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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QT ] 이란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의 고백, "God is good"의 의미 [ 성화의 열매 ]

-“God is good” :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한 문장 -멘탈이 강한 게 아니다” 죽음 앞에서 나온 믿음의 정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히브리서 11:6 ◆ “God is good” 한 마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온 고백 이란 방공망에 격추된 F-15E 전투기에서 비상 탈출한 미군 무기체계 장교는 적진 한복판에서 부상당한 채 36시간 동안 바위 틈에 숨어 있었습니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가 보낸 첫 무전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God is good. 하나님은 선하시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고백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강한 믿음이다”, “멘탈이 대단하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이 장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합니다. 이 고백을 인간의 심리적 강인함이나 종교적 의지의 산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결과로 드러난 신앙의 반응, 곧 자기부인의 형태로 나타난 살아 있는 기도로 이해합니다. 다시말해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나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사건에 대한 해석과 결론을 스스로 붙들고 있으려는 본능을 내려놓고, 그 최종 판단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 앞에서까지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성화는 어떻게 이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만드는가. ◆ 성화, 네가지 변화 성화(Sanctification)는 그리스도인이 평생에 걸쳐 경험하는 거룩함의 성장 과정입니다. 즉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① 존재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의 전환 성화의 가장 깊은 층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삶의 중심이었고, 판단과 의미 부여의 기준도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 안에서 신자는 점점 더 분명히 다음과 같이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이것이 자기부인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입니다. 자기부인은 자기 존재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기는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② 성품 변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방향으로의 변화 성화는 감정과 성향, 즉 성품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바뀌는 변화입니다.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의 성품은 점점 다른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전에는 죄가 자연스럽고, 자기 만족과 자기 보호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는 점점 더 하나님을 기뻐하고, 죄를 불편해하며, 자기중심적 욕망을 경계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복잡한 행위의 목록을 충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핵심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단순 막연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선하심·보상하심(언약 신실함)을 신뢰하는 태도로 규정합니다. 즉 이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⓷의지 변화: 선택의 기준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주권을 이동하는 것 성화는 의지의 변화를 동반합니다.이 변화의 핵심은 단순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주권 자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스스로 쥐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의미를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권한도 자신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나는 끝났다” “이 상황은 절망이다” “이제 방법이 없다”와 같은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판단의 주권을 자신이 행사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신자는 점점 더 “이 사건의 최종 판단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의지의 변화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전에, 누가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주권의 이동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내리는 결론”보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결론”을 따르려는 의지로 나타납니다. 즉 자기부인은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재정렬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순종의 열매 성화는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존재와 성품, 의지의 변화는 내면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반응과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즉 성화란 단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실제 위기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검증되는 삶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두려움에 휩쓸려 절망으로 반응하고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통제하려 하며 △불평과 불안으로 대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이루어질수록 신자의 행동은 점점 달라집니다.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맡기며, 불평 대신 신뢰로 반응하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싶은 방식”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즉 생각과 의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반응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행동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종합하면,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성화의 네가지 변화 : 조종사의 사례 앞선 성화의 네가지 변화는 조종사의 사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① 존재의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인정입니다 적진 한복판, 언제 발각되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붙잡으려 합니다.