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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경과 자강불식 ] 리더의 조건은 ‘自强不息 厚德載物’

[ 차경과 자강불식 ] 리더의 조건은 ‘自强不息 厚德載物’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의 하나로,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흡수하는 차경이 꼽히고 있습니다. 차경은 실내의 문, 창, 또는 누마루등을 통해 자연의 풍광을 프레임화하여 실내에 자연을 담는 기법입니다. 차경은 실내에 거주하는 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기도 하며, 좌절된 자아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실내로 담아내고자 한 이유는 자연의 질서와 이치를 4계절 관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누정이 주는 자연의 메시지 차경은 내부자와 외부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여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을 내부자에게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은 간접적으로 누정에 대한 기록인 누정기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樓亭은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로, 정자·정각·누대·누각등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돌이나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운 것을 樓라하고 그 규모가 작은 것을 亭이라고 합니다. 누정기는 누각이나 정자등 누정을 신축하거나 개수할 때 그곳을 방문한 선비들이 누정에 대해 지은 산문을 말합니다) 누정은 인간이 자연과 상호교통하여 자연의 도를 깨닫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이러한 누정의 의미가 집안으로 흡수된 건축 요소가 누마루입니다. 즉 누마루는 인간이 자연을 가까이 하여 자연 속에서 도를 구하기 위해 세워진 누정의 효과를 실내에서 얻고자 한 건축양식입니다. 따라서 선비들이 누정에 대해 쓴 누정기는 누마루에서 얻고자 한 자연의 원리와 질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제공합니다. ◆자연의 질서, 자연의 불변성 vs 자연의 가변성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누정기 중, 자연의 불변성과 무진성를 강조한 주장에 대해 이를 뒤엎고 자연의 가변성을 주장하는 관점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전자가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인 蘇軾의 관점입니다. 소식은 ‘赤壁賦’에서 “변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천지도 일찍이 한 순간도 변치 않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사물과 우리 인간 모두가 다하지 않는(무진) 존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선조와 광해군시대 문장가이며 외교가로 이름을 떨친 ‘어우야담’의 저자 柳夢寅(1559~1623)은 「어우집」 ‘無盡亭記’에서 소식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지금 松巖公이 늘그막에 세 칸짜리 작은 정자를 얽어 無盡이라고 편액을 하였으니, 그 뜻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만물 가운데 더 없이 장구한 것이 바다와 산이지만 동해가 뽕밭이 되고 태산도 숫돌이 되어 일찍이 한 순간(一瞬)도 변치 않을 수 없다. 그런데 蘇軾은 하나의 儒者이다. 감히 하늘의 사물을 탐내어 강 위와 산 사이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다함이 없는 보고로 여겼으니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이처럼 유몽인은 오히려 無盡에 대비되는 一瞬의 관점에 서서, 청풍명월의 불변성과 무진성을 주장한 소식의 관점을 뒤엎고 있습니다. 청풍명물도 불변 무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 자연의 이치, 自强不息 유몽인은 쉼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는 自强不息의 개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음양이 성하고 쇠하는 이치상 끊임없이 변화하고 낳아 길러서 일찍이 잠시도 멈추지 않으니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自强不息함이 마땅하다. 천리에 있어서 자강불식함이 천리를 어기지 않는 것이 되나니....” 이 문장에서 자강불식은 <역경>의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역경’은 점과 관련된 책으로 평가될 수 있는데, 점과 무관하게 유교의 정신사상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한 원리를 설명한 책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서 스스로 강건하여 멈추지 않는다.”“Heaven acts with vitality and persistence. In correspondence with this, the superior person keeps himself vital without ceasing.”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天行健, 즉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다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 태만하지 않고 쉬거나 그친 적이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우주만물은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겁니다. 또한 ‘君子以’에서, ‘以’는 ‘하늘의 강건한 운행을 따라’, ‘그에 대응하여’, 또는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등으로 해석됩니다. ‘自强不息’은 스스로 쉬지 않고 힘쓰고 노력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에서 强은 ‘스스로 강해지다’라는 뜻의 물리적인 ‘강’을 의미하지 않고, 힘쓸 ‘勉’과 같은 뜻을 가지는 말입니다. 결국 ‘군자이 자강불식’은 인간이 하늘의 운행을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여 쉬지 않고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 군자의 수행의 목표 군자가 하늘의 운행처럼 고정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면 쉼 없이 배우고 힘써야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선 군자가 변화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修養한다는 의미로, 과거 고정된 자아를 깨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도록 쉬지 않고 자아를 수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자아는, 유교의 관점에 따르면, 仁 禮 義 智의 四德을 몸에 익힌 자아를 말합니다. 여기서 四德의 仁이란 사랑을 뜻하며, 禮의 근간입니다. 