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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전체주의의 특성 ] 전체주의가 아름다운 유토피아 체제인가?

전체주의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 물리적 테러와 폭력적인 대중캠페인을 통해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심어줍니다.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총체적 테러 

전체주의자는  현실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이들의 의도가 담겨진 생각을 이데올로기로 전파합니다.  

그렇다보니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능력은 높지 않습니다. 실제적 경험에 뒷받침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자가 그린 목표에 맞추어 가상의 청사진이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의 이데올로기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 권력자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며,  이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라면 이들에게 직면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다는 논리적 유혹이 선전되는 겁니다. 

이러한 유혹적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의 뇌리에 스며들기 위해, 권력자는 집단의 성원들에게 총체적 테러를 가합니다.  지속적인 대중 동원이나, 방송· 신문· 영화등 매스컴을 통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테러를 감행하는 겁니다. 

(민주당이 과거 KBS와 MBC를 장악하여 자신의 정파적 이익에 맞는 방송사로 변모시킨 것도 이와 같은 총체적 테러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테러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이 이데올로기라면, 비록 거짓일지라도, 부정적 현실을 타파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게 됩니다.  

급기야 유혹적 이데올로기의 세례에 의해 참과 거짓의 판단을 포기하고, 주어진 이데올로기를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추앙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지도자를 추종하고 그에게 확고한 충성심을 보입니다.    

(정치적 팬덤이 등장하는 배경도 이러한 이데올로기 세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팬덤 제거는 곧 이데올로기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정치적 팬덤의 존재여부는 기존 이데올로기의 존재여부와 상관관계를 보일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러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를 대표하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대중조작의 무기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습니다. 


◆ 총체적 지배 – 아렌트가 전체주의를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는 이유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근본적 악으로 규정합니다.  인간이 총체적 테러에 의해 총체적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체적 지배란 인간의 개성을 동일한 하나의 인간으로 박제화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인간의 창조적 동력인 행위를 이끄는 개성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전체주의는 개인의 자발성과 개성을 파괴시킵니다. 인간의 다양성, 복수성(plurality of men)은 박제되어 모두가 하나의 인간처럼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획일성은 한국의  좌파 교육에서 발견됩니다. 좌파진영은 다양한 형식의 고등학교 형태를 일반고의 형태로 획일화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이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집단의 부품으로 전락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인간 개성의 획일화, 곧 다양한 인간이 하나(the One)처럼 만들어진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마리오네트, 곧 잉여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이 똑 같은 모습으로 동일화 되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의 개처럼 인간의 본성인 자발성· 개성· 창조성은 거세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체주의는 정치적 다원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개인의 개성과 자발성을 강조하는데 반해, 전체주의는 복수성과 개성을 품고 있는 인간을 ‘인간의 얼굴을 한 창백한 꼭두각시 인형’으로, 또는 조건반사에 반응하는 실험 개처럼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체주의는 인간을 집단의 획일화된 부품으로 전락시켜, 인간다움을 거세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아렌트가 전체주의를 근본적 악으로 규정하는 이유입니다. 


◆ 스탈린 소련 공산주의는 전체주의. 

전체주의 체제가 최초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독일 나치의 정권 장악이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권좌에 올라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행하면서 전체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렌트는  히틀러의 독일 파시즘 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 공산주의를 전체주의 체제로 꼽습니다. 

하지만 좌파진영은 스탈린 시대의 공산주의를 전체주의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좌파 지식인들은 전체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에 등장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폭력성이 심화되는 과정에 나타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일부 지식인들도 소련 스탈린 공산주의를 전체주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이들은 1927년 홍범도 장군의 스탈린 공산당 가입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홍장군의 선택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스탈린의 소련을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대중정당이 정착된 국가, 또는 당시 미국의 동맹등으로 긍정적으로 언급할 뿐, 전체주의로 비판하는 논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그 이유는 이들이 서구좌파 지식인과 동일한 관점에서 스탈린 공산주의에 대해 전체주의 적용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아렌트는 「전체주의 기원」에서 소련이 1928년 이후 총체적 지배의 상황에 놓인다고 지적합니다.  

