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멜로영화들 중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접속(1997)을 꼽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한 남자는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파합니다. 한 여자는 친구의 애인을 바라만 보는 짝 사랑으로 괴로워합니다.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은 방송국 PD동현(한석규)과 쓸쓸함과 갈증으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홈쇼핑채널 쇼핑 가이드 수현(전도연).
이렇게 가슴에 아물지 않은 흉터를 지닌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PC통신으로 접속합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을 마주보는 접촉을 약속합니다.
동현은 약속장소인 피카디리 극장 앞으로 나가지만, 극장 앞 카페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밤새 기다리는 수현. 마침내 절제된 마음의 문을 연 동현은 수현에게 뛰어나가고, 두 사람은 마주 봅니다.
그리고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가 경쾌하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https://youtu.be/XhevMscHLsI?list=RDXhevMscHLsI
접속은 관객의 마음을 따사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동현과 수현은 겉으론 외로움으로 괴로워 하지만, 안으론 깊이 숨어있는 가지려는 욕망으로 아파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동여매어주며 아픔을 달래줍니다.
소유에 대한 갈증은 이렇게 따뜻한 접속을 통해 서서히 해소되어 갑니다. 그리고 “You’ll hold me in your arms. And say once again you love me”라는 희망이 솟아납니다. 접속, 곧 ‘당신이 두 팔로 나를 안아 주는 것’이 상처의 치유가 된다는 것이지요.
목마름과 냉랭함을 회복의 상쾌함과 온기로 돌려놓는 힘은 단절이 아닌 소통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 집단 지성은 창조의 동력
사람 간의 접속이 회복을 위한 힘이 된다면, 사람 간의 협력은 창조의 동력이 됩니다.
전구, 라디오, 비행기등 인류 발명의 역사에 획을 그은 위대한 발명품들은 한 명의 천재가 만든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그 천재의 결과물도 그가 여럿 개인들의 힘에 기대어 얻게 된 산물입니다.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영화는 1895년 프랑스의 뤼뮈에르 형제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세계영화사에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에 대한 기존 발명들의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이것들에 추가적인 아이디어를 더하여 지금 영화의 원형을 내놓게 됩니다.
결국 영화는 여러 사람들 간 협력의 성과물이 되는 셈입니다.
◆ 영화 발명을 위한 전제 조건들
그럼 영화 발명을 위해선 어떠한 전제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먼저 영화는 사람들의 눈의 착각을 이용합니다. 정지된 영상들이 빠른 속도(1초에 16장 혹은 24장)로 지나갈 경우, 눈은 일련의 정지화면을 움직임으로 착각하는 것이지요.
움직임에 대한 눈의 착각을 보여주는 놀이기구들이 영화발명이전에 등장하였습니다. 페나키스토스코프, 조이트로프등이 그것들입니다.
(관련기사: '잔상효과의 놀이기구들'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32)
하지만 이러한 놀이기구들은 움직임의 착각을 만드는 도구일 뿐, 실제 움직임을 반영하는 활동사진인 영화의 발명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발명을 위해선 몇 가지 요소들이 필요하였는데요. 고정영상, 지속적인 영상 촬영이 가능한 필름, 필름의 움직임과 멈춤을 조절하는 간헐장치등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활동사진인 영화가 발명될 수 있었습니다.
◆고정영상
영화발명의 초기 단계의 숙제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비친 이미지를 고정영상으로 붙잡아 대량으로 복제하는 기술의 발명이었습니다.
옵스큐라는 모든 카메라의 원형인데요, 어두운 방 벽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바깥 풍경이 반대편의 벽면에 역상으로 비치도록 하는 암상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옵스큐라는 화상을 사진처럼 고정영상으로 남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상을 대량으로 복제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이가 19세기 프랑스 발명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였습니다.
그는 고정영상을 만들기 위해, 광선에 노출되면 딱딱해지는 역청의 일종인 유대 비투멘 (bitumen of Judea)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1826년 용해제인 라벤더 오일에 비투멘을 녹여서 백랍판(금속판)에 발랐습니다. 그 백랍판을 넣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창밖을 향해 설치한 다음 무려 8시간 동안 노출을 주었습니다.
광선이 많이 비치는 밝은 부분의 비투멘은 단단해지고 반대로 노출되지 않은 비투멘은 라벤다 오일에 의해 용해되어, 빛을 받은 부분만이 영구적인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 투명 셀룰로이드 필름
영화의 영상이 만들어지기 위한 또 하나의 숙제는 촬영된 영상이 카메라 안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촬영된 영상이 담긴 유제가 카메라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여야 지속적인 영상의 기록이 가능합니다.