義는 사리 분별하는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智의 기초입니다. 결국 군자는 사덕을 자아에 담아내도록, 쉬지 않고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대자연의 순환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함없이 굳건한 것처럼, 군자도 인예의지로 무장된 자아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 治人, 君子以厚德載物 그런데 군자가 수양에 힘쓴다 해도 修身에만 그치는 자는 군자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수양은 실천으로 이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군자는 도덕적 수양을 현실에 실현시키는 자를 의미합니다. ‘君子以自强不息’에 조응하여, ‘君子以厚德載物’이란 말이 나오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 구절은 治人을 강조하는 것으로,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실어준다” “the superior person enriches her virtue to sustain all beings.”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군자는 수신 후 치인으로 덕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예의지로 새롭게 거듭난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생육성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 자연이 품고 있는 이념, ‘自强不息 厚德載物’ 주지하다시피 ‘自强不息 厚德載物’은 중국 인재의 산실인 淸華大學의 校訓입니다. 이 校訓은 소중한 敎訓을 품고 있습니다. 이 교훈은 장래의 리더로 성장하게 될 학생들은 학문을 배우고 세상을 다스리기 이전에, 쉼 없는 修身을 통해 두터운 덕을 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치인의 선행조건은 수신이라는 겁니다. 이 교훈을 본받는다면, 세상에서 사람의 욕구를 채워주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자들은, 세상의 일을 담당하기 전에 수신하여 덕을 두텁게 쌓아올려야 합니다. 빵만 던져준다고 치인을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연은 쉼 없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관찰한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행위보다 앞서 인예의지의 덕을 우선 쌓아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즉 과거의 자아가 사랑, 사랑에 기반 한 예의, 의로움, 의로움에 근거한 지혜를 담은 자아로 새롭게 변화해 갈 때, 비로소 분별력 있는 지혜가 길러집니다. 나아가 이러한 지혜에 힘입어 만물을 싣는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담 너머 자연의 풍광을 차경을 통해 실내로 담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한국 정치의 목표, ‘復’, 쉼 없는 자강불식의 수신의 단계를 무시하고, 소위 ‘세상의 변화’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는 교만은 편협한 사고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으로,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습니다. 그 실례가 영락한 한국 좌파진영의 일단의 모습입니다. 젊은 시절 전두환 독재타도를 외치며 공동체 구성원에게 자유를 안겨주겠다는 명분을 내건 좌파 성향의 일부 리더들이 현재에 이르러 개인비리로 사법 처리되어 몰락하는 모습들은 수신 없는 치인은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사실 당시의 독재타도도 순수성을 결여한 행동으로 평가됩니다. 운동의 일부 리더들이 내건 민주주의의 회복의 슬로건은 생산 수단을 국유화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목표로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당시 일각에서의 독재와의 싸움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기 위한 싸움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진 겁니다.) 즉 인예의지를 수양하지 않은 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는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대신 세상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행한다는 명분도 실상 개인의 명예와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 자신이 속해 있는 정파의 이익을 실현시키는 도구,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내부의 안녕만을 바라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수신이 부재한 치인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치인의 실패로 발생한 국가 내 분열과 정파적 이익에 충실한 정책의 추구로 인한 손실을 국민 모두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좌파 진영의 정책들이 그랬습니다. 좌파 진영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검찰개혁의 시도, 소득주도성장정책, 실험된 부동산정책등으로 인해, 국가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성장의 잠재력은 고갈되었으며 국민이 감당해야 할 주거의 고통은 심화되었습니다. 국가 공동체에 깊이 새겨진 이러한 상처들은 좌파진영의 덕을 쌓기 위한 수신의 부재에 기인합니다. 그러함에도 현재의 좌파진영은 노조에 기반을 둔 노동자의 이익 실현에 이바지하는 전위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좌파가 진보로 거듭나기 위한 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노조와 절연하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좌파진영의 닫힌 공동체에는 단일대오를 추구하는 명령만이 허용될 뿐, 구성원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한 공동체의 변증법적 발전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곳이 민주주의가 사라진 숨 막히는 공간이 된 이유입니다. (이러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전직 여성의원이 있다고 하는데, 그의 이러한 행위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무얼 위해 정치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治人은 폐쇄된 소규모 공동체에서 벗어나 열린 공동체를 추구하여, 소규모 공동체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화의 선행조건은 자아의 덕을 쌓는 것, 즉 수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치의 급선무는 덕을 쌓는 수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2024 총선의 해, 정치가 추구할 슬로건은 다음의 한마디로 축약됩니다. ‘復’,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수신으로 돌아가는 것, 인예의지의 덕성을 쌓는 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2024년에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입니다. #차경 #누정 #자강불식 후덕재물