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극대화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조종사가 내놓은 첫 언어는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선하시다”였습니다. 이 고백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존재적 인정입니다. 즉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생사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쥐려 하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자신을 위치시킨 것입니다. ② 성품 변화: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방향으로의 변화입니다 조종사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고 △자신의 결론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했으며 △자신의 통제 욕구보다 하나님께 맡김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분명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르는 마음, 곧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부인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전환입니다. ③ 의지 변화: 주권의 이동 적진 한복판,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종사는 충분히 자신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이 상황은 절망적이다”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첫 번째 언어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말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의 최종 해석자가 되기를 거부한 의지의 선택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판단을 확정하지 않았고 상황에 대한 최종 결론을 스스로 내리지 않았으며그 판단의 권한을 하나님께 넘겨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권의 이동입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이 상황을 규정하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가 최종적인 것이다” 라는 위치에 섰습니다. 결국 의지의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삶과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권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이양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바로 그 주권 이동이 실제로 드러난 의지의 선택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신뢰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뢰는 즉각적인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보낸 첫 무전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그 순간 그가 선택한 행동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압도된 반응을 선택하지 않았고 절망적인 결론을 외부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응답했습니다. 즉 그는 그 순간 두려움에 반응하는 행동 대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성화가 행동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결국 행동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본능적 반응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고백은 바로 그 신뢰의 열매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성화의 근원: 이 모든 변화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존재·성품·의지·행동의 변화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덕적 성장이나 훈련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화의 본질은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This effectual call is of God’s free and special grace alone… who is altogether passive therein, until… quickened and renewed by the Holy Spirit.” (WCF 10.2)“이 유효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성령에 의해 살아나고 새롭게 될 때까지는 그렇다.” 이 고백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신앙의 시작도, 성화의 진행도 인간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성령의 선행적 역사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선하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 일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상황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붙드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인간의 자연적 반응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는 반응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화의 근원이 드러납니다. 성화의 근원은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께서 먼저 죽어 있던 영혼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시고, 그 신뢰를 실제 선택과 반응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즉, 신자의 믿음과 신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면에서 먼저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 결과로 신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방향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화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할은 그 원인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에 의해 가능해진 응답입니다. ◆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찬양의 언어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언어나 개인의 정신력에서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성령께서 먼저 그의 영혼을 살리시며 △ 믿음을 일으키시며 △그 믿음을 성화의 과정 속에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게 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격적 응답입니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차원에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했고 △성품의 차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의지의 차원에서 판단과 결론의 권한을 하나님께 이양했고 △행동의 차원에서 그 신뢰를 실제 고백으로 드러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God is good.” 