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이 발생한 나라가 있습니다. 어떤 한 정치인은 내란과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치인이 내란죄를 짊어진다면 내란이 종식되고 다수의 인명이 구해집니다. 이때 그 나라의 정책담당자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 정치인으로 하여금 내란죄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결정자들의 최적의 결정일까요? 아니면 억울한 정치인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이 바람직한 결정일까요? 공익 추구는 정책입안자들에겐 매력적이고 솔깃한 유혹이 됩니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기에, 결과론적인 관점에서의 입법과 정책은 정당성을 확보하는 옳은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리주의가 강조되어 공익을 강화하면 공익의 논리에 의해 소수자의 이익이 희생되거나 과정이 무시될 수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새로운 정체감의 탑재를 요구합니다. ◆‘닫힌 사고 對(versus) 열린 사고’-결과가 전부가 아닐 수 있어 새로운 상황에 조응하는 유연한 정체감은 무엇일까요? 이는 ‘닫힌 사고 對(versus) 열린 사고’라는 두 가지 가치체계의 대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출대기업주도성장 vs 소득주도성장, 회계이익 vs 사회적가치, 개인의 이익만
遺棄 不安(유기 불안) 分離는 이제 幸福입니다. 이제까지 그와의 분리는 恐怖로 여겨졌습니다.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나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에게 매달렸습니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에게 나를 던졌습니다. 그러면 그는 ‘내 마음 안에는 늘 네가 있다.’라고 나를 다시 안아줍니다. 나는 이제 폐기합니다. 그에 대한 그릇된 愛着을 떼어냅니다. 고통스러워질 때 거꾸로 내가 존재하는 自虐의 關係를 끊고 나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 떠납니다. 나를 굳게 서게 하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앞날의 地盤을 견고히 하는 사랑을 찾아서요.. 分離는 이제 幸福입니다. [관련기사: : Pop & Englist (유기불안 ① )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거니까요 ]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87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정부형태는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외교・국방과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입니다. 그런데 한국당이 밝힌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배분을 살펴볼 때, 한국당의 책임총리제는 최고권력이 견제 없이 총리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구조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대통령제와 총리중심 분권형제의 차이는 권력이 집중되는 곳이 대통령과 총리(및 그 소속 집단)라는 차이만을 보일뿐 입니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을 목표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는 한국당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총리중심의 분권형 대통령제 - 핀란드 한국당이 정부형태로 제안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의 성격은 권력이 총리와 그 집단에 집중되는 내각제로 해석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다양한 권력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대통령과 수상의 권력크기에 따라, 혹은 집행권의 배분정도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대통령 중심의 분권형(프랑스 제5공화국) △총리중심 분권형(핀란드) △사실상의 의원내각제(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는 이원정부제라기보다 대통령의 역할 포기로 사실상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총리중심의 권력구조의 전형은 핀란드의
개헌의 핵심쟁점인 정부형태를 두고 여야 간의 공방이 뜨겁습니다. 야당은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 국회가 총리를 선출 또는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정부형태는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의 변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야당이 주장하는 국회의 총리추천(선출)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기사: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081 )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문제점과 채택의 전제조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선 선행 조건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는 이원집정부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분점정부, 즉 좌우(左右) 동거정부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좌파 대통령과 우파 수상의 양두 권력에 따른 국정혼란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거정부는 의원내각제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이러한 동거정부 하에서 성숙한 토론과 협치의 문화가 부재한 국가가 의원내각제형태로 국정을 운영하게 되면, 정파 간의 대립으로 비효율적인 국정난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정파와
야당이 정부형태로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 총리선출 또는 추천의 특징은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다수당과 대통령 소속의 정파 간의 일치여부에 따라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각각 선택됩니다. 이는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에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는 내치에 책임을 지는 완벽한 이원집정부제와도 구분되는 정부형태입니다. ◆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이원집정부제(dual executive system)는 원칙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의 다수당에서 선임된 수상(또는 총리)으로 구성되는 혼합형 정부형태를 말합니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의회 다수파가 대통령과 동일한 정파인지 여부에 따라 야누스적인 정부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같다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구성되지만, 서로 정파가 다르다면 진보・보수의 동거정부(cohabitation government)가 구성됩니다. 이처럼 대통령과 수상의 정파가 일치하느냐, 불일치하느냐에 따라 정치 현상이 달라집니다. 먼저 대통령과 수상의 정파가 동일할 때는 권한배분 문제가 부각되지 않고 양자 간 상호 협력과 조정이 이루어집니다. 이 경
