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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스 영화 사조, 누벨바그] 트뤼포의 영화 사랑, 삼 단계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퇴행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영화가 그러하였다. 영화 종사자들은 게을렀다. 창작 시나리오 없이 유명 문학작품을 각색하기 바빴고  창의성보다 오락성에 매달렸다.  스타를 동원하여 생각하게 하는 영화보다 보기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오락성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관객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정보를 흡수하는 미숙한 이들로 간주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영화들이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품이 쏟아져 나오듯이 생산되었다. 

원인은 전후 할리우드 영화의 과대한 수입이었다. 생존에 위기를 느낀 프랑스영화제작자들은 수입쿼터제를 만들고 상업성을 추구하는 표준화된 영화를 찍어낸 것이다.   

하지만  ‘쉬운 주제를 즐기는 단순한’ 대중으로 취급되었던 관객들은 관습화된 영화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관객들은 ‘영화는 허구한 날 왜 저럴까?’라며 기존의 영화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습관과 일상화라는 순응주의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영화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탈순응주의의 힘으로 형성되기 시작 한 것이다. 


◆새로운 물결의 전조 : 자유롭고 건강한 여성, BB 그리고 ‘카메라-만년필 이론’

새로운 요동은 56년  22세 배우의 등장으로 가시화되었다.  BB로 애칭되는 브리짓드 바르도는 영화<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에서 과거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기를 들었다. 

요조숙녀의 이미지 대신 자유롭고 건강한 여성.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는 단정함보다 천방지축이면서 야성적인 여성. 이러한 순응과 구속에서 해방된 여성이 탄생한 것이다. 

BB가 지닌 여성이미지는 여성관에 대한 새로운 변화이며, 동시에 사회변혁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질적 변화는 실증적으로도 나타났다. 

57년 프랑수아즈 지루는 잡지 ‘렉스프레스’에 「새로운 물결(누벨바그) : 젊음의 초상화」라는 여론조사를 실었다. 

기사의 내용은 새로운 세대는 기존세대와 다르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회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움직임이 예상되는데, 미래사회를 이끌어나갈 신세대들은  기성세대의 것과  다른 의복, 도덕, 가치관, 삶의 방식, 문화적 태도를 지닌다는 것이다. (김남연) 

여론조사는 영화에 대한 태도도 바뀔 것으로 전망하였다. 새로운 세대는 영화를 시간을 보내기 위한 ‘보는 오락물’에서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사색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의미가 된다. 

관객들이 과거의 전통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실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변화의 요동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변화에 대한 희망은 새로운 영화언어를 등장시켰다. 오락으로서 표준화된 영화가 아니라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영화를 강조한 이론이 나타난 것이다.  

알렉상드로 아스트뤽은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탄생, 카메라-만년필>이란 글에서, 영화는 생각과 관념을 옮기는 도구라는 ‘카메라-만년필 이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영화는 하나의 표현방식이 되어가는 중이다. 한 시대의 모습들을 담아두던 도구였던 영화는 점차 하나의 언어가 되어갔다. 이를 통해 예술가는 그의 추상적인 생각까지도 표현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소설이나 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강박관념을 옮겨 낼 수 있다.”며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전망하였다. 




◆ 영화 사랑, 삼 단계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요동이 증폭되어  새로운 균형점을 만들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반등의 요동은 자칫하면 다시 균형점을 넘지 못하고 내려앉을 수 있다.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수동성에 다시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와의 균열을 단절로 연결시키는 힘은 반복적인 요동들이다. (김정숙) 반복적인 실험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때 비로소 임계점을 뚫고 새로운 균형점을 만들게 된다.  

지속적인 요동들의 증폭은 반복적인 치열한 실험인데, 이는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비롯되었다. 

누벨바그의 기수이며 영화<400번의 구타>를 만든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첫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1858~1963에 탈순응주의 기치를 내건 프랑스의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는 이렇게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탄생하였다.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로, 자크 리베트등 누벨바그 5인은 과거 게으름과 오락성에 기초한 공장 생산식 영화제작에 저항하여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누벨바그 기수들의 영화사랑 첫 단계는 영화 보기이다. 이들은 1940년대 말 앙리 랑글루아에 의해 설립된, 국립 예술 전용 극장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감상과 토론을 통해 영화를 익히고 영화의 이론과 실기에 눈을 떴다. 

