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9 (금)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 허구의 공동체 ]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체 주장의 허구성 <정치사상사>

- 보수진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헤게모니 싸움만 - 시민은 생활에 매몰되어 극좌파의 광기에 침묵으로 동조

◆ 공동체의 대척점, 전체주의 아렌트에게 공동체란, 인간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개인들이 상호작용하여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 그런데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의 핵심요소인 복수성과 상호작용이 박탈된 체제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신념으로 인간의 고유성을 억압하고 허구적 단일성을 강요하여 공동세계를 왜곡하는 체제가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 체제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을 이용하여 피상적인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복수성(plurality)과 상호작용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허구적입니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는 외로운 자들에게 공동체라는 거짓을 주입하여 이들을 허구의 공동체로 묶은 다음, 이들을 다름(고유성)이 박탈된 단일의 이데올로기에 복속시키는 체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렌트는 「전체주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선전(totalitarian propaganda)은 고립된 개인들에게 ‘상상력을 통해 뿌리 뽑힌 대중이 집처럼 느낄 수 있는 거짓의 일관된 세계’ (a lying world of consistency which is more adequate to the needs of the human mind than reality itself, in which, through sheer imagination, uprooted masses can feel at home.)를 제공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음모론적 질서, 허구적 적, 일관된 논리를 제공하며, 외로운 개인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과 무의미함을 해소해주는 심리적 안식처가 됩니다. 이처럼 전체주의는 외로운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를 ‘허구적 일관성’과 ‘순전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공동체(아렌트는 직접 허구적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를 통해 충족시켜 줍니다. 결국 전체주의는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을 이용하여 피상적인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복수성(plurality)과 상호작용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거짓의 세계’ 또는 허구의 공동체로 정식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허구의 공동체 전체주의와 허구의 공동체는 ‘상상된 공동체’의 개념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전체주의가 외로운 개인의 소속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허구적 일관성’과 ‘상상’을 바탕으로 허구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구적 공동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전체주의 선전과 조직은 개인이 그 안에 속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개인은 실질적 연대가 아닌, 상상 속의 소속감을 얻고, 현실의 고립감을 해소하려 합니다. 이처럼 전체주의는 기존의 가족, 이웃, 지역사회 등 실제 공동체를 해체하고, 대신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에 기반한 허구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실제 인간관계가 아닌, “우리 vs. 적”이라는 인위적 구분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허구적 공동체는 ‘적’을 배제하는 ‘우리’만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허구의 공동체는 선전과 이데올로기로 유지되는 상상적 연대의 장치이며, 이를 통해 체제에 대한 충성심과 집단적 행동을 이끌어 냅니다. ◆ 전체주의의 ‘허구적 세계’의 특징 정리하자면, 전체주의가 제공하는 허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닙니다. 우선 이데올로기적 통합입니다. 전체주의는 단일한 이데올로기(예: 나치즘의 인종주의)를 통해 모든 개인을 동일한 목표로 묶습니다. 이는 복수성을 부정하고, 다양한 관점과 고유성을 억압합니다. 둘째는 허구적 형제애입니다. 전체주의는 개인에게 ‘우리’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며, 고립된 개인에게 소속감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나치당은 ‘아리아인 공동체’라는 허구적 이상을 내세워 외로운 대중을 끌어들였습니다. 셋째는 공포와 선전입니다. 전체주의는 공포(감시, 처벌)와 선전을 통해 개인을 체제에 복속시키며, 허구적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강요합니다. 이는 개인의 독립적 판단과 사유를 차단합니다. 넷째는 외로움의 활용입니다. 외로운 개인은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전체주의가 제공하는 소속감에 쉽게 현혹됩니다. 이는 개인이 체제의 일원으로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끼게 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자유와 고유성을 말살합니다. 이처럼 전체주의는 외로운 개인의 소속감에 대한 갈망을 이용하여 허구적 세계, 또는 허구적 공동체를 제공합니다. 현대의 포퓰리즘적 전체주의는 외로운 대중에게 ‘국민’, ‘우리’, ‘공동체’라는 허구적 공동체를 제시하지만, 개인의 복수성을 부정하고 단일한 이데올로기로 모든 개인을 묶습니다. 이는 진정한 공공영역과 복수성에 기반한 공동체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적 통합을 주장하여 외로운 이를 자기 편으로 포섭합니다. ◆ 허구적 공동체와 한국의 정치 허구적 공동체의 개념은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적용되는 논리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로 통합을 제시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후보는 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통합’을 14회나 언급할 만큼, 통합은 더불어민주당 선거캠페인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였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통합’ 담론은 외로운 유권자들에게 허구적 공동체 감각을 부여하는 상징적 장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통합의 원래 개념은 개인이 고유성(다름)을 드러내면서 타자와 진정한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공적 