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개인의 과제로만 남겨 둘 수 없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의 존재가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선안남)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를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친 자존감은 아물어 간다는 겁니다. 이처럼 친구・ 이웃・ 공동체・국가로부터의 사회적 지지는 낮은 가치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롤즈는 권리와 자유, 기회, 소득, 부, 그리고 자존감을 사회적 기본 가치 (primary goods)로 언급하면서,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적 가치로 자존감을 지목합니다. (홍성우) 롤즈는 자존감의 자원으로 무엇보다 상호존중을 강조합니다. 자존감은 타인들의 존중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타인을 수단이 아닌 도덕적 인격으로서 존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롤즈는 자존감의 토대로 세 가지 방식을 말합니다. 첫째, 그것은 극빈자의 기대치를 증진시켜야 한다. 둘째, 공정한 기회균등을 허용하여야 한다. 셋째, 평등한 정치적 자유들의 공정한 가치를 제고하여야 한다. 우선 평등한 정치적 자유는 헌법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을 이에 적용해 볼 때,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사라짐에 국한되지 않고, 쌍방으로 혹은 일방으로 맺어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관계는, <어린왕자>에 의하면, 길들여짐입니다. 그의 생각 그리고 실천을 배울 때, 우리는 그와 관계를 맺고 그의 인식체계에 길들여집니다. 이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세상의 단 하나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의 魂을 소리쳐 부르게 될 때, 그의 비극은 그에게 길들여진 우리의 아픔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노회찬입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그에게 선물한 서예 글 ‘함께 맞는 비’를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글의 의미처럼, 노회찬은 절절한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끼고자 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同苦同樂한다는 관계의 典刑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회찬은 ‘응달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삶을 진보전략가의 使命으로 받아들이는 감상주의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대담에서 “이 길(민주화 운동)을 택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
상호 관계에 따른 성과는 개별적인 결과물보다 더 크다는 분석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실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자가 4명의 그룹을 만들고 각 개인에게 1,000원의 초기 자금을 줍니다. 각 개인은 1,000원 중 일부를 기부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자는 각 개인이 기부한 돈들을 합하고, 이를 두 배로 하여, 4명에게 다시 균등하게 배분합니다. 전원이 전액을 기부하면, 전체이익은 8000원이 되어 각 개인의 이익은 2000원이 됩니다. 반면 전원이 기부하지 않게 되면, 각 개인의 이익은 초기 금액인 1,000원에 머물게 됩니다. 이처럼 상호 협력하여 힘을 합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협력의 한계 : 무임승차 문제는 관계 속에서 무임승차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임승차자는 자신의 부담 없이 상대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에서 자신은 한 푼도 기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만 기부한다면, 자신의 이익은 얼마가 될까요? 자신의 기부액은 0원이고 나머지 3명이 전액을 기부한다면, 자신의 몫은 2,500(1,000 + 1,500)원이 됩니다. 반대로 자신은 1,000원 전액을 내고 다른 세 명은 한 푼
평화체제 구축의 충분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평화구축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양국은 실질적 기본협정(오슬로 협정ⅠⅡ, 와이리버 협정Ⅰ)을 통해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 및 재배치, 팔레스타인 자치 실시등에서 합의를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핵심쟁점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등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최종적인 평화협상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양국이 핵심쟁점을 타결 짓지 못한 것은 상호신뢰구축 및 공감대 형성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황수환) 결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평화구축 실패의 교훈은 평화구축을 위해 제도적 장치보다 실질적 평화가 우선적으로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협정에 의한 제도적 장치보다 상호신뢰, 상호협력, 상호의존등 평화에 대한 의지야말로 항구 평화의 원동력이며 충분조건이 된다는 겁니다. (김경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구축의 사례는 북한의 비핵화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은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합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미국의 주장처럼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와 세계 평화체제
기존 방법과 해석으로 문제를 풀 수 없을 경우, 대담한 행동과 완전히 새로운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는 원인론의 테제를 목적론의 안티테제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집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프리기아 왕국에는 소달구지(oxcart)를 타고 오는 자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내려왔습니다. 농부 고르디우스와 그의 아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프리기아에 들어오자 고르디우스는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고르디우스는 그 소달구지를 신전기둥에 복잡한 매듭의 줄로 묶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신전의 여사제가 ‘이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의 통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듭을 풀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매듭을 풀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상식적인 틀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다른 이들처럼 복잡하고 정교하게 묶여져 있는 매듭 풀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매듭이 어떤 방식으로든 느슨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렸습니다. 칼로 매듭을 자르는 것은 반칙이 아니냐는 말이 있
