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라는 원소가 있다. 여기에 CD라는 새로운 원소가 첨가된다. 그러자 AB는 서로 분리하여 A는 D에, B는 C로 끌린다.’위의 설명은 화학법칙인 친화력에 관한 것이다. 친화력이란 ‘자연계의 원자가 서로 결합하는 힘’으로 설명된다. A+B, C+D라는 두 조합이 있다. 그런데 이 기존의 (+)관계가 해체되고, A+D, B+C라는 새로운 결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친화력 = 친화성과 선택괴테는 이 화학법칙을 그의 소설 친화력에 적용한다. 위의 식에서 소설친화력에 등장하는, B에 해당하는 대위가 친화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그 때까지 둘씩 결합했던 물질이 넷이 접촉한다. 종전의 결합을 버리고 새로운 결합을 하는 것이다. 이 포기나 포착, 도망과 탐색에는 보다 더 높은 숙명이 실제로 보이는 것 같다.” 친화력은 친화성과 선택으로 구성된다. ‘만나자마자 서로를 붙들고 서로를 규정하는 그런 물질‘을 친화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선택이 등장한다. ’친화력이란 분리와 새로운 결합이 생겨나,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선호되어서 이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에 앞서 선택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숙명으로서의 친화력무엇보다 대위의 설명처럼 이 새로운 포착으로서의
이 영화는 일견 chaos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 시작부에 ‘해독되지 않은(undeciphered) 질서는 곧 혼돈이다.’라는 문구를 관객들에게 던지며, 관객들의 지적인 수준을 시험한다. 이 영화의 질서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감독의 우월감이(?) 엿보인다. 그런데 영화의 진행이 전개 단계라고 느끼고 있는 중에, 돌연 공포스러운 오브제가 프레임 전체를 채우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충격과 굴욕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의 우월감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아무리 스릴러장르 중 미스터리물일지라도 영화 후반부에는 ‘what’, 즉 사건의 실체와 감독의 의중이 파악되도록 구성되는 영화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에너미는 전통적인 영화의 서사인 발단, 전개, 결말이라는 문법을 무시한 듯한 영화 같았다. 이야기를 펼쳐 놓기만 하고 수습하려 들지 않은 듯 했다. 영화를 함께 관람한 관객들도 그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 자리는 평론가와 기자들을 초대해 연 시사회였다. ◆ 머리만 아픈 미스테리물?혹자는 말한다. 스릴러장르를 구분하면서 머리가 아프면 미스테리, 가슴이 놀라면 서스펜스라고. 이 영화는 그저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또한 이 영화의
한 예술 작품이 이미 익숙해 있는 이미지를 예상치 못한 낯설음으로 전환 시켜, 경험된 틀을 탈피하도록 한다면, 일단 그 작품은 새로운 인식을 창조했다 할 수 있다.평탄한 대상들의 결합으로 긴장을 창조하고, 그 결과 서프라이즈를 빚어내는 정반합의 작업도 이러한 예가 될 수 있다. 사물간의 결합으로 긴장과 이완을 통해 창의적인 낯설음을 창조한 대표적인 작품이 R. Magritte의 헤겔의 휴일이다.이 작품은 물이 담긴 유리잔과 비와 연관된 우산을 결합하여 물이라는 유사성을 조장한다. 또한 물을 담는 유리잔과 물을 막는 우산의 연합으로 모순을 창조한다. 이 두 대상들의 유사와 역설의 결합으로 신선한 당황이 다가온다. 이 당황이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한 모순의 해소로, 한 단계 도약된 美를 창조한다.이러한 불안정과 투쟁이 기존의 균형점을 깨뜨려 긴장을 조성하고, 그 모순의 과정 속에서 결국 안정·이완·종착이라는 새로운 균형점이 만들어 진다. 여기서 과거의 균형점에서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전환이라는 독특한 과정의 아름다움이 예술감상의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한다.김성훈감독의 신작 끝까지 간다는 이러한 익숙한 대상들을 결합시켜 긴장과 이완이라는 모순과 함께, 두 캐릭터들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영상은 과거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회귀의 욕심과 , 그래서 다시 그 곳, 그 시점의 복제에 대한 갈망을 품게 하는 동화이다.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동화의 잔상은 아마도 심오한 메시지의 탐구등의 능동성의 잔재가 아닌, 이 영화의 틀이 가지는 흡입력에 의한 수동성의 여운 때문일 게다.분석과 비판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이를 내려놓고, 그 형식이 주는 즐거움 속으로 우리의 정신을 잠시 내어 놓으라는 메시지 아닌 메시지를 남겨둔다.파스텔 톤의 색감, 과거 동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장센, 무엇보다 시대별 화면 비율등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짜임새와 메시지에 대한 천착보다, 이 동화의 형식에 대해 몰입하게 한다.