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 농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을 넣을 골대인 바스켓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바스켓의 링 모양은 있다. 특이하게도 링은 교수대의 목줄이다.이 광경은 행크 윌리스 토마스의 영상 작품이다. 노예로 유럽과 미국으로 팔려 강제 이주를 당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극단적으로 그들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강도 아니면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프로농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농구 링을 교수대 목줄로 표현하여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의 참담함을 그렸다.이 영상은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나우전에서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나우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현대 미술 100여점을 소개하는 한국 최초의 전시회이다.전시 작품들은 동일하게 아프리카라는 토양에 근거하지만, 작품의 층은 다양하다. 인종차별문제, 탈식민주의, 그리고 혼성문화등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각각조망한다. 이 전시회는 우리사회에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측은 “아프리카 나우전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에서 다민족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
지난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박수근처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화가도 드물다. 그는 이중섭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 회화의 상징이며, ‘국민의 화가’라는 애칭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 중 빨래터는 2007년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45억2천만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처럼 壽根의 이름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닐 정도로 그는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애정을 선사받는 화가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의 곡해와 오해에서 벗어나 제대로의 진가를 인정받게 된 결과이다. 박수근의 작품 속에 대중들이 빠져 들어가는 그 매력은 무엇일까? 그를 국민화가로 칭송하게 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수근이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작품은 영혼의 언어 빈센트 반 고흐는 “회화는 고유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그 생명은 온전히 화가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며 회화의 정수를 이렇게 응축한다.회화가 인간 본성의 표현이며, 작가의 영혼의 언어라는 설명이다. “회화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나, “회화란 그것을 그린 사람의 감추어진 이미지”라는 언급도 작가의
유영국 ( 1916~2002)은 도쿄 유학시절부터 추상작업을 시작한 이래 한국모더니즘의 제1세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그의 작품은 산,길,나무등의 자연적 소재를 추상화면으로 바꾼다.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져 경쾌한 음악적 울림을 자아낸다. 유영국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이었고, 그것을 탐구해온 형태는 선이나 면 색채 그리고 그런 것들로 구성된 비구상을 바탕으로 한 추상이다. 화가가 자신이 보고 느끼고 나서 생각하는 자연, 그것은 단순히 보이는 구체적 그대로의 자연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런 자연의 형태를 떠나서 선과 면과 색채로서 화면에 더 주관적으로 탐구되는 나의 자연에 대한 탐구이다.”라고 밣힌다.
구본웅(1905~1953)은 1930년대에 대담한 형태변형과 강렬한 색채활용을 통해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등을 도입하였다. 그는 척추불구라는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인 실험정신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무렵 유모의 실수로 낙상해 척추를 다쳐 불구가 된다. 신명보통학교에서 시인 이상을 만나 훗날 이상의 의기투합하는 친구가 된다. 이 작품은 시인 이상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화면이 푸른색조로 짙게 처리되어 우울하고 비탄에 잠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상의 눈빛은 삐딱한 시선으로 시대를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파이프를 물고 있고 시대적 고민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휘어져 치켜 올라간 눈썹, 붉고 날카로운 눈매에 창백한 얼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입술, 특히 매섭게 살아 있는 눈이 지식인의 한 전형이다. 녹색이 감도는 푸르스름한 모자, 남루한 옷차림, 어두운 배경등으로 파격적이고도 예민한 감각의 시인 이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향 박래현은 (1920 ~ 1976)은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운보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청각장애가 있는 운보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결혼해, 운보의 예술적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적인 1940년대를 거쳐, 50년대는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전환하여 형태와 색채를 요약 단순화한 반추상화 시기, 60년대 이후는 추상적 표현시기를 거치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불태운다. 