이라는 말로 응축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은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성령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신 성화가 한 순간에 집약되어 드러난 사건입니다. 성화란 인간이 스스로를 붙들고 더 강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간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해석과 결론을 붙들지 않고,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때, 신자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있습니다. “God is good.” 이 고백은 상황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확신이며, 자기 중심적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종 주권자로 인정하는 신앙의 결론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인간의 의지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가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변화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의 언어입니다. ■ 곡명 "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내 구원주 살아계심을 내가 아니(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 song by Kiri Te Kanawa 욥기 19장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의 핵심은 '느낌(feel)'이 아니라 '앎(know)'에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교리를 배웠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기에, 지금 이 적진 한복판에서도 나는 그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인격적인 신뢰를 포함합니다. 조종사의 고백처럼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이라는 확정된 진리에만 근거하여 내뱉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이처럼 내 구원자(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말씀 QT ] 기사요약과 Quiz : 이란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의 고백, "God is good"의 의미

[기사 요약] 주제: 조종사의 사례를 통해 본 성화의 전인격적 변화와 성령의 사역 1. 개요 (The Case)사건: 이란 방공망에 격추된 미군 F-15E 전투기 무기체계 장교가 적진 한복판 바위틈에 36시간 동안 고립됨. 핵심 메시지: 극한의 공포 속에서 보낸 첫 무전 내용, "God is good(하나님은 선하시다)." 관점의 전환: 이 고백을 인간의 심리적 강인함(Mental)이 아닌, 개혁주의 신학의 '성화(Sanctification)' 및 '자기부인'의 결과로 해석함. 2. 성화의 4단계 변화 분석 성화는 존재, 성품, 의지, 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조종사의 사례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화됩니다. 구분 변화의 핵심 내용 조종사 사례 적용 ① 존재 (Existence)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 전환 생사의 주권을 스스로 쥐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인정함. ② 성품 (Character)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믿음)을 선택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성품의 발현. ③ 의지 (Will) 상황에 대한 최종 판단권(주권)을 하나님께 이양 "절망이다"라는 자기 결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해석(선하심)을 따름. ④ 행동 (Action) 실제 위기 속에서 신뢰를 드러내는 구체적 반응 본능적 공포에 압도되지 않고 무전을 통해 신뢰의 고백을 실제로 실행함. 3. 신학적 근거: 성화의 주도권성령의 역사 (WCF 10.2):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도덕적 훈련이나 의지력이 아닌, 성령의 선행적 역사에 의한 것입니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성령에 의해 살아나고 새롭게 될 때까지는 그렇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역설적 반응: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기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나, 성령에 의해 갱신된 영혼은 이를 거슬러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합니다. 전인격적 응답: 신자의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낸 업적이 아니라, 성령이 일으키신 변화에 대해 지성, 감정, 의지를 다해 반응하는 '인격적 응답'입니다. 4. 결론 및 시사점성화의 본질: 성화는 인간이 스스로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고백의 의미: "God is good"은 상황에 대한 낙관적 암시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종 주권자로 인정하는 신앙의 결론입니다. 최종 평가: 조종사의 고백은 성령께서 오랜 시간 빚어오신 성화의 열매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기부인'의 형태로 폭발한 사건이며, 이는 오늘날 신자들에게 주권 이양의 실제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기사 이해 퀴즈 1. [객관식] 기사에서 조종사의 “God is good” 고백을 세상적 시선은 주로 어떻게 해석합니까?① 단순한 생존 본능의 표현 ② 강한 믿음이나 대단한 멘탈의 표현 ③ 신학적 오류의 표현 ④ 구조 신호의 암호 표현 정답: ② 해설: 기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고백을 두고 “강한 믿음이다”, “멘탈이 대단하다”라고 평가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글은 이 해석을 넘어서, 이를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열매로 해석합니다. 2. [단답형]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인간의 심리적 강인함이 아니라 무엇의 결과입니까?정답: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결과 해설: 글은 이 고백을 인간의 의지나 정신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신자 안에 이루신 성화가 드러난 결과라고 규정합니다. 