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라는 원소가 있다. 여기에 CD라는 새로운 원소가 첨가된다. 그러자 AB는 서로 분리하여 A는 D에, B는 C로 끌린다.’
위의 설명은 화학법칙인 친화력에 관한 것이다. 친화력이란 ‘자연계의 원자가 서로 결합하는 힘’으로 설명된다. A+B, C+D라는 두 조합이 있다. 그런데 이 기존의 (+)관계가 해체되고, A+D, B+C라는 새로운 결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친화력 = 친화성과 선택
괴테는 이 화학법칙을 그의 소설 <친화력>에 적용한다. 위의 식에서 소설<친화력>에 등장하는, B에 해당하는 대위가 친화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때까지 둘씩 결합했던 물질이 넷이 접촉한다. 종전의 결합을 버리고 새로운 결합을 하는 것이다. 이 포기나 포착, 도망과 탐색에는 보다 더 높은 숙명이 실제로 보이는 것 같다.”
친화력은 친화성과 선택으로 구성된다. ‘만나자마자 서로를 붙들고 서로를 규정하는 그런 물질‘을 친화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선택이 등장한다. ’친화력이란 분리와 새로운 결합이 생겨나,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선호되어서 이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에 앞서 선택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숙명으로서의 친화력
무엇보다 대위의 설명처럼 이 새로운 포착으로서의 친화력은 인간관계에서 우연과 유희가 아닌 숙명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숙명은 인간의 이성과 도덕률을 억누르고 지배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A와 D가 각각의 조합의 상대방 B, C를 무시하고, A가 D에게로 D가 A에게로 서로 돌진하는 모습은 운명적인 자연의 법칙이라고 이해되어진다. 마치 석회와 산이 결합하는 현상처럼 열정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비극적인 친화력
친화력이 몰아쳐 밀어닥치는 원시적 충동으로서의 이러한 격정은 종국에 삶의 행복이 아니라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친화력>에서의 여주인공 오틸리에는 비극적 운명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최근 개봉한 <인간중독>도 이러한 비극적인 친화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A+B는 교육대장 김진평과 그의 아내 이숙진이며, C+D는 경우진 대위와 그의 아내 종가흔이다. 이 최초 결합이 A+D로 재결합된다. 김진평과 종가흔의 원시적 격정이 펼쳐진다. 그리고 김진평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김진평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현세에서 격정의 극복은 불가능 한 것일까?
◆ 데몬적 친화력
사랑은 원래 단지 감각적인 정열이나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삶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진평의 사랑은 데몬적 사랑이다.
데몬적이란 ‘공간과 공간 사이의 어떤 영역에 속하며, 빛이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어떤 곳에 있으며, 섬뜩하고 이해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혹자는 이를 ‘친근감을 가지고 있든 적의감을 갖고 있든 언제나 신비스러운 권한인데, 눈에 보이지 않게 침투하여 인간세계를 지배한다’고 정의한다. 마적인 친화력인 것이다.
즉 데몬적인 것, 마적인 것은 인간 세상의 힘을 초월하는 신성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적인 사랑은 인간의 이성으로 극복되지 못한다. 데몬적인 것에 휩싸이게 된다면 격정과 인간의 윤리가 충돌한다는 기본적인 갈등조차 외면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자신을 파괴시키는 희열을 만끽한다. 이러한 힘은 초인적인 힘, 마적인 힘이다.
진평이 그랬다. 진평은 가은을 향한 사랑에 빠진 순간, 그가 지켜왔던 군인의 의식과 규율을 벗어던진다. 그가 사랑에 휩싸이자, 그 마적인 사랑에 자신을 내어던진다. 이러한 그에게 사회적 지위와 윤리는 저 멀리 달아난다.
게다가 가은을 탈취하기 위하여 심지어 가은의 남편 경대위에게 밀수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자 사건을 조작한다. 마치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한 경우와 일부 흡사하다.
하지만 진평이 마적인 행동을 범하지만, 사실상 그는 저항할 수 없는 마력에 사로잡힌 것이다. 마력에 끌렸을 뿐 그가 마력의 주체는 아니었다. 마성에 진평이 휘둘린 것이다.
마침내 그의 사랑은 점점 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격정으로 진화한다. 마성의 정점에는 인간적 고뇌는 발견되지 않는다. 인습과 관습을 내팽개치고, 마성의 원형질을 드러낸다.
그는 가은에게 사랑의 도피를 하자고 묻는다. 그러자 가은은 “내 모든 걸 내려 놓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에 진평은 가은 앞에서 방아쇠를 자신을 향해 발사한다. 마성이 폭발한 것이다.
◆ 체념, 죄의식, 속죄 그리고 데몬으로부터의 해방
제재 할 수 없는 사랑은 데몬적 사랑이다. 진평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석이 끌리듯이 그녀의 영혼 속에 침잠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격정으로, 통제 불가능한 마성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진평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자, 마성적 사랑이 도덕과 격심한 대립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서 죄의식이 살아난다. 죄의식은 인간이 도덕적 책임을 느낄 때 생기기 때문이다.
마적인 힘은 자유의지로 이 힘을 극복할 수 없다. 이의 해법은 완전한 체념이다. 여기서의 체념은 인간적인 절망이나 포기가 아니다. 이는 이성과 격정과의 갈등에서의 승리를 위한 체념이다. 이러한 완전한 체념으로 그는 목숨을 건 희생에 나선다. 그는 비로소 마적인 힘을 깨닫고 다시 죽음의 전쟁터로 돌아간다. 결국 이러한 희생과 속죄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그의 체념은 데몬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그의 사랑의 승화이다. 여기에 욕망에 휩싸인 사랑대신 맑은 사랑이 피어오른다.
그는 사랑을 단념한 것이 아니라 마침내 사랑을 실현시킨다. 비로소 마적인 친화력에서 해방된 것이다.
◆ 열정적 필연 VS 이성적 자유
괴테는 <친화력>에서 인간성의 양극성을 ‘열정적 필연성’과 ‘이성적 자유’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밝은 이성의 자유’에 ‘열정적 필연성’이 끊임없이 통과해간다고 표현한다.
이 두 축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해야할까?
이성의 자유로 데몬적인 필연성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승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세의 삶에 악몽같이 따라 붙고 있는 마성의 창궐의 종식은 인간의 죽음의 의지로만 해결될 수 있다.
진평은 그가 숨을 쉬고 있는 한 도덕적 법칙과 데몬적 열정의 풀릴 수 없는 딜레마를 체험한다. 그가 이승에서 이러한 모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죽음이 지상과 도덕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친화력의 실현의 수단이 된다.
인간이 갖는 가장 철저한 불완전성을 상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음으로 열정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현세에서의 완전한 체념이 불가능하다면, 마성을 숨 쉬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은처럼 이성에 기반을 둔 인습적인 사랑에 처음부터 익숙해야 할까? 내면에 싹튼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가은은 인습을 깨뜨리면서, 진평과의 관계를 지속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가은은 이성이 명령하는 대로 따르는 정언명령에 충실하였다. 열정과 사회적 관습사이에서 가은은 인습적 규범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진평처럼 자신의 지위를 상실할 정도로 데몬적 친화력에 체포되어 있다면 어떻게 이 세력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마성의 이성의 명령에 의한 극복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동안 어찌해야 할까?
결국 마성이 신성을 가진다면 ‘고귀한 손’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