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필연적 하락의 법칙”(the law of inevitable decline)을 따르고 있습니다. 왜 필연적으로 하락하는 걸까요? ◆ 지지율의 의미 대통령 지지율이란 대통령 업무 수행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성과평가를 수치화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지율은 대통령 업무 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의 백분율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지지율 하락이란 긍정적 평가의 백분율이 하락하였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의 첫 번째 여론 조사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George H. Gallup 이 Franklin D. Roosevelt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인 1937년에 실시한 지지율 조사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통령의 지지율 조사의 결과는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선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정책 결정등 국정 운영의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신망(prestige)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지지율로 표현됩니다. 높은 지지율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감과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 시시포스(Sisyphus)는 알베르 카뮈의 영향 탓인지 인간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와 달리, 시시포스는 신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는 인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큰 바위를 가파른 언덕의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온 힘을 다해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는 순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러자 그는 아래로 내려와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정상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이 노동은 영원히 반복됩니다. 카뮈가 보기엔, 그의 무한 반복의 노동은 형벌이 아닌 인간승리입니다. 이는 변화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반항이며, 절망을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뮈는 외칩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무한의 노동은 인간의 영웅적 도전이라기보다 무의미한 저항으로 읽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바위를 정상에 안착시키기 위한 힘은 섭리와 순리인데, 인간의 불굴의 의지로 운명과 맞서는 것은 결국 무한의 형벌로 귀결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시시포스의 무한 반복의 바위 굴리기가 진보를 향한 숙명이라기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대부분의 정치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정치제도입니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작동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심심찮게 정치현장에서 발견되고 있어서입니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대의제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퇴보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지가 정치개혁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 대의 민주주의란? 민주주의는 인간이 고안한 정치제도 중에서 정당성에 대한 수용성이 가장 높은 정치체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민주주의와 조합되는 다양한 정치제도가 정치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직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등이 정치현장에 실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체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직접민주주의를 제외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의 민주주의는 popular sovereignty(인민주권)라는 민주주의 이념에 대의정부라는 운영방식이 합쳐진 정치제도로 요약됩니다. 즉, 주권자
중국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모택동은 중국내에서 양가적 평가를 받고 있다. 빛이 그림자에 의해 감추어지듯이, ‘혁명의 영웅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의 지도자 모택동'의해 가려지고 있다는 평이다. 모택동도 자신의 업적에 대한 양면적 평가를 인정하였다. 1977년 중공중앙공작회의 폐막식에서 “내 일생에 두 가지 일을 했다”며, “하나는 장개석을 몇 개의 섬으로 내쫓고, 일본을 집으로 보낸 일이다. 다른 한 가지 일은 당신들이 잘 알고 있듯이 바로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 일은 옹호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1981년 6월 27일,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건국 이래의 몇 가지 역사적 문제에 대한 당의 결의(建國以來黨的若幹歷史問題的決議)〉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문화대혁명의 좌편향 과오 그리고 이러한 과오가 거대한 규모로 장기간 지속된 것에 대한 책임은 마오쩌둥 동무에게 있다'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모택동은 중국본토에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문혁)을 주동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 10
2015년에 조세저항의 ‘민란’이 터졌다. 중산층이 주축이 된 연말정산 대란은 민란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결국 정부는 연말정산으로 거둔 세금의 일부를 소급 환급하여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연말정산 대란의 원인은 과세형평성에 대한 불만이었다. 정부가 근로소득자들의 ‘유리지갑’에 손쉽게 과세한다는 지적과 대기업감세로 인한 재정압박을 개인 중산층의 주머니를 털어 보충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연말정산 대란은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원분배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 전통적 분배 기준 - 분배는 선택에 민감하고 운(여건)에 민감하게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은 자원을 선택에 민감하고 운에 민감하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자원분배가 선택에 민감(sensitive to their choices)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개미로부터 베짱이로의 자원의 이전은 공정한 재분배로 허용될 수 없다. 이는 게으름을 선택한 이들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근면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전가하