평창동계올림픽은 갈등과 불신으로 닫힌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은 남북한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화합의 물꼬를 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남쪽을 방문하여 남기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그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방남한 북한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 대표단이 공통으로 언급한 주제어는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였습니다. 북한 응원단은 10일 관동 아이스하키 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응원하면서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했습니다. 또 11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북한 고위급 대표단 환송 만찬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건배사를 했습니다. 김영남최고회의위원장은 “어제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우리는 하나다’는 구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는 단순한 응원구호나 건배사 이상으로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에서도 ‘남북한이 하나’라는 메시지가 도드라졌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요즘 여의도 정치권의 핵심 논쟁은 권력구조 개편을 개헌의 핵심 내용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야당은 “권력구조 개편이 배제된 개헌은 속 빈 강정”(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지방분권을 말하는 것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라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우선적으로 손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야당은 정부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을 막강한 대통령제 시스템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헌의 핵심내용도 정부형태의 변경에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형태의 개헌등은 장기적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과 협상 난망의 ‘사악한 문제’에 대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 “오크나무에 앉아 있는 딱새를 매가 발견하고 낚아 채 붙잡았다. 딱새는 매에게 자신은 허기를 채우기에 너무 작으니 좀 더 큰 새를 찾는 게 좋을 거라고 설득하며 자신을 놓아달라고 간곡히 애원했다. 매가 말했다. ‘지금 당장 눈에 띄지도 않는 새를 잡으려고 내 손에 잡힌 먹이를 놓아준다면, 나는 아마 바보겠지.”(이솝우화)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매는 왜 작은 새를 놓
수철이와 현주는 최근까지 커플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현주는 요즘 수철이와 헤어져 새 집으로 이사 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둘의 속마음이 완전히 딴판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정통 ‘성의 대결(Battle of the Sexes)’ 게임이론에선, 협상력이 우월한 쪽이 상대를 설복하여 자신의 선호를 최종적인 균형점으로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현주는 뮤지컬보기를 즐깁니다. 하지만 수철이는 야구 관람을 좋아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기 위해선, 한 쪽이 자신의 선호를 포기해야 합니다. 수철이가 야구대신 뮤지컬을 선택하거나 현주가 뮤지컬을 포기하고 야구를 택해야 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 이르기 위해선 협상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야구는 수철이의 정체를 확인하는 징표입니다. 현주에게 있어 뮤지컬은 몸의 한 세포와 같습니다. 각자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모두의 행복이 되는 이유입니다. ◆the game of a chicken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한층 깊어지자, 현주는 자신과 수철과의 관계가 ‘겁쟁이 게임(the game of a chicken)’같다고 느낍니다. 일차선 밖에 없는 도로에서 서로 마주보며 차를 출발시키는
# 어떤 한 대학의 교수가 학생들이 제출한 기말 보고서에 성적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보고서를 계단에 던져서 낮은 계단에 떨어진 보고서엔 낮은 점수를, 높은 계단에 떨어진 보고서엔 높은 점수를 매긴 겁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점수 산정 방식에 당연히 분노할 것입니다. 학점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수의 편의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의 가상의 사례처럼 게으른 교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이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절차가 불공정할 경우 사람들은 공정성에 민감해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임금결정에 있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었다고 지각할 경우,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일지라도 그가 받는 임금수준이 공정하다고 지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차가 불공정할 경우, 저임금의 노동자는 불공정성을 강하게 지각합니다. (황규대외) 이처럼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정의로운가가 공정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 공정성 판단 기준 : 상대적 투입 대 결과 비율 또한 사람들이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경우는 투입대비 결과가 공정한지 여부입니다. 예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470급 요트 경기에서 캐나다의 로렌스 르뮤 선수는 1위와 큰 격차 없이 2위로 순조롭게 레이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함께 경기에 나선 싱가포르 선수들의 요트가 전복이 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던 로렌스 르뮤 선수는 전복사고를 발견한 즉시 코스를 이탈하면서 레이스를 포기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싱가포르 선수들을 구조하고 의무보트가 오기 전까지 싱가포르 선수들을 보호했습니다. 금메달 획득도 기대되었던 로렌스 르뮤 선수의 구조 활동은 유럽 중세의 騎士道(기사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곤경에 빠져 있는 약자를 보호하고 승리보다 동료들 간의 우정을 먼저 중요시한 르뮤선수는 분명 중세의 기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뚱딴지 같이 기사도 정신을 왜 말하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올림픽의 표어인 ‘Citius/ Altius/ Fortius’, 즉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처럼, 선수들이 無限(무한)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 것이 올림픽의 본질이 아닌가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의 철학은 육체의 강인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