3. [객관식] 기사에서 성화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① 종교적 감정의 일시적 고양 ② 인간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도덕 훈련 ③ 존재·성품·의지·행동이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 ④ 교회 출석을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 정답: ③ 해설: 본문은 성화를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나 감정, 자기수양 이상의 총체적 변화입니다. 4. [단답형] 기사에서 말하는 성화의 네 가지 변화는 무엇입니까?정답: 존재 변화, 성품 변화, 의지 변화, 행동 변화 해설: 글의 본론은 성화를 네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조종사의 한 문장이 신앙의 전인격적 열매임을 보여 줍니다. 5. [객관식] 존재 변화의 핵심은 무엇입니까?① 나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 ②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③ 나는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④ 나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정답: ② 해설: 존재 변화는 정체성의 전환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6. [객관식] 기사에 따르면 성품 변화에서 자기부인은 어떻게 나타납니까?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모두 억누르는 것 ②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르려는 마음 ③ 외부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 태도 ④ 자기 능력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세 정답: ② 해설: 글은 자기부인을 감정 억압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과 우선순위의 방향이 바뀌어, 자기 욕구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택하는 성품의 재구성으로 설명합니다. 7. [단답형] 히브리서 11장 6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정답: 믿음 해설: 기사에서는 히브리서 11장 6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핵심이 복잡한 행위 목록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8. [객관식] 의지 변화의 핵심을 기사에서는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① 더 강한 결심을 유지하는 것 ② 더 빠르게 판단하는 것 ③ 최종 판단권의 주권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이동하는 것 ④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 정답: ③ 해설: 글은 의지 변화를 단순한 결단력 향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핵심은 사건의 의미와 결론을 누가 최종적으로 규정하는가, 곧 판단 주권의 이동에 있습니다. 9. [단답형] 기사에서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말은 의지의 차원에서 무엇을 의미합니까?정답: 상황의 최종 판단권을 하나님께 이양한 것 해설: 조종사는 자신의 생사와 상황에 대해 스스로 최종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 판단의 권한을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위치에 섰다고 글은 해석합니다. 10. [객관식] 행동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① 내면의 감정과 상관없이 외형만 바꾸는 것 ② 실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 ③ 침묵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 ④ 타인의 평가를 고려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 정답: ② 해설: 행동 변화는 내면 변화가 실제 반응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조종사의 경우, 공포에 압도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언어를 무전으로 보낸 행동이 그 예입니다. 11. [객관식] 기사에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2항의 핵심은 무엇입니까?①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② 인간은 성화에서 전적으로 능동적이다 ③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으며 인간은 성령이 살리시기 전까지 수동적이다 ④ 성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정답: ③ 해설: 글은 WCF 10.2를 통해 신앙의 시작이 인간 안에 있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성령께서 살리시고 새롭게 하시기 전까지 하나님께 응답할 능력이 없습니다. 12. [서술형/단답형] 기사 전체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모범 답안: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인간의 의지나 성향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가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해설: 이 문장이 글 전체를 압축합니다. 조종사의 고백은 낙관주의나 멘탈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믿음과 신뢰의 열매로 제시됩니다. 13. [객관식] 기사에서 말하는 자기부인의 가장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① 자신을 미워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 ②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 ③ 자기 존재의 중심과 판단권을 하나님께 두는 것 ④ 모든 욕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 정답: ③ 해설: 본문은 자기부인을 자기혐오나 감정 억압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과 최종 주권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14. [단답형]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어떤 언어입니까?정답: 찬양의 언어 / 영광의 언어 해설: 결론부는 이 고백을 단순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변화된 영혼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 또는 영광의 언어라고 설명합니다.

[ 말씀 QT ] 내려놓음과 구원은 은혜가 낳은 결과인가, 인간의 결단인가 [ 알미니안주의 vs 칼빈주의 ]