이 영화에서는 형식보다 실질이 우선이라는 보편적 원리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형식의 감상에 몰두하도록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형식이 실질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형식은 더 이상 표피적인 얇음으로 비난받는 대신, 그 자체로 진정성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여기서 때때로 form 이 실질을 제압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색다르게 알려주고 있다.◆ 화면비율이란 ?이 영화의 대표적 형식은 시대별 화면비율의
#1 “Shane.. Shane.. come back.” 소년은 카우보이 셰인이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무법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악당을 무너뜨리고 선의 질서를 되찾아주는 영웅은 새로운 사명을 찾아 정처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석양에 불타는 노을은 미련 없이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과 조응한다. (영화 쉐인 ) #2 ‘the good, the bad, the ugly 모두가 악인이고 사기꾼이다. 이들 세 명의 행동의 지침은 윤리가 아니다. 욕망이 그들을 이끈다. 타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다. 서부는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곳이 아닌, 모래바람이 날리는 비정한 황야이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 미국 서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는 낭만, 도덕, 그리고 개척이라는 미국의 정체성과 신화를 잘 드러내는 영화 장르이다. 하지만 수정주의 웨스턴은 미국의 패권주의와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의 사회를 날 것으로 폭로한다. ◆ 카우보이의의 신화 : 고전 서부영화 고전주의 서부 영화는 미국의 건국 신화 창조에 일조한다. 미국의 서부문명화 과정을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서사를 통해 서부개척을 미화한다. 서부개척의 상징은 카우보이이다. 미국
스파게티 서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르지오 레오네,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웨스턴으로 꼽히는 와일드 번치의 샘 페킨파. 이 명감독들의 멘토가 있다면 누구일까? 그는 바로 마틴 스콜세지로부터 찬사를 받은 버드 보티커 (Budd Boetticher: 1916-2001)이다. 다큐멘터리 마틴 스콜세지와의 영화 여행 : a personal journey with Martin Scorsese through American movies은 서부극을 새롭게 변화시킨 감독들 중, 존 포드에 이어 보티커를 언급하였다. 스콜세지는 보티커가 서부극의 원형을 증류하여 그 장르의 진수를 뽑아내었다고 평하였다. 이처럼 ‘품격이 다른 카우보이’를 창조한 보티커 감독의 작품들을 오는 15일부터 27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날 수 있다. 보티커는 저예산 영화와 TV시리즈물을 만들었으나, 그의 느와르 장르, 전쟁영화, 그리고 서부극등에서 A급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성을 창조하였다고 평단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보티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상징은 서부극과 투우(bull-fighting)이다. 그는 이 둘을 ‘강박적인 짝’(two obsessions)으로 불렀다. 동작보다
외모는 비호감을 살짝 벗어난 수준,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 그러나 식탁에서도 줄기차게 오페라를 듣는 오페라가수 지망생, 폴 포츠. 배짱이 없어 관객들을 압도하기 힘들겠다는 파바로티의 핀잔을 듣는 심약한 폴 포츠가 오페라 가수로 나아가는 도정에는 온갖 걸림돌이 나타난다.그러나 그는 그의 아내의 헌신적인 격려와 섬김, 그리고 흔들림 없는 갈망으로 난관을 극복한다. 용광로 속의 강철처럼 그를 연단 해 온 神은 드디어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Britain's Got Talent’에서 일등을 차지한 것. 마침내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이루고, 관객들 앞에 푸치니의 Turandot의 'Nessun Dorma'를 부른다. 실화인 이 영화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꿈을 이룬다는 진부한 성공 스토리임에도, 불쑥 돌출하는 송곳 같은 난관들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넘어 ‘찬스’를 붙잡고자하는 그의 도전이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불굴의 극복 스토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지만, 왠지 석연치 않는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 한 켠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폴 포츠가 우승한 ‘Brita
