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air is still a chair, even when there's no one sittin' there But a chair is not a house and a house is not a home When there's no one there to hold you tight And no one there you can kiss goodnight 의자는 여전히 그대로 의자죠, 그곳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도. 하지만 의자가 집(house)이 될 수 없듯이, 집(house)도 안식처(home)가 아니에요, 그 곳에 당신을 꽉 안아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당신이 잠들기 전에 굿나잇 키스를 해줄 사람이 없다면... A room is a still a room, even when there's nothin' there but gloom But a room is not a house and a house is not a home When the two of us are far apart And one of us has a broken heart 방은 여전히 방이에요, 비록 어둠만이 깔려있을지라도(어둠 외에 어떤 것도 없을 지라도). 하지만 방이 집이 아닌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굿판을 멈추고 출산주도성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출산주도성장론이란 국가가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아이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1억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이에 따르면 매월 33만원이 출산 가정에게 제공됩니다. 한국당의 출산주도성장의 제안은 총생산과 1인당 생산을 혼동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출산증가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것이 경제성장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미칠 것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총생산량 vs 일인당 생산량 지금까지의 총생산함수는 Y = F(K, L)로, 총자본 K ・ 총노동 L의 투입으로 총생산량 Y가 산출됩니다. 이를 변형한 생산함수는 Y = F(K, L×E)로, E는 노동의 효율성(efficiency of labor)을 의미합니다. 이 식에 의하면, 총생산량은 자본과 효율적인 노동자의 수( L×E)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생산함수를 이용하여 노동자 1인당 생산량과 총생산량을 결정하는 각각의 변수들을 파악해보면, 이들은 같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논쟁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견해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가져와야 합니다. 예컨대 ‘정치인 A씨의 머리카락 숫자가 몇 개인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사람마다 그 숫자를 달리 주장해도 그의 머리카락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쟁에서 실용주의적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근래 정치권에서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에도 실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보수진영은 소득주도 성장(임금주도성장)이 총수요를 줄이고 양극화를 부추기는 ‘망국적’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총수요를 늘리고 소득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으로 수용합니다. 하지만 임금주도 성장 논쟁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다툼일 수 있습니다. 양진영이 임금주도성장에 대해 현격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각 진영이 생각하는 총수요논리회로를 각각 적용해도 이에 따른 정책 실행의 개별 결과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서입니다. ◆ 보수 진영, 소득주도성장에 왜 민감하게 반응하나?: ‘법인세 논쟁 시즌Ⅱ’ 자유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망국적, 괴물, 한 놈만 팬다’라는 험악한 용어를 동원하며, 소득주도성장정책에 이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
[Verse 1] Spend my time worrying of broken promises Focused on the smell of all the burnt out cigarettes My thoughts play on repeat Only comfort that I keep 'Cause in a moment I will be Something you will forget 깨진 약속들로 괴로워하다 시간을 많이 써버렸네 다 타버린 담배 냄새를 계속 맡고 있었어 머릿속에 위로라는 말만이 계속해서 떠올라 (or 생각들이 계속 반복돼, 그 생각들이 나의 유일한 위안) 왜나면 이제 곧 난 네가 잊어 버릴 무언가가 될 테니까 [Chorus] Hopeless, hopelessly romantic You, you got me stranded Ooh, I'm blown, blown, blown 절망적이야, 난 로맨틱과는 어울리지 않아 넌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지 오, 난 망가졌어 [Verse 2] Now tell me was I ever something that you could regret I know I wasn't the one for you But at leas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에는 20여년 전부터 고추장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공장이 들어섰다. 지역 주민들이나 지방 자치단체는 공장이 들어섬으로 인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많은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장들이 들어서고 기업의 매출이 늘어났어도 고용은 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한 기업은 매출이 100배가 늘어나는 지난 25년 동안 늘어난 직원 수가 고작 10여명일 정도로 매출 증가와 고용 증가는 상관관계를 잃어버렸다. 25년 동안 매출이 100배 늘어나면서 직원의 숫자는 10여명이 늘어나면, 그건 고용이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상하, <명견만리> ‘일자리가 사라진다’ 편 일부 내용 요약) 앞의 사례는 고용없는 성장 (jobless growth)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의 매출과 이윤 증가가 일자리 증가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경제에서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경제현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19일 “현재 우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이르고 있으나 경제성장의 혜택이 중산층, 서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모순적 구조가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개인의 과제로만 남겨 둘 수 없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의 존재가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선안남)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를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친 자존감은 아물어 간다는 겁니다. 이처럼 친구・ 이웃・ 공동체・국가로부터의 사회적 지지는 낮은 가치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롤즈는 권리와 자유, 기회, 소득, 부, 그리고 자존감을 사회적 기본 가치 (primary goods)로 언급하면서,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적 가치로 자존감을 지목합니다. (홍성우) 롤즈는 자존감의 자원으로 무엇보다 상호존중을 강조합니다. 자존감은 타인들의 존중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타인을 수단이 아닌 도덕적 인격으로서 존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롤즈는 자존감의 토대로 세 가지 방식을 말합니다. 첫째, 그것은 극빈자의 기대치를 증진시켜야 한다. 둘째, 공정한 기회균등을 허용하여야 한다. 셋째, 평등한 정치적 자유들의 공정한 가치를 제고하여야 한다. 우선 평등한 정치적 자유는 헌법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을 이에 적용해 볼 때,
