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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기본소득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최근 재난지원금 지급과 맞물려,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미래 기술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우려, 총수요 부족, 프레케리아트(precariat, 안정된 일자리 취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계층)를 위한 사회보장책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적어도 단계적으로 무조건적, 보편적, 정기적, 현금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을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본소득의 주요 정체성은 탈 노동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며, 저녁 시간에는 비판’을 하는 삶, 이러한 삶이 내뿜는 기운은 곧 자유입니다. 소득을 위해, 매력적이지 않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으로부터 탈출하여 스스로 자유로운 시간을 통제하는 자유 말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왕국’은 ‘각자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삶이 영위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왕국은 안정된 물질적 기반에 의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이고 충분하며 정기적인 현금을 제공함에 따라 건설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의 정체성은 돈을 벌기위해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노동(labor)으로부터 탈주하여 자유 시간을 확보하는 삶에 있습니다. ◆소명으로서의 노동 그런데 탈 노동 지향의 이 왕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등장합니다. 인간의 가치를 자리매김하는 방법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탈 노동이 아닌, 노동(일,work)에 따른 생산이 인간의 가치를 확인하고 성장시키는 길이라는 직업노동의 소명 론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의 소명의식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The one who is unwilling to work shall not eat)’(데살로니가후서 3:10)라는 바울이 제시한 노동의 규칙과 일치합니다. 혹자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논리로 이러한 노동윤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체제의 유지 또는 이보다 더 나은 체제를 위해선 혁신을 통한 확대재생산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노동을 통한 생산은 사회적 기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소비는 총수요의 극대가 경제의 소득순환을 지탱한다는 주장은 일면적입니다. 일반균형적인 시각에 의하면, 이 이론은 단기 또는 중기(예컨대 코로나19사태의 기간)에는 적용되지만, 장기에는 적합한 논리가 아닙니다. 인적자본의 혁신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경제체제의 장기 지속성을 담보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은 주류경제학이든 코뮌사회를 지향하는 경제학이든 수용되는 논리입니다. 마르크스조차 생산력이 기존 생산양식을 변경하여 공산주의로 이르게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소득을 위한 노동이 단지 먹고 살기위한 도구라는,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노동관으로부터 가치있는 노동윤리로의 전환이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는 길이 됩니다. ◆공짜점심과 불공정성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소명이라는 원리에 기댄다면, 자유의 왕국을 지탱하는 물질적 기반, 즉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는 기본소득은 정의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필요에 따른 분배만을 선호해서입니다. 즉 사람들이 합리적 선택에 근거하여,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에 그림 그리고, 밤에 토론하는 삶을 즐기면서 헌신하는 노동을 애써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기여 없는 공짜점심은 호혜성(reciprocity)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이하 조남경)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열심히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착취하게 됩니다. 심지어 반사회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사람에게 조차 이러한 욕구 충족을 위한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이 일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이며 동시에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정치적 수용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자유시간의 길이 vs 자유시간의 질 또한 노동이 소명이라는 가치는 ‘자유시간의 길이’보다 ‘자유시간의 질’에 대한 관심과 조응합니다. 빠레이스 논리를 따르는 기본소득자들은 사람에게 주어진 총시간에서 노동시간을 극소화하여, 노동의 질을 높이고 자유시간의 길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노동시간의 감소는 총산출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데, 노동의 질의 향상과 자유시간의 확대가 감소된 총산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라는 점에 의문부호가 던져진다는 점입니다. (곽노완) 만약 총산출의 감소로 인해 자유시간의 질이 점차 떨어진다면, 꼬뮨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경제적으로 열등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곽노완) 결국 ‘각자 능력에 따라, 각자 필요에 따라’라는 맑스의 유토피아는 자체적으로 근본원리로 실현될 수 없거나 실현될 경우 경제적으로 파국을 초래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됩니다. (곽노완) 빠레이스조차 필요에 따른 분배가 성장을 제약함으로써, 노동의 질을 높이는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곽노완) 그렇다면,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노동시간의 극소화 곧 자유 길이의 극대화가 획일적 평등을 보장할지 모르지만, 혁신의 결여로 자유의 질은 담보되지 못합니다. 결국 자유는 저렴한 자유로 전락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노동윤리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인간의 존재를 입증하는 노동의 존재가 생산을 극대화하여 자유의 질을 높일 수 있어서입니다. 