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승패는 뻔한 듯이 보였다.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러시아 안으로 밀고 들어갔고 어렵지 않게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침략군을 맞이한 것은 불에 탄 도시였다. 러시아인들은 도시에 불을 지르고 떠난 것이다. 나폴레옹은 불에 탄 도시와 혹독한 겨울로 퇴각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 군대는 퇴각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의 승리는 결국 나폴레옹을 상대한 노련한 적장, 미하일 쿠투조프에게 돌아갔다. 쿠투조프의 勝因(승인)은 나폴레옹에겐 찾을 수 없었던 융통성 있는 전술이었다. 나폴레옹은 상황을 무시하고 통념에 근거한 고정적인 전술을 사용하였다. 그는 상대편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프랑스군의 신속한 진군과 모스크바 점령만 생각했다. 반면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의 진군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웠다. 시기적으로 겨울이고 병참선에서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침공은 패배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는 군을 일시 퇴각 시킨 후, 공격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이처럼 쿠투조프는 상황에 맞는 관점과 전술을 구사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 손자병법 : 장수는 주어진
두 고슴도치가 춥고 외로워 서로를 안았습니다. 그런데 침이 상대의 상처를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이들은 너무 아파서 다시 떨어졌습니다. 둘의 포옹은 외로움을 달래기보다 과거의 상처를 덧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리한 침을 가진 고슴도치들은 외롭고 힘들어도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날카로운 침들은 서로 상대의 상처들을 예리하게 공격합니다. 불안, 열등감, 낮아진 자존감, 두려움, 혼란등 상처들이 침에 찔려 다시 도지거나 악화됩니다. 외로움은 오히려 아픔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하지만 찬바람이 몸과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면, 따뜻한 품이 다시 그립습니다. 혼자보다 둘이 있을 때 더 행복했다는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각자가 우리의 삶에서 걸어 나가 버리기 전에, 다시 원래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관련기사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48) 그리고 내가 돌출한 사건만으로 상대를 판단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상대의 상처와 아픔을 헤아려 보기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만을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닌지 뒤늦은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전통이 말하는 문자의 직역에만 매달려 해석의 유연
사람들은 현실에서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꿈에서 공중을 떠돕니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이와 같은 우리의 환상을 ‘골콘다 (Golconda)’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검정코트에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공중을 떠돌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신사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엇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골콘다에서 경쟁사회의 삭막함을 말하고자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골콘다는 원래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던 인도의 부유한 도시를 말하는데요, ‘富’의 은유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림에서처럼 사람들은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부와 신분상승을 쫓아 허공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세상의 희소한 부와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돕고 살아가는 연대의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쟁사회에서 사람들 간에 시선이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의 욕구와 땅 위를 날고자 하는 환상이 공동체의 유대를 단지 환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골콘다를 떠
1905년 미국에 니켈로디언 (Nickelodeon)이라는 영화 전용극장이 등장하였습니다. 니켈로디언은 5센트를 뜻하는 니켈(Nickel)과 극장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디엄’의 합성어입니다. 극장의 이름이 뜻하듯이, 니켈로디언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약 5센트라는 저렴한 비용만 들이면 누구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니켈로디언은 이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상만이 접하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 니켈로디언의 확산 배경 – 저렴한 관람료, 빠른 프로그램의 교체 니켈로디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갑니다. 1907년~1908년에 약 8,000여개의 니켈로디언이 세워졌고, 1908년 ~1909년에 이르면 시골의 작은 지역을 제외하고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 니켈로디언이 존재하였습니다. 뉴욕시엔 1906년 4월 니켈로디언이 처음 등장하였는데, 1909년에 약 45만명의 인구에 300~400여개의 극장이 있었습니다. 1910년에 이르면 미국 전역의 도시들에 약 1만여개의 니켈로디언이 성업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매주 미국 인구의 약 30%인 2천 6백만명이 극장을 찾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니켈로디언이 이렇게 번성한 배경
이 남자, 참 둔해 보입니다. 여자 친구의 속 마음 하나 읽어내지 못하고 그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입니다. ‘난 괜찮아요’라고 하면 ‘그래 그런가 보다’합니다. (관련기사 : < Fine> sung byTayler Buono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44) 이 여자도 문제입니다. 괜찮지 않으면서 그냥 괜찮다고 합니다. 대신 ‘부디 행간을 읽어주세요. Please read between the lines.’라는 글자를 얼굴과 이마에 붙이고, 남자가 이 신호를 눈치 채어주길 끝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결국 무응답. 제풀에 꺾인 여자는 마음의 문을 걸어두려고 합니다. ◆ 방어기제- 부정 그런데 그 남자가 정말 미련한 곰일까요? 사람들은 ‘사실을 왜곡되게 생각하려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삐딱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외부 공격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남자는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여자 친구의 욕구와 현실을 자신의 의식에서
