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 국민에 의한 통치, 국민을 위한 통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863년 케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民主主義는 대체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에 의한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다면, 국민에 의한 정치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링컨의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구절이 민주주의의 정의를 함축한 설명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이 지배하는 통치체제가 아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따라서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정치체제를 일컫습니다. ◆ 민주주의 :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민주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전체주의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 물리적 테러와 폭력적인 대중캠페인을 통해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심어줍니다.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총체적 테러 전체주의자는 현실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이들의 의도가 담겨진 생각을 이데올로기로 전파합니다. 그렇다보니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능력은 높지 않습니다. 실제적 경험에 뒷받침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자가 그린 목표에 맞추어 가상의 청사진이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의 이데올로기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 권력자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며, 이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라면 이들에게 직면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다는 논리적 유혹이 선전되는 겁니다. 이러한 유혹적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의 뇌리에 스며들기 위해, 권력자는 집단의 성원들에게 총체적 테러를 가합니다. 지속적인 대중 동원이나, 방송· 신문· 영화등 매스컴을 통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테러를 감행하는 겁니다. (민주
◆ 전체주의 개념의 구분 전체주의에 대한 분석은 정치 제도적 장치에, 또는 인간성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자의 접근은 사회과학적 개념의 전체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전체주의적 제도와 장치들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바라봅니다. 후자의 접근은 독일출신의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분석과 관련된 것으로, 전체주의 지배의 결과로서 인간성 상실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이해합니다. ◆사회과학적 개념의 전체주의 ① 마르크스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 전체주의는 대체로 두 가지 접근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는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으로, 이들은 독일전체주의의 본질을 ‘자본주의의 최종단계’ 혹은 ‘군국주의적 제국주의’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파시즘은 전체주의로 포함되나 소련의 공산주의는 파시즘과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서구좌파 지식인들도 스탈린 시대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좌파진영의 주장과 달리, 전체주의는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회과학적 전체주의 관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칼 프리드
하나님의 의는 성경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개념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두려움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의의 개념의 다양성 학자들은 하나님의 의 개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하나님의 소유격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있어 하나님의 소유격에는 목적격 소유격, 주격 소유격, 그리고 단순한 소유격등이 있습니다. 목적격적 소유격의 경우,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으로서의 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의를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 됩니다. 주격적 소유격의 경우, 하나님의 의는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이 하신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 또는 이를 행하심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소유격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이 지닌 본성적 의,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26절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
◆ 자본주의 번영의 메커니즘 : 이기심이 동감을 거쳐 공적 이익을 증대시켜 아담스미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번성의 힘은 이성에 뒷받침된 개인의 감수성에 있습니다. 우리가 제빵업자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자비심보다 그의 이익추구 덕택입니다. 자기보존본능·허영심등 개인의 자기애(self-love)가 공적인 부를 증진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기심은 공적인 부를 늘리는데 기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기심이 폭발적인 탐욕으로 전환된다면, 이기심은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바꾸는 파괴력을 품고 있습니다.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미스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까지 갉아먹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파괴적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 동감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여기서의 동감(sympathy)은 이타주의를 의미하지 않고, 행위자의 행위가 공평한 관찰자(사회전체의 공감적인 시각과 정서)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예컨대 개인의 생활수준증대의 욕구, 허영심등의 이기심이 공평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볼 때 용인될 수 있다면, 이러한 이기심은 승인될 수 있습니다. 그런
◆ 자본주의 번영의 메커니즘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국부론) “우리가 우리의 저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저서 <국부론>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이 구절은 개인의 자기사랑(self-love)의 추구가 생활필수품의 적절한 배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의 자기애(self-love)는 생활개선의 욕망, 자기보
◆보이지 않는 손과 감성체계 행위자들은 의사결정시에, 보통 이성을 사용하여 미래의 편익과 손실을 예견합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결과는 미래의 예측하지 못하는 변동성으로 인해 기대에서 곧잘 벗어납니다. 미래에 이러한 기대와 실제 값 사이의 편차는 위험이 되어, 행위자들은 위험에 대한 대가를 별도로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예컨대 기대값에 버퍼를 충분히 두는 것도 위험에 대한 대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성에 의존하여 원하는 결과를 기획할 수 없다는 점은 사람들이 감성체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아담스미스는 사람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감성체계에 의해 작동되며, 인지체계의 한 부분인 이성은 감성체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경험세계(표층세계)의 현상이 존재하게 하는 배후의 힘은 감성체계이며, 이는 자연의 섭리, 곧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됩니다. ◆ 스미스의 저서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언급, 세 가지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언급한 것은 세 가지 경우입니다. 우선 <천문학의 역사>에서 ‘주피터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주피터의 신을 믿는 로마인들은 천둥· 번개등 자연의
‘어떤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것이 순간의 즐거움이었으나, 이를 즐김에 따라, 점점 그것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것에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나는 이것의 노예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발을 묶어 놓는 족쇄를 끊어 버릴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 ‘죄’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로마서 1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Furthermore, just as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so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so that they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이 구절의 하반절에 의하면 죄란 타락한 마음(상실한 마음, depraved mind)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카르텔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들은 공동행위, 담합 (collusion), 네트워크등입니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할 때 카르텔은 경제측면에서의 카르텔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측면에서의 카르텔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카르텔의 의미 정치적 카르텔은 핵심요소에서 경제적 카르텔과 유사합니다. 이는 담합입니다. ‘담합’이라는 키워드는 ‘강한 네트워크’, ‘끈끈한 동맹’, ‘야합’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키워드에 기초하면, 정치적 카르텔은 구성원들이 동맹을 형성하여 잠재적 이익을 공유하는 담합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카르텔에 대한 이 설명은 경제적 카르텔의 정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구별되는 점은 정치 카르텔이 ‘강한’ ‘끈끈한’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정치 네트워크에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는 정치적 카르텔이 구성원 내 공통분모에 기초하여 형성된다는 점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공통분모는 같은 학교, 같은 고향, 같은 시민 단체, 같은 기관, 같은 이념 조직 출신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성원간의 공통분모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형식적 관계를 뛰
◆ 카르텔(경제카르텔)의 개념과 카르텔이 담합으로 규정되는 이유 경제학적 개념의 카르텔은 공동행위의 일종으로, 과점기업들이 담합(collusion)을 통해 마치 독점기업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카르텔의 공동행위는 법(공정거래법)에서 담합으로 규정하여 제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collusion은 사전적으로 ‘불법적이고 부정직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비밀 협력’을 의미합니다. 카르텔이 불법적 공동행위인 담합으로 간주되는 것은 카르텔의 실질이 독점의 실질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독점시장의 경우, 완전경쟁시장에 놓여 있는 기업들에 비해, 생산량이 감소하고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럴 경우, 소비자들의 후생은 감소하고 생산자들의 순후생(생산자 잉여증가와 감소의 합)이 증가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의 후생감소와 생산자들의 순후생증가분의 합인, 사회적 잉여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잉여 감소분을 ‘하버거의 삼각형’이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카르텔의 이윤극대화 생산량과 하버거의 삼각형’) 이와 같은 독점시장의 실질과 마찬가지로, 카르텔의 형성은 생산량 감소, 가격 상승, 소비자 후생감소, 생산자들의 후생증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