물론 적정한 생산과 소득 극대를 자극하며 노동의 질을 고양시키는, 적정한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길이를 발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 탈노동대신 노동윤리를 지향한다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는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중략),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이 전문의 내용은 아마티아 센의 ‘역량의 평등’ 논리와 흡사합니다. 역량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능력(잠재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역량은 개인의 선택을 통해 ‘기능’이라는 성취를 이루도록 합니다.) 예컨대 굶주림(starvation)에 시달리는 사람과 종교적 배경으로 금식(fasting)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기회와 잠재력의 부족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반면, 후자는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여 역량을 갖추고 있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해 할 평등은 이러한 역량의 평등입니다. 기존의 평등론은 인간의 다양성(human diversity)을 무시하고 획일적 분배를 통해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목광수) 기본소득에 따른 평등도 개인이 처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 소득재분배를 이루겠다는 주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각 사람들은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개별적 능력, 사회제도, 사회규범, 자연 환경등들)에 의해 역량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의 차이가 곧 역량의 차이를, 이어 역량의 차이가 기능의 차이를 초래하여, 최종적인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평등은 역량의 평등이며, 공동체의 목표는 개인의 역량 강화에 두어져야 합니다. 역량강화 과정의 첫 단계는 선별입니다. 각 개인이나 각 사회를 개별적으로 평가하여 역량의 평등에 이르지 못한 수혜 대상인 개인이나 사회를 개별적으로 선별합니다. (목광수) 이어 이렇게 선별된 개인과 사회에게 국가는 부족한 재화를 직접 분배하거나, 재화를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개별적 요소들의 문제점을 수정합니다. 예컨대 국가는 불리한 가정환경 탓으로 개별적 능력이 계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무상으로 충분히 제공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진출이 제약되어 있는 여성을 위해 차별적 사회규범과 제도를 폐기 수정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역량의 축적을 방해하는 개별 요소들을 변경하여 각자의 역량을 강화할 때, 역량의 평등은 실현되고 기능의 차이라는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량의 평등 개념은 앞에서 언급한 헌법 전문과 유사합니다.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는 역량의 강화와 역량의 평등을 의미하며,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은 역량의 강화에 의한 기능의 향상을 뜻합니다. 이처럼 헌법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헌법 제1조)이 추구하고 달성해야 할 목표는 ‘역량의 평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경제적 약자집단에게 원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평등의 가치가 됩니다. 물론 이러한 선별이 수혜자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한 배분방식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종합적으로, 우리 공동체는 피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목표는 국가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여 역량의 평등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또한 노동윤리를 소명으로 하여 기여와 이에 대한 대가가 교환되는 호혜성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각자 능력에 따라, 각자 필요에 따라’라는 사회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 유토피아의 명제를 내려놓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원리에 따라 노동윤리를 고양하는 국가적 노력이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미래 기술 실업으로 임노동이 불가능할 경우, 공짜점심의 교환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socially useful work)이라도 제공되어야, 착취 없는 공동체, 공정과 정의가 숨 쉬는 공동체가 달성될 것입니다. <참고문헌>곽노완, “기본소득과 사회연대소득의 경제철학”조남경, “기본소득 전략의 빈곤 비판: 호혜성, 노동윤리, 그리고 통제와 권리”목광수, “역량중심 접근법과 인정의 문제”


[헌법과 사회권]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헌법과 사회권]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미국이 코로나 방역의 실패와 흑인들의 격렬한 시위로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사회로 쪼개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 사망과 미국 공공의료보험의 부재 지난 31일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는 10만6000여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다수의 사망자를 낳은 것은 전국민 공공의료보험을 갖추고 있지 않아, 흑인과 유색인종등 취약계층에 속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흡곤란이나 발열증상이 있다면 즉각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여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 미국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부재와 소극적 자유주의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불비는 미국사회의 주류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주류 사회는 행복을 로크식 자유주의, 즉 방해를 제거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제도가 공공적 지향성을 심각하게 퇴화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이재승) 실제로 연방헌법은 행복추구권을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배제되어, 인권으로 구성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국주류사회는 헌법의 사회권(사회권을 포함한 행복추구권)을 인권으로 파악하기보다 빨갱이 권리(red rights)로 폄하하고, 사회권규약을 사회주의 선언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재승) 그렇다보니 미국은 공공의료보험 혜택을 국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방헌법에 행복추구권이 적시되고 있지 않아, 개인은 정부에 대해 의료보장등 사회적 권리를 요구할 수 없게 되고, 정부도 의료보장을 공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주류사회의 ‘소극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헌법을 구성하게 되어, 헌법의 공공의료 제도화를 거부하는 원인이 됩니다. ◆ 미국 흑인시위의 배경과 해법 이번 미국의 격렬한 흑인시위도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소극적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이해됩니다. 