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이후 탄생된 사회주의체제는 동유럽과 동아시아등 제3세계 국가들로 확산될 만큼 자본주의의 대항이념으로 부상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사회주의체제의 종주국인 소련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산력의 퇴보로 곧 망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계속국가 유지의 동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 권력의 지속적 재생산의 요인으로 ‘미시파시즘’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 스탈린주의가 아닌 파시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스탈린주의 대 파시즘
①전체주의(totalitarianism) 특징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적 체제모형으로 전체주의가 꼽히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와 브레진스키(Friedrich and Brzezinski)는 전체주의의 특징을 “통일적 이데올로기, 일인독재에 의한 단일정당 정치, 비밀경찰 시스템, 무력과 소통의 독점, 계획경제가 상호 지탱해주는 하나의 유기적인 실체”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소수엘리트들은 주변의 합리적 의사를 무시한 일방통행의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따라서 리더의 의사에 반하는 개인과 소수집단의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전체주의 체제는 구성원에 대하여 전면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자유와 권리가 실종된 전체주의 체제의 존립 목적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후생의 증대에 있지 않고 소수 엘리트들의 권력 획득과 유지에 있습니다. 이 체제가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이유입니다.
②스탈린주의 VS 파시즘
이 같은 전체주의체제의 폭력적 행태는 소비에트, 파시스트 및 나치 체제등에서 발견됩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파시즘, 나치즘은 모두 전체주의체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주의와 나치즘(파시즘)은 주요한 차이점을 보이는데, 그 구분의 기준은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가능한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나치즘은 대중이 참여를 통해 통치를 하였다는 점에서 스탈린주의와 구분됩니다.
스탈린체제는 일인독재, 정치적 숙청, 굴락(Gulag, 소비에트의 집단노동수용소)정치, 사상통제등으로 구성원을 통제하였습니다.
반면 나치즘 또는 파시즘은 전체주의 이론이 위로부터 동시에 밑으로부터 끓어올라 대중 속에 확산되었습니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나치는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효과적 내적 통제를 달성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체제는 체제의 단일성과 폭력성을 구성원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 결과 하부 구성원과 체제가 동일시되었고, 이 점이 파시즘 체제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③미시파시즘의 정치
이처럼 권력의 재생산, 확대, 발전은 거시적 통제방식 보다 미시적 통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향식으로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거시적 통제방식 보다, 체제의 논리가 구성원의 삶 속에 깊이 침투하여 이들이 스스로 권력을 지지 옹호하도록 하는 미시적 접근이 권력 재생산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통제방식이 미시파시즘의 정치로 불립니다.
미시파시즘을 이용한 정치는 전체주의적 통치방식의 일환으로, 권력이 국민개인의 일상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아래로부터 국가 권력을 강화시키는 측면을 부각시킨 정치를 말합니다.
이러한 통제는 체제의 ‘단일적 유기체’(monolithic organic entity)를 가능하게 하여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합니다.
◆미시파시즘의 전개
①전개의 과정
그런데 이러한 미시파시즘은 위로부터의 일 방향적인 강압에 의해 전개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길들여진 몸’(docile bodies)에 의해 생산적이고 수평적인 확산에 의해 미시파시즘이 개별행위자에게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근대국가의 권력이 억압적인 실체로서 개인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으로 유입되어, 개인 주체가 그 권력을 실행함으로써 개별적 행위의 권력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속에서 개인은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을 실행하는 하나의 담지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푸코의 통찰입니다.
②북한의 미시파시즘의 전개,
권력이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개인이 권력을 사랑하고 행사하는 애국적인 전사가 형성되는 과정은 북한 주민의 반미민족주의의 의식화 과정에서 발견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호전적 반미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은 국가의 선전과 교육에 힘입은 바 큽니다. 이에 덧붙여 반미 민족주의는 주민들 자신의 내적 동학에 의해서도 형성되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선 북한의 체계적인 반미교육이 북한주민들의 반미 민족주의를 강화시켰습니다.
1986년에 간행된 인민학교 2학년생들을 위한 수학교과서에서 호전적인 용어를 사용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나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 때 인민군대 아저씨들이 한 전투에서 미제 승냥이놈들과 괴뢰군놈들을 합하여 278놈 족쳤습니다. 미제 승냥이놈들은 196놈이고 나머지는 괴뢰군놈들입니다. 괴뢰군놈들은 몇 놈 족쳤습니까?(『수학』 1986: 29).”
이처럼 북한 주민들은 적대적 반미교육을 통해 미국을 승냥이의 나라로 인식하게 되고, 반미 민족주의를 가진 전사로 커가게 됩니다.
그런데 북한주민들은 국가의 아래로부터의 교육에 의해 반미 민족주의의 인식을 가지게 된 것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패전의 기억을 통해 반미민족주의를 자생적으로 내면화하게 되었습니다.
한 탈북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미제 승냥이놈이라는 말이 가장 모욕적인 것이었어요. 미군놈들은 두 발 달린 짐승으로 우리 국민을 식민지 노예로 만든 사악한 살인자들이자 악랄한 착취자들로 묘사되었죠”
이처럼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거의 모든 북한 주민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국가의 호전적인 반미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의식화하여, 애국심과 전시민족주의로 무장한 전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미시파시즘이 1990년대를 넘어가면서 부분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후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집단주의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적 내지는 이기주의적 삶의 방식을 지향함에 따라, 또한 ‘위대한 지도자 어버이 수령’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체험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강한 국가주의적 반미의식과 실천 의지를 약화시켜 왔다는 겁니다.
그러함에도 북한 주민들의 미시파시즘은 여전히 정권을 지탱해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핵전쟁의 위기는 미제에 대한 증오심을 배가시켜 왔고 경제난으로 인한 삶의 피폐와 곤란 역시 미제의 탓으로 돌려지면서 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미시파시즘을 견지해왔다는 겁니다.
◆ 북한체제 유지의 동력
북한 권력층은 ‘전시민족주의’ 기제를 통해서 국가 권력을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주민들의 미시파시즘을 형성하였고, 이러한 권력과 폭력의 미시파시즘을 동원하여 체제를 위기 속에서도 유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식화되고 내재화된 증오와 폭력의 파시스트적 반미민족주의가 주민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실행되어, 주민들은 미국에 저항하는 애국적 전사로, 규율권력을 행사하는 자로 재생산되었습니다.
이러한 미시파시즘적 정치가 주민들과 체제와의 단일의 유기체를 형성하여 북한의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동력이 된 것입니다.
<참고문헌>
강진웅, “북한의 국가 권력에 대한 미시적 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