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는 관습(convention)의 변형(variation)이라고 합니다. 반복되는 관습에의 익숙함은 안락한즐거움을 주는 반면, 관습의 변형이 주는 생경함은 불편함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장의 당혹함은 이내 새로운 질감의 대중적 효익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변형을 향한 진통과 갈등은 새로운 비상을 향한 고단한 날개 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컨벤션에서 탈구하여 새로운 변형을 갈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이에 대한 모범을 제시한 성공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 봉준호 장르 – 변화를 통한 공익적 열망의 표지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영화사적 의미는 봉준호 영화가 장르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있습니다. 기존 장르의 공식과 관습의 경로에서 탈선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는 ‘봉준호 영화’가 마침내 틀의 구축과 그 안의 구성을 완성하여 새로운 장르를 정립한 것입니다. 이는 정태적 우리 속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는 봉준호의 고통스러웠을 하지만 즐거운 변형의 몸부림을 엿보게 합니다. 봉준호의 장르는 마치 관객이 송파를 향하는 300번대 버스를 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지적 긴장과 감성적 이완이 결합된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의 미덕은 균형입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균형, 여성해방과 남성해방의 균형을 통해, 인간성의 모델과 페미니즘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RBG의 兩性적 인간성 미국의 현직 여성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는 오페라를 보면서 곧잘 감성적인 공감의 눈물을 흘립니다. 센티멘털한 RBG는 의외로 ‘notorious RBG(악명높은 RBG)’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성차별을 공기처럼 호흡해 온 여성의 권리에 관한 여러 사건을 대법원에서 승리로 이끌며, 전투적이며 도전적인 성품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이같은 RBG의 兩性적 인간형은 균형 잡힌 인간성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공감의 여성성과 도전의 남성성의 공존이 세상의 평화와 개인의 성숙을 빚어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 혐오와 증오 강자는 약자를 혐오하고 약자는 강자를 증오합니다. 남성은 여성을 혐오하고 여성이 남성을 증오하기도 합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을 ‘포식자, 악어’로 간주하고 남성아 여성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성혐오 남성증
12살 남짓의 소년 자인은 늘 깨어있습니다. 팔려 갈 위험에놓여 있는 여동생 사하르를 지켜주고자 하고, 에디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자 나힐의 한 살 박이 아들 요나스를 친동생처럼 돌보아 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돌봄의 노력이 한계에 이르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라며 개인의 한계를 공동체 전체의 노력으로 극복하고자합니다. 자인은 이처럼 자신의 힘으로 뛰어넘기 힘들어 보이는 높은 장애물을 부수고자하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자인의 빼어난 감수성과 깨어있는 의식, 그리고 이에 따른 지치지 않는 활동성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 식물 vs 동물 : 잠든 의식 vs 깨어 있는 의식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존을 위해 영양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식물과 동물은 영양분을 획득할 때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의식의 정도를 달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물은 외부의 자극에 무감각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이점에서 식물을 ‘잠든 의식’이라 정의하였습니다. 잠든 의식은 운동성을 요하지 않습니다. 외부의 자극에 자신의 의식을 긴장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식물의 의식이 잠들어 있다는 것은 식물이 자기 충족적
영화 <암살>에서 조선 독립군 저격수인 안옥윤은 매력적입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걸치고 장총을 쏘아대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듯한 청량감을 느낍니다. 옥윤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걸까요? 옥윤(전지현)이 예뻐서 일까요? ◆매력 : 외모와 심성 인물의 매력은 크게 외적인 아름다움인 외모 (Outer Beauty)와 내적인 아름다움인 심성(Inner Beauty)으로 구분됩니다. (박상준외) 아름다움의 두 차원은 다시 각각 두 요소를 포함하는데, 외모는 형상과 스타일, 심성은 역동적 성격과 배려로 구분됩니다. 또한 네 가지 매력 차원들은 범주별 형용사들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형상: 예쁜, 참한, 멋진, 고운, 아름다운 △스타일: 세련된, 우아한, 귀여운, 단아한, 애교있는 △역동적 성격: 생기 넘치는, 명랑한 △배려: 마음씨가 따뜻한, 친절한 ◆옥윤의 매력 :전사의 아름다움, 우아한 비장미, 역동적 생기, 따뜻한 마음씨 앞의 네 가지 매력차원들과 이와 관련된 형용사에 근거해서, 안옥윤의 매력을 설명하는 적절한 형용사들은 무엇일까요? 관객들은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장총의 렌즈로 표적을 조준하는 옥윤의 형상에서 전
왕년에 시인이었지만 지금은 인생의 모호한 길에서 방향을 잃고 있는 윤영(박해일), 전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술로 달래는 송현(문소리), 이 둘은 상대가 자신에게 인연이 될 가능성을 탐색하며 군산으로의 여정에 나섭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윤영은 송현을, 송현은 묵고 있는 민박집 이 사장(정진영)을 가슴에 담고 싶어 합니다. 둘이 함께 향하는 앞 길은 막히고 닫힌 듯이 보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여정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닙니다. 외려 그들의 존재와 생각은 억눌린 자를 해방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민박집 딸 주은(박소담)은, 단절의 이면엔 소통의 열망이 잠재되어 있다는 말처럼, 윤영의 주위를 맴돕니다. 비록 그의 사랑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을지라도, 윤영은 주은을 컴컴한 방에서 세상으로 이어주는 통로가 되어줍니다. 송현도, 내부자들이 그 간 누려온 지대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장벽 앞에 외부자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 이들에게 희망을 실어주는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송현은 잘사는 한국 사람과 못사는 조선족의 차이는 ‘우연’한 환경 차이라는 철학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송현은 군산에 오기전에 조선
※ 이 글엔 <버닝>의 결말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두 명의 굶주린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레이트 헝거 (Great Hunger)와 리틀 헝거 (Little Hunger). 리틀 헝거는 배를 채울 음식을 원하지만 모든 배고픈 자들의 으뜸인 그레이트 헝거는 의미에 굶주려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깊고 극심한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들에게 의미없는 인생을 맡기는 것이다.」 영화 <버닝>은 리틀 헝거에서 그레이트 헝거로의 전환을 이야기 합니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종수의 어릴 적 친구인 나레이터 모델 해미(전종서), 그리고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강남고급아파트에 거주하며 포르쉐를 모는 벤(스티븐 연). 이렇게 세 청춘은 각자의 방식으로 욕구와 욕망을 채우고자 합니다. ◆ 리틀 헝거 vs 그레이트 헝거, 욕구 vs 욕망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의 차이는 욕구와 욕망의 구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욕구와 욕망의 공통점은 모두 결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욕구는 리틀 헝거에 해당되는 개념으로, 식욕 색욕 명예욕 물욕등 특정 대상에 대한 욕심을 말합니다. 특히 노자는 눈을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