2017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가 우리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100명의 화가들이 직접 그린 유화애니메이션은 고흐의 외로움을 진정성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가 왜 죽었는지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빈센트의 광기와 상처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말미에 그가 그의 편지에서 천재인 자신을 nobody라 자학하는 장면은 아픔과 동시에 분노를 일게 합니다. 그의 죽음 이면에 세상의 오만과 편견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somebody'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nobody'들에게 비정상의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울타리를 높이 치고 '불청객'들의 진입을 저지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세상의 지배적 패러다임의 희생자였습니다. 세상이 정한 범주를 벗어난 이들은 쓸모없는 존재, 냄새나는 존재로 천대받습니다. 규범의 일탈자는 광기로 재단되기 십상입니다. 고흐도 이와 같은 비정상으로 인해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아이들에게 돌팔매를 당할만큼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에서 싸이프러스가 고고히 별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고 있습니다. 비록 nobo
‘현실은 꿈이 두려워서 깨어나는 곳’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합니다. [1] 슬라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를 “우리는 꿈으로부터 도피하여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로 해석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꿈 속으로 도피하지만, 환상의 끔찍함에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지젝은 “꿈은 현실을 충분히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현실은 그들이 마주치는 꿈을 충분히 다시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언명의 충실한 수행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입니다. 린치는 그의 영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현대인들의 혼돈과 불안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현실과 환상의 세계는 관계 이데올로기를 폭로 ‘영화계의 카프카’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는 린치의 철학은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잘 드러나 있습니다. [2]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다.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잠자리 안에서 한 마리의 큼직한 독벌레로 변한 자신을 깨달았다.” 변신의 시작은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간이 벌
사랑은 생산적이다.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과 개발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꽃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이 일방으로 흐르게 된다면, 그 사랑은 히스테릭적 일 수 있다. 자신이 상대의 아름다운 구원자라는 환상을 품고, 상대의 결여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실제로 히스테릭한 사랑은 흔히 발견되는 사랑 방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런 욕망은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극한다. 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추측하여 그의 불완전함을 채워주고자 한다. 이처럼 우리는 ‘I want to be wanted.’라며, 욕망되는 대상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정의하였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의 원인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라캉의 표현에 의하면, 주체가 타자의 욕망의 대상 a가 되려 한다. 자신의 한 부분, 즉 대상 a를 타자의 결여를 메우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자는 대상a를 통해 향락, 즉 주이상스를 획득하게 된다. ◆ 주체, 히스테릭한 사랑에서 분리 히스테릭한 사랑은 타자의 결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모든 정당한 정부는 공화제”라고 설파하였다. 공화주의 정치체제는 각 개인이 법에 의존하면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 사상은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프랑스혁명의 모태가 되었다. 루소는 이러한 정치체제가 일반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일반의지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이익을 향하는 의지를 말하는데, 개별의지· 전체의지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개별의지는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의지이며, 전체의지는 개별의지의 단순 총합으로, 개별의지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일반의지는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이익, 발전, 그리고 긍지를 바라는 의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루소의 공화주의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일반의지가 구현된 정치체제이다. 이는 공동이익의 도덕적 기반이 자유와 평등에 기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의지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위하면서 모두를 위하고, 모두를 위하면서 자신을 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명한 입법자가 일반의지를 정당화 할 수 있어 그렇다면 개별의지를 일반화하여 어떻게 일반의지를 생성시킬 수 있을까? 루소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좋은 사회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저서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를 가라’의 일부 내용이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홍후보자의 주장은 표면적으로 학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프레임간의 충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관련기사 : 프레이밍 효과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34) ◆ 필터링한 프레임, 주장의 이유를 무시 이 책에서 논란이 되는 관련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배우는데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고졸자가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첨단의 기술을 따라 갈 수 없다. 더욱이 첨단 기술에 접하기 위해서는 영어에 능통해야 하는데, 입시공부를 등한시 한 사람이 영어를 잘할 리 없다. 단순히 남이 요구하는 것을 기계적으로 해주는 프로그래머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빌 게이트와 같이 시대를 앞서 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데 그야말로 산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간단한 고교수학 조차 등한시 한다면 컴퓨터 과학의 첨단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보고 상황을 다르게 받아 들 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컵의 물이 반 정도 차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의 틀을 달리 하여 반 정도 비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생각의 틀이 달라지면 결정도 달라진다. 