요즈음 터치, 접촉은 경계의 대상입니다. 연인이나 배우자도 아닌 사람에게 신체접촉을 행하는 것은 폭력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존 레논이 Love에서 ‘Love is touch, touch is love’라고 노래하였듯이, 터치는 원래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위로와 평안을 주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 존 레논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FRyXD9AKeXQ] 예컨대 엄마와 아기(혹은 사랑하는 남녀)사이의 간지럼 태우기 놀이가 그 예입니다. 간지럽힘을 당하는 아기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웃음을 터트립니다. 간지럼 태우기 놀이는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따뜻하게 키우는 부모일수록 자기 자녀와 자주 간지럼 태우기 놀이를 하고 이런 아이일수록 평소에 잘 웃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원숭이들의 터치도 사람들 간의 터치와 다를 바 없이, 유대를 강화하고 상대의 긴장을 해소하는 기능을 합니다. 원숭이들은 서로 그루밍(grooming)이라는 행동을 합니다. 벼룩잡기 혹은 털 다듬기라 불리는 이 행동은 상대의 털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루밍을 통해 와해되기
# 위스키를 즐기는 대학생 김씨는 오늘 저녁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 아침 중요한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데, 친구로부터 고급위스키를 오후에 선물 받은 겁니다. 위스키를 마시자니 내일 시험이 걱정됩니다. 결국 김씨는 달콤한 위스키 몇 잔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앞의 사례들은 ‘자제력 없음’과 ‘자기모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제력을 잃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졌다는 말로, 앎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성과 욕망 사이의 갈등에서, 머리는 이성이 더 나은 것이라고 시인하지만 몸은 이성이 더 못하다고 판단한 것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의사결정 그 이후...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사결정을 위해 각 대안의 만족・효용등의 값을 비교하여 그 값이 더 큰 대안을 선택합니다. 앞의 사례에서 김씨는 「오늘 양주를 마시지 않는다 > 오늘 양주를 마신다」라는 이성적 판단을 내립니다. 이성적 판단에 의한 즐거움이 당장 욕망에 사로잡혀 얻는 즐거움보다 궁극적으로 더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김씨는 이성적으로 선택한 최적의 대안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다 나쁜 대안을 실천에 옮깁니다. 이는 자제력을 잃고 자기 자신에게 진 탓입니다. 김씨
# 내란이 발생한 나라가 있습니다. 어떤 한 정치인은 내란과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치인이 내란죄를 짊어진다면 내란이 종식되고 다수의 인명이 구해집니다. 이때 그 나라의 정책담당자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 정치인으로 하여금 내란죄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결정자들의 최적의 결정일까요? 아니면 억울한 정치인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이 바람직한 결정일까요? 공익 추구는 정책입안자들에겐 매력적이고 솔깃한 유혹이 됩니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기에, 결과론적인 관점에서의 입법과 정책은 정당성을 확보하는 옳은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리주의가 강조되어 공익을 강화하면 공익의 논리에 의해 소수자의 이익이 희생되거나 과정이 무시될 수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새로운 정체감의 탑재를 요구합니다. ◆‘닫힌 사고 對(versus) 열린 사고’-결과가 전부가 아닐 수 있어 새로운 상황에 조응하는 유연한 정체감은 무엇일까요? 이는 ‘닫힌 사고 對(versus) 열린 사고’라는 두 가지 가치체계의 대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출대기업주도성장 vs 소득주도성장, 회계이익 vs 사회적가치, 개인의 이익만
遺棄 不安(유기 불안) 分離는 이제 幸福입니다. 이제까지 그와의 분리는 恐怖로 여겨졌습니다.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나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에게 매달렸습니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에게 나를 던졌습니다. 그러면 그는 ‘내 마음 안에는 늘 네가 있다.’라고 나를 다시 안아줍니다. 나는 이제 폐기합니다. 그에 대한 그릇된 愛着을 떼어냅니다. 고통스러워질 때 거꾸로 내가 존재하는 自虐의 關係를 끊고 나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 떠납니다. 나를 굳게 서게 하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앞날의 地盤을 견고히 하는 사랑을 찾아서요.. 分離는 이제 幸福입니다. [관련기사: : Pop & Englist (유기불안 ① )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거니까요 ]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87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정부형태는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외교・국방과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입니다. 그런데 한국당이 밝힌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배분을 살펴볼 때, 한국당의 책임총리제는 최고권력이 견제 없이 총리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구조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대통령제와 총리중심 분권형제의 차이는 권력이 집중되는 곳이 대통령과 총리(및 그 소속 집단)라는 차이만을 보일뿐 입니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을 목표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는 한국당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총리중심의 분권형 대통령제 - 핀란드 한국당이 정부형태로 제안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의 성격은 권력이 총리와 그 집단에 집중되는 내각제로 해석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다양한 권력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대통령과 수상의 권력크기에 따라, 혹은 집행권의 배분정도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대통령 중심의 분권형(프랑스 제5공화국) △총리중심 분권형(핀란드) △사실상의 의원내각제(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는 이원정부제라기보다 대통령의 역할 포기로 사실상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총리중심의 권력구조의 전형은 핀란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