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동물국회’로 전락시키는 국회법 개정에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의 근본 취지는 법률 성안 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주의의 본령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신속처리 요건을 과반으로 완화할 경우, 거대여당은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모든 악법들을 강행처리할 것이 明若觀火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야당의 주장과 달리,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비판들이 강하게 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 법안이 미완성 법안이라는 것이다.
선진화법이 대화와 타협, 소수파 배려등으로 합의 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지만, 다수파와 소수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 입법교착(gridlock)이 발생하여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소수당이 선진화법을 무기로 기약없이 입법을 지연시키는 입법정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야가 상호 양보가 이루어 지지 못했을 때에 대비한 Plan B가 부재한 것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김인영)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의 강화는 타협과 합의를 실현하였으나, 동시에 쟁점 법안의 폐기 가능성도 높아졌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안건 신속처리제 △법사위에서 체계 자구심사가 지연되었을 경우 본회의에 자동부의 하는 제도 등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요건이 엄격하여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신속처리제도는 법안의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다음 단계로 법안을 자동 회부 또는 부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5찬성이 필요하여 신속처리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이다.
또한 상임위에서 법사위로 법안이 회부된 후, 법사위가 이유 없이 120일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 소관 상임위 위원장이 의장에게 해당 법안의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의장에게 부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 3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여, 이 제도도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화법은 사실상 입법교착이 발생하는 비효율이 두드러지는 미완성 법안이라는 것이다.
◆ 선진화된 국회에 대한 해석 차이
이처럼 여야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평가가 극명히 대립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의 국회 선진화에 대한 정의도 달라진 상황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 취지는 대립 대신 합의에 기초한 국회운영에 있었다. 직권상정에 의한 강행처리와 여야간의 몸싸움이라는 후진적 국회운영의 사슬을 끊고, 타협과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선진적 국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다수당은 입법교착과 입법지연이 없는 상태를 선진화된 국회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 소수당은 속도보다 합의제적 요소의 강화를 선진 국회로 보고 있다. (전진영)
즉 다수당은 높은 효율성과 생산성이 담보된 의사결정의 결과를 강조한 반면, 야당은 대화와 타협이 중시되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국정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여당의 입장과 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중시되는 야당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야가 정체성과 관련된 법안을 제기한 경우, 여야간 선진화에 대한 정의는 극명하게 부각된다.
최근 여야 간 핵심 쟁점인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은 여야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어, 신속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여당이 입법교착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국회 선진화는 곧 생산성이란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대해, 야당은 방어적인 입장에서 합의의 과정이 선진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 합의민주주의의 모습
그렇다면 여야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이상적인 합의민주주의는 어떠한 모습일까? 이는 입법의사결정과정에서의 비용을 극소화하는 것이다. (김행범)
입법의사결정에는 두 가지 비용이 있다. 즉 의사결정비용과 외부비용이 그것이다.
먼저 의사결정비용이란 다수파가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말한다.
이는 다른 투표자를 설득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동의를 받아야 할 사람 수와 흥정비용이 포함된다. 따라서 국회 선진화법의 가중다수결 규정으로 의사결정도출이 힘들어 질 경우, 다수파의 의사결정 비용은 증가한다.
반면 입법과정에서의 외부비용은 소수파가 부담하는 비용이다. 다수파가 발의한 법안의 통과로 소수파가 입을 수 있는 피해로, 외부불경제 비용을 말한다. (기자 주: 마치 강 근처의 공장이 오염 물질을 강으로 흘려보내면 강 하류의 양식장이 피해를 입듯이, 다수파의 법안으로 소수파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외부 불경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비용은 가중다수결등 의사결정규칙이 까다로워지면 줄어들게 된다. 소수파에 불리한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과정에서의 합의로, 소수파는 대가를 얻거나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사결정의 비용과 외부비용의 예는 노동법개정 논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국회 선진화법으로 노동법 개정이 원활히 이루어 지지 못하자 노동 4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하도록 촉구하는 ‘민생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도 의사결정비용이 높아지는 예가 될 수 있다.
반면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의 비용은 감소될 수 있으나 파견근로자법 개정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근로 불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소수파의 외부비용은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입법과정에서 최적의 의사결정규칙은 다수파가 부담하는 비용(의사결정비용)과 소수파의 비용(외부비용)의 합이 최소화되는 지점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합의민주주의의 실현은 다수파와 소수파의 비용을 모두 고려하여,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Lovely 국회’를 위하여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치문화가 국회선진화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회선진화제도가 정치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일부 전문가들은 입법지연이나 입법교착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협의주의라는 국회운영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한다.(전진영)
민주화 이후 국회법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의사결정 원칙은 ‘원내교섭 단체 대표의원간의 협의’인데, 우리 국회의 대립적 정치문화로 인해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틀 안에 대립과 갈등의 요소를 끼워 맞추다보니, 결국 틀 안에서 내용이 뒤엉켜 움직이지 못하는 정체 상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치의 극단적 대결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선진화법등의 제도도입이 의회 선진화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대결의 정치 문화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도입된다고 합의정신에 근거한 선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인영)
일각에서는 정치의 대결문화는 국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유년기부터 습득되는 살인적인 경쟁과 대립이 우리 사회전체의 특징이 된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문화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에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립 국회는 바로 사회가 대립이라는 말과 등치라 할 수 있어, 결국 국회를 욕하는 것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욕하는 것이 된다.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제도결정론이다. 제도가 선진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김인영)
선진화된 제도가 대결의 정치문화를 타협의 정치문화로 바꿀 것이고, 이는 선진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선진화법은 제도의 변화가 얼마만큼 인간행동의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실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김인영)
결국 현재의 선진화법의 부작용만 보고 선진화법의 실패를 단정할 수 없으며, 몸싸움 방지의 성공만 보고 선진화법의 제도적 성공을 속단하기에도 이르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선진화법이 적용된 지 오래 되지 않았으므로, 좀 더 오랜 기간의 사례수집과 객관적 관찰로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선진화법으로 비롯된 국회의 대립구도를 국회만의 문제로 축소시킬 수 없다. 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어린 시절 부터 시작되는 숨 막히는 경쟁과 대립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국회선진화도 요원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중장기의 사회적 과제 뿐만 아니라, 제도가 문화를 변경 치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가능성도 열어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제도가 무익 무용하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주장보다, 이 법이 담고있는 합의주의의 취지를 살리면서 제도를 시행한다면 결국 우리의 태도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이론도 여기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장단기 노력과 인내가 기울어진다면, 소수파와 다수파간의 첨예한 대결대신 각자 조금씩 양보하여 최소의 비용을 실현하는 합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두가 어깨동무하며 나아가는 ‘Lovely 국회’의 실현은 단지 신기루만은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전진영(2015),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를 선진화시켰는가?’, 현대정치연구 2015 봄호
김인영(2015), ‘국회선진화법 찬반 논의의 이론적 함의와 비판적 고찰’,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7집 1호
김행범(2014),‘의사결정 규칙에 관한 공공선택론적 연구: 개정 국회법을 중심으로’, 제도와 경제 제8권 1호
이상신(2015), ‘국회선진화법과 입법교착’, 미래정치연구 2015 제5권 제1호
이상우(2015),‘국회 입법교착의 원인에 대한 탐구’, 대한정치학회보 23집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