흑인들의 그간 누적된 좌절이 이번 경찰의 과잉진압을 계기로 폭발되었다는 지적입니다. 흑인들은 코로나19사태에서 치료로부터 배제되어 사망하는 수많은 동료 흑인들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된 자신들의 권리투쟁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흑인들의 좌절은 행동의 자유만을 강조하여 승자독식사회를 방관한 미국사회의 소극적 자유주의(negative liberty)가 내포한 어두운 단면으로 이해되어 집니다. 미국 주류 사회가 자유주의 여신상이 추구하는 기회와 행동의 자유만을 신봉한 결과, 경쟁에서 소외된 자들을 보듬는 넓은 사회적 품을 열어두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이 인종 간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방안은 미국 사회의 행복 개념이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공화주의적 접근으로 이동 되는 것입니다. 이는 연방헌법에 루스벨트식 사회권을 명시할 때 구체화 될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경제적 안정과 자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안녕과 번영의 기초를 낳을 “제2의 권리장전”(a second Bill of Rights)을 제안하였습니다. [제2의 권리장전에는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권리, 적절한 의복 식사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임금에 대한 권리, 농민에게 품위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농산품 판로에 관한 권리, 국내외적으로 불공정 경쟁과 독점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상공인의 권리, 품위 있는 주거 환경에 대한 권리, 건강과 의료보장에 관한 권리, 고령· 질병· 재해· 실업의 경제적 두려움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등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권리장전의 내용이 연방헌법에 사회권으로 반영되어, 미국사회에도 공적 사회적 차원의 행복이 자리하게 된다면, 흑인들과 유색인종들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미국인들은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당당히 주장하고, 국가도 이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소극적 사회권 한국은 미국과 달리 헌법 10조에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34조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권, 재해 위험으로부터의 국민 보호등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들은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한태) 34조의 대부분의 조항들이 국가의 노력 의무만을 명시하고 있어서 입니다. (예컨대 제34조 ②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소극적 권리표시는 사회권이 헌법상 권리가 아닌 법률상 권리에 해당한다는 시각을 가지도록 합니다.(이한태) 만약 사회권을 법률상의 권리로만 본다면, 안전권 실현을 위한 입법을 할 것이냐의 여부는 오로지 입법자의 자유재량에 맡겨지는 것이므로, 시민의 안전권에 대한 적극적 능동적 행사는 제약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시민은 국가에게 안전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구할 수 없고, 주관적 보호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헌법의 사회권 보장의 미비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안전보장의 부작위를 낳게 되고, 이는 시민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됩니다. 결국 시민이 정치의 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강한 민주주의’는 포기되고, 정치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한 정치 의사결정을 내리는 ‘최소주의 민주주의’가 횡행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안전의 확보는 정부와 입법자의 정책 의사결정에만 의존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우리 시민이 능동적으로 행사할 때 확보되는 권리입니다. 엘리트 입법자의 처분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입법자는 최소주의 민주주의에 근거하여 정책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정치라는 시장에서 입법이 자신들에게 주는 편익과 입법이 요구하는 비용을 비교 계량하여, 편익이 비용보다 클 때 비로소 입법에 나서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헌법 개정 이래 2020년 현재까지 개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개헌의 주체는 엄연히 시민임에도 입법자들은 자신들이 개헌의 주체라는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이 같은 엘리트주의 시각은 개헌을 막는 주요 요인이 됩니다. 입법자들은 자신들의 편익과 비용을 계량하여 개헌으로 인한 비용이 편익을 압도한다고 판단한 결과, 개헌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헌이 시민의 행복권을 보장한다면, 당연히 헌법은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입법자들이 자신들의 당리당략에만 집착한 결과 헌법 개정은 33년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는 명시하고 있음에도, 주권은 국민이 승인한 입법자에게 머물러 있는 기막힌 현실이 시민의 행복권의 보장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 시민이 나서야 합니다. 시민의 행복추구를 美辭麗句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엘리트들에게 시민이 주권자임을 명백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이 정치의 장에 적극 참여하여 ‘강한 민주주의’를 세워야 합니다. 이는 시민이 우리의 기본권을 확보하는 개헌에 직접 나설 때 비로소 획득될 것입니다. 「서기 1세기, 예루살렘에 간헐천인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가끔 솟구치는 이 온천수는 특정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특수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물이 분출한 후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라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불치병 병자가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데스다의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넣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그러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요한복음 5:2~9) <참고문헌> 이재승, “행복추구권의 기원과 본질” 이한태, 전우석, “한국 헌법상 기본권으로서의 안전권에 관한 연구”

