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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우리는 하나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서 남기고 간 메시지는? ; 한국, 북한, 그리고 미국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 통일의 두 의미
-和而不同 - 우리는 하나다 - unity in diversity
-求同存異
-다양성 속의 일치는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달성

평창동계올림픽은 갈등과 불신으로 닫힌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은 남북한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화합의 물꼬를 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남쪽을 방문하여 남기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그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방남한 북한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 대표단이 공통으로 언급한 주제어는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였습니다.


북한 응원단은 10일 관동 아이스하키 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응원하면서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했습니다.


또 11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북한 고위급 대표단 환송 만찬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건배사를 했습니다.  김영남최고회의위원장은 “어제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우리는 하나다’는 구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는 단순한 응원구호나 건배사 이상으로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에서도 ‘남북한이 하나’라는 메시지가 도드라졌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 말미에  한국의 가수 서현과 북측 가수들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는 북한의 진정성이 담긴  절박한 호소로 느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길래 북한 대표단들은 이를 강조하는 걸까요? ‘우리는 하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문구에서 ‘하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낮은 단계의 연방제


북한의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는 단순히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로 결합한다는 의미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입니다. 고려연방제와 달리 국방 외교권을 지역정부에 대폭 이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낮은 단계 연방제가 수립되기 위해선,   남북한이 각각  흡수 및 적화 통일을 포기한다는 전제가 요구됩니다.  이에 기초하여 남북은 체제의 공존을 상호 인정하여, 통일국가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지향합니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하나라는 말은 북한의  통일 방안에 비추어 볼 때, 1국가 안에서 2체제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엔 하나의 국가에 두 체제의 공존을 강조하는 뜻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의 두 의미, uniformity와 unity


이러한 의미는 통일의 의미를  분석해 볼 때 명확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일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강남)


하나는 모두 똑 같이 한 가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럿이 중국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주문시간을 줄이기 위해 ‘짜장면으로 통일한다’고 말할 때의 통일입니다.


이는 모든 것들이 한 색깔, 한 모양, 한 생각, 한 행동으로 통일된다는 획일성을 의미합니다. 똑같이 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를 향해 나머지 것들이 흡수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반면 통일의 또 하나의 의미는 여럿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뜻을 합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다양한 모습들은  보완과 상생의 관계를 맺어 공존의 형태를 보입니다. 이 공존은 하나의 이상을 향한 통일입니다.


그러므로 획일성의 통일(uniformity)은 이것과 저것 중 하나만을 고르는 양자택일의 형태로, 영어로 either/or로 표현됩니다. 반면 목적과 이상의 통일 (unity)은 이것도 살리고 저것도 살리는 both/and로 설명됩니다.


그러므로 북한이 언급하는 ‘우리는 하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하나로 일치시키는 획일적 흡수 통일을 의미하지 않고, 남과 북이 각각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여 체제의 공존 화합하는 이상의 통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요약됩니다.



◆和而不同 - 우리는 하나다 - unity in diversity


이러한 서로 다름을 포용하는 화합의 통일은 논어의 한 문구에서 명확히 이해되어집니다. 


논어 子路(자로)편에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소인동이불화)”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군자는 조화로움을 추구하지 똑같고자 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똑같고자 하지 조화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의 핵심어는 ‘和(화)’와 ‘同(동)’입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논어를 해석하면서 화와 동의 의미를 음식에 비유하였습니다.


和(화)는 음식에 들어가는 요소들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각종 음식재료와 조미료의 적절한 섞임, 물과 불의 적당한 어우러짐이 음식의 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同(동)은 획일성을 뜻합니다. 비슷한 성분들만으로 음식이 만들어져 맛깔스런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마치 음악에서 여러 다른 소리들이 다양한 화음을 이루는 상태가 和(화)라면, 단 하나의 음률 또는 단순한 화성으로 음악이 연주되는 상태를 同(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영복선생의 화동론에 대한 해석은 명쾌합니다.


和(화)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반면, 同(동)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단일의 가치만을 고집하는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라고 선생은 분석합니다.


그러므로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이란  지배하거나 흡수되지 않는다는 ‘不同(부동)’과, 여러 가치와 이념들이 공존하는 ‘和(화)’의 결합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국가와 국가 간 이념의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어 국가들이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방남한 북한단원들과 고위급대표단이 줄기차게 호소하는 ‘우리는 하나’는 다양성 속의 일치 (unity in diversity)를 의미합니다.  체제 공존의 조화 속에서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공동의 이상을 향해 노력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북한 체제 안정의 불안감이 엿보이는 대목으로도 풀이됩니다. 국제공조로 북한에 대한  비핵화 압박과 제재의 강도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체제 존립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쪽을 방문한 것도 흡수통일의 공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국제적 제재로 인한 경제적 곤경등으로 수세적 입장에서, 체제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가 단순한 레토릭이라기보다 절절한 진정성 있는 호소로 들리는 이유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집니다. 더 나아가 통일이 곧 사람의 통일이며 마음의 통일임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는 남북한의  민족의 동질감을 호소하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그렇다면 한국, 북한, 그리고 미국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북한과 미국 간의 대립국면은 게임이론의 고전적 사례인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게임의 본질엔 신뢰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두 죄수 A와 B는  상대를 신뢰하여 둘 다  혐의를 부인 (부인, 부인)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상호 신뢰와 협조가 전제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균형점은  A와 B 모두 혐의를 자백하는 (자백, 자백)이라는 최악의 선택에 이르게 됩니다. 상대 B에 대한 불신으로 죄수 A도 자신의 최대의 보수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 탓입니다.  자신이  부인한다 해도 상대 B가 자백을 하는 배신을 저지른 다면, A는 자신의 형량만 대폭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자백을 선택하게 됩니다.


