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노는 "패션은 예술이 아니고 사람이 예술이다."라고 역설한다. 패션을 장식과 사치가 아닌 자신의 개성과 당당함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인식 한 것이다. 그녀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며 옷으로 여성의 자존감을 높이는 노력에 힘썼다. 노라노는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한국최초의 패션쇼를 펼쳤으며, 1966년에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다.
노라노는 1950-60년대의 스타배우와 가수들의 의상을 도맡아 만들었다. 최은희, 엄앵란, 최지희,문희, 윤복희,펄시스터즈등이 그녀의 주된 고객이었다.'커피한잔'을 부른 펄시스터즈의 판타롱패션을스타일링한 노라노는 대중의 욕망을 읽어내고,그들과 호흡하고, 당당히 소비하도록 이끈대중들의리더였다. 배우엄앵란은 "감독은 연출하지만, 노라노선생은 영화 전체의상을 연출했다."면서 "그녀는 대중문화의 기수였다."라고 회고했다.
노라노가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것은 외환은행에서 상사로 모신 미국인 스미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누인노라노는 1928년 아홉남매 가운데 차녀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과거에 합격하여 영친왕의 영어교사였다. 아버지는 한국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의 개국공신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최초의 여성아나운서인 이옥경이다.노라노는 남편이 전장으로 떠난 후, 미군정청의 보건후생부의 여사무원으로 취직한다. 문제는 영문타이핑이었다. 흑인 군인으로부터 타자기를 하루 빌려, 종이 위에 자판을 그리고, 3개월동안 영문 타이핑연습을 한다. 남편과 이혼후 외환은행을 창립하기위해 온 스미스의 비서로 일한다.스미스가 그녀를 디자이너의 꿈을 실현시켜준 장본인이다. 스미스가 주말마다 연 파티에서 노라는 파티준비를 하고 통역을 한다. 그리고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격식에 맞는 옷을 손수 만들어 입는다.파티에 참석한 재무국장의 부인이 그녀가 만든 옷을 칭찬하게 되면서 노라노의 운명이 새롭게 열리게된다. 스미스가 패션디자이너로서 미국유학을떠날 수 있도록 추천서를 받아주고 미국 의류회사에서 일하도록 알선해준다. ㅇ
근로자의 기부금 세제혜택과 관련하여 2014년 대상 기부금 개정안이 현행방식보다 축소됨에 따라, 근로자들의 기부의지를 꺾게 된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기획재정부는 2014년 개인납세자중 근로자의 기부금 지출의 세제혜택을 소득공제방식에서 지출액의 15%(3,000만원 초과분은 30%)를 돌려주는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꾼 세법개정안을 확정하였다. 기부금수혜 공익법인과 여야 정치권은 이 개정안을 나눔 문화의 활성화 노력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개악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세법 개정안이 실제로 총 기부금 지출면에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초래할까? 그리고 사회후생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어느 정도이고, 그리고 관련 이해당사자, 즉 기부자의 향후 기부 의사결정에 끼치는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개정세법이 사회후생에 어떠한 효과가 나타날까?우선 기부금 개정 전과 후의 사회후생변동을 파악해보면 정부의 세법개정이 국민전체후생에 미치는 효과를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다. 세법개정을 고려한 합리적 근로소득자의 기부금 의사결정과정을 추적하여, 총기부금지출효과를 파악 할 수 있다.◆ 근로 소득자의 개정세법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 근로자 김기부사장의 자료는 다음과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