조이트로프에서 사용되는 긴 조각 등은 순간의 영상만을 기록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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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날로그 필름의 제왕이었던 코닥회사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만은 1884년 이 문제를 롤 필름의 발명으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종이위에 얇은 젤라틴 유제를 발라 롤 필름을 만든 것이지요.
하지만 이스트만 아메리카 필름이라 이름 붙여진 이 종이 롤은 프린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네거티브(네거티브 화상을 만드는 필름)에 광선을 통과시켜 인화지로 이미지를 프린트 하게 되는데, 프린트를 위해 불투명한 종이로부터 유제를 분리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제가 종이에서 분리될 때 네거티브가 늘어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는 플라스틱 롤 필름의 발명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사진을 대중화하기 위해 얇은 감광유제가 코팅이 된 투명하고 유연한 플라스틱 재질의 롤 필름을 한니발 굿 윈 (Hannnibal Goodwin)이 발명한 것이지요. 투명 셀룰로이드 필름은 사진의 대중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획기적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헐 장치 intermittent device
영화 발명을 위한 다음의 난제는 필름을 규칙적으로 게이트에 노출시키는 간헐 운동의 문제였습니다.
간헐장치 혹은 간헐 운동은 노출시킬 필름을 규칙적으로 카메라 혹은 영사기의 게이트(필름이 노출되는 부분)로 이동시킨 후 게이트에서 잠시 멈추게 하고, 다시 새로운 필름을 게이트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 간헐운동은 잔상효과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정지 필름이 연속하여 움직일 때, 사람의 눈은 정지를 움직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필름의 규칙적인 연속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지요.
간헐운동은 셔터와 갈고리(pull down claw)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영화카메라의 셔터는 필름의 프레임이 일정시간 동안 노출되도록 조리개를 여닫는 장치입니다.
셔터가 열리면 네거티브 필름은 몇 초 동안 (1/48초) 빛에 노출됩니다. 셔터가 닫히면 네거티브에 이르는 빛이 차단됩니다. 셔터가 완전히 차단되자마자, 갈고리가 노출된 필름을 밑으로 끌어내리면서 네거티브의 다음 프레임을 필름게이트로 이동시킵니다. 필름의 프레임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게이트 노출위치로 옮겨지는 동안 셔터가 빛을 차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간헐장치는 필름 영상의 질과도 관련됩니다. 셔터가 필름이 움직이는 동안 빛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면 필름에 기록되는 영상은 얼룩이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프레임이 이동하는 동안 빛을 충분히 차단하는 간헐 장치가 필요합니다.
간헐장치를 사용한 카메라를 제작한 이는 프랑스 물리학자 쥘르 마레이입니다. 그는 1888년 장총과 같은 모양의 사진 총을 발명하였는데요, 총구에 렌즈를 두고, 탄창 공간에 방아쇠를 당기면 회전하는 건판을 두었습니다. 초당 120프레임의 속도로 종이필름위에 사진을 감광할 수 있도록 간헐장치를 사용하였습니다.
◆키네토그래프와 키네토스코프
이제 영화발명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갖추어졌습니다.
에디슨의 조수인 딕슨은 파리에서 유연한 간헐장치를 사용하는 마레이의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스트먼 코닥 생필름을 확보합니다.
그는 필름을 약 35mm너비의 띠로 잘라내고 필름이 카메라를 통과할 때 톱니가 필름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각 프레임의 양쪽 면에 네 개의 구멍을 뚫었습니다. 이는 카메라에서의 유연한 간헐 운동을 구현한 것이지요.
그는 이를 토대로 카메라인 키네토그래프와 관람상자인 기네토스코프를 만듭니다.
그리고 키네토그래프와 키네토스코프는 앞으로 등장하는 모든 활동사진의 발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영화 용어 : 현상과 인화
필름은 현상과 인화의 순서를 거치는데요. 필름에 노출이 끝나고 카메라 셔터가 닫히는 순간, 사진은 이미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필름에 담긴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latent)상입니다.
이 필름은 약품처리를 통해 네거티브필름이 됩니다. 이 과정을 현상이라고 합니다. 네거티브를 확대기에 걸고 빛을 비추면, 필름의 영상이 인화지에 맺힙니다. 이 과정을 인화라고 합니다. 이후 인화지를 약품 처리하여 사진을 만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