컵에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아있다며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상에 도전적으로 맞서는 반면, 이제 반 밖에 없다며 비관적으로 느끼는 이들은 현상을 넘지 못할 큰 벽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프레이밍효과라 부른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 혹은 표현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같은 사건이나 상황을 두고 각각 다른 프레임을 형성한다. ◆프레임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도 달라져 프레이밍 효과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가 아모스 트베르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의 실험이다. 아시아에 600명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도 있는 희귀병이 발생하였다. 미국 정부는 질병퇴치를 위한 대안으로 두 개의 프로그램을 고려하고 있다. 아모스 트베르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은 두 가지 실험을 하였는데, A B의 선택대안이 담긴 첫 번째 실험과 C D의 선택대안을 포함한 두 번째 실험을 하였다. 먼
한국 멜로영화들 중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접속(1997)을 꼽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한 남자는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파합니다. 한 여자는 친구의 애인을 바라만 보는 짝 사랑으로 괴로워합니다.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은 방송국 PD동현(한석규)과 쓸쓸함과 갈증으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홈쇼핑채널 쇼핑 가이드 수현(전도연). 이렇게 가슴에 아물지 않은 흉터를 지닌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PC통신으로 접속합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을 마주보는 접촉을 약속합니다. 동현은 약속장소인 피카디리 극장 앞으로 나가지만, 극장 앞 카페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밤새 기다리는 수현. 마침내 절제된 마음의 문을 연 동현은 수현에게 뛰어나가고, 두 사람은 마주 봅니다. 그리고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가 경쾌하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https://youtu.be/XhevMscHLsI?list=RDXhevMscHLsI 접속은 관객의 마음을 따사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동현과 수현은 겉으론 외로움으로 괴로워 하지만, 안으론 깊이 숨어있는 가지려는 욕망으로 아파합니다. 하지만 이들
# 스티브 잡스는 1986년 루카스 필름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픽사를 사들였다. 당시 픽사는 실패한 사람들의 집합소였고 뚜렷한 비전조차 없었다. 그런데 잡스는 2006년 75억 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되팔았다. 회사가치를 20년 간 1500배나 성장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픽사가 성공에 이른 비결은 천재들의 영감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대화와 노력이었다. 예를 들어 픽사는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들면서 스토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집중하였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내 감독들과 스토리 작가들이 모인 ‘브레인 트러스트’를 거쳐 나왔다. 토이스토리 감독과 제작자는 자주 트러스트를 소집해 지금까지 작업한 버전을 보여주고, 트러스트는 토론을 벌였다.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동안 스토리의 미흡한 부분들이해결 되어갔다. (삼성경제) 픽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러면서 탁월한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해진다. 위의 사례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픽사 창작력의 핵심은 공동창작인데, 천재적인 개인이 아니라 대중지성에 기반한 집단 지성을 픽사 성공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의 원천은? 대중의 집단지성(Collective
정부는 시장실패의 개선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 또 정부는 행동주의적 시장실패의 교정을 위해 개인들의 선택에 개입하기도 한다. 전자의 방식이 전통경제학에서 세금등을 이용한 정부의 강한 온정주의라면, 후자는 행동경제학에서 개인들의 행위를 유도하는 넛지(nudge)를 통한 정부의 약한 온정주의라 할 수 있다. 행동주의적 시장실패란 경제주체들이 상황과 맥락에 의해 편향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때 정부는 넛지, 즉 온정주의로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정당성을 얻는다. 이와 같은 정부의 온정주의적 개입은 비합리적 경제주체들의 행복을 증진시킨다. 예를 들어 담배의 경고문구와 혐오그림은 흡연자들을 금연으로 이끄는 부드러운 유도, 넛지가 된다. 이는 경제주체들의 건강과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자유주의적 온정주의 정부가 개인의 선택에 개입할 수 있는 정당성은 경제주체의 편향성이다. 이는 주류경제학이 전제하는 경제인의 알고리즘과 배치된다. 편향적 경제주체는 선호가 역전되며, 맥락에 의존하여 감성과 본능(시스템 Ⅰ)으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선호가 일관되며, 맥락과 독립하여 냉철한 이성과 계산(시스템 Ⅱ)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 인간들과 결을
원래 한가위는 신라시대에 노동 생산성을 독려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명절이었다.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한가위 ·가배(嘉俳)라고도 한다.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보름이라는 뜻의 가뷔(가배)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배는 지금 추석의 의미인 추수감사와 연관성이 약하다. 오히려 노동(생산) –평가-보상이라는 지금의 성과평가시스템의 일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가배의 시작은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녀 두 사람이 경주 6부를 두 패로 나눈 뒤, 자기 지역 내의 부녀자들을 거느리고 어느 편이 곱고 질긴 베를 짜는가를 겨루었다. 길쌈 경연은 7월 16일에 시작하여 8월15일에 이르렀는데, 8월15일의 길쌈 겨룸의 결과에 따라 진 쪽이 이긴 편에게 온갖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였다. 그리고 서로가 어울려 갖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가배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에서 서술하는 가배는 길쌈이라는 노동 후의 뒤풀이 성격인 것이다. 신라시대 부녀자들의 길쌈경연이 끝난 후 열린 연회 및 놀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길쌈, 경연, 그리고 가배등 일련의 체계를 현재의 경영개념에 적용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