신 희망이다. 결국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혼성은 순수에 새로움이 덧입혀진 새로운 정체성의 구축이며, 이는 결국 역동과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  

역으로 순수에 고답적으로 매몰되어 새로움을 거부하게 된다면, 순수조차 무너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교훈을 쇼니바레의 작품들은 던져 주고 있다. 

(작품설명 도움: 김문성 도슨트)

<아프리카 나우>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3층, 2월15일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