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 구축의 충분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평화구축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양국은 실질적 기본협정(오슬로 협정ⅠⅡ, 와이리버 협정Ⅰ)을 통해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 및 재배치, 팔레스타인 자치 실시등에서 합의를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핵심쟁점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등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최종적인 평화협상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양국이 핵심쟁점을 타결 짓지 못한 것은 상호신뢰구축 및 공감대 형성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황수환)
결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평화구축 실패의 교훈은 평화구축을 위해 제도적 장치보다 실질적 평화가 우선적으로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협정에 의한 제도적 장치보다 상호신뢰, 상호협력, 상호의존등 평화에 대한 의지야말로 항구 평화의 원동력이며 충분조건이 된다는 겁니다. (김경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구축의 사례는 북한의 비핵화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은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합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미국의 주장처럼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와 세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궁극적으로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CVID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사례처럼, 합의・협정등 제도적 장치보다 상호신뢰 구축에 의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핵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이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지루한 게임이라는 지적과 연계됩니다. (김주삼)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의 설정은 긴 호흡으로 인내심 있게 상호 신뢰를 쌓아올리는 노력의 과정이 될 수 밖 에 없습니다.
◆ 북한의 강성대국론과 마키아벨리적 접근
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정책은 마키아벨리적 접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힘이 정치에 있어서 결정적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은 공국들이 강력한 군사력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독립을 상실하고 피폐해졌다고 보고, 강한 군대를 역설하였습니다.
김정은 정부가 추구해 온 국가운영원리인 강성대국론도 마키아벨리의 강력한 군대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고도화된 핵무장은 김정은 초기 체제의 취약한 대외 안보에 대한 강화와 대내 불안정의 해소에 기여하였습니다. 김정은 정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핵무장으로, 주변국과의 대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였고, 동시에 군과 인민으로부터 통치자의 카리스마를 획득 할 수 있었습니다.
◆ 마키아벨리적 북한의 접근 :신의보다 생존
또한 강한 군사와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유능한 통치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무능한 군주는 국가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군주는 국가의 안전과 통치의 성공을 위해 정치와 윤리를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적인 도덕에 연연해하지 말고 국가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국가의 안전이 主이고 도덕은 從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능력있는 군주론은 북한 지도부가 지금까지 펼친 핵 위기의 행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하면서, 국제약속등을 국가안보의 주에 대한 종으로 간주하였습니다. 핵폐기와 관련한 수많은 국제약속을 파기한 것입니다.
북한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2006년 10월 지하핵실험을 실행하였고, 2007년 6자회담에 의한 2.13조치(9.10공동성명을 위한 초기조치)에서 규정한 2단계의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핵실험들을 강행하였습니다. 이는 북한의 생존이 국제적 신의와 약속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된 결과입니다.
◆군주의 덕목은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 비르투
하지만 마키아벨리적 권모술수의 통치전술이 모든 상황에 유용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군주가 상황에 적합한 대처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목으로 역량, 용맹, 결단력이 합쳐진 뜻인 비르투를 제시합니다. 특히 상황의 위험을 멀리서 알아차리고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역량인 비르투가 격렬히 흐르는 강물 같은 운명의 힘인 포르투나를 압도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통치자는 큰 업적을 만들 때 자신의 명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이러한 업적은 그가 상황이 품고 있는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이에 상응한 대비책을 갖출 때 가능합니다.
때문에 군주는 상황에 따라 사자의 발톱보다 여우의 능력을 발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에 조응하여 신의를 지키는 것이 국가 경영의 성공에 이를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
◆ 김정은 정부의 정책 판단 근거는?
이러한 상황론이 김정은 정부의 향후 정책을 결정하는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황론자들은 북한의 핵개발의 시발이 핵무장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북한은 대내외 조건의 변화로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은 평양은 핵을 보유하는데 필요한 내적 국력이 뒷받침이 없으며, 핵위기가 장기화에 접어들면 북한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합니다. 체제유지에 핵심인 미국과 관계 개선, 국제금융기구로부의 차관 도입, 남한과의 경제교류가 가져오는 이익이 핵보유로 얻는 유혹보다 크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김정은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시급한 난제는 경제성장입니다.
성장은 잉여가치의 축적과 이러한 저축의 힘으로 확대재생산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북한 경제는 계획경제에 기반 한 결과 잉여가치 축적의 부족으로 약한 경제성장의 동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금융시스템의 미비로 성장의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북한의 시급한 경제 조치로 금융시스템의 개혁과 아울러 부족한 자본을 보충하기 위해 외국으로부터의 양질의 자본 도입을 요구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서방의 직접투자, 차관도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계략적 통치자들이 신의를 지키려는 정직한 군주들을 압도한다는 마키아벨리식 통치전술은 김정은 정부의 성공적 통치 수단으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와의 신의가 자본의 유입과 관계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방의 북한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이끄는 유인책인 상호신뢰가 김정은 정부의 정책 판단 근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북핵 합의의 프레임, 2.13합의
북핵해법과 관련한 쟁점은 북미수교와 핵폐기를 위해 어떠한 경로를 밟아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단서는 2007년 6자회담에서 도출한 2.13합의입니다.