우리는 인생의 거센 풍랑 속에 있을 경우 본능적으로 내 생각과 판단의 조타핸들을 움켜쥐려 합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고 해답을 얻지 못해 우왕좌왕합니다. 그러나 ‘신앙적 메타인지’는 자아의 통제권을 내려놓고,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데 목표를 둡니다. 위기 앞에서 스스로 상황을 해석하려는 본능을 거슬러, 내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해석의 권한과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권 이양’은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일까요. 기독교 신학 안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라는 두 흐름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의 긴장은 교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논쟁의 축이었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방식도 이 긴장 위에서 형성됩니다. 두 전통은 공통적으로, 내려놓음과 올려드림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동력이 하나님의 은혜, 곧 성령의 역사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인간의 의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길을 갑니다. 말하자면,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하나의 실제적 매개변수로 보는 반면, 칼빈주의는 내려놓음(성화)의 자리에서 그 매개변수를 원천적으로 배제합니다. 한국의 강단설교에는 알미니안주의가 지배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예컨대 “기도해야 변화된다”, “네가 결단해야 은혜가 임한다”와 같은 권고는, 강단설교 전반에 널리 퍼진 전형적 문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이 글에서 말하는 구원은 광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좁은 의미의 구원은 주로 칭의를 중심으로 이해되며, 이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정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광의의 구원은 구원의 서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곧 선택–유효한 부르심–중생–회심(믿음과 회개)–칭의–양자됨–성화–견인–영화의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글에서 말하는 내려놓음과 올려드림은 구원의 서정에서 주로 성화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자기부인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라는 점에서 성화의 핵심 내용에 해당합니다.) ◆알미니안주의 :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독립변수) → 기도, 훈련등의 인간의 의지(매개변수) → 내려놓음, 구원(종속변수) 알미니안주의는 구원(넓은 의미)의 序程(order)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 의지가 협력(synergism)한다고 보는 개신교 신학의 한 흐름입니다. 완전한 자력 구원을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와,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강하게 강조하는 칼빈주의 사이의 중간 지점을 지향하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역사적 배경 알미니안주의는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칼빈주의의 엄격한 예정론(특히 타락 전 예정론)에 대한 신학적 반론으로 등장했습니다. 시조는 네달란드 레이던 대학교의 신학 교수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로, 그는 본래 칼빈주의자였으나, 예정론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의 사후,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1610년 5개 조항의 ‘항론(항의문, Remonstrance)’을 제출하면서 알미니안주의가 하나의 신학적 흐름으로 정식화됩니다.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는 이 알미니안 전통을 수용·발전시켜 감리교(Methodism)를 세웠고, 특히 선행 은혜 교리를 정교화하여 복음의 보편적 초대를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감리교와 성결·홀리니스 계열 교단, 그리고 다수의 오순절 교단은 공식적으로 웨슬리안-알미니안 신학(선행 은혜, 거절 가능한 은혜, 조건적 보존 등)에 서 있습니다. 침례교 안에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함께 존재하지만, 특히 결단과 초청을 강조하는 일부 침례교·복음주의 교회들은 실질적으로 알미니안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② 교리의 핵심 고전적 알미니안 및 웨슬리안 전통의 골자는,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인간의 인격적 책임이 함께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선행 은혜와 synergism입니다. “선행 은혜”(prevenient grace)는 말 그대로 “먼저 오는 은혜”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이 은혜는 구원 이전의 예비적 단계입니다.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성령이 먼저 찾아오심으로써, 응답 불능 상태에 빠져있던 인간은 복음 앞에 반응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웨슬리안 전통에서도, 구원이전에 주어지는 선행 은혜는 양심을 깨우고, 마음을 비추며, 죄로 마비된 의지를 일정 부분에서 회복시켜, 복음에 대해 “예(Yes)” 또는 “아니오(No)”라고 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 은혜는 구원의 기회를 제공할 뿐 구원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 은혜가 可抗적 은혜(resistible grace)이기 때문입니다. 즉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내려놓음의 기회에 저항 가능(resistible)하다고 인정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은혜에 “예”라고 응답할 수도 있고, “아니오”라고 반항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부인과 올려드림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인간의 의지를 폭력적으로 압도하여 강제로 굴복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알미니안주의는 synergism을 주장합니다. synergism(협력구원)은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함께 일한다”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구원의 가능성을 여시고, 인간은 그 은혜에 실제로 응답함으로써 구원에 참여한다”는 신–인 협력 구조를 가리킵니다. 즉 자유 의지가 강조되기 때문에, 알미니안주의에서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로 시작되지만, 그 은혜가 실제로 자기 것이 되느냐 아니냐, 곧 구원의 완성 혹은 상실에 대한 최종적인 응답의 책임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매개변수에 귀속된다고 봅니다. 결국 알미니안적 구원의 과정은 ‘하나님의 가항적 은혜 → 인간의 의지여부 → 내려놓음,구원, ’의 관계를 보이게 됩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보편적·선행적 은혜가 먼저이고, 그 은혜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응답이 실제 구원의 성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 알미니안주의적 구원의 구조입니다. ◆칼빈주의 :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독립변수) → 기도, 훈련등의 인간의 의지를 부인 (매개변수 부인)→ 구원, 올려드림(종속변수) 인간의 응답과 협력을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적 기류에 대비되는 신학이 칼빈주의(개혁주의)입니다. 