[스웨덴의 보편주의]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택한 이유

[스웨덴의 보편주의]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택한 이유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면역을 ‘실험’하고 있는 스웨덴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단면역의 성공기준은 50~70%의 항체생성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선 3500명이상이 희생하여 항체를 가진 인구가 약2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연대와 공동체주의에 근거하여 사민주의정신을 추종하는 스웨덴 당국이 오히려 공리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웨덴당국을 집단면역 실험으로 몰고 갔을까요? 이는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정책과 무관하지 하지 않습니다. ◆ 스웨덴의 가치들의 결합 : 집단가치+ 개인가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보편적 의료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입니다. 누구나 공동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누구도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합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부담의 수술을 거의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재정의 고갈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경기침체가 스웨덴을 복지재정의 긴축으로 내몰았습니다. 1991년~93년 사이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2%였으며, 실업률은 1.4%~9%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보편주의 한계의 극복은 모순되어 보이는 이질적인 가치들의 절충으로 나타납니다. 집단가치에 개인가치가,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가 결합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 개인 자율책임의 강조 :“부러지지 않는 한 치료하지 말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 먼저 스웨덴은 보편주의가 낳은 난제를 개인가치와 집단가치의 결합으로 해결합니다. 자기결정과 자기 책임이라는 개인가치가 문화로 정착되어 있는 스웨덴에선, 국민들은 자율적인 건강관리를 요구받습니다. 개인선택, 개인책임이 우선시되는 스웨덴의 문화에선, “부러지지 않는 한 치료하지 말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 는 말이 당연시됩니다. 대다수의 환자는 약 처방 없이 ‘집에서 쉬고 관리’하도록 권고 받습니다.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수술을 받기보다 일단 경과를 지켜보거나 자연치료를 기대합니다. 병원은 중증 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어, 경증 일반 환자는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의료처치에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보니 어려서부터 운동이 관습화됩니다. 스웨덴은 19세기 초부터 건강과 군사적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체조를 비롯한 스포츠를 권장하여, 인구의 약40%인 340만 명(7세~70세)이 스포츠클럽 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건강관리에 있어 개인가치의 강조는 보편주의 의료체계의 지속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건강의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환자의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하고, 그 결과 의료 공공재정을 줄이는데 기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스웨덴이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중점을 두고 코로나19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정책행위자들이 보편주의 지속성의 전제가 되는 개인가치에 집착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보편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개인주의라는 스웨덴의 역사성에 매몰되어 경로 의존적 태도를 초래한 결과,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참담한 현실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 사민주의의 지속성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수용 또한 스웨덴이 택한 집단면역정책의 배경은 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결합의 부작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① 스웨덴이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결합한 배경 스웨덴은 경기침체로 인해 보편주의 의료서비스 체제를 지속시키는 공공재정의 결핍에 직면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사회가치인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결합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가치의 절충은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가 실현가능하게 된 것은 완전고용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197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던 스웨덴의 완전고용은 계급 간 타협을 강조하는 렌-메이드 모델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노조등 내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외부자들의 고용을 우선시하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였고, 이러한 계급 간 연대성이 고용과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시민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복지지출은 최소화되면서 복지비용은 세금으로 최대한 충당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복지체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자산 소득조사에 의한 표적화로 바뀌고, 공공의료의 독점은 부분적 민영화를 수용합니다. 