총체적 지배가 확립되기 전에 전체주의 운동이 먼저 일어납니다. 이 운동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충성심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충성심은 다양성을 갖춘 인간에게 기대하기 어렵고 오직 인간이 인간마리오네트로 전락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윤선화)

따라서 1928년 이전에 이미 인간의 개성을 박탈시키는 이데올로기 테러가 펼쳐졌고 이로 인해 이미 인간의 다양성이 제거되었음이 추측 가능합니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 볼 때,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해인 1927년에, 소련 공산당은 전체주의체제를 갖추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렌트의 분석에 의하면 소련공산당은 1928년에 총체적 지배를 구축하였는데,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1927년은 소련공산당이 전체주의를 사실상 확립한 시기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아렌트의 분석에 근거하면, 좌파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스탈린 공산주의는 전체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입니다. 


◆ 전체주의가 아름다운 유토피아 체제인가?

전체주의가 절대적 악인 것은 이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잉여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전체주의 체제는 총체적 지배를 인간에게 행사함에 따라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은 상실되어, 인간은 집단의 명령에 순종하는 인간 마리오네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는 인간의 자발성이 거세된 채 인간이 집단의 부품으로 전락되는 집단주의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개성과 자발성이 강조되면 인간사이의 경쟁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패배자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 때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간의 연대를 통해 이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동체적 자유주의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의의 특성은 전체주의가 다양성에 근거해서 선택될 수 있는 체제들 중 하나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체제임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아무리 자유민주주의가 다양성과 인간의 개성을 중시한다 해도, 전체주의는 절대 악이므로 자유민주주의의 다양성 목록에 조차 오를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인간다운 삶이 영위되는 살기 좋은 체제는 시민들의 개성이 자유롭게 펼쳐져 창조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체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도 인간이 자발성에 뿌리를 둔 개성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총체적 권력을 장악하여 인간을 개성을 갖지 않은 잉여적 인간으로 변질 시키는 총체적 지배를 행사할 때, 인간은 명령에 조건 반사 식으로 반응하는 실험개로 전락됩니다. 국가는 인간에게 먹이를 던져주면서, 자신들의 명령에 순응하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체제에는 인간의 주체성과 자발성, 개성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히틀러의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가스실로 행진 해 간 수백만의 유대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체제가 아름다운 유토피아 체제인가요? 


◆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이 필요한 이유



육사 홍명도 장군 흉상의 이전 논란의 본질은 홍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가입한 공산당의 성격에 있습니다.
 
만약 1927년 홍장군이 가입한 소련 스탈린 공산당이 전체주의의 체제를 확립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홍장군 흉상은 논란의 여지없이 이전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이전은 불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육사의 교육목표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 △위국헌신의 군인정신과 리더십 함양 △첨단 군사 전문지식 습득 및 활용 능력배양 △창의적이고 통합적 문제해결 능력배양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연마이기 때문입니다. 

전체주의 개념에 따르면, 전체주의는 자유주의의 반동으로 등장한 것으로 인간의 자발성과 개성을 제거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전체주의와 대척점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아렌트는 스탈린을 히틀러와 같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아렌트가 미국과 같은 민주 정부와 스탈린의 공산주의에게 도덕적 등가성(moral equivalency)을 부여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주장을 아렌트가 비판한 이유입니다.  

또한 아렌트의 지적처럼 소련 스탈린 공산당은 1928년에 전체주의의 특징인 총체적 지배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의 설명처럼 1928년 이전에 전체주의 운동은 이미 구축 되었으므로, 소련공산당은 홍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한 1927년에 전체주의의 성격을 구비하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1927년 소련 공산 전체주의에 가입한 홍장군의 흉상이 육사에서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되는 것이 타당한 이유입니다. 

안타깝게도 소련 스탈린 공산 전체주의에 가입한 홍범도장군은 전체주의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이주한 것이 아니라 이주된 것입니다. 자신의 자발성이 거세된 채, 당의 명령에 순종하는 인간 마리오네트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그릇된 신념이 낳은 후과라고 말한다면, 이는 가혹한 비판이 될까요? 

홍장군의 이러한 사례는, 전체주의는 용인 가능한 체제의 하나로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 악임을 다시금 알려주는 방증이 됩니다. 


<참고문헌>
이삼성, “한나 아렌트의 인간학적 전체주의 개념과 냉전 :친화성과 긴장의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