사람들이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도 실업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의 하나로 효율임금이론(efficiency wage theory)이 꼽히고 있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형성된 균형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장균형임금으로 근로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데도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기업은 왜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이에 대한 설명이 직무태만 모형(shirking model)이다.(Pindyck외) 직무태만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시장균형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게 되면, 균형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은 해고 시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고려하게 되어 현재의 직장에서 생산적으로 일하게 된다. 이처럼 직무태만을 막기 위해 시장임금보다 더 높이 지불되는 임금을 효율임금이라고 한다. 효율임금은 실업이 지속되는 이유의 하나이다. 효율임금이 시장균형임금보다 높아, 효율임금하의 노동량은 시장균형가격에 의한 노동량보다 줄어들게 되어, 실업이 지속되게 된다. ◆ 비대칭 정보는 주인- 대리인 문제를 초래 근로자들은 일단 고용이 되면 열심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이 구절에서 ‘(지혜의 여신인)미네르바(가 데리고 다니는)부엉이’는 철학을, ‘황혼’은 한 시대가 마감되는 즈음을 은유한다. 이 두 문구에 의하면, 그 시대의 가치· 정치형태의 의미등은 시대가 혼돈으로 마감되는 시점에야 비로소 해석될 수 있다. 철학자들은 현실을 예견할 수 없고, 단지 사후적으로 현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예컨대 12세기 프랑스의 자치 주민공동체였던 코뮌이 쇠퇴한 후, 마키아벨리가 시민적 덕목을 중심으로 안정된 공화제 정부의 조건에 대해 연구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뒷북을 치는 현실 분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한 시대의 해석은 한 시대를 부정하고 또 다른 시대를 위한 준비가 된다. 이는 마치 밀알이 否定되어 싹이 나와 성장하면 열매가 맺어지고, 애초의 밀알은 더 많은 밀알을 생산하는 이치와 같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否定은 다시 否定을 낳아 열배 백배의 수확물을 거두게 된다.그러므로 이 시대의 가치를 파악하고 이를 질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내일의 또 다른 태양’을 맞이하기 위한 전제가 될 것이다.◆사회자본의 긍정 효과#1.
누군가가 어떤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 하나를 깼다. 만약 이 유리창을 갈지 않고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이론에 의하면, 그 집이 위치한 마을의 모든 유리창이 깨진다고 한다. (이동원)이유는 방치한 유리창은 처벌에 대한 방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 던진 자를 잡지 않고 깨진 유리창을 고치지 않게 되면, 이는 법질서를 어겨도 괜찮다는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 지역의 모든 집의 유리창들은 남아나질 않게 된다.그러므로 법질서를 어길 때, 즉각 처벌을 하게 될 경우 마을은 안전하게 보존된다. 경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지속적으로 처벌하게 되면, 안전한 지역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치이다.특히, 국가 엘리트들의 불법행위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잘못을 처벌하지 않게 되면 그 영향은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달리말해 엘리트들의 부패는 파괴적인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게 된다.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엘리트들이 제도를 어길 경우, 일반인들은 제도에 대한 냉소주의를 품게 된다. 무엇보다 정의의 부재로 준수해야 할 규범이 흔들린다.으◆ 분배의 정의정의가 사회의 가장 큰 관심거리
아침에 숲길을 산책하다 두 갈래 길을 만났다. 사람들이 적게 가서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길이 한편에, 그리고 낙엽을 밟은 흔적이 많은 길이 또 한편에 숲 속으로 펼쳐져 있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는 ‘판단의 틀’에 달려있다. 선택을 결정하는 준거의 표준이 내면에 배태되어 있다면, 선택을 둘러싼 방황은 사라지게 된다.판단의 표준은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자아 정체성에 담겨 있다.마이클 샌델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인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자아정체성은 ‘타인과의 대화적 관계’에서 해석된다고 말한다.즉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김모씨의 오래된 친한 친구입니다.’라고 답한다면, 이 사람은 김모씨와 신뢰에 기초한 대화적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관계성은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나타낼 수 있다.그러므로 자아정체성은 개인의 행동과 말을 통해 판단하기보다, 기대와 의무가 교환되는 호혜성의 관계를 통해 발견된다는 것이다. 자원을 제공하면 이에 대한 대가가 돌아올 수 있다는 일방의 기대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타방의 의무가 조화되어 구축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같은 노래일지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노래의 질감은 같지 않다.이를테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에서,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는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주고, 뮤지컬 가수 임태경은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마찬가지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연주하는데 있어, 로스트로포비치와 카잘스는 각각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음정의 충실함에, 카잘스는 정신과 열정에 연주의 초점을 맞춘다. (김선욱)이렇게 연주자의 개성들은 음악세계에서 다양성과 복수성(plurality)을 기초로 하여 공존한다. 우리의 활동도 예술처럼 다양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공론장에서 말과 토론으로 개성이 표현되면서 복수성은 꽃을 피운다.◆복수성은 곧 인간다움을 만드는 것복수성의 목표는 무엇일까?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다원성은 인간다움이 묻어나는 (정치)행위의 전제조건이다. 복수성은 개인의 이익 추구보다 인간성을 실현하는 과정인 행위의 재료가 된다. 사람의 활동은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三分된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행위는 정치 행위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