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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옥자>리뷰 : 개인의 개성과 나름의 가치를 존중하며

봄날의 따뜻함으로 사랑하며, 장벽에 무릎 꿇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그리고 뜨겁게 보듬고 얼싸안는다. <옥자>14세 산골 출신 소녀의 액션 어드벤처가 안겨주는 장르적 미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아픔의 여운도 길다. 이는 구조적 욕망에서 분출된 것으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봉준호의 예민한 감수성에 휘감긴 탓일 게다.

 

<옥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표층을 뚫고 들어가면 무시무시한 기층이 도사리고 있다.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가 꽈리를 틀고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장르의 쾌감

 

봉준호가 잡은 터는 무엇보다 장르의 쾌감이다. 그러므로 감독의 민감성은 장르의 미덕을 어떻게 드높일 것인가에 있다.

 

<옥자>는 이러한 감독의 고민을 해소해주는데 성공한 듯하다. 이는 장르의 새로운 개척에서 비롯된 것이다.

 

봉준호는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스릴러 구조를 통해 긴장의 서스펜스라는 과녁을 맞추는데 집중하였다. 이러한 스릴러 양식은 그가 탐구하는 사회적 문제의식과 조응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봉준호는 <옥자>에서 예의 스릴러의 외피를 벗고 액션 어드벤처물의 새 옷을 걸쳤다. 새 옷은 기존 회색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분홍의 질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사랑스러우며 활기차고 당당하다

 

14살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교감해온 슈퍼돼지 옥자를 찾아가는 여정은 모험물의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녀는 진군을 가로막는 유리벽에 몸을 던지며 트럭위에 올라타 트럭의 질주와 맞선다.

 

미자가 뿜어내는 이러한 에너지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인식에서, 적을 물리치기겠다는 적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녀의 폭발력은 단지 옥자와의 교감의 여운에 빚진 것이다.

 

진정성은 머리의 냉철함이 아닌 심장의 뜨거움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치열한 문제 의식

 

86세대의 역사의식을 밑천으로 삼고 있는 봉준호는 <옥자>에서 다시 구조적인 문제점에 돋보기를 비춘다.

 

영화<옥자>는 장르가 주는 감성과 흥분에, 장르의 비틀기로서 구조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 한다. 이번 작품도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는 잘 나가는 감독 그리고 역사적 의식을 외면하지 않는 문제적 작가로서 양립하기 쉽지 않은 봉준호 포지션을 다시금 확인받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유전자 변형 동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한다는 구실 하에 슈퍼돼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미란도 기업은 실상 기업의 이익을 우선한다. 자연과 인간간의 교감 대신 자연과 척을 두고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인간의 이익을 높인다는 구실로 기업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왜곡을 제대로 바로잡는 노력은 연대성에서 비롯된다. 시스템에서 소외되고 시스템을 탓하지 않고 그 잘못을 개인 귀속으로 돌리는 소시민의 삶과는 이제 작별을 고할 때이다.

 

미자와 ALF(동물해방전선)와의 협력을 통해 자본의 욕망을 폭로하고 뒤틀린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옥자> 연대가 정의의 바퀴를 진정 쉬지 않고 돌게 하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알레고리

 

봉준호 감독의 명민함은 표면과 이면을 통해 감독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있다. 어찌보면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과 역사적 문제의식의 공존을 충족시키겠다는 봉준호의 열정은 표층과 기층이라는 알레고리의 전략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되어 왔다.

 

<옥자>가 말하는 표층이 개인과 기업의 욕망이라면 기층은 무엇일까? 알레고리로의 옥자는 GMO사피엔스를 내장하고 있다는 분석은 지나친 억측일까?.

 

GMO사피엔스란 호모사피엔스와 유전자변형생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약어인 GMO를 합한 단어이다.

 

옥자는 GMO사피엔스 아기에 대한 우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옥자>는 유전자 변형 슈퍼돼지콘테스트를 이야기의 모태로 삼고 있는데, 이는 과거 우량아선발대회를 연상하게 한다.

 

미래는 이보다 더욱 진척된 형태로 인간들의 욕망이 실현될 수도 있다. 유전자변형을 통해 우생학적으로 이상적인 우량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란 무엇을 말할까? 그는 진리치GeneRich라 불린다. 183cm, 몸무게 84kg, 유전병은 없고 IQ150, 운동능력은 프로급이고 감성 패키지도 장착되어 몇몇 문화권의 문화와 시를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유전자 조작 회사는 특별한 제품인 진리치를 만들어 이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유전자 변형 서비스 대금을 받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진리치가 미래사회를 지배하는 상류층이 되고, 유전자변형 인간이 아닌 자연인은 하류층을 이루게 된다. 경제 언론 지식산업 연예산업은 인구의 10%인 진리치 계급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자연인은 저임금 서비스 제공자나 노동자로 전락한다.

 

이는 유전학으로 강화된 일종의 사회진화론의 득세를 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층차별등 차별에 맞서 싸워 온 전통과 노력은 허물어지고 그 차별은 더욱 공고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개인의 개성과 나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완벽한 존재가 되겠다는 환상은 차별과 우월의 또 다른 표현이다.

 

초월적 인간을 만들어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겠다는 의도는 결국 유전자 디스토피아의 실현의 도래를 의미한다.


<참고 자료>

폴 뇌플러 (2016), "GMO 사피엔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