이는 은혜의 ‘단독성’을 일관되게 고수하며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의 구조를 지탱하는 네 가지 핵심 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우연이 배제된 신성한 질서 칼빈주의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 그리고 구원의 전 과정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자율성이나 예기치 못한 우연이 하나님의 작정을 제한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신학적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 심지어 고통스러운 풍랑조차 하나님의 통제권 밖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적 신앙은 주권자의 통치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⑵ 전적 타락과 전적 은혜: 자력 갱생의 불가능성 선언 인간론적 관점에서 칼빈주의는 ‘전적 타락’을 선언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 스스로 돌아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구원이 시작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은혜여야만 한다는 구조적 필연성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체계 안에서 믿음과 회개, 순종은 은혜와 대등하게 협력하는 구원의 변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회개는 은혜의 열매, 곧 종속변수로 위치합니다. 결국 구원의 유일한 동력은 독립변수인 성령의 은혜일 뿐입니다. ⑶ ‘오직(Sola)’의 엄격성: 타협 없는 그리스도 중심주의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슬로건인 ‘5 솔라(5 Solas)’는 칼빈주의 신앙의 확고한 경계선입니다. 5 솔라(5 Solas)는 종교개혁 신학을 한 줄로 요약한 다섯 개의 “~만으로”라는 슬로건입니다. •Sola Scriptura – 오직 성경신앙과 교회의 최종 권위는 전통이나 교황이 아니라 성경만이라는 고백입니다. •Sola Fide – 오직 믿음인간은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Sola Gratia – 오직 은혜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며, 인간의 공로가 조금도 섞이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Solus Christus – 오직 그리스도중보자, 구원자, 주님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며, 다른 어떤 매개나 공로가 추가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Soli Deo Gloria – 오직 하나님께 영광구원과 교회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며, 인간이나 교회, 어떤 체계도 그 영광을 나눌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정리하면, 이 다섯 솔라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성취하시고, 마무리하신다”는 은혜 신학의 압축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구원이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면, 거기에는 인간의 회개, 기도, 믿음등의 기여도가 단 0.1%도 섞일 수 없다고 봅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⑷ 단일 작용(Monergism): 원인과 결과의 근본적 재배치 알미니안주의가 은혜와 인간 응답의 ‘협력 구조(Synergism)’를 말한다면, 전통적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단독 사역(Monergism)’을 고백합니다. 이는 구원의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재배치하는 논리적 반전을 가져옵니다. ◆ 칼빈주의 vs 알미니안주의: 내려놓음의 원인을 둘러싼 분기 요약하면,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대립은 인간의 의지와 공로가 ‘구원’ ‘내려놓음과 올려드림’이라는 결과에 매개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①알미니안주의: 내려놓음, 구원 = f(은혜, 인간의 의지)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가 함께 작용하는 시너지즘(synergism)을 전제로 합니다. 이 구조에서 인간의 의지는 구원의 과정에서 단순한 반응을 넘어, 실제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로 이해됩니다. 이는 곧 은혜가 저항 가능하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성령이 선행 은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시지만, 인간이 기도· 믿음· 회개등 인간의 구원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은혜는 포기될 수 있습니다. 즉 그 은혜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선제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인간의 신앙적 응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은혜로 허락된 구원의 기회는 인간의 회개와 결단이라는 통로를 거쳐 비로소 각 개인에게 현실화됩니다. 즉, 선행 은혜로 부여된 구원의 기회 앞에서 인간이 행하는 구원을 위한 의지 여부가 구원의 실현을 결정짓는 관건이 됩니다. 이러한 틀 안에서 ‘내려놓음’은 반복적인 기도와 회개의 실천을 통해 인간이 은혜에 응답하고 협력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은혜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응답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② 칼빈주의: 내려놓음, 구원 = f(은혜) 반면 칼빈주의, 곧 개혁파 전통은 이러한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합니다. 구원과 맞물린 ‘내려놓음’의 자리에서는 어떤 인간의 공로나 조건도 매개변수로 작용할 수 없다고 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주권을 이양하는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유효한 은혜가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신뢰와 회개, 내려놓음은 그 은혜의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일 뿐, 그 은혜를 완성하기 위한 조건이나 원인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칼빈주의는 분명한 인과 구조를 제시합니다. 기도와 회개는 내려놓음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역사한 은혜가 낳은 결과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구원에 공로로 더해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단독 사역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 역시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새 생명이 필연적으로 맺는 결과입니다. 즉 인간이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믿음의 자리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③두 체계의 차이 결국 두 체계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알미니안주의는 “은혜가 선행하지만, 최종 결과는 인간의 응답이 좌우한다”는 구조를 취합니다. 