[ 차경의 이해 ] 차경의 정의, 목표, 원리

[ 차경의 이해 ] 차경의 정의, 목표, 원리

◆ 차경의 정의와 차경의 목표 차경(借景)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으로, 건축물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실내의 내부자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건축 기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차경은 창, 문, 누마루등을 이용해 달성됩니다. 차경은 ‘산을 빌리고 물을 빌리고 구름을 빌리고 꽃이 필 때는 꽃을 빌리고 눈이 올 때는 눈을 빌린다’는 단순한 아름다운 경관의 이용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차경을 통해, 담이 단절시킨 폐쇄성에 갇혀있는 내부자들이 자연의 환경을 내부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독단성을 극복하고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한옥은 살기위한 집이 아닌 자연과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차경의 원리, 분류 借景은 영어로 ‘borrowed view’ 또는 ‘view borrowing’으로 번역되는데, 풀어쓰면 ‘making use of natural scenery’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차경의 원리는 3차원의 공간에서 2차원의 경관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는 풍경의 일부분을 프레임 형태로 담는 방식에 의해 가능합니다. 즉 사진의 프레임처럼 실내공간에서 외부로 열린 창이나 문을 통해 외부 경관을 바라보게 되면, 2차원의 장면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차경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공간의 거리에 따라 원차· 인차로, 공간의 위치에 따라 앙차· 부차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즉 遠借란 먼 곳의 경관을 차경하는 것, 隣借란 가까운 곳의 경관을 차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仰借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등 높은 곳의 경관을 차경하는 것, 俯借란 연못의 물고기를 감상하는 등 낮은 곳의 경관을 차경하는 것을 합니다. 시간에 따른 차경에는 應時而借가 있습니다. 이는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른 경관의 변화를 감상하는 차경을 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등 계절의 변화나 일출과 일몰등 일상의 변화를 차경하는 것으로, 일상적 순간적 변화에 집중하는 차경을 의미합니다. 응시이차는 자연의 원리를 관찰하는데 도움을 주는 차경입니다. <참고문헌>오영근, “차경기법을 통한 전통공간에서의 감성특성 연구” #차경 #응시이차

< 1907, 평양 대부흥운동 > [ 말씀 QT ]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 (겔11:19)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후, 환경적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신앙적 나태함등으로 인해 하나님과 소원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공동체는 다양한 위기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침체상황에서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신앙공동체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선 영적 부흥이 요구됩니다. 復興은 다시 흥한다는 말로, 영어로 revival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revival은 라틴어 re(다시)와 vivere(산다)로부터 온 말로, 다시 산다는 뜻입니다. 또한 부흥은, 19세기 미국부흥운동의 주역인 찰스 피니에 의하면, ‘하나님을 향한 죄인들의 각성과 회심을 낳는 그리스도인의 첫 사랑의 회복’이란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부흥은 영적으로 침체되어있는 삶과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의 회복이며 하나님을 향해 다시 가까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흥을 가능하게 할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시선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향하게 됩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지금도 신자와 신앙공동체의 영적 부흥의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의 겨울 남자 査經會(성경공부 및 기도모임)에 참석한 성도들의 회개와 성령의 불길이 평양전역으로 옮아갔고, 이는 다시 한국전역의 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영적부흥에 대한 실마리는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위기에 대응하는 운동 △기도 운동 △회개 운동 △말씀 운동 △공동체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운동 평양대부흥운동은 백성들이 국가적 위기 상황이 초래한 고통에 대응한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위기상황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찾게 하는 토양이 된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은 근대 한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한국은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었습니다. 동학란, 1894~1895년의 청일전쟁, 명성황후 시해사건, 그리고 1895년에 발생한 콜레라는 한국인들에게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청일전쟁의 결정적인 전투지였던 평양은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또한 1904년 2월 제물포항에서 시작된 러일전쟁으로 인해 한반도 전체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졌습니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은 후, 한국은 사실상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한국의 시대적 위기는 평안도 지역의 백성들이 절망 속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문을 두드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기도 운동 평양 대부흥 운동은 기도 운동이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뿌리는 원산부흥운동입니다. 