북한과 미국 간의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대립도 죄수의 딜레마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두 나라는 대결과 대화(협력)라는 두개의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나라에게 최상의 보수를 안겨주는 조합은 둘 다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상대국을 불신하므로 모두 (대결, 대결)의 최악의 조합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두 나라가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서로 대화하고 협조한다면, 북한은 미국을 그리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개연성은 사라집니다. 



◆同而不和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위해선, 두 나라에게 상호 신뢰가 요구됩니다.  화이부동을 이루기 위해선 철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철학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화이부동의 逆(역)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同而不和(동이불화)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小人同而不和에서 신용복선생의 주장처럼 同은 상대를 용납하지 않고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좌구명이 지었다는 「國語」(국어)에 周(주)왕조의 폭군 厲(려)에 관한 桓公(환공)과 史伯(사백)의 대화가 나옵니다.  이는  同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환공이 사백에게 “주왕조는 망하겠지요?”라고 묻자 사백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왕(려)은 지혜가 밝은 사람은 버려두고 간사하고 음험한 사람을 좋아하고, 현명한 사람을 싫어하고 유치하고 비루한 사람을 가까이 하며 和(화)는 버려두고 同(동)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 주왕이 화를 버리고 동일한 것만 구하니, 하늘이 곧 그의 지혜를 빼앗을 것이니, 망함이 없기를 바랄지라도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 대화는 상생대신 지배와 흡수의 同만을 고집한다면, 결국 망한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求同存異


화이부동을 위해 실천의 철학으로 등장하는 문구는 求同存異(구동존이)입니다.


求同(구동)은 개인, 국가 간에 공통된 사상 목적을 찾는 것이며, 存異(존이)는 의견 주장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의견의 충돌이 있을 경우, 자기의 의견이나 이익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 간의 대립이 격화될 때,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쟁점을 내려놓고 함께 조금씩 양보하여 공존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구동존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습니다.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스스로를 낮춤으로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향해 내려감으로 큰 나라를 얻는다.”라고 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공존과 화합을 위해 조금씩 자신을 낮추는 일이 먼저라는 겁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소통을 통해 표현됩니다.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한다면 소통과 대화는 요원합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소통의 과정이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결국 화가 아닌 동을 추구하는  同而不和에는 흡수와 병합은 커녕 충돌이 심화되어 핵전쟁이 일어나 모두를 멸망시킬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와 북한이 각각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는 求同存異의 철학으로 소통과 대화를 추구할 때, 공존과 공생의 조화의 지평이 열린다는 지적입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는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달성


통일의 이상이 공동번영이라면,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위해선 대결의 장벽을 좀더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이를 위해 민간 자주교류를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9년 8월에 열린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 ‘통일농구’등의 부활을 고려해 봄직 합니다.  당시 남측의 민주노총과 북측의 직업총동맹간의 축구교류는 긍정적인 잉여가치를 가져왔다는 분석입니다. 이와 같은 교류가 또 다른 교류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북이 하나라는 인식을 심는 계기가 되어, 남북한의 긴장을 해소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였다는 지적입니다.


또 북한은 번영을 위해  과거와 달리 변화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정작 북한의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는 힘은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방어라기보다 내부의 경제적 안정이라는 분석입니다. 


맑스의 지적처럼 변화는 생산력에 의해 추동됩니다. 그러므로 경제적 안정은   생산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생산력의 증대는 북한의 경우 혁신의 전 단계인 자본축적을 위한 노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국이 자본축적의 성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과 인적자본등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축적은 문호를 개방하는 노력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개혁 개방의 사조가 인민의 의식을 황폐화시키고 당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생각은  지나친  기우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의 공산당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치적 안정은 지도층의 현명한 관리를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북한이 호소하는 ‘우리는 하나’라는 다양성 속의 일치와 공존의 열망은 사실상 핵의 보유보다 내부적인 개혁을 통한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전제는 당연히  북한 지도층의 변화의 열망, 黑猫白猫(흑묘백묘)의 실용적 사고, 그리고 자신감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오강남(2012), “화이부동 평화통일의 공존모델과 이념당 건설

진국경외(2012), “소통 대화와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