반면 칼빈주의는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며, 인간의 응답은 그 은혜가 산출한 결과”라는 인과 구조를 중심에 둡니다. 이 차이는 인간의 믿음·회개·기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이러한 행위들이 구원의 완성을 향해 작용하는 매개변수로 이해됩니다. 반면 칼빈주의에서는 그것들이 내려놓음과 동일한 차원에 있는 은혜의 열매로 규정됩니다. 칼빈주의는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의 자율성과 공로의 가능성을 철저히 해체합니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가변적인 의지에 종속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는 그분에 의해 반드시 완결된다는 신적 필연성을 내포합니다. 구원이라는 사건에서 인간이라는 매개변수가 논리적으로 불필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시작과 끝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만 달려 있기에, 인간의 응답 유무는 구원의 효력을 결정짓는 매개변수가 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려놓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맺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즉 오직 은혜만이 구원을 완성시키는 유일한 원인이 됩니다. Soli Deo Gloria!하나님의 영광만이 Ave Verum Corpus (Wolfgang Amadeus Mozart)은 “참된 몸이신 그리스도(Ave verum corpus)”를 찬양하는 성체성가로, 십자가에서 찔리고 흘린 보혈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노래합니다. 음악은 격정이나 결단을 강조하기보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 앞에서 경건히 머무르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균형 잡힌 화성 속에서 흐르는 선율은 인간의 노력보다 선행하는 은혜를 묵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곡은 ‘은혜가 먼저이고 인간은 그 결과로 응답한다’는 신학적 구조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성격 ] 물적 분할 문제의 보완 필요 ◆ 물적분할 ① 물적분할의 성격 = 현물출자 물적분할은 기존기업의 자산 부채를 신설기업에게 포괄 이전하고 신설기업은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100%를 기존기업에게 이전하는 분할을 말합니다. 물적분할의 성격은 현물출자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A사는 전자 사업부와 건설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사는 물적분할하여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신설기업인 B사에 이전하고, B는 A에게 신주100%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적분할로 인해, A기업의 사업구성은 분할이전의 ‘전자사업부 + 건설 사업부’에서 분할 이후의 ‘전자사업부 + B의 주식’으로 변경됩니다. 이를 분할회계처리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주주 A사: (차) 종속기업 주식 ×× (대) 건설사업부 순자산 ××, 처분익×× 종속회사 B사: (차) 건설 순자산(공정가액) ×× (대) 자본×× 위의 회계처리처럼, A사는 신설기업B에게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이전하고 그 대가로 B주식을 인수하였습니다. B는 A로부터 건설자산을 이전받고 A에게 B주식을 발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적분할은 현물출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② 물적분할 성격 = 매각거래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는 분할을 매각거래로, 신설회사는 분할회사로부터

[ 감세와 고율관세정책 간의 모순 ] ‘트럼프 2기에 고율 관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고관세의 조합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에 발효된 일몰법인 TCJA(감세와 일자리 법 :Tax Cuts and Jobs Act)를 연장 또는 영구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TCJA에 더하여, 추가 세금 인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촉발되는 재정적자는 고율관세로 메울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고율관세는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줄것으로 예상됩니다. ◆ 거침 없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감세를 정책 노선으로 삼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장애물 없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있는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입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선, 동일한 법안이 상원 및 하원에서 각각 통과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관련 위원회(소위원회의 심사와 청문회, 상임위에서 수정과 표결)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원으로 전달됩니다. 상원의 관련 위원회를 거친 후 본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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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 Mind ]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의 결단: 들리지 않는 심연에서 건져 올린 '무조건적 자기수용'의 선율 ◆바이올린 소나타 5번 2악장: 재구축된 세계의 평온함 봄 소나타(Spring Sonata)’라는 별칭이 붙은 바이올린 소나타 5번, 2악장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얼마나 순수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릴 수 있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2악장(Adagio molto espressivo)은 그가 고통 속에서 재구축한 내면의 정서를 가장 명징하게 들려줍니다. 이 악장은 고통과의 처절한 사투가 아니라, 믿기 힘들 정도로 서정적 (molto espressivo)이며 깊은 명상적 평온을 자아냅니다. 특히 코다(Coda)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선율은 외부와의 단절을 슬퍼하는 통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냉혹한 현실(상태)을 읊조리는 피아노와, 그럼에도 그 존재를 수용하는 바이올린이 나누는 고차원적인 대화입니다. 이 선율은 알베르트 엘리스의 이론인 ”무조건적 자기수용(USA)“을 떠오르게 합니다. “나의 상태가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는 나의 존재를 수용한다”라는 단단한 이중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서정적 태도는 베토벤이 육체적 결핍을 비난하는 대신, 그 빈자리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채우며 자신만의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