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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증세]분배의 기준 - 선택에 민감하고 여건에 둔감하게 :자원배분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필요

세금제도는 보험풀의 성격

2015년에 조세저항의 민란이 터졌다. 중산층이 주축이 된 연말정산 대란은 민란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결국 정부는 연말정산으로 거둔 세금의 일부를 소급 환급하여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연말정산 대란의 원인은 과세형평성에 대한 불만이었다. 정부가 근로소득자들의 유리지갑에 손쉽게 과세한다는 지적과 대기업감세로 인한 재정압박을 개인 중산층의 주머니를 털어 보충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연말정산 대란은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원분배기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전통적 분배 기준 - 분배는 선택에 민감하고 운(여건)에 민감하게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은 자원을 선택에 민감하고 운에 민감하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자원분배가 선택에 민감(sensitive to their choices)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개미로부터 베짱이로의 자원의 이전은 공정한 재분배로 허용될 수 없다. 이는 게으름을 선택한 이들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근면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택에 민감한 정책이 곧 윤리와 정의에 민감한 정책이라는 인식이다.

 

또 자원의 분배가 여건에 민감(sensitive to their circumstances) 하다는 것은 자원의 분배가 물려받은 재능과 환경에 민감하게 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유전적으로 월등한 능력과 건강을 물려받거나, 우월한 부모를 잘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등의 환경적 운은 자신의 배타적인 자원이다.

 

그러므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운을 평등하게 하여 자원을 여건에 둔감하게 재분배하는 국가의 개입 정책은 개인의 재산권을 훼손하는 것이라 본다.

 

 

드워킨의 평등한 배려 - 분배는 선택에 민감하고 여건에 둔감하게

 

자원의 분배가 선택에 민감하고 여건에도 민감하게 되어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 주장은 공동체의 공동선의 정의라는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이익과 전체로서의 사회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공동선의 정의관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만을 강조하는 자유방임 자본주의 결과는 엄청난 소득 불평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므로 분배의 기준은 선택에 민감하고 여건에 둔감한 재분배정책이 강조된다.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공동체 성원 모두에 대한 평등한 배려(equal concern)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평등을 분배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먼저 드워킨은 선택에 대한 책임에 관심을 둔다. 베짱이들을 위해 개미가 희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드워킨이 반평등주의적 우익의 무기고에서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강력한 이념을 꺼내와 평등주의 진영의 무기로 삼았다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철학 교수였던 제럴드 앨런 코헨의 지적은 드워킨의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설명할 수 있다.

 

또 그는 평등한 배려를 분배철학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평등한 배려란 사람들을 평등한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treating people as equals)인데, 이를 위해 재분배는 여건에 둔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원의 분배가 재능과 운에 민감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드워킨은 선택적 운(option luck)과 피할 수 없는 운( brute luck)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주식으로 돈을 벌거나 잃는 경우는 선택적 운이다. 하지만 들판을 지나가다 벼락을 맞아 다쳤다면 이러한 불운은 피할 수 없는 운이다.

 

그러므로 그는 선택적 운, 즉 자신이 통제 가능한 운에 의한 결과에는 불평등을 허용하지만, 자신이 통제 불가능한 운인 피할 수 없는 운으로 인한 불평등은 해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자원의 분배가 선택에 민감하고 피할 수 없는 운에 둔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드워킨은 피할 수 없는 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재분배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갑자기 불구가 되거나 직장을 잃는 경우, 또 고령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또 재능의 부족으로 소득 기반을 상실하였을 경우, 정부가 그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운의 결과에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건의 평등은 위험의 평등 세금은 보험료의 성격

 

드워킨의 자원의 평등은 위험평등을 말한다.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없는 환경으로 발생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소득 재분배, 즉 여건에 둔감하기 위한 소득 재분배 정책이 분배의 기준으로 인정될 때, 여건의 평등은 위험평등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드워킨은 이런 맥락에서 가설적 보험시장을 구상한다.

 

각 개인은 노동하는 동안 부여 받은 자원 중 일부를 세금이라는 방법으로 사회에 맡겨둔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개인의 삶을 위해 사용한다. 세금을 일종의 보험료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료는 사회복지기금으로 사용되고, 이후 예기치 못한 장애가 발생하였을 경우, 의료복지 혜택이나 실업급여등의 보험금이 지급된다. 이러한 보험시장의 보상을 통해 악운으로 발생한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주는 것이다. (김동일)

 

그러므로 세금제도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보험료를 내고 거기에서 악운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보험풀의 성격을 지닌다. (곽노완)

 

세금이 미래 보험금을 수령하는 자격으로서 기능한다면, 증세는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미래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소시키는데 기여한다. 그런 맥락에서 세금제도는 위험 평등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의 증가, 은퇴 후 장애나 질병으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위험의 평등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세금을 통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할 수 없는 운에 따른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험의 세금제도를 통해 교정하는 것이다.