영역의 회복과 유지인데,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통합은 유권자를 자신의 편으로 묶기 위한 선거용 선전 프레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는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보편주의 담론과 공동체성의 괴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의 보편주의적 복지 담론은 모든 구성원에게 획일적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이 쉼 없이 주장하는 25만원 민생지원금 정책은 모든 국민들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민생지원금의 특징은 취약계층과 하층 노동자들의 이익을 두텁게 보호하여 공동체 구성원 간의 조화를 유지하기는 커녕, 노조 소속의 최상층 노동자들의 이익에 편승하는 선거용 포퓰리즘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의 보편적 민생지원금은 경제 상식으로 보아도 납득하기 힘든 정책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지원금을 집중하는 것이 고소득층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보다 유효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더 효과적입니다. 고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아 이전지출금액을 저축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보편적 민생지원금 정책은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단정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 정책이 국가와 국민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정책이라기 보다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노조 소속 상층 노동자들의 표를 구걸하기 위한 정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통합의 공동체란 이념적 동질성에 기초한 공동체, 우리편 만의 폐쇄된 공동체, 상상의 형제애를 주입시키는 허구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우리’의 이념에 반대하는 ‘적’을 향해 울타리를 친 폐쇄된 공동체인 것입니다. ◆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체 주장의 허구성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체 주장이 허구적이라는 점은 여러사례에서 발견됩니다. 공동체 구축의 필요조건은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세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상호작용 대신 상대방, 곧 자신들의 공동체 밖의 ‘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폭력적인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시기에 공직자 줄탄핵, 지속적인 대통령 퇴진 요구등의 폭력을 행사하여 궁극적으로 윤대통령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같은 폭력성이 DNA로 체화되어 있는 것처럼, 이 당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무죄판결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한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습니다. 이같은 더불어민주당의 상식밖의 행태는 이재명사법리스크 재점화에 대한 반발로 읽혀집니다. 그런데 파기환송과 국가의 생존이 걸린 미국과의 통상협의를 진두지휘하는 경제부총리의 탄핵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경제부총리 탄핵이라는 폭력을 행사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과 구축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꺾는 행위이며, 또 다른 입법권력의 사유화이자 전용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더불어 민주당이 ‘퓌러’ 신변보호법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7일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대통령(당선인)에 대한 형사재판 중단’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정안은 헌법제84조 ‘대통령 불소추특권’적용 범위를 재판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자가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그의 재판은 중단됩니다. 게다가 개정안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당선인 신분에도 재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결국 ‘퓌러 재명’ 신변보호법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농단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민주’를 당명으로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이, 정작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은 쓰레기처럼 내던지고, ‘퓌러 JM’만을 섬기는 전체주의 정당임을 스스로 자인한 폭로들입니다. 이처럼 극좌파 ‘JM친위대’ 들이 저지른 반국가 행위들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력 사유화이자, 공공성을 파괴한 정치적 타락의 전형인 것입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의 ‘민주’라는 명칭은 조롱과 반어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결론적으로, 더불어당의 일련의 반국가행위는 그들이 말하는 ‘통합’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인가를 폭로합니다. 그들의 본질이 다름을 억압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폐쇄된 전체주의적 공동체임을 드러내 것입니다. 비명계 축출, 카톡 검열 논란, 노란봉투법 입법화 시도, ‘적국→외국 간첩죄 확대 법안’반대등- 반국가적 반국민적 행위들은 극좌 세력이 ‘민주’의 이름 아래 벌이고 있는 체제 파괴의 실체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법치, 상식, 자유, 민주는 기만과 위선의 덫 속에서 서서히 질식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통합’은 그들 입에서 나온 순간 이미 거짓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숨통은 이렇게 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진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당권 싸움에 몰두하고 있고, 시민들조차 각자의 삶에 매몰되어 극좌파의 광기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Before mass leaders seize the power to fit reality to their lies, their propaganda is marked by its extreme contempt for facts as such, for in their opinion fact depends entirely on the power of man who can fabricate it.” (아렌트 「전체주의 기원」에서)


