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두 대가 100m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있다. 운전자들은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둘 중 하나가 충돌 직전에 비껴가면, 이 겁쟁이는 패배한다. 하지만 아무도 겁보로 낙인찍히기 싫어 정면충돌하면, 둘 다 다치거나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된다.
이 게임에서 승리자는 누가 될까? 무조건 직진하겠다고 말한 자가 이긴다고 게임이론의 하나인 ‘겁쟁이 게임’은 말한다.
만약 A운전자가 직진한다고 먼저 선언하면, B는 직진대신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A의 직진에 B도 직진하게 된다면, 정면충돌로 둘 다 무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A의 보수, B의 보수)= ( -10,-10)이 될 수 있다.
하지만 A의 직진에 B가 피할 경우, B의 보수(payoff)는 정면충돌보다 훨씬 증가한다. 무서워서 피한 겁쟁이라는 조롱은 참을 수 있어도, 이 보다 더 큰 손실인 목숨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직진, B회피)의 두 경기자의 보수는 (4,-4)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B는 질주대신 회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 직진이다’라고 선언한 A는 B가 회피를 선택함에 따라 게임의 승리자가 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A가 피하지 않고 직진 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거다. A의 직진 선언은 말 뿐인 빈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말에 신빙성이 있기 위해서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핸들을 뽑아버리면 된다. 아니면 핸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용접을 해버리면 더 이상 방향을 틀 수 없게 된다.
A가 핸들을 뽑아 자신을 향해 흔드는 광경을 본 B는 결국 비껴가게 된다는 것이다.
◆ 핸들을 뽑은 청와대
행정입법에 의회가 수정권한을 가지는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정부와 의회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좀처럼 상호 협력의 여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의회의 행정입법 수정권한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거부권 행사를 천명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라는 두 자동차가 국회법개정의 충돌로 인해 서로를 향해 질주해 가는 가운데,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는 대통령의 단호한 결의로 읽혀지고 있다. 이는 마치 핸들을 뽑고 직진하는 자동차를 연상하게 한다.
◆ 야당의 선택은?
그렇다면 국회의 선택, 특히 야당의 선택은 무엇인가? 겁쟁이게임 이론에 의하면, 야당은 마지막 순간에 충돌 대신 핸들을 돌리게 된다. 회피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야당이 국회법 개정 조문에 강제성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청와대가 개정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면충돌 양상이 벌어질 경우, 야당의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만약 청와대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가 이 법안을 재의결 할 경우, 개정 법안의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높다. 재적의원 1/2출석에 이 중 2/3찬성이 필요한데, 대통령 의중을 파악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내년 총선의 공천을 고려할 경우 찬성표를 던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법이 폐기된다면, 행정부는 자신의 행정입법에 대한 권한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반면, 야당은 애써 쌓아올린 노력이 일시에 물거품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행정부의 힘에 굴복했다는 굴욕과 상실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야당은 기존의 강경입장을 완화하여, 회피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 일 수 있다. 즉 조문에 다소 유연성을 보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청와대의 비협조의 위험 – 죄수의 딜레마
하지만 야당이 충돌대신 회피를 선택할 경우 불거지는 문제는 야당의 협력에 정부가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즉 야당이 협력했는데 정부가 협력 대신 배신을 할 경우, 야당의 협력 의사결정은 더 낮은 보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서로 협력을 할 경우 (행정부, 야당)= (3,3)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야당이 법안에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정부도 이 수정 법안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와 야당은 각각 (3,3)의 보수를 얻는다.
하지만 야당이 협력하고 청와대가 배신할 경우, 즉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보수는 (행정부, 야당)= (5,-1)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수정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법안을 폐기하게 된다면, 야당의 협력은 더 큰 타격을 초래한다.
결국 야당은 정부가 협력대신 배신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청와대, 거부권 행사할 것인가? - 눈에는 눈, ‘tit for tat’
그렇다면 야당의 협력에 정부가 배신이라는 비수를 들이댈 것인가?
이에 대한 실마리는 정부와 야당의 게임은 한번으로 끝나는 단일 게임이 아니라 반복게임 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복게임을 하게 될 경우, 경기자들의 보수에는 현재의 이익뿐만 아니라 미래 기대이익도 고려하게 된다.
대체로 합리적인 이들이 협조하는 이유는 지속적인 협조관계가 가지는 미래의 기대이익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보수는 현재시점의 보수와 미래의 기대이익의 현재가치의 합이 된다.
또한 반복게임에는 직전 게임에서 상대가 배신을 저지를 경우, 이번 게임에는 상응하게 보복을 하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tit for tat’ 전략이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청와대가 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후 재의결에서 국회법을 폐기한다면, 당장은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게임에서, 이 거부권은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부가 원하는 구조조정법률안의 통과,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이 야당의 협력 거부로 줄줄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는 시행령 권한을 유지한다는 명분만을 얻고, 이보다 더 큰 법률통과라는 실익을 잃게 되는 愚를 범하게 된다. 법률을 통과시키지 못하여 발생하는 미래 기대 손실의 현재가치는 행정입법 권한 유지라는 명분의 현재 이익보다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이다. 小貪大失인 셈이다.
따라서 미래 기대이익까지 고려한 보수는 수정된다. 즉 (행정부, 야당)의 보수는 현재의 이익만을 고려할 경우 (5,-1)이지만, 미래 기대이익 까지 고려할 경우 (-5,-1)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야당이 협력을 표명할 경우, 정부도 이에 조응하여 협력으로 화답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 국회법 개정 협상, 그 이후
결국 이 게임에서 모두에게 유익이 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당연 상호협력이다. 야당도 개정안의 일부를 수정하고 정부도 이 수정안을 비토하지 않는 것이다. 야당의 건설적인 협력에 대해 청와대도 이에 화답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 된다.
그러므로 청와대는 야당에게 협력의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신빙성 있는 청와대의 공약(commitment)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게임의 협상력에서 청와대가 의회보다 우위에 선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강력한 대통령제하에서 이는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이러한 정치구조에서 의회의 시행령 수정권한은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었다. 내각이 행정부로서 국가 운영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에서, 의회의 행정부와의 권력 분립은 사실상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국회법 개정협상과정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한계와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강력한 대통령 하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가 추진하는 오픈프라이머리의 실현은 안개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국회법 개정을 주도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개혁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유권자의 성향 스펙트럼에서 가장 폭 넓은 범위를 차지 할 수 있는 확장성 있는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새누리당의 보수세력의 견제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차차기 대권후보로서의 지위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용돌이의 국회법개정에서 최종 승자는 박근혜대통령이다. 그의 강력한 통치는 어떠한 난관에도 쉽사리 약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게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