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960년대까지 사회적 평등을 추구한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일부 성과를 거두면서 모범적인 복지국가라는 칭송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영국병’(British Disease)에 걸린 ‘유럽의 환자’(sick man of Europe)로 전락하여, 1976년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대처주의’이며, 대처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한 정책노선이 ‘공감적 보수주의’, 또는 ‘온정적 보수주의’입니다. 공감적 보수주의는 현재 이윤율 저하와 소득 양극화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 미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 영국이 영국병에 걸린 원인 영국이 복지국가의 모범에서 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에는 영국병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영국병’이란 영국이 1970년대 고실업, 고물가, 강성노조, 생산성하락등으로 인해 경기침체에 빠진 것을 말합니다. 우선 고물가가 나타난 배경에는 강성노조의 인금인상 요구가 주요 요소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5년 석탄 광업근로자들의 파업이 그 예입니다. 파업의 여파는 임금의 30% 폭등을 초래하였고 이렇게 상승한 임금이 물
◆ 투표결정의 요인, 전망적 투표 제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승리는 예상 밖의 승리로 평가되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선전하기 힘들다는 예상이 일반적 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집권여당이 일반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과 관련됩니다. 즉 총선은 집권당의 행적 혹은 정책업적에 대한 심판적 선거의 성격이 강한데, 집권여당의 업적은 긍정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의해 평가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미국 하원의원선거에서 여당이 정기적으로 의석을 잃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이론이 부정적 투표이론(negative voting theory)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부정성의 효과’(negative effect)때문입니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부정적 정보가 긍정적 정보보다 전체적인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겁니다. 이처럼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선거의 성격을 가지는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집권여당의 성과 평가에서 부정적 정보가 긍정적 업적보다 크게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이후 탄생된 사회주의체제는 동유럽과 동아시아등 제3세계 국가들로 확산될 만큼 자본주의의 대항이념으로 부상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사회주의체제의 종주국인 소련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생산력의 퇴보로 곧 망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계속국가 유지의 동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 권력의 지속적 재생산의 요인으로 ‘미시파시즘’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즉 북한이 스탈린주의가 아닌 파시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스탈린주의 대 파시즘 ①전체주의(totalitarianism) 특징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적 체제모형으로 전체주의가 꼽히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와 브레진스키(Friedrich and Brzezinski)는 전체주의의 특징을 “통일적 이데올로기, 일인독재에 의한 단일정당 정치, 비밀경찰 시스템, 무력과 소통의 독점, 계획경제가 상호 지탱해주는 하나의 유기적인 실체”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효과를 발휘
◆ 미시파시즘(micro-fascism)의 동학 ‘미시파시즘’의 개념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개념은 푸코(Foucault)의 통찰에 빚지고 있습니다. 푸코는 들뢰즈와 가타리(Deleuze and Guattari)가 집필한 「Anti-Oedipus」의 서문에서 파시즘의 미시적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략적인 주적은 파시즘, 즉 대중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활용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인 파시즘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즉 우리의 머릿속과 일상행위에 내재된 파시즘, 즉 권력을 사랑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욕망하게 하는 바로 그 파시즘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역사적 국가적 파시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푸코에 의하면, 우리 모두 안에 있고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일상적 행위를 떠나지 않는 파시즘이 존재하는데, 이 파시즘은 우리가 권력을 사랑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욕망을 가지게 하는 파시즘이며, 우리 안에 내재된 파시즘입니다. 미시파시즘, 즉 ‘우리 안의 파시즘’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개인이 권력과 폭력의 파시스트적 사고에 젖어들어 권력과 폭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의 하나로,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흡수하는 차경이 꼽히고 있습니다. 차경은 실내의 문, 창, 또는 누마루등을 통해 자연의 풍광을 프레임화하여 실내에 자연을 담는 기법입니다. 차경은 실내에 거주하는 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기도 하며, 좌절된 자아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담아내고자 한 이유는 자연의 질서와 이치를 4계절 관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누정이 주는 자연의 메시지 차경은 내부자와 외부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여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을 내부자에게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은 간접적으로 누정에 대한 기록인 누정기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樓亭은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정자·정각·누대·누각등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돌이나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운 것을 樓라하고 그 규모가 작은 것을 亭이라고 합니다. 누정기는 누각이나 정자등 누정을 신축하거나 개수할 때 그곳을 방문한 선비들이 누정에 대해 지은 산문을 말합니다) 누정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교통하여 자연의 도를 깨닫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이러한
정치의 공간은 피상적으로 책략과 다툼의 공간으로 비칩니다. 그런데 정치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현실’과 ‘의미’의 간극에서 서로 밀거나 당기는 변증법의 과정이 벌어지는 곳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정치란 정치 행위자들이 각자 신봉하는 신의 ‘의미’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 서서 정치를 이해할 때, 베버의 통찰을 원용한다면, 정치는 현실을 의미로 착각하는 신비주의정치와 현실과 의미사이를 좁히고자 하는 금욕주의 정치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공간에서 부각되는 문제의 하나는, 특히 증오와 혐오의 현실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신비주의자들이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구축 확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조화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러한 혐오의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원칙의 정치행위자들과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 신비주의 종교 vs 금욕주의 종교 (박영신) 베버에 의하면 삶의 의미지향성의 기초를 마련해주는 것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는 겁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가에 따라,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의 의미가 차이를 보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헌법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국가이념이 자유민주주의 내지 이의 핵심요소인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시공간의 상황에 적합하게 수정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이념이든, 그 이념의 구체적 내용들은 과거 주어진 대로 화석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 시대 문제에 조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요소들이 다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은 곧 헌법의 지향이념 과거 역사교과서의 논쟁에서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을 규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배가치가 자유민주주의인가 혹은 민주주의인가라는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지금도 그 논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듯합니다. 우파진영은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좌파진영은 민주주의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실마리는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국가이념에 대한 판시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
◆ 방어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방어적, 투쟁적 민주주의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독일이 전체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즉 자유민주적 질서를 극단주의자들로부터 방어 또는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방어적 투쟁적 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헌법상 대표적 제도가 위헌정당해산제도입니다. 바이마르 헌법 하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 나치의 만행을 겪었던 독일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로 정당해산제도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 산물이 체재를 위협하는 정당을 구분해 내는 지침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eiheitlich-demokratische Grundordnung, fdGO)입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8조 제4항도 독일의 fdGO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조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독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10월 사회주의 제국정당(SRP)의 금지결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정의내립니다. 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 민주주의 : 국민에 의한 통치, 국민을 위한 통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863년 케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民主主義는 대체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에 의한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다면, 국민에 의한 정치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링컨의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구절이 민주주의의 정의를 함축한 설명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이 지배하는 통치체제가 아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따라서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정치체제를 일컫습니다. ◆ 민주주의 :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민주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전체주의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자들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 물리적 테러와 폭력적인 대중캠페인을 통해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심어줍니다.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총체적 테러 전체주의자는 현실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이들의 의도가 담겨진 생각을 이데올로기로 전파합니다. 그렇다보니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능력은 높지 않습니다. 실제적 경험에 뒷받침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자가 그린 목표에 맞추어 가상의 청사진이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의 이데올로기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주의 권력자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며, 이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라면 이들에게 직면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다는 논리적 유혹이 선전되는 겁니다. 이러한 유혹적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의 뇌리에 스며들기 위해, 권력자는 집단의 성원들에게 총체적 테러를 가합니다. 지속적인 대중 동원이나, 방송· 신문· 영화등 매스컴을 통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테러를 감행하는 겁니다. (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