고다르에게 있어 랑글루아는 정신적 아버지였다. “나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앙리 랑글루아라고 불리는 한 아저씨를 발견하였으며 그는 내게 영화라고 불리는 트릭을 만들어낸 세계에 접근할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나는 곧 약간 이상한 사랑에 빠졌다. 전이의 사랑, 영화에 대한 사랑이었다.”(김성태)

그들을 이론으로 무장시킨 것은 비평이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들은 통째로 외워버릴 정도로 영화지식을 쌓은 이들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는 영화 사랑의 두 번째 단계였다. 

그들은  앙드레 바쟁이 편집장이었던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자유롭고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켰다. 아스트뤽의 카메라-만년필의 이론에 기초하여  비평을 쓴 그들은  상업적인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감독의 스타일을 관철시키는 장인 아닌 작가주의를 강조하였다.  누벨바그를 정의할 때 작가주의, 저예산주의, 로케이션주의를 꼽기도 하는데, 이러한 이론들이 비평을 통해 축적되어갔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마침내 철저한 이론무장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영화사랑의 3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고다르도 “글을 쓰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행위 사이에는 질적인 것이 아닌, 다만 양적인 차이만 있다.”며 비평과 제작을 동일시하였다. 이처럼 누벨바그의 위대함은 영화비평을 통해  이론적인 토대가 완성되었고, 이 이론이 다시 영화제작으로 증명되었다는데 있었다. (김태희)

누벨바그 감독들은 전통적인 형식과 내용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형식의 구성이 내용을 창조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표현 관습을 파괴하고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하였다. 여태까지 지켜져 온 영화 속의 불문율을 의도적으로 부정하였다.  

이는 과거와의 단절을 야기하는 반복적인 요동들의 증폭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연관성 없이 이어지는  점프 컷을 시도하고, 핸드 헬드 기법으로 주인공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숏트의 연결로 편집을 강조하는 대신, 롱테이크로 현실을 그대로 포착하였다.  배우가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는 고전적인 영화 연출에 대한 금기도  어겼다. (김남연)

이처럼 그들은 과거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표현양식을 담아냈다.  상업화된 영화의 물결에 저항하면서 영화를 통해 사회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는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누벨바그로 위치하게 된다. 


 반복된 요동과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 기수들은 영화의 관습화된 형식을 거부하고, 영화를 상업적인 논리에 서 해방시켰다. 이러한 노력들은 영화사의 위대한 사조, 관습대신 창의로 무장된 ‘새로운 물결’을 탄생시켰다.

프랑스 영화의 표준화되고 관습화된 양식에  지쳐버린 관객들이 변화의 씨앗이 되었고, 누벨바그 기수들이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이러한 요동에 변화의 증폭을 가하였다.  

기존 질서의 구조적 체계를 넘어서 임계점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현상유지의 안락함에 젖어들게 된다. 누벨바그 기수들은  자기 질서의 강화를 거부하고 영화라는 언어의 혁신을 시도하였다.  

‘과거와의 낯설게 하기’라는 反순응주의는 새로운 물결을 탄생시키기 위한 요건이 된다.  누벨바그의 위치 지움은 사고의 不動성, 기존 질서의 부동성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영화 언어의 혁명은 영화사조에 획을 긋게 된다. 이는 작은 움직임인 반복적 충격들의 결합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현재의 요동은 과거에 대한 극복의 결과이다. 이러한 현재의 요동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를 향한 줄기찬 실험과 반복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요동이 안정적 질서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그 질서의 강화가 나타나는 것은 잇따른 새로운 실험들이 등장하지 않은 탓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배우고, 카이에 드 시네마에서 영화에 대한 이론을 습득하며,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누벨바그 기수들은  게으름과 무력함으로 안주의 착각에 매몰되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반항과 새로운 균형점으로의 이전을  삶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영화에 대한 사랑을 품고 상투성에  일격을 가하는, 보고 쓰고 만드는 실험적 반복 행위들이 현상을 넘어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를 탄생시킨 것이다. 


<참고문헌> 
김정숙 (1998), 「영화에 관한 선형적 사유방식과 그 극복 가능성에 관한 연구:누벨바그 영화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김남연외(2007),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통 : 프랑스의 누벨바그”,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21집 
김태희(2008), 「영화이론과 연출」
김성태 (2004), “프랑스 누벨바그”, 「세계영화사 강의:초기 영화에서 아시아 뉴 웨이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