이는 보편적 국가의 핵심전제인 완전고용의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결국 스웨덴은 자원의 희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②NPM의 도입 이는 의료체제의 개혁에서 부분적 민영화의 하나인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NPM)의 도입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웨덴 의료체제의 대표적인 NPM은 ‘purchaser-provider split model’ (구입자- 공급자모델)입니다. 스웨덴이 추구해온 기존의 ‘독점통합모델’에선 공공기관이 서비스 재정과 공급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진 반면, ‘구입자-공급자분리’에선 서비스재정과 서비스 제공이 분리되었습니다. 이용자가 서비스를 구입할 때, 정부가 비용을 책임지고,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이 함께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분리모델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관의 효율성 달성에 있었습니다. 공급자의 대표적 선정방식은 입찰이었는데, 이는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의료기관간의 경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경쟁모형이 병원의 효율성을 높이게 되었고, 진료대기를 대폭 줄이는 생산성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이규식외) ③자유선택법의 도입 또한 소비자선택시스템(자유선택법)의 도입은 의료기관간의 경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2009년부터 지역정부(Municipality, 기초자치단체)는 민간업체 의료기관을 개방하여, 이용자는 자신의 서비스를 스스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개정을 통해 광역시(County Council)는 1차 의료 진료소(Primary health care center)를 민간영역에 개방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민간이든 공공기관이든 질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은 효율성 증가, 서비스 질 개선, 이용자 선택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홍세영외) ④아델 개혁 특히 스웨덴은 1992년 의료와 사회서비스를 통합하는 비용-효과적인 아델 (Adel)개혁을 추진합니다. 이 개혁으로 고령자에 대한 장기 입원이나 돌봄의 주체가 CC에서 Municipality로 이관되었습니다. 아델 개혁의 성과는 병원에서 병상 장기 점유자가 감소하여 병상 수가 줄었다는 겁니다. 재정책임이 CC에서 Municipality로 넘어감에 따라, Municipality는 고령자의 병원에 대한 지불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역정부는 환자를 빨리 퇴원시키고 비용이 저렴한 홈케어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병상 수 감소로 나타났습니다. 1992~2005년 기간 중에 병상수는 무려 50%나 감축된 것입니다. ⑤스웨덴이 집단 면역정책을 택한 이유 이처럼 스웨덴이 일련의 부분민영화를 추진한 것은 주류경제학의 용어로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편주의의 전제인 완전고용이 무너지자 자원의 부족이란 문제와 맞닥뜨린 스웨덴이 비용극소화를 통해 생산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수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편주의가 안고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추진한 스웨덴의 절충적 의료체계는 평시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급격한 변동에는 작동을 멈춘다는 한계를 드러내었습니다. 효율극대화를 추구하는 병원시설의 감축이 코로나19등의 돌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한 것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표준적 대처 가이드 라인은 진단→격리→치료, 추적→진단→격리→치료라는 한국의 대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진단· 격리· 치료라는 경로를 따른다 해도, 의료 기관이 광범위한 환자들을 수용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 방식은 무용지물입니다. 환자의 병원 접근성이 힘들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고, 그 결과 진단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이 환자의 방임 아닌 방임이라는 집단면역정책을 결정하게 된 직접적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스웨덴 정책행위자들은 보편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기책임이라는 개인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정책행위자들은 경로 의존적 사고에 묶여 자율적 개인가치라는 기존가치를 고수하였습니다. 이들이 경로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이웃 노르딕 국가처럼 강제력이 부과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행하였다면, 지금 같은 사망자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대상의 포괄성과 균등급여를 특징으로 하는 보편주의가 완전고용의 붕괴로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게 된 결과, 스웨덴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충도 코로나19와 같은 급격한 돌발 상황에서 대처능력을 상실하도록 합니다. 이처럼 공공성을 강조하는 스웨덴이 다수 고령층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은 한국의 미래 복지체제를 수립하는데 반면교사가 됩니다. 누구나 동등한 복지를 받는 보편적 복지는 한국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자율적 책임이 강하지도 않고, 경기침체로 보편적 복지의 전제가 되는 완전고용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내부 기득권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노동시장 외부인을 포용하는 연대성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높은 소득세율과 소비세율 그리고 개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납세자의 풍토 속에서, 보편적 복지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욕심은 불행을 가져옵니다. 스웨덴식, 영국식 보편주의를 한국이 수용한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긍정적 차별’을 강화하는 잔여주의를 한국 실정에 맞게 적용시키는 복지체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홍세영,김철주,오수경(2018), “민영화 개혁과 스웨덴 의료체제의 지속성과 역동성” 최희경(2019), “북유럽 의료체계의 가치론적 접근” 이규식, 사공진, 한민경(2019), “의료와 사회서비스의 통합 제공:스웨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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