그런데 원산부흥운동의 불씨는 여선교사들의 기도모임에서 나왔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남 감리교의 화이트(Mary Culler White) 여선교사와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송한 매컬리(Louise Hoard McCully) 여선교사가 이끈 기도모임이 원산부흥운동의 모판이 된 겁니다. 하나님은 이들 여선교사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 기도의 응답으로 원산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 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이 사경회에서 성경말씀을 가르쳤는데, 그는 자신의 교만과 성령 충만하지 못함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영적 회심이 원산사람들의 회개를 이끈 불씨가 되었습니다. 하디의 자복이 원산부흥운동에 불을 붙인 겁니다. 이후 원산부흥운동의 불길은 1907년 1월의 평양 장대현교회에서의 사경회 기간 중에 일어나 평양 전역에 확산된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옮아 붙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선교사들의 기도모임이 하디 선교사의 자복을 통해 원산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으며, 다시 원산부흥운동이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가 된 겁니다. 이처럼 영적부흥운동은 말씀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는 말씀처럼,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만사를 변화시켜 주시고 영적부흥을 일으켜 주십니다. ◆ 회개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한마디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부흥의 정의가 죄인의 각성과 회심에 의한 결과라는 것과 부합됩니다. 장대현 교회에서의 부흥의 현장을 목격한 방위량 선교사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사경회에 참석한 이들 모두에게 임했으며, 하나님은 평양 시내가 떠나갈 듯한 회개의 기도 소리와 함께 임하셨다고 회고합니다. 또한 그 현장을 지켜 본 그레함 리 선교사는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러져 자기가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 속에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그 현장에 있었던 스왈온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마치 이제까지 자신이 범한 그 극악한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힘에 압도된 것처럼, 건장하고 양식있는 사람이 견딜 수 없이 통회하며 몸부림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사기, 공금횡령, 그리고 실제적인 도둑질을 고백했다.” 여기서 회개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로 번역되는데, 그 원어적 의미는 행위나 삶의 태도에 변화를 인도하는 사고의 변화를 말합니다. 여기서 변화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우선 변화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훼방하는 것들로부터 강하게 돌아섬’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부터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변화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포용하는 마음과 결단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과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의 길로 나서는 것이 사고의 변화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는 마음, 또한 개인의 행복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말씀 운동 평양 대부흥운동은 말씀운동이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의 발단은 1907년 1월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章臺峴 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사경회(the winter Bible Training class for men)였습니다. 사경회는 보통 1월에 1주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정해서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는 집회였습니다. 최초의 사경회는 1890년 6월에 새무얼 마펫이 일곱 명의 사역자를 위한 훈련반을 모아서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사경회는 선교사들의 한국선교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사경회의 목적은 첫째로 성경을 통하여 영생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발견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 둘째로 사경회를 통하여 예수님의 명령을 찾는 것, 셋째로 지도자를 양육하여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감을 체험하고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더 잘 가르치는 것에 있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발단인 1907년 장대현교회 겨울 사경회는 평안남도 道사경회로, 각 교회 지도자급에 속한 약1500명의 성도가 40리에서 400리의 거리를 걸어서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2주간의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영하 수 십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날씨와 싸우며 거친 산과 거친 돌을 넘어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달려 온 자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사경회까지 오는 교통비는 물론 사경회 기간 동안의 식사와 숙박을 위한 일체의 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느낀 성도들은 사경회에서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고 배워, 말씀에 자신들의 죄를 비추게 되었습니다. 