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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 하나님과의 화목 > [ 말씀 QT ] 무릎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며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20b)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틀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인간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의 자격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성경은 화목(reconciliation)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화목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유대인의 민족적 교만과 유사한 인간의 교만에 있습니다. 


◆ 화목이란

‘화목하게 되다’는 헬라어 동사 καταλλάσσω(카탈라쏘)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는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관계의 화해는 결혼한 자들의 다툼과 화해와 관련됩니다. 고전 7장11절은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고 화해하라고 촉구합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7:10~11)

“To the married I give this command (not I, but the Lord): A wife must not separate from her husband. But if she does, she must remain unmarried or else be reconciled to her husband. And a husband must not divorce his wife.”

11절에서 화목이란 남편에 의해 모욕감을 느낀 아내가 분개하여 남편과 이혼하려는 상황에서, 남편에 대한 분노와 모욕감을 버리고 다시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화목되다’는 상대의 잘못에 의한 분노와 모욕감이 상호 관계를 망가뜨렸을 때, 다시 관계가 친밀하게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과 하나님의 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도 친밀한 관계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화목은 죄의 세력 하에 놓여 있어 하나님과 대적하고 있던 자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 회복은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화목이 하나님의 의, 의로우심에 의해 성취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을 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형벌적인 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죄인에게 주시는 의로움을 말합니다.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의 선물인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을 때,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앞서, 하나님의 의를 인간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이 되십니다.   

칼빈도 「기독교 강요」 3권에서 이점을 지적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면 두 가지 은혜를 받게 된다. 곧, 첫째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재판관이 아니라 자비하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요,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 흠이 없고 순결한 삶을 배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 5:21도 하나님의 의가 자비로우신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5: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이 구절의 “In Him, we would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은 “We would be made acceptable to Him and placed in a right relationship with Him by His gracious loving kindness”(AMP)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 겁니다.  


◆ 화목과정의 세 단계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목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우심의 결과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의가 죄인인 인간에게 주어짐으로 인해,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그런데 화목되는데 있어 문제는 화목을 성취하는데 장애물이 있다는 점입니다. 

화목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않게 된다면, 인간의 죄로부터의 해방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비근한 예로 인간사이의 화해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원수를 자기 자신과 화목하게 하려해도, 그 상대가 여전히 자신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의 화해시도는 우스운 일로 끝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화목 과정의 세 단계가 중요성을 가집니다. 이 단계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세 단계를 모두 완성하지 않을 경우,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목의 첫째 단계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내시어, 인간과의 화해를 이끄시는 단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예수님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단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후5:18a)
“All this is from God, who reconciled us to himself through Christ”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고후5:19a)
“God was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in Christ, not counting people’s sins against them”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간의 직분을 주시는 단계입니다.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5:18b)
“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고후5:20a)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as though God were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셋째는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즉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항했던 감정을 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20b)
“Be reconciled to God”

이 구절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의가 주어져도 인간이 이를 믿지 않으면  죄의 세력에서 벗어 날 수 없으므로, 이 하나님에 대항하는 적대감을 포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를 위해 세 번째 단계가 주목됩니다. 
  

◆ 언약적 율법주의 (covenantal nomism)
 
바울도 복음 영접의 세 번째 단계를 강조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의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해도, 이들이 그 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유대인들이 선물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로마서 11:15절은 이 점을 지적합니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롬11:15a)
“if their rejection brought reconciliation to the world,”(NIV)
“When Israel rejected God, the rest of the people in the world were able to turn to him.”(CEVDCI)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로 주어진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구원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믿는 구원체계는 율법주의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언약적 율법주의’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언약적 율법주의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받아 들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선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들의 구원과 관련된 관심은 구원의 획득이 아니라 주어진 구원의 유지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원을 유지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 안에 남아 있기’(remaining in covenant) 위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있어 율법은 지기 힘겨운 의무가 아니라 기뻐해야 할 선물이자 특권이 됩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지속적인 생명을 확보하고 계약의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계약적 율법주의자들은 행위에 의존하게 됩니다. 

또한 이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도, 다양한 속죄수단을 동원하여 회개할 때 다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언약적 율법주의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시어 구원과 율법을 주셨고, 이들이 그 율법에 순종할 때 구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인의 민족적 교만

유대인들은 율법 안에서 그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5도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sinful Gentiles”라는 바울의 진술은 유대인이 이방 죄인들과 다르며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당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자의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민족적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태가 됩니다. 이 교만이 인간이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 죄사함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를 막고,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오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릎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며

이러한 유대인이 품고 있는 교만의 선민사상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열린 신앙과 대립됩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교만을 자양분삼아 이스라엘을 배타적 공동체로 세웠습니다.  계약 율법주의에 근거하여 유대 민족공동체의 구원만을 강조할 뿐 이방인의 구원을 배제한 것입니다.  

반면 바울은 계약적 율법주의를 거부합니다.  유대인은 이미 선택된 백성으로 구원을 얻었고, 민족적 특권인 율법에 순종함으로 그 구원을 유지한다는 계약적 유대교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고 행위의 보상을 운운하는 계약적 율법주의자를 배격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구원은 이미 특정 민족에게 언약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계약적 율법주의가 지배하는 닫힌 공동체에는  그 공동체의 백성들만이 그들 만의 구원을 자랑하고 누립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믿음을 허락하는 공동체에는 누구나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여의도정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그들만의 구원을 추구하는 유대인의 민족적 폐쇄공동체와 민주당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폐쇄 진성 공동체가 오버랩되어 보이는 것은 착시일까요?)

결국 하나님과 화목되기 위해선, 곧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선, 유대인들의 민족적 교만과 선민의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대민족만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구원의 백성이라는 교만,  이방인들을 배제하는 탐욕, 계약적 율법주의에 근거하여 자신의 행위와 의로움만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무시하는 오만등, 이러한 유대인들의 행태들은 타락한 성품의 결과일 뿐 생명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단계는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와 생각과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선민의식과 우월감을 품을 때,  하나님은 이 자들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무릎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죄 짐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 때 비로소, 하나님은 이 자를 용납하시게 됩니다. 

결국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기쁨은 민족적 교만과 나의 교만을 과녁으로 삼을 때만이 얻어지는 소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태도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뿌리 깊은 유대인의 민족적 교만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참고문헌>
한천설, “하나님의 의의 표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 
신근수, 「언약적 신율주의와 칼빈의 구원론 비교」,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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