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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영화와 세상⑤ ] 니켈로디언의 확산 배경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상승

1905년 미국에 니켈로디언 (Nickelodeon)이라는 영화 전용극장이 등장하였습니다. 니켈로디언은 5센트를 뜻하는 니켈(Nickel)과 극장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디엄’의 합성어입니다.


극장의 이름이 뜻하듯이, 니켈로디언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약 5센트라는 저렴한 비용만 들이면 누구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니켈로디언은 이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상만이 접하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 니켈로디언의 확산 배경 – 저렴한 관람료, 빠른 프로그램의 교체


니켈로디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갑니다.   1907년~1908년에 약 8,000여개의 니켈로디언이 세워졌고, 1908년 ~1909년에 이르면 시골의 작은 지역을 제외하고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 니켈로디언이 존재하였습니다. 


뉴욕시엔 1906년 4월 니켈로디언이 처음 등장하였는데, 1909년에 약 45만명의 인구에 300~400여개의 극장이 있었습니다.  1910년에 이르면 미국 전역의 도시들에 약 1만여개의 니켈로디언이 성업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매주 미국 인구의 약 30%인 2천 6백만명이 극장을 찾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니켈로디언이 이렇게 번성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먼저 니켈로디언의 저렴한 관람료가 관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 유행한 엔터테인먼트 공연의 일반적인 형식은 보드빌이었습니다. 보드빌은 1890년대 중엽부터 1930년대 초 사이에 미국등지에서 성행한 버라이어티 라이브 공연 쇼를 말하는데요. 보드빌 무대에 고전음악, 대중음악의 노래 ,무용, 코미디, 서커스, 곡예, 마술등이 다양하게 펼쳐졌습니다. 


노동자 계층들에겐 이러한 보드빌 극장의 문턱이 높았습니다. 1890년대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약20센트였는데, 보드빌 극장의 입장료는 최소 15센트(주간 상영기준)에서 최대 1.25달러(주말 상영기준)에 달했습니다. 그러므로 보드빌 극장에서의 버라이어티 쇼는 중산층들의 문화로 인식되어, 대중문화로 확장하는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반면 니켈로디언은 ‘5센트 극장’이라 불릴 만큼 관람료가 저렴하였습니다. 약5센트라는 관람료로 대중들은 극장에 쉽게 접근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더 이상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오락이라는 인식을 니켈로디언은 대중들에게 환기시켜주게 된 것이지요.


니켈로디언의 확산의 배경엔 프로그램의 빠른 교체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이는 상영업자들이 제작자들로부터 필름을 사는 대신 빌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필름 임차는 구입의 문제점인 구입금액의 회수를 위한 장기간 상영을 요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빈번한 교체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영업자들은 일주일에 심지어 일곱 번이나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교체는 정기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람객의 수를 늘리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니켈로디언의 확산 배경 – 노동시간 단축, 임금 상승


특히 니켈로디언이 확산하게 된 배경에는 여유시간과 소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문화는 여유의 산물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소득과 여유시간이 갖추어야 비로소 문화를 찾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은 니켈로디언의 확산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대중들이 문화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일일 노동시간의 하락과 임금 상승 덕택이었습니다. 


노동임금의 상승은 노동자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시간당 평균임금은 1890년 약 20센트에서 1926년에 약 64센트로 상승하였습니다. 소득의 증가가 여유로운 문화소비로 이어진 것이지요.


또 노동시간의 감축도 노동자들을 영화와 오락등에 시선을  돌리게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1895년에 평균 10시간이었으나, 1914년에 이르면 9.3시간, 그리고 1919년에 8시간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주당 노동시간은 1900년대에 66 시간에 달했는데, 1920년대에 41시간으로 대폭 감소합니다.


노동시간의 감축은 기계화의 결과였습니다. 기계화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게 됩니다. 주어진 노동시간에 생산량의 증가는 역으로 제품 단위당 노동시간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감축은 이러한 노동생산성 상승 덕택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생산성 증대, 즉 단위노동시간의 하락으로 노동시간을 여가시간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노동자들의 평균노동임금의 상승과 평균 노동시간의 하락은 재화와 문화의 소비를 촉진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이 더 많은 여유시간과 소득을 보장받게 되자  과거 음식물이나 의복을 직접 생산하기보다 구매하기 시작하였고, 오락을 스스로 만들기보다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니켈로디온의 확산도 이러한 노동시간의 하락과 노동임금의 상승 덕분이었습니다.



◆ 국민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니켈로디온의 미국 전역으로의 확산이 노동시간의 감축과 임금의 상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실증에 근거하여,  부의 증대의 원리가 간단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임금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주입되어 왔던 부의 원리는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 혜택 등으로  부를 늘려주면 투자와 소비의 증대로 생산 소득의 회로가 활성화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한 논리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유효수요와 소득을 늘리기 위해 부자들에게 돈을 쥐어 주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에게 임금과 여유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재화와 문화의 소비로 이어진다는  실증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또 장기성장의 관점에서  주류경제학의 법인세 인상에 대한 반대는 자가당착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세이의 법칙에 따라 수직의 장기 공급 곡선을 우측 이동 시켜 국민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이 장기 공급곡선의 이동을  위한 필수 요건인 노동자들의 교육과 인적자본의 축적을 위한 재정 투입 증대를  반대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부의 원리는  환상의 이데올로기, 자가당착의 비논리에서 벗어나 실증에 기댄 원리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미국 니켈로디언의 사례가 명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국민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노동시간 단축이 부자들의 지갑을  두툼하게 하는 정책보다  더욱 효과적인 정책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참고문헌>

홍종규(2008), "미국의 초기 영화관 니켈로디언 고찰", 전북사학

홍종규(2013), '미국 초기 영화산업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연구', 강원대 박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