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어서야 해” A씨는 이렇게 다짐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난 원래 행복해질 권리가 없지. 행복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없어. 난 너무 형편없으니까.” 라며 A씨는 신음합니다. 무언가가 중력처럼 그의 몸을 다시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과거 겪은 트라우마가 A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는 겁니다. #2. “바보야. 이것도 못해. 넌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맨날 안 되는 거야.” B씨는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작은 과제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B씨는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 낮은 자존감 vs 높은 자존감 앞의 사례들처럼, 자존감의 손상은 ‘(자연적)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의미 있는 탁월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침투하여 두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현실의 모습과 스스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간의 격차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 차이에 집착하고 이를 비난할 뿐입니다. 때문에 자기가치감이 낮은 사람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윌버, 자전거 가게로 돌아가라” 1903년 세계 최초로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인 윌버 라이트(형)와 오빌 라이트(동생) 형제(Wilbur and Orville Wright)는 이들의 혁신적 도전을 꺾고자 하는 인물들의 공격으로 이렇게 조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용감하였습니다. 안락의 동굴, 자포자기의 ‘동굴’을, 멍들고 뼈가 부러지면서, 기어 올라갑니다. 마침내 동굴 밖으로 고개를 들고 황홀한 빛과 포옹합니다. ■ 라이트 형제에 대한 비난과 도전 (위키피디아 참고) 지역신문을 운영하던 라이트집안은 대형 신문사의 등장으로 파산 한 후, 자전거 수리, 제작, 판매 가게를 운영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제작에만 안주하지 않고 동력 비행이라는 도전과 혁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890년대 초, 형제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날았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1896년,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시험비행 중 돌풍에 의해 추락사한 것을 알고 바람대신 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라이트형제는 안락지대인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마침내 1
누운 채로 4년 동안 천장에 그림을 그린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창세기에 나오는 9가지 장면에다 예수의 12제자와 400명이 넘는 인물을 그린 미켈란젤로입니다. 혼신을 다한 그의 노력은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37살에 작업이 마무리 되었을 때, 그는 노인처럼 늙어버렸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희생과 헌신은 예술계에 거대한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갓 칠한 회벽에 수채화로 그린 프레스코 기법은 후대 유럽 화풍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입니다. 이처럼 희생과 헌신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대신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성원을 행복으로 이끄는 ‘선한 리더십’이라 불립니다. ◆ 경제공황은 리더의 공황 : 선한 리더십 VS 이기적 리더십 1997년 우리나라가 IMF경제 위기를 맞이했을 때,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위기에 대한 다양한 원인과 처방이 나왔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의 월스트리트지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리더십부재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달러보다 더 고갈되어 있다.”라며 IMF위기에 대한 원인으로 리더십 부재를 꼽았습니다. 리더십은 한 사람이 다른
우리는 종종 변치 않는 사귐, 두터운 사귐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 칭합니다. 지란지교는 공자의 명심보감의 교우(交友)편에 나오는 아래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공자가 말하기를,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同化)된 것이고”」 지란지교는 위의 언급처럼 지초(芝草)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의 사귐을 말합니다.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 그렇다면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안진님의 시<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풍기는 친구는 어떠한 친구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전문: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103) 먼저 친밀감을 주는 친구입니다.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남의 얘기를 서로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는 친구, 부드럽고 세련된 표
우리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인 ‘경제적인 인간’을 ‘상호적인 인간’으로 대체할 때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소통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수단으로서의 관계를 강조하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관계와 소통에 의존한다는 것이지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사실 건조한 고독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타인과 교류 하고 계약에 서명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有償性을 전제로 합니다. 등가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는 성립되기 힘들다는 겁니다. 등가교환을 관계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경제적 인간에게 행복은 소비와 사회적 비교의 함수가 됩니다. 이들은 소득과 소비가 증가하면 주관적 만족도 따라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주장입니다. 또한 이들의 행복은 주변의 행복 수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득이 높아져도 이웃과 친구의 소득이 더 늘어난다면 자신은 불행하다고 여깁니
“어쩜 이렇게 우리 아가는 예쁠까?” 우리 아기는 천사 같다며 엄마는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춥니다. “우리 아가, 정말 잘했어요.” 엄마는 한 발 한 발 뒤뚱거리며 걷는 아기에게 힘을 북돋아 줍니다. “우리 아가, 잘 커라” 엄마는 다정한 손길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입니다. 이렇게 아기는 엄마의 따뜻함을 느끼며 평화롭게 성장해 갑니다. 아기와 엄마와의 공감적 관계를 통해 아기의 자기는 발달합니다. 엄마가 아기의 욕구를 채워주는 에너지원으로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기에 대한 엄마의 공감적 돌봄이 없어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가 사랑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면, 아기는 욕구를 충족시킬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기 결함을 지닌 아기가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면, 그는 채워지지 못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대상을 찾아 지속적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접하는 중독, 성 도착등은 부모 혹은 양육자의 공감적 돌봄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self)와 ‘자기대상’(selfobject)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심리’를 분석한 학자는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인 하인즈 코헛(Heinz Kohut)입니다. ◆자기와 자기대상 코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