2.13합의가 주목받았던 것은 북한과 미국이 실용주의(pragmatism) 외교노선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북핵 해법의 단계적 접근, 先이행後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 대신 협상 파트너로 수용하여, 북한이 이행해야 할 조치를 초기단계와 다음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초기단계에서 북한은 핵시설을 폐쇄(shutdown), 봉인(sealing)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관을 복귀시킵니다. 다음 단계로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신고, 모든 현존 핵시설을 불능화합니다.
미국의 이러한 외교태도 변화에 대해, 先평화협정 後핵폐기를 주장해온 북한은 단계별 구체적 이행 시한 설정과 先조치後인센티브에 근거한 행동 대 행동의 상호원칙에 동의 하였습니다.
초기단계로 북한이 60일 이내(2007년 4월14일까지)에 초기조치를 이행하면,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라 중유 5만톤 상당의 에너지를 제공받습니다. 이어 다음단계로 북한은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불능화조치를 이행하면, 중유 95만톤상당의 에너지를 확보합니다.
양국이 이러한 실용주의 외교태도를 전략적으로 수용한 배경은 상황이론에 근거하였다는 분석입니다.
북한의 태도 전환배경으로,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군사안보 확보 자신감 △경제안보 위협 해소(10.9핵실험 이후 안보리결의를 통한 강력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BDA북한계좌에 대한 금융제재로부터 탈피)등이 꼽혔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태도 전환을 가져온 요인으로, △2006년 11월 중간선거 패배 △2008년 공화당 대선 전략의 일환 △강경 네오콘 인사들의 좁아진 입지 △힐 차관보의 탁월한 협상력등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의 실용주의적 전략적 결단이 협상에 의한 문제해결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2.13합의는 아쉽게도 북한의 2단계 불이행으로 실패한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상호간의 신뢰문제
2.13조치는 미국과 북한의 유연한 실용주의적 태도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합의 후 이행문제가 합의 성공의 결정적 단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의 언급처럼 김정은 정부는 상황론에 근거하여 국제사회와의 신뢰에 기반한 정책결정을 내릴 것으로 관측됩니다. 하지만 북한의 합의 이행 의지가 강해도 북한이 수용할 운신의 폭이 지나치게 좁다면 이행의 한계에 봉착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 문제는 역시 상호간의 신뢰문제와 결부됩니다.
북한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근본 원인이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핵을 보유하여 이라크의 예처럼 발생할 수 있는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응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북한은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거에 근거해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맞교환으로 북미수교등이 이루어져도 미국과 북한 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게 되면,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체제 안보를 100%보장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때문에 북핵해법은 신뢰구축에 방점이 찍힙니다.
◆ 비핵화 수준, 에스컬레이터식 방식을 지지하는 이유
신뢰구축은 단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오랜 기간 꾸준한 접촉과 교류를 통해 얻어지는 산물입니다. 비핵화의 수준에 대한 논쟁도 이러한 프리즘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2.13조치의 기본 협의 프레임을 기초로 하여, 현 단계에서 상호 수용 가능한 비핵화에서 출발하여 향후 신뢰구축의 결과물로써 높은 단계의 비핵화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전한 비핵화에 다다르는 출구 전략이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비핵화의 여정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행위 종식, 미국기업의 직접투자,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허용과 차관 도입 가능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핵화 수준에 대한 에스컬레이터 방식은 미국의 전략적 패배에 가깝다는 비판이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는 앞에 언급한 것 처럼 전술적 변화라기보다 상황에 조응하고자 하는 전략적 변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비핵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또한 김정은 정부가 북미 정당회담에 나선 것은 지금 시점이 북한이 비핵화를 통한 총이익이 극대화되는 시점, 즉 한계이익이 0이 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ICBM의 완성으로 미국을 정면으로 겨누기 직전에 북미회담에 나선 것은 협상수단으로서 완성된 ICBM이 외려 이익의 위험을 크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완성 ICBM은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미국의 선제공격 혹은 장기간 무대응이라는 단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의 폭을 크게 하여 기대효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상황론에 입각하여 현실적인 접근에서 6.12 북미정상회담에 임하고 있다고 분석됩니다. 비핵화수준의 에스컬레이터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홍성후, “마키아벨리 통치술로 본 북한의 핵개발정책 분석”
우승지,“2.13합의 이후 북한의 핵전략과 대남전략에 대한 분석”
이헌경, “북한의 핵무장 목적과 대미 전략적 목표”
황수환, “평화협정의 유형에 따른 한반도 평화체제의 경로”
김성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제와 전망”
김주삼, “북핵 불능화와 북미협상 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