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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자객 섭은낭>리뷰 : 통념에 대한 전복

무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대립이 격심했던 시절의 당(唐)나라이다. 고위관료의 딸로 태어났으나 정적을 없애는 刺客으로 길러진 섭은낭은 스승으로부터 위박 지역의 절도사인 전계안을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은낭에겐 칼과 심장의 부딪침이다. 계안은 어린 시절 정혼했던 사랑하는 남자이기 때문.  자객 본연의 자세로 은낭의 심장이었던 계안을 찔러야 하는가? 

심리적 딜레마에 빠진 은낭, 그녀의 선택은 무엇인가? 




◆ 과시하지 않고 겸손하게

이 영화는 겸손하다. 스토리와 스타일이  느리고 단조롭다.  

무협영화나 심리 영화에서 발견되는 스토리의 롤러코스트적 짜릿함은 억제된다. 

짧은 장면들의 연결로 박진감 있는 영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길게 찍어대니 이리저리 장면을 붙이지도 못한다. 그래서 영상의 조작도 없다.

인물의 심리 묘사를 위해 카메라를 혹사시키지도 않는다. 

카메라가 인물을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며 캐릭터의 연약함이나 위압감을 보여주는 대신, 그저 평평히 바라다 볼 뿐이다. 

또한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에 근접해서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슬픔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인물은 배경 속의 하나가 될 뿐이다. 캐릭터는 두드러지지 않고, 과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영화는 소박하다. 


◆‘보여주라’ vs ‘너가 봐라’

그럼 은낭의 갈등과 딜레마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잘 보면 된다. 아니 좀 달리 보면 된다. 

이 영화에서  칼은 호쾌하게 싸우라고 둔 물건이 아니다. 은낭의 칼은 찌르지 않고 막아낸다. 

또한  카메라가 인물들을 바라보지 않고 은낭의 눈이 인물을 바라본다. 너울거리는 반투명의 가림막 너머 은낭이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주변 인물들 간의 대립과 소동등 영화의 주요 줄기에서 벗어난 에피소드도 은낭의 내면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좀 부지런히 화면을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관객이 감독에게 ‘보여주라’며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관객에게 ‘너가 봐라’고 말한다.  역전의 관람방식이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에 이골이 난 이들에겐 이러한 소박하고 느리고 밋밋한 방식이  인물의 아픈 심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매혹적인 사실주의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건조하고 단조로움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배경에  미적 풍요로움이 넘친다. 

비록 이 영화는 표면상으로 심리묘사를 사실주의 스타일에 의존하지만, 동시에 영상의 질감은 한 폭의 회화를 전달하는 매력이 있다. 

사운드도 말을 한다. 바람소리와 자연의 소리는 인공과 가식을 배격하고 알몸으로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매혹적인 사실주의라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통념에 대한 전복

자극적인 맛과 속도감에 익숙한 우리는 어쩌면 심심하고 평범한 모습에 그리고 다소 수고를 요구하는 방식에 존중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발이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와 혁신은 이렇게 통념에 대한 전복으로 달성된다.  무협의 장르에 심플한 스타일을 충돌시켜 새로운 변증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 익숙하면 화려한 미래는 없다. 반면 과거에 새로운 양식을 덧붙여 다소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면 그 결과는 창대하다.  

68회 칸국제영화제는 허우샤오시엔에게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2월4일 개봉, 106분, 무협 액션 드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