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한 대학의 교수가 학생들이 제출한 기말 보고서에 성적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보고서를 계단에 던져서 낮은 계단에 떨어진 보고서엔 낮은 점수를, 높은 계단에 떨어진 보고서엔 높은 점수를 매긴 겁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점수 산정 방식에 당연히 분노할 것입니다. 학점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수의 편의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의 가상의 사례처럼 게으른 교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이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절차가 불공정할 경우 사람들은 공정성에 민감해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임금결정에 있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었다고 지각할 경우,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일지라도 그가 받는 임금수준이 공정하다고 지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차가 불공정할 경우, 저임금의 노동자는 불공정성을 강하게 지각합니다. (황규대외)
이처럼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정의로운가가 공정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 공정성 판단 기준 : 상대적 투입 대 결과 비율
또한 사람들이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경우는 투입대비 결과가 공정한지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노력의 정도에 상응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공정한 배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투입에 대한 적정한 결과가 부여된다면 정의로운 배분으로 지각한다는 겁니다. 이를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라 합니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공정성은 아담스(J. S. Adams) 이론에 의하면 상대적 현상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투입대비 결과에 대한 비율과 타인의 비율을 비교하여 공정성을 지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한 조직의 A가 불공정성을 느낄 때는 동료 B가 자신보다 적은 노력을 했음에도 자신과 같은 보상을 받는 경우입니다. A는 5의 투입에 10이라는 보상을 받아, 그의 투입대비 결과의 비율(결과/투입)은 2입니다. 하지만 B는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2의 투입을 했는데도 대주주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10의 보상을 제공받아, 해당 비율이 –5입니다. A는 자신의 투입대비 결과의 비율인 2와 B의 비율인 –5를 비교하여, 강한 불공정성을 지각합니다.
이처럼 두 비율이 동일하지 않을 때 불공정성 (inequity)이 존재합니다.
과소보상을 받은 A는 불공정성의 지각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투입을 줄이든가 불공정한 보상을 주는 곳을 떠나게 됩니다.
◆ 공정성과 사회적 가치
공정성에 대한 관심은 이 지점에서 머무는 경향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공정성에 대한 탐구를 좀 더 진척시킨다면, 공정성의 풍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투입 대비 결과의 비율인데, 여기서 투입과 결과에 포함되는 각각의 구성항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입에는 시간, 노력, 학력, 숙련, 자격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결과 항목에 명시적인 부분들만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금, 작업조건등이 그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결과를 간과합니다. 내재적 보상등이 이에 대한 예입니다.
여기서의 내재적 보상은 자신의 노력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가 마을 담장에 벽화들을 그려두었습니다. 그 벽화에 대한 소문이 아름아름 퍼지자, 벽화를 구경하는 관광객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벽화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마을의 경제가 활성화됩니다. 화가는 벽화만을 그렸을 뿐인데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 겁니다. 이처럼 화가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편익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와 유사한 예가 과수원 주인과 근처 양봉업자의 관계입니다. 과수원에 꽃이 필 때 벌들이 꽃에 모여들어 양봉업자는 꿀을 많이 채취할 수 있습니다. 과수원 주인은 과수원에 사과를 심어두었을 뿐인데, 양봉업자에게도 의도하지 않은 혜택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주된 요소로 포함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사회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환산 불가능한 가치를 말합니다. 경제적 가치는 장부에 기록되지만 사회적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어 회계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사회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증 장애인이나 치매환자를 돌보는 사회적 기업이 무료 간병을 제공한 결과, 사회적 가치가 창출됩니다. 그동안 장애인이나 환자 보호를 위해 묶여 있던 보호자가 추가적인 외부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입니다. (라준영)
이러한 소득증대는 돌봄 서비스의 장부에 수익으로 기록되지 않지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경우입니다.
◆ 남북 단일팀, 공정한가 불공정한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공정성 논란도 가치판단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공정성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투입대비 결과의 비율을 상대적으로 비교한 후 판단됩니다. 그런데 결과 항목에 시장의 경제적 가치만을 고려할 경우, 공정성의 판단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반면 결과에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다면 공정성의 평가는 좀 더 객관적인 모습을 띠게 됩니다.
일각에선 남북한 단일팀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공정성 비율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경우, 남북한 단일팀 구성으로 인해 경기에 뛸 수 있는 시간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비용의 증가로 투자비용이 증가하거나 결과로서의 보상이 감소하여 투자대비 결과가 낮아집니다. 반면, 북한 선수의 경우, 결과에 대한 보상이 증가하여 투자대비 결과는 높아집니다.
이 둘의 투자대비 결과를 비교하면, 비율이 일치하지 않아 불공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단일팀 구성의 불공정성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 항목에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면 공정성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선수들이 내재적 보상, 즉 단일팀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줄이고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는 마중물이 된다는 가슴 벅찬 소명을 품고 있다면, 공정성 비율의 분모인 가치는 무한대로 커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공정성 판단은 불공정성이 아닌 공정성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은 눈 먼 시계공; 하키 선수들, 역사적 소명을 자랑스러워 할 것
공정성은 어떤 가치를 공정성의 판단 요소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단일팀의 공정성 논란도 가치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협소하고 폐쇄적인 경제적 가치에만 기댈지, 아니면 타인까지 고려하는 외부성인 사회적 가치를 가슴에 품을지에 따라 공정성 판단은 달라집니다.
이는 시장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연관됩니다. 시장은 ‘눈먼 시계공’이라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시계가 망가져 수리 센터에 가져갔는데, 시계를 수리하는 수리공의 눈이 멀었더라면, 우리는 그 시계가 제대로 고쳐지리라 기대 할 수 없습니다.
현대의 시장은 눈먼 시계공으로 비유됩니다. 시장의 절대자가 완벽히 자원을 배분하지 못하고 과소배분 혹은 과대배분이라는 시장실패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배경은 시장이 외부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등한시 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우리는 시장의 지표인 경제적 가치만을 판단기준으로 맹신하고,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판단의 척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공정성의 구성요소인 결과 항목에 명시적인 경제적 가치만을 고려한다면, 공정성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에 머물게 됩니다. 사회적 가치를 배제하고 경제적 가치만을 공정성의 판단 기준에 포함한다면, 우리는 공정성이 불공정성으로 오독되는 심각한 위험을 맞이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공정성을 따질 때, 시장은 더 이상 완벽하게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눈 먼 시계공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는 포용적 가치를 품는 넓은 가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가치가 모든 가치판단의 척도라는 협소한 인식을 내려놓고, 개인의 행위가 타인에게 미치는 외부 효과까지 고려하는 사회적 가치를 받아들일 때, 남북한 단일팀 공정성 논란은 잦아들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하키 선수들은 남북한 단일팀으로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여 개인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 한반도와 세계에 뿌려지는 평화의 씨앗이 된다는 역사적 召命(소명)을 한층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참고문헌>
황규대외(2001), 「조직행동의 이해」
라준영 (2015), “사회적 기업 생태계와 사회적 가치 측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