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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회찬] 창백한 지식인의 껍질을 벗고 함께 비를 맞으며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사라짐에 국한되지 않고, 쌍방으로 혹은 일방으로 맺어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관계는, <어린왕자>에 의하면, 길들여짐입니다. 그의 생각 그리고 실천을 배울 때, 우리는 그와 관계를 맺고 그의 인식체계에 길들여집니다. 이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세상의 단 하나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魂을 소리쳐 부르게 될 때, 그의 비극은 그에게 길들여진  우리의 아픔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노회찬입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그에게 선물한 서예 글 ‘함께 맞는 비’를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글의 의미처럼, 노회찬은 절절한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同苦同樂한다는  관계의 典刑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회찬은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삶을 진보전략가의 使命으로 받아들이는 감상주의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대담에서 “이 길(민주화 운동)을 택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을 것을 많이 깨달았다. 노동운동을 택했을 당시에는 먼저 깨닫고 많이 배운 사람으로서 더 힘든 사람을 구원하러 간다는 심정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누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구원받았다.”면서 민중을 구원의 대상이 아닌 그를 변화시키는 역량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노회찬의 삶의 궤적은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에서 추적될 수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가슴 좋은 사람만 못하고, 가슴 좋은 사람은 손 좋은 사람만 못하고, 손 좋은 사람은 발 좋은 사람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인간과 인간이 단절되는 세상의 物神性을 거부하고, 이론을 실천을 통해 정립하며, 자기기만의 창백한 지식인의 껍질을 벗고자 한 것입니다.


노회찬은 종종 개량주의자라는 비판과 부딪치기도 하였습니다.


진보의 핵심가치를 평등으로 파악한 그는 기회의 균등과 차별의 최소화를 통해 평등을 지향하였습니다. 이러한 道路에서 그는 이상주의보다 실현가능한 실용에 집중하여 ‘이런 것을 원한다’가 아니라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방향성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진보 내부는 이러한 입장을  ‘우경화되고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정치화의 과정’으로 파악합니다. 그는 대담에서 “진보진영에선 운동과 정치가 혼재되어 있다. 운동을 하다 정치를 하면 타락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내가 얻은 깨달음은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며 진보진영의 지나친 관념성을 경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그는  이념적 좌표로 북유럽의 사민주의를 수용합니다. ‘사민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비판’에 이상주의적 취향은 현실에서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북유럽의 합리적 복지사회를 지향한 것입니다


노회찬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애국심을 소중히 하였습니다. 그의 애국은 배타적인 애국이 아닌, 함께 잘 살 수 있는 애국을 말합니다.


때문에 국가가 없는 이상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의 모순을 지적하고, 국가를 억압체계로 보면서 국가를 부정하며 국가의 성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비판합니다. 


노회찬은 복지국가의 꿈은 국가가 더 많은 힘과 권한을 가질 때 실현되며,   큰 정부주의가 삶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이제 노회찬은 그의 꿈을 향한 실천을 멈추었습니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 기회가 평등한 세상, ‘여럿이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한 그의 저항과 창조는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선하였으며, 목표에 이르는 험난한 길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미완성의 도로는 ‘함께 맞는 비’의 연대성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낮은 곳으로 향하는 물의 철학으로 진보할 때, 그의 평생의 꿈인 ‘여럿이 함께 하는’ 세상의 틀은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