[ 아렌트의 공동체 이해 ] 아렌트가 말하는 공동체의 의미 <정치사상사>

한나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은 단순한 사회적 집단을 넘어,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공동세계를 유지하고 형성하는 역동적이고 정치적인 실체를 의미합니다.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을 핵심 요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복수성 (Plurality/Distinction) ①복수성이란? 공동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각 복수성(고유성)을 존중하여 소통하면서 형성됩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복수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소통하며 형성됩니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복수성(Plurality)에서 '복수'(複數)는 단순히 '인간들'(human beings)의 의미를 넘어 인간조건의 복수성을 가리킵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들은 다름과 동등성이라는 두가지 인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복수’의 인간들은 대체 불가능한 개별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름을 드러냅니다. 즉 인간들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unique individuals)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복수'의 인간들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동등(equal)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함께 행위할 수 있는 동등한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동등성은 협치의 전제가 됩니다. 결국 아렌트의 '복수성'에서 '복수'란, 사람들이 동등하면서도 '다수의 고유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간 조건을 의미합니다. ②‘같으면서 다르다’의 정치철학 이처럼 아렌트의 복수성(plurality)은 단순히 “여럿이 있다”는 양적 의미를 넘어서, "같으면서 다르다"는 인간 조건의 본질적인 이중성을 담고 있습니다. ‘같으면서 다르다’의 정치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같음(equality)’이란 인간이라는 종(species)의 동등성을 말합니다. 여기서인간이 같다는 의미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 그리고 정치적 참여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같음’은 아렌트가 말하는 공적 공간에서의 대화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로써, 정치의 필요조건입니다. 만약 대화의 일방이 보다 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대화는 일방의 생각이 강요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대화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다름(distinction)’이란 각자의 고유성과 유일무이함을 말합니다. 인간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가 각각의 관점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아렌트에게 있어 '다름'은 정치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동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사람들이 ‘말과 행동’으로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드러내고 이러한 관점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는 원래 개별인간들이 충돌하는 관점들의 집합체이지만, 상호 조정을 통해 共同體로 거듭나게 됩니다. 결국 복수성은 ‘같으면서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두 인간이면서 누구나 같은 인간은 없다는 인간조건을 의미합니다. ◆공적 영역 (Public Realm)에서의 말과 행동 이러한 복수성이 실현되는 공간은 사이공간(space in-between), 즉 공적영역(public realm)입니다. 여기서 공적영역이란 공개성과 공통성을 속성으로 하여,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공통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을 말합니다. 즉 개인은 사람들이 모여 말하고 행동하며 공동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공적영역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타인에게 드러내며 타인의 시선과 반응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받습니다. 이처럼 복수성은 인간들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인식됩니다. 결국 공적 영역은 공동체라는 ‘공연’ 및 ‘관계’를 탄생하게 하는 필수적 ‘무대’를 말합니다. ◆공동 세계 (Common World)의 구축과 유지 공동 세계란 개별자들의 주관적 관점이 모여 형성하는 객관적이고 공유된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공적영역의 속성인 공통성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 즉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 세계를 매개로 연결되고 소통되는데, 공동세계는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이처럼 공동체는 공적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 세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며,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 충돌을 조정을 통해 공동체 형성 공적 영역에서 고유성을 가진 개인들의 상호작용은 필연적으로 충돌과 갈등을 초래하지만, 이는 공동체의 역동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구축 유지되기 위해선 충돌을 폭력적으로 억누르지 않고 조정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 아렌트의 공동체 요약 정리하면, 아렌트의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우선 정체성의 관점에서, 공동체는 미리 주어진 동질적 집합체가 아니라, 고유성(다름)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및 정치적 실체를 의미합니다. 과정의 관점에서, 공동체는 충돌과 조정을 통해 역동적으로 구축되고 재창조되는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 목적과 관련하여, 공동체는 공동 세계를 통해 개인의 고유성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자유를 실현하는 관계망입니다. 결국 아렌트에게 공동체란, 인간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개인들이 상호작용하여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

