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번영의 메커니즘 : 이기심이 동감을 거쳐 공적 이익을 증대시켜 아담스미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번성의 힘은 이성에 뒷받침된 개인의 감수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제빵업자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자비심보다 그의 이익추구 덕택입니다. 자기보존본능·허영심등 개인의 자기애(self-love)가 공적인 부를 증진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기심은 공적인 부를 늘리는데 기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기심이 폭발적인 탐욕으로 전환된다면, 이기심은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바꾸는 파괴력을 품고 있습니다.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미스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까지 갉아먹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 동감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여기서의 동감(sympathy)은 이타주의를 의미하지 않고, 행위자의 행위가 공평한 관찰자(사회전체의 공감적인 시각과 정서)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예컨대 개인의 생활수준증대의 욕구, 허영심등의 이기심이 공평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다면, 이러한 이기심은 승인될 수 있습니다. 그런
‘어떤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것이 순간의 즐거움이었으나, 이를 즐김에 따라, 점점 그것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것에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나는 이것의 노예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발을 묶어 놓는 족쇄를 끊어 버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 ‘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로마서 1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Furthermore, just as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so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so that they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이 구절의 하반절에 의하면 죄란 타락한 마음(상실한 마음, depraved mind)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의 하나가 생명을 회복하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영적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회복하고 늘 생명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20:31)“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Messiah,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NIV) 이 구절을 달리 표현하면, 생명은 그의 정체성(Who he is)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다. “you may have life through His name (through Who he is)”(AMPC) 따라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믿는 것이며, 그의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예수님
성령세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령세례 표현이 언급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12장13절의 해석을 두고, 구원의 경험, 교회공동체의 설립, 이 둘을 모두 부인등의 주장들이 상호 대립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구별되는가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고린도전서 12:13을 구원의 경험과 교회 설립으로 이해하는 주장들을 모두 반박하고,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이럴 때, 예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을 얻은 이들이, 힘든 환경에 부딪힐 때 쉽게 넘어지고 기쁨· 평강· 온유등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문제, 또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전서 12:13을 둘러싼 성령세례 해석 논쟁 성령세례에 대한 견해들은 고린도전서 12:13의 해석에서 명확히 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so as to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복음 1장 14절은 구원의 수단(또는 agent,일꾼)인 로고스(말씀)가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을 계시하고 그의 구원을 이루었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얻게 된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로고스(말씀)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또한 로고스의 성육신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 됩니다. ◆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① 광명, 광휘의 영광로고스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시내산에 구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출24:16) 또한 회막이 세워지고 찬양이 끝났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구름이 회막(the tent of meeting)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tabernacle 이동식 예배소)에 충만하매”(출40:34)
국제정치학의 3대이론으로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구성주의가 꼽힙니다. 이 중 구성주의는 1980년대 후반, 현실주의· 자유주의등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부상한 이론입니다. 주류이론인 현실주의는 물리적 힘, 경제력등 합리적 요인이 국가의 행위, 국제관계를 설명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구성주의는 행위자의 관념과 공유된 이해가 현실을 규정한다는 두 가지 가정에 기초하고 하고 있습니다. ◆ 구성주의의 두 敎義: ①관념 구성주의에 있어, 구조를 바꾸는 것은 물리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국제관계등 현실세계를 결정하는 우선적인 힘은 경제력등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구성주의는 물리력을 현실세계 창출의 독립변수로 배제하지 않습니다. 단지 관념을 통해 부여되는 이차적 지위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관념(idea)이란 규범, 행위자의 정체성, 가치, 인식등 주관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안보상황이 물질적 힘의 분배(distribution of power)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반면, 구성주의는 국제정치가 인식의 분배(distribution of idea)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19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