 

즉 시민의 준수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은 재능의 부재로 인한 저소득과 실업에 대처할 수 있고, 교육과 의료보호를 통해 계층의 대물림을 차단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의 보험가입은 공동체적 의무

 

분배는 여건에 둔감해야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들은 왜 굳이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가라고 보험제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운이 좋은 사람들의 보험가입은 공동체적 의무라는 지적이다. 운의 부재로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해 운이 좋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양보하는 것은 공동체적 의무로 볼 수 있다.

 

공동체적 의무란 개인이 하나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개인의 공동체적 의무와 권리를 말한다. (염수균)

 

공동체의 의무는 우애적(fraternal) 의무이다. 재능과 환경적 운의 혜택을 부여받은 운 좋은 구성원들이 운의 부재로 준수한(decent)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또 다른 구성원들에게 지는 배려의 의무이다.

 

또 드워킨은 권리를 정치적 으뜸패(trumps)로 표현하였는데, 권리들 중 특히 평등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권리를 강조한다. 이는 평등한 배려와 존중의 권리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진정한 공동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부담하고 또 요구할 수 있는 공동체적 의무와 권리가 성립되는 곳을 말한다.

 

 

좋은 국가와 배분기준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 

 

세상의 한 뼘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뜻한다. 이는 언제나 진보적이다. 이러한 진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는 평등에 대한 지향을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목표도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사람들로 인정되고 평등하게 배려 받고 존중받는데 있다. 평등한 배려는 악운에 대비하는 위험의 평등을 통해 실현 된다. 자원을 여건에 둔감하게 배분할 때 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가 좋은 국가이다.

 

또 그와 같은 배분 기준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로 인정받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 할 때, 정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비로소 효용성을 얻게 된다.



[참고] 2015 연말정산 대란 ,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탓


연말정산 대란의 씨앗은 2013년 특별공제 항목들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특별공제항목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겠다는 세법개정안은 발표 당시 전문가들의 호의적인 지지를 얻었다.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의 폐지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과세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고, 세액공제로의 전환으로 증가한 세금을 저소득층 지원에 전액 투입하여 소득재분배효과를 높일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중산층이상의 소득이 과세대상의 타깃이 되자, 중산층 샐러리맨들의 개정세법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다.

 

중산층은 가구소득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의 소득자를 지칭하는데, 당시 중위소득은 3750만원으로 150%5500만원까지가 중산층으로 분류되었다. 개정세법은 연봉 3450만원을 넘는 근로자 434만명(전체근로자의 28%)의 세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중산층이 증세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다음 날, “세법개정안은 근로소득자를 때려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분이 결과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봉 3450만원 이상 중산층 샐러리맨 434만명의 세부담이 늘게 되었다는 비판에 대해 조 수석은 참 죄송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나은 봉급생활자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 주기를 읍소드린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의 거위 깃털 발언은 납세자들의 불편한 심기를 악화시켰다. 그는 마치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 게 이번 세법 개정안의 정신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프랑스 국왕 루이14세 시절 재상이었던 콜베르가 과세의 기술이란 거위가 가능한 최소한으로 꽥꽥거리게 하면서 가능한 많은 양의 털을 뽑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납세자를 거위에 빗댄 과격한 이 표현은 사실 납세자의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세금을 최대한 거둔다는 뜻이었다. 과세당국의 과세기술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세부담 기준소득을 상향 조정하였다. 과세 대상을 연봉 3450만 근로소득자이상에서 5500만원초과 근로소득자들에게 세부담이 발생하도록 수정하였다. 이로인해 세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자는 당초 434만명(28%)에서 205만명(13%)수준으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러한 진통 끝에 세법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런데 2014년을 지나 2015년 연말정산 시즌에 여기저기서 연말정산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5500만원 이하의 근로소득자들에게도 세부담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돌려받았던 금액에 비해 훨씬 환급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연말정산 보완책으로 자녀세액공제 상향 조정, 출산입양세약공제 신설, 표준세액공제 인상, 연금저축 세액공제율 인상, 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등이 마련되었다.

 

여기에 고소득자에 해당되는 5500~7000만원 구간의 근로소득세액공제도 덩달아 3만원 인상되었다.

 

실제로 급여 5500만원 이하 납세자의 85%는 세부담이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정산 추가대책으로 638만명이 1인당 평균 7만원씩을 돌려받았다.

 

결국 세액공제로의 전환은 과세형평성에 부합하는 좋은 제도였으나, 증가한 세금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데 쓰인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여, 연말정산 대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곽노완(2015), “좋은 삶과 기본소득도시인문학 연구 vol.7.

염수균(2009), “로널드 드워킨에서 정치적 권리와 그 근거법과 사회 vol. 36

김동일 (2014), “분배정의론이란 무엇인가?” 법철학 연구 제17권 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