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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 중보 기도 > [ 말씀 QT ] ‘한 손에 아픈 사연을 붙들고 또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들어’

-디모데전서 2:1

영혼의 구원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는 하나님과 상처 받은 영혼 사이의 단절을 이어주는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의 중요성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자신의 통치자, 곧 영적인 주인이 교체되는 것으로, 이전에 자신을 주관하던 것들, 곧 우상으로부터 벗어나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구원이 단순히 옛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강가에서 조약돌을 줍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유는 불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 있어 사탄의 지속적이고 집요한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본업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불신자를 수렁 속에 빠뜨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불신자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불신자는 영원히 사탄의 지배하에 놓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혼의 구원은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은 구원받으려는 자를 붙들고 그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를 사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사탄과 영적전쟁을 치르는 것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자가 이 전쟁에서 사탄을 무찌르고 승리하게 된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주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승리의 관건은 예리한 무기를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올무에서 영혼을 구출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는 불신자의 의지도, 그의 선한 행위도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라는 무기는 겉으로 보기에 날 선 검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탄의 불화살을 맞아 보기 전까지만 유효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물리치는 방안을 막9:29에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귀신을 쫒아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He replied, ‘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

예수님은 기도만이 사탄을 쫒아 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사탄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는 인간의 의지도, 그의 선한 행위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연약하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 제대로 맺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우상을 섬기는 자가,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불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의 중요성이 그래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중보하다'의 일반적 개념

‘仲保하다’(intercede)는 어원 적으로 라틴어 ‘inter’와 ‘cedere’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intercede’의 ‘inter’는 ‘between’(사이)를 의미하고 ‘cedere’는 ‘go’(가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중보하다’는 어원에 비추어 볼 때, 양쪽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서로를 연결해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intercede’의 실제 뜻풀이도 어원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Collins 사전에 의하면 ‘intercede’는 ‘to come between parties or act as mediator’를 뜻합니다. 또한 Merriam Webster 사전에 의하면 ‘intercede’는 ‘intervene between parties with a view to reconciling differences’ 즉 ‘mediate’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중보하다’는 ‘양자의 사이에 들어가다’, 또는 ‘서로 다투는 양측을 화해시킬 목적으로 사이에 개입하여 조정 중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중보기도의 특징

성경에서의 ‘중보’, 빈다는 의미를 가진 ‘도고(禱告)’의 기본적 정의도 중보의 일반적 개념과 다르지 않습니다. 

‘중보(기도)’, 곧 ‘intercession’는 중재자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inter)에서 그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cede) 행위, 곧 그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중보기도는 일반적 ‘중보하다’의 개념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중보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며 특권입니다. 

중보기도는 제사장적 사역으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제사장으로 임명된 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중보자가 되어 중보기도를 감당하는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행해야 할 신성한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 양측의 불신으로 공동체의 안정이 흔들릴 때 양측을 신뢰관계로 연결하는 것 등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이 일을 실제로 담당하는 것은 중보기도자의 사역입니다. 

둘째, 중보기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도고하다’ ‘중보하다’는 히브리어로 ‘파가(paga)’인데, 파가는 ‘생각이 떠오르다’, ‘청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선  ‘만나다’, ‘탄원하다’란 뜻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파가’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 그분께 다른 이를 만나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헬라어의 ‘엔튀그카노’(έντυγχάνω)도 ‘도고하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어떤 사람의 유익을 위해 중재한다’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2:1은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I urge, then, first of all, that petition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be made for all people-)

이처럼 중보기도는 중재자가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즉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 간청을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셋째, 중보기도를 하는 중재자는 영적 산파입니다.  

중보기도는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과의 전쟁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세력하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을 차단하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존재이유입니다. 

때문에 구원이 시급한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 영혼이 악한 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영혼의 연약함으로 인해 그가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적산파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로마서8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 for us through wordless groans) 

성령이 연약한 영혼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듯이, 영적 산파인 중보자는 연약한 영혼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그 영혼의 거듭남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렇게 영적 산파는 성령이 그 영혼에 임하시어 불신자가 영안을 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 ‘한 손에 아픈 사연을 붙들고 또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들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깊은 밤, 적군에게 포위된 야전군으로부터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SOS의 다급한 목소리가 도중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급히 전선을 점검 하던 중 언덕 위 전선이 잘려진 것을 발견하고 연결을 시도했지만 전선은 1미터 가량이나 모자랐다. 생각다 못해 통신병은 양쪽 전선줄을 벗겨 양손으로 잡아 긴급구조 요청의 내용이 지원본부에 전달되게 한다. 이른 아침 이 통신병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사망원인은 감전사로 기록이 되었다.”(이정현 「중보기도」)

독일 통신병은 이렇게 양쪽 전선줄을 잡고 처절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스스로가 연결선이 되어, 귀한 다른 생명들을 살렸습니다. 

이 예화는 단절은 곧 죽음이라는 것과, 이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중재자의 헌신과 기도가 요구됨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중보기도의 핵심은 그 싸움이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 영혼을 사로잡아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 원수 마귀와의 싸움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2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이처럼 구원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하늘의 악의 영들과 맞서는 영적 전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영혼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과 대적하여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승리할 때 획득되는 것입니다.  즉 그 영혼의 영과 혼과 육을 묶고 있는 사탄의 결박이 풀리도록, 중보기도를 통해  사탄의 공격을 막고 사탄의 요새를 무너뜨릴 때 얻어지는 승리의 결과물입니다.

사탄은 개인, 교회, 혹은 국가가 갈등과 분열로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 이 틈을 노리고 성벽을 공격합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이 공격을 막아내는 유일한 길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간구하는 중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권능으로 사탄의 불화살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성벽을 방어하는 전사가 되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재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영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어 개인과 공동체의 성벽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낙관적인 것은 우리의 승리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b은 이렇게 승리를 선포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이처럼 우리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공격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독일 통신병의 심정으로 ‘한 손에 아픈 사연을 붙들고 또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들어’ 하나님과 상처받은 영혼 사이에 끊어진 전선을 연결해야 합니다. 

이러한 최종승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길이 될 것입니다.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갈등의 원인에는 상호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불신을 틈타 하늘의 악의 세력은 성벽의 빈틈을 노리고 공동체의 성벽 전체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간의 갈등은, 에베소서 6:12의 지적처럼, 혈과 육을 상대하는 다툼이 아닙니다. 이는 정부와 의료계 간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자인 사탄을 적으로 상대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을 물리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으로 악의 영과 맞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중재자로써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영적 전투에 임할 때입니다. 

이 승리는 이미 주어졌다는 믿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히 이 영적전쟁에 참전 할 때, 사탄은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의료분쟁에 마침표를 찍는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 입니다. ) 


<참고문헌>
김한옥, “영혼구원을 위한 중보기도의 한 실례”
이진, 「중보기도의 중요성과 효과적인 시행방안」, 목원대학원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