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변화 → 장기적 지속적 성장
한국경제의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2025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 중반대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1% 중반의 성장률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두 성장률의 갭이 마이너스인 것은 경제가 침체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성장률의 저하가 일시적이고 주기적이기보다는 장기적이고 추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장기성장의 추세적 반전을 위해선 단기부양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장기 추세선의 저하를 반등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자들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성장은 자본과 노동등 요소 투입만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장기성장은 혁신과 투자유인에 의해 촉진될 수 있는데, 이는 인적자본의 축적이나 제도의 개선등 총요소생산성의 제고가 수반될 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제도 개선등의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질 때, 혁신이 제고되고, 이러한 혁신의 제고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도적 정체는 성장의 한계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실례가 중국의 경제입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세모글루(D. Acemoglu)교수는 “중국경제의 상대적 고(高)성장세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중국이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등 제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제도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인 시계(視界)에서도 나타납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각국의 경제적 성과는 제도의 질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도의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적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가격조정 등의 방안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마련되고 실행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성장을 위한 주요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 제도 개선과 성장간의 상관관계
제도 개선이 혁신에 의한 성장을 강화한다는 명제는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세계국가경영지수’(Worldwide Governance Indicators, 이하 WGI)와 총요소생산성(TFP)간의 상관관계를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습니다.
WGI 지수는 제도에 관한 ‘메타(meta) 지수’로, 아래의 6개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정책참여도(Voice and Accountability), (2) 정치적 안정성(Political Stability and Absence of Violence/Terrorism), (3) 정부의 효과성(Government Effectiveness), (4) 규제의 질(Regulatory Quality), (5) 부패통제(Control of Corruption), (6) 법치주의(Rule of Law)
여기에서 정부의 효과성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수준을 측정하며, 이는 인적자본 형성과도 연관됩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미국 Conference Board에서 발표한 각국의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기여도 즉 혁신이나 교육의 질의 개선과, WGI로 측정한 제도의 개선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깊었습니다.
결국 제도의 개선이 혁신을 추동하고, 이러한 혁신의 제고가 성장을 이끌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제도가 성장을 이끌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장이 제도를 이끄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이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즉 경제성장이 이뤄지면 소득과 세수가 증가하고, 또한 제도개선에 활용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지면서 결국 제도의 질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때 개선된 제도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제도와 성장 간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권력의 비민주화 → 성장의 걸림돌
요소투입증가에 따른 성장은 결국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 장기성장은 혁신을 높이는 총요소생산성의 제고에 달려 있습니다. 즉 제도의 개선이 혁신을 높이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명제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정체되어 있는 제도인 헌법에 유효합니다.
현행헌법은 87년이후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역대 최장수 헌법이지만, 이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낡은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1987년 헌법으로의 개정의 핵심은 장기집권 방지를 통한 민주화에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개정 헌법이 1987년 헌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1987년 헌법은 장기집권 방지를 통한 민주주의의 내실을 가져왔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제도로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즉 현재시점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2024년에 당면한 한국 민주주의의 목표는 ‘권력의 민주화’로 요약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제로 왕조시대의 군주처럼 일방적 통치를 통하여 국민 위에 군림한 결과 국민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 졌다는 겁니다.
현행 헌법도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군주제를 부정하는 민주국가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제하의 대통령은 군주처럼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좌파 가설에 심취한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제도의 변화보다 사람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은 좌편향적 정책을 강력히 밀어 붙이면서 군주적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즉 문재인 정부는 혁신을 통한 지속적이고 장기적 성장을 추진하는 대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변방의 경제가설을 끌고와 한국의 현실에 강제로 접목시키거나, 한국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임대차법을 입법화 하는 등으로 인해,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것입니다.
윤석열대통령도 군주적 모습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속적 성장은 혁신에 달려 있고, 혁신은 R&D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달려있는데도, R&D 예산을 삭감하였습니다. 이번 비상계엄사태에서도 대통령의 군주적 모습의 일단이 엿보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처럼 권력의 비민주화는 국가의 성장을 제한하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군주의 형태들은 대통령제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모습들입니다. 대통령은 무엇이든 가능한 군주의 역할을 대통령제가 허락한 것입니다.
결국 현재 2024년의 한국 민주주의의 목표는 권력의 민주화에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정치인들의 결정의 척도는 당장의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장래 국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현재 한국민주주의 목표가 권력의 민주화라면, 대통령의 권한 축소에 방점을 둔 정부형태의 변경과 관련한 헌법개정은 어떠한 다른 사유보다 앞서는 사안입니다.
이유는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국가의 시급한 어젠다는 장래 성장의 잠재력을 준비하는 것이며, 성장은 제도의 개선으로 한층 높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결정의 기준으로 언급되고 있는 국민의 눈높이, 당장의 국민의 감정보다 앞선 척도가 국가의 장기성장에 대한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국가 리더십을 조속하게 마련하고자 하는 조급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유사한 형태의 권력오남용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확실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긴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야당의 당장의 탄핵주장과 일부 여당 정치인들의 ‘조기하야 조기대선’ 주장은 국민의 궁극적 이익보다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보다, 장래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정략적 선택은 결국 정치적 단말마의 비명을 불러일으킬 것은 자명합니다.
(일부 여 야 정치인들이 판단의 척도로 걸핏하면 국민눈높이를 내세우기에 이는 정말 애국심의 발로라고 순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지금 시점에 이들이 보이는 행태는 지금까지의 국민 눈높이라는 말이 자신들의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장전술일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
◆ 포워드 가이던스 제시 필요
현재 지금의 혼돈을 잠재우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시나리오든 ‘권력의 민주화’를 위시한 헌법의 개정이라는 기준을 축으로 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사실 정부형태를 변경하는 원포인트 개헌은, 87년 개헌이 4개월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보다 더 이른 기간에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언급되는 문제가 우리나라의 국제 신인도 문제입니다. 경제의 불안정이 원화가치 하락, 환율 급등을 초래하여, 외환보유고 감소· 국가부도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수익률의 변동성을 높여 투자의사결정을 주저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은 여당인 국민의 힘이 일종의 정치적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명확히 제시할 때 완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헌법개정의 일정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임기단축과 대선일정과 관련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때, 신인도 문제는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위기는 분명 기회입니다. 정부형태를 바꾸는 천우신조의 개헌의 기회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누리기 위해, 이 기회를 날려버리겠다는 일부 여야정치인들의 행태는 결코 용서받지못할 惡行으로 歷史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신민영, 정성태 "제도와 경제성장"
장영수,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현실가 헌법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