노점(1956)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나서야 했던 아낙들의 모습은 근대기 화가의 단골 소재였다.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여인들이 노점에서 물건을 들거나 머리위에 이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어떤 여인은 의자에 앉아 손을 턱에 괴고 생각에 빠져 있고, 뒤편에는 집과 상점 같은 건물들도 보인다. 여인들의 얼굴은 피부객이 갈색이고 키가 커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길고 가는 신체의 인물들은 화면 전체에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우향이 입체파적 실험과 반추상 형식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 커서 이인성 되겠구나!” 이는 한때 대구에서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 하는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조선 미술계에서 천재화가로 불렸다. 그는 18살 때 그늘로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서 입선하면서 미술계에 데뷔하였다. 19살에는 특선을 차지하여, 대구 유지들의 도움으로 1931년에 유학을 떠난다. 이인성이 일본에서 유학했던 시기에 유럽에서 공부했던 일본인 화가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화단을 이끌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은 인상파,후기인상파,야수파등을 수용하였고, 이인성은 모네, 세잔, 고갱등의 각 유파들을 연습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녹여 우리 체질에 맞게 토착화 시켰다. 4년간의 공부 후 귀국한 그는 우리의 땅과 문화에 젖게 된다. 1934년 가을 어느 날은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미술 작품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鮮展) 13회 특선작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전의 도회적 분위기 대신, 향토적인 정서를 불어넣었다. 파란가을 하늘에 누렇게 익은 벼와 해바라기 풍경에, 그을린 얼굴을 한 반라의 처녀를 그렸다. 하지만 관전화가라는 수식어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선전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하늘의 별따기라는 선전의 추천작가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의 양대 거목 박수근과 이중섭, 근대 산수화의 쌍벽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 청각장애인으로 좌절의 유혹을 이긴 운보 김기창과 한국화단의 걸출한 여성작가인 운보의 아내 우향 박래현.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과 김환기. 한국 근현대 회화의 이들 천재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원본으로 한곳에서 감상할 수 없을까? 고궁의 古色과 단풍의 秋色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덕수궁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교과서나 각종 책들을 통해 친숙한 우리 근현대(1920년대~1970년대) 회화의 대표작가 57명의 명작 100점을 한자리에서 진품으로 만나 볼 수 있는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展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 회화사를 체계적으로 정리 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품을 근대적 표현의 구현 (1920~1930), 새로운 표현의 모색 (1940~1950), 수목채색화, 추상미술의전개 (1960~1980)등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구분하여, 네 곳의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다.제1부 근대적 표현의 구현 (1920년대 ~ 1930년대) 일본등에서 미술을 공부한 화가들이 귀국함으로 기법과 양식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대상의
“건축에 사용할 목재를 점검하고 있는 슈바이처 1954”이 사진이 유진 스미스를 TV가 발명되기 이전 최고의 보도사진전문지 LIFE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우선 슈바이처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슈바이처 머리위로 흑인 한명이 올라타 있는 듯한 모습을하고 있고, 주변에 검은 손들은 도움을 갈구하는 것처럼 슈바이처를 향하고 있다. 또한 목재를 점검하고 있는 이 사진은 예수의 공생에 이전의 직업인 목수 이미지와 겹친다. 라이프의 편집진은 이 점에 착안하여, 슈바이처를 성자로 묘사하고 이 사진을 부각시키고자한다. 하지만 유진은 슈바이처를 휴머니즘이 가득한 한 인간으로 그리고 싶어한다. 슈바이처는 saint가 아닌 것이다.이러한 편집진의 의도에 반발하여 그는 최고의 보도사진잡지 라이프를 미련없이 떠난다. 이는 그가 백조처럼 오만하다는 평가보다, 그의 마음이 시류에 타협하지 않는 외곬으로, 곧고 바르다는 의미 일게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굽어진 역사를 제대로 펴 온 자들은 바로 이러한 꼿꼿함으로 삷을 견뎌왔다. 단재 신채호는 일본강점기에 세수를 할 때, 목을 숙이지 않은 채 서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단재는 세
유진 스미스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깊은 관심이 그의 작품에 살아 숨쉰다.특히 그는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래서 시골의 의사나, 조산원,스페인 마을의 농부등을 그의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은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이 사진은 ‘부상당한 아이’ 혹은 ‘살아남은 아이’로 불리기도 한다. 1944년, 전쟁터 사이판에서 미 해병이 유일하게 생존한 아이를 들고있는 모습이다. 유진 스미스는 세상은 황폐화되었지만, 이 아이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