사경회에서 성경을 가르쳤던 헌트(William B. Hunt)는 성도들의 자복의 눈물을 목격하고,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기도회 이후에도 남아 한 사람 한 사람씩 간절히 이어 기도하자 그때 대단히 힘 있는 5인의 남자가 극심한 심령의 고통 가운데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가 전에는 결코 목격하지 못했던 성령의 임재가 이어졌다” 결국 평양대부흥운동에서의 통회와 자복은 단순한 일시적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부흥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다시 살아나야 함을 평양대부흥운동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말씀이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게 하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줌에 따라, 마귀가 심어주는 인간적 생각과 인간적 방법을 몰아내는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공동체 운동 평양 대부흥운동은 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 성도들은 방위량 선교사의 간증을 통해 지체간의 미움을 회개하게 되고 이것이 부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 장로교 선교사로 평양 안주지방에서 복음 사역에 힘쓴 방위량 목사는 1월12일 토요일 부흥집회에서 고린도 전서 12장27절을 전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라는 말씀의 설교에서, 그는 한국에서 사냥을 하다가 한 손가락 끝마디 부분을 잃은 사고를 예화로 사용하였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 말씀을 통해 형제의 마음 속에 있는 증오의 감정이 전체 교회를 해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고통을 준다는 것을 설명했다.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면서 회중들에게 손가락을 다침으로써 머리와 온 몸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를 말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새롭게 자각했다. 비통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특히 일본인들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이들이 많았다.” 방위량선교사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지체들이 서로의 증오를 내려놓을 때 머리대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교회전체에 대한 상처는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로부터 60년 후 방위량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영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셨다.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다른 사람들, 심지어 우리 몇몇 선교사들에 대한 나쁜 감정들과 미움들을 고백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우리가 소원하던 부흥이 그날 밤 시작되었다는 증거였다.” 이처럼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에 대한 미움을 거둘 때, 교회의 부흥은 불같이 타오르게 됩니다. ◆성령이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은 위기에 대응하는 운동, 기도 운동, 회개 운동, 말씀 운동, 공동체 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성도는 사탄의 유혹에 의해 나약한 인간적 사고에 젖어들기 쉽습니다. 이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위기를 버텨내고 극복하는 길이 됩니다. 기도 없이는 부흥도 없습니다. 원산 여선교사들의 중보기도가 하디 선교사의 회심을 가져왔고, 이것이 원산 전체의 부흥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원산부흥운동의 기운이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번져나갔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마음으로 개인기도와 중보기도를 할 때 부흥의 불씨는 타오르게 됩니다. 회개는 부흥의 핵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의 회개와 하나님의 길을 걸으며 공동체의 행복을 꿈꾸는 마음으로의 회개가 곧 부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말씀의 역사입니다. 말씀이 자신의 삶에 비쳐지지 않는다면 회개는 불가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점검하는 것이 부흥의 열쇠가 됩니다. 또한 부흥은 공동체 운동으로 귀결됩니다. 지체들 사이의 미움이 사라지고, 공동체 지체들 간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있을 때, 부흥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부흥의 특징은 성령의 역사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11:19)“I will give them an undivided heart and put a new spirit in them; I will remove from them their heart of stone and give them a heart of flesh.”(NIV) <참고문헌>강경규,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에 관한 연구」, 총신대 신대원 석사학위논문손호송,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과 목회적 적용」,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평양 대부흥운동 #영적 부흥 #사경회








[ 금융투자소득세의 문제점 ] 금투세 도입, 조세회피 가능성 높고 장기투자 유인 억제 내년 시행유보가 논의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는 조세중립성 제고 효과와 과세제도의 단순화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조세회피가능성 △부자감세 △장기자본의 이탈 △결집효과등 완화 장치 부재 △증권거래세 폐지로 인한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등의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어, 금투세의 신중한 도입이 요구된다. ◆금투세도입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점들 ① 조세 회피 가능성 존재 금투세는 과세를 회피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게 된다. 그 결과 선의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는 금투세의 설계구조에서 기인한다. ◇금투세 설계구조금투세는 현행세법과 과세대상 및 세율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두 법은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를 비과세로 만든다는 입법 목표를 두고 있는데,금투세는 97.5%를 비과세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현행 세법의 과세 기준인 20%, 25%(3억원을 분기점으로 하여 대주주의 1년 이상 보유시의 현행 세율)를 세율로 책정하고 있다. 둘은 단지 과세대상선정 방법 측면에서 다를 뿐이다. 현행법은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을 기본적으로 비과세로 두고, 대주주 요건을 통하여 과세대상을 선정하고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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