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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정부형태 ② ] 정치는 인간다움을 만드는 행위 : 권력은 분립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

아렌트의 복수성과 연대

"창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같은 노래일지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노래의 질감은 같지 않다. 

이를테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에서,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는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주고, 뮤지컬 가수 임태경은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마찬가지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연주하는데 있어, 로스트로포비치와 카잘스는 각각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음정의 충실함에, 카잘스는 정신과 열정에 연주의 초점을 맞춘다. (김선욱)

이렇게 연주자의 개성들은 음악세계에서 다양성과 복수성(plurality)을 기초로 하여 공존한다.  

우리의 활동도 예술처럼 다양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공론장에서 말과 토론으로 개성이 표현되면서 복수성은 꽃을 피운다. 






 ◆복수성은 곧 인간다움을 만드는 것

복수성의 목표는 무엇일까?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다원성은 인간다움이 묻어나는 (정치)행위의 전제조건이다. 복수성은 개인의 이익 추구보다  인간성을 실현하는 과정인 행위의 재료가 된다.   

사람의 활동은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三分된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행위는 정치 행위로도 불린다.  

노동은 생명의 유지를 위한 생물학적 활동이다. 작업은 자신의 머리에서 아이디어를 실현하여 예술작품등 인공물을 만드는 활동이다. 마지막으로 행위는 개인의 복수성이 수용되는 공론장에서 말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정치)행위의 궁극적인 방향은 타인을 향한 사고의 확장에 있다. 

공론장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측면으로 보게 되는 복수성이 수용된다. 복수성으로 인한 다름은 차이조정을 필요로 한다. 공론의 일치를 위해 개성의 간극을 좁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간극은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아렌트는 각자의 차이가 나타날 때,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고 지적한다.  하나의 공론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확장된 사유방식(an enlarged mentality)이라 부른다. 

결국 행위는 불가피하게  다양성의 산물인 차이를 드러내고, 이 간극을 조정하기 위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의 확장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공론장은 ‘함께함’이라는 인간다움이  실현된다.   

연대와 인간성 실현이라는 정치 행위의 예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지리학자 고산자 김정호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호는 여행을 위해 비변사에 보관되어 있는 지도를 필사하는 보부상들에게  축척이 제대로 반영된 지도를 나누어준다. 이는 김정호에겐 연대를 향한 정치적 행위이다. 만약 이 지도를 백성들에게  판다면 김정호의 지도 만들기는 삶의 필연성을 해결하기 위한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목판으로 제작하여, 백성들이 손쉽게 지도를 공유하도록 하였다.  만약 그가 대동여지도 목판을 지도정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권력자 흥선대원군이나 안동 김씨들에게 팔았다면, 그의 지도제작은 작업이 된다. 하지만 김정호가 백성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나누어주기 위해 대가없이 목판을 제작한 활동은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연대 행위가 된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결국 복수성의 수용은  공론장에서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대라는 인간성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된다. 


◆정치란 타인에 대한 사고를 확장하여 공통된 의식의 지평을 형성하는 것

정치도 복수성과 사고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된다.   

전통적으로 정치는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복수성의 관점에서 정치란 기능적 역할 대신, 다원적 인간들 간의 의사소통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최종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행위로 귀착된다.  따라서 정치는 더 이상 지배형태나 통치형태로 제한되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는 공론장에서, 타인을 향한 사고를 확장하여 공통된 수평선, 즉 공통된 의식의 지평을 형성하는 행위이다. (정윤석) 
 

◆ 탈정치와 자유의 상실

그런데 사람들 간의(in-between) 다양성을  수용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정치 행위는  정치적 무관심에 압도되기도 한다. 그리고  공론장인 공동체 밖에서의 안주라는 탈정치는 자유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탈정치의 역사적 교훈은 유대인의 민족적 비극이다. 히틀러의 전체주의의 희생양으로 받아들여지는 유대인 학살도 일면에는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의 증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배혜정)

유대인들은 자신의 권력에 상응한 정치적 행위에 초연하였다. 그들이 축적한 부는 사실상 큰 정치권력이었음에도, 그들은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하였다. 유대인들은 정치공동체를 조직하거나 어떠한 국제적 연대조직도 만들지 않았다.  공동체를 외면한 그들의 부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지 못했고, 그들은 유럽인의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공동체를 잃는다는 것은 자유와 죽음을 잃는다는 의미가 된다. 공동체에서의 연대와 함께함이라는 정치적 행위에 균열이 발생한다면, 공동체 밖의 안전은 외려 담보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경제라는 사적인 영역에만 몰두하고 여가시간은 오로지 소비에만 참여하는 이들, 그리고 정치적인 공적영역에 참여하지 않고 배제를 선택한 이들은  어떻게 존엄을 잃는가를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 권력 구조와 민주적 리더십 

권력구조도  복수성과 연대 구축의 맥락에서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행동에 관철시키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다른 사람들의 저항에 反해서라도 공동행위에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의 관점에서 권력은 더 이상 지배행위가 아니다. 권력은 복수성이 수용된 의사소통 속에서 협동적 능력, 혹은 집단의 연대적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  따라서 권력은 집단에 속하는 것이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박봉규)

이러한 ‘서로 함께함’을 통한 권력 생성은 권력분립을 강조하게 된다. 권력분립은 권력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립에 기초한 권력들의 공동작용이 상호작용하여 균형과 생동을 가져오는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권력분립은 마비의 위험대신 더 많은 권력이 산출되는 기반이 된다. (박봉규) 

아렌트는 권력(power)과 强勸(violence)을 구분한다. 권력은 항상 집단의 능력으로, 권력의 극단적 형태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권의 극단적 형태는 한 사람이 모두에 거스르는 것이라 아렌트는 강조한다. 이렇게 강권은 정당성의 권력을 파괴하게 된다. 

또한 아렌트는 권력과 권위를 나눈다. 권위는 권력의 특수형태가 아니다. 권위는 인물이나 관직에 대한 타인의 존경과 인정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권위의 가장 위태로운 적수는 적대가 아니라 경멸이며, 권위를 허무는 것은 비웃음이다. 

결국 권력관계의 출발은 다원성이다.  복수성의 산물인 의사소통은 집단의 능력인 권력을 창출한다. 그리고 권력은 다시 分立을 통해, 권력의 시너지를 생성한다. 

이처럼 일련의 권력 발생과 확대 과정을 돌이켜보면, 권력은 복수성과 의사소통에 근거한다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권력은 지배나 통치대신 공동체의 소통적 행위이다. 권력을 집단의 능력으로 받아들여 질 때, 협업과 공동체의 가치는 드높아지며 리더십의 권위는 더욱 공고화된다.   

☆김동규 VS 임태경☆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https://youtu.be/eCeuIuoS5pA
임태경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https://youtu.be/uLGlbMI0tQc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을 경우 유튜브로 직접 접속하세요)


<참고자료>
김선욱(2003), “한나 아렌트의 정치개념”
박봉규(2006), “권력개념과 리더십의 발전방향:미래지향적 권력이론의 모색”
배혜정,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본 정치의 중요성”, 기독교철학 10호 
정윤석(2001), 「아렌트와 공화주의의 현대적 전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임경석, “한나 아렌트, 탈정치화와 삶의 형태로서의 정치”
권정우외(2015), 「아렌트의 정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2016), 언론시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