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파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등 정관 개정과 관련,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측이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96년 시작되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BIFF가 양측의 힘겨루기로 무산위기에 놓여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측은 조직위원장과 임원을 총회에서 선출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부산시측은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임명하거나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장이 추천인을 임명하자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을 임시 조직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영화제를 치르자는 중재안을 제안해 놓고 있다.
◆BIFF사태
BIFF사태는 영화제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부산시와 BIFF측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발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현장의 구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 논란이다. 당시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에 포함된 <다이빙벨> 초청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였지만, BIFF측은 이 영화를 두 차례 상영하였다.
이듬해 부산시장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퇴권고를 하였다. 영화단체들은 이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권고가 <다이빙 벨> 상영에 따른 보복이라고 보았고, 이는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였다.(조종국)
지난 1월 이 전 위원장이 임시총회소집과 정관개정이 가능하도록 68명의 자문위원을 임명하였다. 하지만 부산시가 낸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11일 법원이 인용하면서 BIFF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이유는?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먼저 문화예술의 시장실패와 관련이 있다. 민간부분의 활동으로 문화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할 경우, 문화예술이 시장에서 적절히 공급되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발생하게 된다. 최적의 자원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문화관련 시장실패는 주로 고비용병(Cost Disease)와 관련이 깊다. 영화, 공연등의 제작엔 막대한 초기 고정비용이 소요되어, 문화예술의 제작과 공급이 최적의 사회적 공급량에 미달할 수 있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쉬운 상업성 높은 작품에 관심을 쏟게 되어, 실험적인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따라서 정부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문화예술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은 작은 정부를 목표로 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정부와 민간이 준정부조직을 구성하여 공공재(준공공재)를 함께 공급할 수 있다. 이러한 혼합영역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정부팽창을 이룰 수 있다.
특히 정부는 문화의 본원적 가치와 부가적 가치에 투자하고 있다.
문화는 인간에게 정신적 쾌락과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본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부가적 가치는 공동체의 매력을 증대시키는 위상가치,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산업의 부가가치, 주변 비즈니스에 편익을 끼치는 외부경제효과등을 포함하고 있다. (김정수)
BIFF는 주변산업에 외부경제효과를 미쳐, BIFF를 통한 생산 부가가치는 2013년 기준으로 최대 2,172억원에 이르렀다.
부산의 한 시민은 “BIFF가 아시아에 부산의 매력과 가치를 알리고 있다”며 “영화제가 부산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BIFF의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강조하였다.
◆ 자율성과 책임성
BIFF사태는 프로그램 선정이라는 정책 자율성의 침해 논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자율성은 조직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정책자율성과 인적자원과 재정을 관리할 수 있는 관리 자율성을 포함한다.
문화예술분야에서 자율성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국가개입에 대한 원칙의 하나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이는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으로, 영국의 전통적인 문화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라는 원칙과 동일한 개념이다.
[참고 : 팔길이 원칙에 대해, Quinn은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에 의해 운영되는 것,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최소한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정의 내린다. Madden은 팔길이 원칙의 목표를 △예술적 자유 △정치적 영역으로부터의 자유 △개선된 정책 결정 △혁신과 실험정신의 고취등으로 보았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적 자유이다.(신복용)]
비대위는 영화제의 자율성,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정관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조직위원장을 총회에서 선출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당연직인 조직위원장은 부산시장이 맡고 있다. 집행위원장이 임명하는 집행위원장은 영화관계자가 맡고 있다.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정책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위원장이 정치적 영향 밑에 놓여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외부영향으로부터 정책적 자율성을 지켜야 하지만 조직의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 투입을 받는 만큼 반대급부로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책임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주인)와 조직(대리인)간의 정보비대칭으로 부터 비롯된 대리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주인은 세금을 내고 영화티켓을 구입한 국민이다. 그러므로 영화제의 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책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결국 BIFF는 팔길이 거리를 두되 일정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시와 영화제측, 평행선을 달리기보다 접점을 찾아야
팔길이 원칙은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방안 중 가장 바람직한 정책원리이다. 문화예술에 대해 적극 지원해주면서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멋진 구호이지만 그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는 하나의 환상이라는 지적이다.
이 원칙은 영국이 1945년 예술평의회를 창설하면서 도입된 것으로, 영국의 문화예술조직이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장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실제 적용과정에서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팔길이’가 아닌 ‘손뼘길이 원칙’(Palm’s Length)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김정수)
이는 정부가 문화예술의 생산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있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BIFF도 이러한 고민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BIFF가 민간사단법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은 준(quasi)정부조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준정부조직은 정부기관 밖에서 정부업무를 보조하는 조직으로, 순수 민간조직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혼합영역(Mixed public-private sector), 비영리영역, 회색영역, 비정부영역등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부산시와 정부가 BIFF총예산의 2분의 1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BIFF 한 해 예산은 약 120억원이다. 부산시 예산 약 60억원이 영화제 전체 예산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정부예산도 영화티켓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영화발전기금을 재원으로 하여 영화제 예산에 포함된다.
2014년 BIFF의 총예산은 123억5천만원이었고, 이중 부산시 예산 60억5천만원과 정부예산인 영화발전기금 14억6천만원이 총예산의 75%를 구성하였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정부지원액이 총수입액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기관은 공공기관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므로 BIFF는 지방정부 예산 및 기금이 전체 예산의 1/2을 넘고 있어, 그 실질이 공공기관의 하나인 준정부기관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영화제측의 정책· 관리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지방정부의 영화제에 대한 책임도 사실상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가 영화제에 국민의 세금을 지출하면서 아무런 비용감사, 성과평가등 통제를 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책임행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기보다 접점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준공공기관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 시급
비단 BIFF문제 뿐만 아니라 준공공기관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공부는 그 산하기관으로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등의 기관을 두고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각 기관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따르고 있는데, 공공기관의 의장과 임원을 구성하는데 있어 대통령과 기획재정부장관의 영향력이 크다. 이는 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명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하여 운영위원회의 심의 의결 후, 주무기관의 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는 그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와 이사회가 선임한 위원으로 구성된다. 운영위원회는 기획재정부장관을 위원장으로 두며, 위원회의 구성은 다시 기재부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한다.
이처럼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대통령과 기재부장관의 재량을 대폭 축소하고, 국회의 추천과 동의를 받자는 것이다. 운영위원회의 추천권한도 국회와 분담하여 독립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민수)
결국 BIFF사태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의 시급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종국(2015),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전말’, 오늘의 문예비평 통권 제98호
김정수(2003), ‘문화행정의 환상과 실상’, 한국행정학회
김민수 심정화(2013), ‘영화산업을 통해서 본 한국의 문화국가원리와 표현의 자유’
신복용(2012), 「예술지원기관의 자율성에 관한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