#1. “일어서야 해” A씨는 이렇게 다짐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난 원래 행복해질 권리가 없지. 행복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없어. 난 너무 형편없으니까.” 라며 A씨는 신음합니다. 무언가가 중력처럼 그의 몸을 다시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과거 겪은 트라우마가 A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는 겁니다. #2. “바보야. 이것도 못해. 넌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맨날 안 되는 거야.” B씨는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작은 과제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B씨는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 낮은 자존감 vs 높은 자존감 앞의 사례들처럼, 자존감의 손상은 ‘(자연적)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의미 있는 탁월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침투하여 두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현실의 모습과 스스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간의 격차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 차이에 집착하고 이를 비난할 뿐입니다. 때문에 자기가치감이 낮은 사람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I am unwritten, can't read my mind, I'm undefined I'm just beginning, the pen's in my hand, ending unplanned 난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내 마음을 읽어 낼 수 없지, 난 아직 정의내려지지 않았어 난 이제 막 시작이야, 펜은 내 손 안에 있어, 어떻게 끝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Staring at the blank page before you Open up the dirty window Let the sun illuminate the words that you could not find 네 앞에 펼쳐진 빈 페이지를 봐 더러운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이 이제껏 네가 찾지 못했던 단어들을 비추도록 해봐 Reaching for something in the distance So close you can almost taste it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에 닿을 거야 그래서 가까이 그걸 맛볼 수 있을 거야 Release your inhibitions 네가 참아 왔던 걸 꺼내 놓아 봐 Feel the rain on your skin No one else can feel i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사라짐에 국한되지 않고, 쌍방으로 혹은 일방으로 맺어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관계는, <어린왕자>에 의하면, 길들여짐입니다. 그의 생각 그리고 실천을 배울 때, 우리는 그와 관계를 맺고 그의 인식체계에 길들여집니다. 이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세상의 단 하나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魂을 소리쳐 부르게 될 때, 그의 비극은 그에게 길들여진 우리의 아픔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노회찬입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그에게 선물한 서예 글 ‘함께 맞는 비’를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글의 의미처럼, 노회찬은 절절한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同苦同樂한다는 관계의 典刑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회찬은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삶을 진보전략가의 使命으로 받아들이는 감상주의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대담에서 “이 길(민주화 운동)을 택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
[ Verse1] Like a small boat On the ocean Sending big waves Into motion Like how a single word Can make a heart open I might only have one match But I can make an explosion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가 큰 파도를 일으키듯이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듯이 비록 내가 가진 건 그저 성냥 하나일지 몰라도 그 성냥 하나로 큰 폭발을 만들 수 있어 And all those things I didn't say Wrecking balls inside my brain I will scream them loud tonight Can you hear my voice this time?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모든 것들 내 머리 속을 괴롭히는 고민들 난 오늘 밤 이것들을 큰 소리로 외칠거야 내 목소리를 들어주겠어? This is my fight song Take back my life song Prove I'm alright song And I don't really care if nobody else believes 'Cause I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어떠한 요건이 필요할까요? 변화는 동태적인 과정이며, 이러한 기간의 움직임은 한 시점의 생산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형제는 끊임없이 가치를 추구하였고, 장기간 천 번에 가까운 시행착오라는 동태성을 거쳐 세계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사는 지속적인 동태성을 작동시키는 엔진이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 교육이 혁신의 동력 움직임의 요소는 당연히 사람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높은 생산성은 혁신적인 생산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높은 생산성은 사람의 능력의 정도에 달려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의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변함없이 그리고 예외 없이, 교육입니다. 아동시절, 유년시절로부터 청소년기, 장년기에 걸친 교육이 사람의 능력을 높여 생산성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라이트 형제의 혁신의 맹아도 어린 시절의 교육에서 발견됩니다. 교회 주교로 자주 전도여행을 다닌 라이트 형제의 아버지, 밀턴 라이트는 1878년 형제에게 헬리콥터 장난감을 사줍니다. 이 장난감은 프랑스 항공개척자가 고안한 장치를 1피트의 모형으로 만든 것으로, 코르크와 고무줄로 회전 날개를 돌렸습니다. 당시 11살의 윌버와, 7
“윌버, 자전거 가게로 돌아가라” 1903년 세계 최초로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인 윌버 라이트(형)와 오빌 라이트(동생) 형제(Wilbur and Orville Wright)는 이들의 혁신적 도전을 꺾고자 하는 인물들의 공격으로 이렇게 조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용감하였습니다. 안락의 동굴, 자포자기의 ‘동굴’을, 멍들고 뼈가 부러지면서, 기어 올라갑니다. 마침내 동굴 밖으로 고개를 들고 황홀한 빛과 포옹합니다. ■ 라이트 형제에 대한 비난과 도전 (위키피디아 참고) 지역신문을 운영하던 라이트집안은 대형 신문사의 등장으로 파산 한 후, 자전거 수리, 제작, 판매 가게를 운영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제작에만 안주하지 않고 동력 비행이라는 도전과 혁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890년대 초, 형제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날았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1896년,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시험비행 중 돌풍에 의해 추락사한 것을 알고 바람대신 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라이트형제는 안락지대인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마침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