[ 아렌트의 공동체성 강화 ] 취약계층에게 정부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이유 <정치사상사>

취약계층에게 정부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렌트의 견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공동체는 개인들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관계망입니다. 그런데 공동체 구축, 유지, 활력을 위해선 모든 개인이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개인이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렌트의 관점입니다. 빈곤한 사람은 생존을 위한 '필요'의 영역에 묶여 정치적 삶에 참여하고 자신의 복수성을 드러낼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다양한 개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성의 회복,구축,유지,활력을 위해선 저소득층에게 정부 이전지출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부이전지출은 오히려 취약계층이 공적영역으로 진입하는데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즉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지원을 집중하여 이들이 생존의 필요에서 벗어나 공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빈곤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공동체 내의 다름을 발현시키고 정치적 논의를 풍성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보편주의적 접근은 모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공동체성을 강화하는데는 전혀 유익하지 않습니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본질은 동질성이 아닌 다름 속에서의 상호작용과 조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보편주의 담론과 공동체 구축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공동체 구축과 활력을 위해서는 보편주의 담론을 포기하고 선별주의 복지, 곧 ‘약자와의 동행’이 필수적인데, 약자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이 보편주의 담론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체 구축 주장은 허구적 공동체 주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성격 ] 물적 분할 문제의 보완 필요 ◆ 물적분할 ① 물적분할의 성격 = 현물출자 물적분할은 기존기업의 자산 부채를 신설기업에게 포괄 이전하고 신설기업은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100%를 기존기업에게 이전하는 분할을 말합니다. 물적분할의 성격은 현물출자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A사는 전자 사업부와 건설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사는 물적분할하여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신설기업인 B사에 이전하고, B는 A에게 신주100%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적분할로 인해, A기업의 사업구성은 분할이전의 ‘전자사업부 + 건설 사업부’에서 분할 이후의 ‘전자사업부 + B의 주식’으로 변경됩니다. 이를 분할회계처리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주주 A사: (차) 종속기업 주식 ×× (대) 건설사업부 순자산 ××, 처분익×× 종속회사 B사: (차) 건설 순자산(공정가액) ×× (대) 자본×× 위의 회계처리처럼, A사는 신설기업B에게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이전하고 그 대가로 B주식을 인수하였습니다. B는 A로부터 건설자산을 이전받고 A에게 B주식을 발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적분할은 현물출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② 물적분할 성격 = 매각거래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는 분할을 매각거래로, 신설회사는 분할회사로부터

[ 감세와 고율관세정책 간의 모순 ] ‘트럼프 2기에 고율 관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고관세의 조합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에 발효된 일몰법인 TCJA(감세와 일자리 법 :Tax Cuts and Jobs Act)를 연장 또는 영구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TCJA에 더하여, 추가 세금 인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촉발되는 재정적자는 고율관세로 메울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고율관세는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줄것으로 예상됩니다. ◆ 거침 없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감세를 정책 노선으로 삼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장애물 없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있는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입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선, 동일한 법안이 상원 및 하원에서 각각 통과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관련 위원회(소위원회의 심사와 청문회, 상임위에서 수정과 표결)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원으로 전달됩니다. 상원의 관련 위원회를 거친 후 본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PHOTO



말씀QT

더보기
< 내적 치유의 적용 > [ 말씀 QT ] 성령의 도움으로 마귀를 마음에서 축출하며 “어릴 때 몸이 약했던 청년은 약한 몸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시절 친구와 학교 과제물을 만들 때, 친구는 너무 잘하는데 자신은 과제물을 완성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 스스로가 바보같고 무능하다는 느낌을 심하게 가졌다. 대학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있자, 그는 ‘나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인가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품게 되었다. ” (김홍애) 이러한 사례처럼, 우리는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등으로 인해 수 많은 상처들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거부당함, 자기 연민, 우울, 죄의식, 공포, 슬픔, 열등감, 무가치함등 상한 마음의 올무에 걸리게 되어 그 상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상처받은 마음의 틈새에 사탄이 살며시 스며들어와 그 상처를 더욱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질 경우, 신자일지라도 고장난 턴테이블의 바늘처럼, 무한반복으로 공회전하며 그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즉 수치스러운 상처를 방치하며 더 이상 낫기를 원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때 마귀는 어느새 우리의 내면을 조종하는 운전자가 되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