우리가 지금 두 사회로 갈리는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가정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사회는 경제적인 절대적 결핍은 없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고, 하루 세끼도 영원히 주어진다. 단 자유는 없다. 주인의 재산이 되어, 평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 거주나 여행의 자유도 없다. 운 좋으면 인간적인 주인을 만나 애완견처럼 대우 받을 수 있다. 그 반대 쪽에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다. 신분이 자유로운 것이다. 단 언제든지 해고 될 수 있고 자칫하다가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에 몰릴 수도 있다.이럴 때 우리들에게 한 쪽을 선택하라면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남북전쟁 발발 전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노예 12년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물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노예의 인권과 주인들의 폭력에 초점을 두고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더 나아가 감독의 말처럼 살아남기(survive)와 살기(live)의
◆ 민간경찰, 사이보그 로보캅에 국민들 박수△앵커 : 민간경찰, 사이보그 로보캅의 활약상에 국민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습니다. 취재기자의 보도입니다.△기자: 국민들은 로봇경찰의 대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범죄소탕,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이 민간 로봇경찰은 기계답게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고 있습니다.인간과 달리 그는 쉼이 없습니다. 사이보그 사전에는 피곤이란 단어가 없습니다.무엇보다 그는 차별 없이 평등하게 만인을 대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백인경찰이 흑인을 무자비하게 총질을 하는 등의 과거 경찰들의 격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의 적은 단지 프로그램에 입력된 범죄인과 무기를 든 자들 뿐 입니다. 로보캅은 군중을 쓱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흉악범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도면밀합니다. 물샐 틈 없습니다.이제 우리 주변에 범죄는 없게 됩니다.국민들은 민간 로보캅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존재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보캅 덕택에 우리 국민들은 강도, 절도, 살인등의 공포에서 마침내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민간 로보캅의 도입 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치안을 로보캅이 경찰 대신 담당하는 그
“세상에서 제2바이올린을 제일 멋지게 연주하는 사람”, 로버트는 현악사중주 악단의 제1바이올리니스트를 갈망한다. 그는 더 이상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보조자의 자리 대신, 자신이 빛을 발하는 위치에 등극하고자 한다.하지만 쿼르텟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조화가 최고의 선인 ‘푸가사중주단’의 화음에 치명적인 노이즈가 된다.로버트는 인간의 야성적인 충동을 날것 그대로 폭발시키며, 극중에 팽팽한 긴장과 불협화음을 예리하게 불어넣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로버트의 그 욕구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다.지난해 상영된 마지막 사중주 : A Late Quartet이야기이다.극중에서 로버트 역을 맡은 배우는 그의 마음을 백지로 비우고, 대신 불타는 붉은 욕망을 채워 넣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가 표출해낸 감정의 굴곡이 그의 실제 체험인양 착각한다.이 메소드 연기의 달인의 이름은 바로 「Philip Seymour Hoffman」이다. 아니 정확히 그는 이제 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다.호프만은 지난 2일, 여전히 그의 백지에 그려 놓을 그 많은 화려한 그림들을 남겨 놓은 채, 46세의 나이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요절하였다. 아카데미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