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따뜻하다고 마냥 좋아해주지 않고, 비록 음흉해도 똑똑하면 선택한다.’
이는 지난 5월 영국총선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 5월 7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단독정부를 구성하였다. 보수당은 총 650석에서 과반수를 넘는 330석을 획득한 반면, 노동당은 232석에 머물러 1987년 총선 이래 최악의 참패를 당하였다.
이러한 총선결과의 원인은 무엇인가? 노동당의 패인 여론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보수당은 유능하고, 노동당은 일 못하는 무능한 정당이라는 유권자들의 인식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먼저다’라는 감상적인 슬로건은 더 이상 선거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현실적인 호소가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 들 수 있다.
새정치 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이진복 연구위원은 <2015년 영국 총선 분석 :망상의 정치를 넘어서>라는 보고서에서 노동당 총선 패인과 그 대안을 분석한다.
▣노동당 패인 규명 여론조사
◆ 실력 부족, 리더십 부족
노동당의 주요 참패 원인은 유권자들이 노동당은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 노총 (Trade Union Congress)이 실시한 노동당 패인 분석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동당이 보통사람 편이지만 일을 못한다고 유권자들이 인식한 탓에, 노동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노동당에 투표하지 않은 세가지 주요 요인은 △노동당이 경제운영능력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점 △복지 시스템에서 너무 관대한 점 △스코틀랜트 민족당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할 것으로 예상된 점등이었다.
반면 다수의 유권자들이 보수당에 투표한 이유는 △보수당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고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 △보수당의 캐머런이 노동당의 밀리밴드보다 더 좋은 총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 유권자들은 노동당이 경제를 운영하고 성장시킬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밀리밴드의 리더십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 노동당이 참패를 당하게 된 것이다.
◆ 포용적성장의 지지
동 조사에서 분배에 대한 인식과 관련, 유권자들은 사전분배 (pre- distributidon)를 재분배 (re-distributidon)보다 더 선호하였다.
여기서 재분배는 최상층에 증세를 하고 이 재원으로 복지를 확대하는 분배방식을 말한다.
사전분배는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과 연결된 개념이다. 포용적 성장의 달성은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을 동시에 고려한다.
수요측면은 임금인상으로 증가한 소득으로 소비를 늘린다는 것으로,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는 사전적 분배를 말한다. 최근 야권에서 주장하는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성격이다.
또한 포용적 성장은 진보적 공급측면 어젠다 (progressive supply-side agenda)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이에는 △노동력의 생산성 증가 △교육의 기회 △혁신 및 지역 클러스터 지원 △長期 관점주의 △ 공공재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 △혁신환경 조성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포용적 성장은 노동당의 전통적 경제사상인 단기 수요측면의 케인주의 이론에 공급측면을 접목하여,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의 상호 선순환을 강조한다. 이는 임금인상은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와 혁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 노동당의 성찰
노동당은 선거의 참패는 보통사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국판 강남좌파의 득세와 망상의 정치에 사로잡힌 결과로 분석한다.
◆ 영국판 강남좌파 (Hampstead Heath political elite)
노동당의 참패 원인의 하나는 당의 지도층이 보통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특권적 사회계층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대개가 좋은 거주환경에 자녀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특권층이라는 것이다. 잉글랜드 남부출신인 밀리밴드 전 노동당 당수등의 특권 계급의 득세는 일하는 사람을 대변한다는 정당에게는 취약점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편안한 곳에서 안주하는 영국판 강남 좌파정당의 문제는 사회 밑바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학문적인 진단만을 내린다는 것이다. 또한 아카데믹한 담론과 용어를 사용하여 유권자들과 제대로의 소통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 한 노동당 활동가는 “우리는 선거에서 대가를 치렀지만 거의 경제적 고통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해법을 상상할 뿐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그는 “우리는 국민이 왜 불안해하는지 모른 채 우리의 비전만을 팔고자 하였다. 우리는 국민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들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밀리밴드의 강남좌파계층은 보통사람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결국 당심과 민심이 이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망상의 정치 (the politics of delusion)
△보수당 지지 부동층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망상=
노동당은 보수당 지지 부동층의 지지가 없어도 이길 수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국판 호남인 스코틀랜트, 웨일즈에서 우세를 강화하고, 잉글랜드 수도권에서 보수당 지지 부동층의 지지를 획득해야만 승리할 수 있었다.
△중도는 없다는 망상=
글로벌 금융의 여파로 정치적 중도는 진보로 이동하여, 더 이상 중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따라서 ‘제3의 길’의 소심함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중도가 진보로 이동했다는 믿음은 부질없는 기대였다.
△기업의 지지를 받으면 구태라는 망상=
노동당은 중소기업의 정당임을 자칭하였으나 중소기업의 지지도 대기업의 지지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 반면 보수당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스타트업 기업등 재계 전체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므로 노동당이 경제운영능력의 신뢰를 복원하고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지지 확보는 필수라는 것이다. 일례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친화 (pro-business)정당을 내건 노동당의 블레어는 세 번의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망상의 전략
노동당의 실패는 전략의 실패였다. 대표적으로 진영논리의 계급정치(‘on your side’ class politics) 에 복종한 것이다.
밀리밴드는 노동당은 노동자의 편, 보수당은 부자의 편이라는 그릇된 계급양극화 메시지를 강조하였다. 이는 고통 받는 중산층을 외면하여, 중산층의 소외감을 유발하였다는 것이다.
즉 밀리밴드는 최상층 2%에는 적대적이고 최하층 10%에는 동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중산층은 노동당이 중산층의 불안에 침묵한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 노동당의 혁신 방향
노동당이 ‘망상의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된 대안이 토니블레어 전 수상의 ‘제3의 길’이다.
이 제3의 길은 중도원칙으로, 블레어는 중도화로의 복귀가 노동당이 집권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크게 경제와 정치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
①유능한 경제정당 (party of economic competence)을 만든다. 경제를 잘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노동당은 마음은 따뜻하지만 우둔하고, 보수당은 음흉하지만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즉 당은 따뜻하고 배려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근로와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② 포용적 성장을 추구한다. 즉 경제적 불공정만인 아니라 거시 경제에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성장 동력에 대한 논쟁을 해야 한다. 불평등 축소를 말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 혁신, 투자, 더 높은 생산성을 말하지 않는 지도자는 유권자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③ 기업 친화적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기업이 성장의 엔진이라는 신념으로 부자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정치 =
①신뢰받는 리더십을 구축한다. 보수당의 승리는 리더십 면에서 캐머런이 밀리밴드보다 더 좋은 총리라는 유권자들의 인식에 빚지고 있다.
②진영에 안주하지 않는다. 불편할지라고 다른 진영의 최선의 아이디어를 포용 융합한다. 좌파보수의 진리 독점 관념을 타파하여 진보의 영토를 확장한다.
③국민의 삶을 우선시한다. 정치엘리트의 기득권만 강화하는 차별화의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에 집중한다. 또한 이익집단에 영합하는 백화점식 공약나열을 배격하고, 일관된 서사구조를 갖춘다.
④인기 없는 결정을 취할 수 있다. 보수당은 국익을 위해 인기 없는 정책을 실천하는 용감한 정당으로, 인기가 있든 없든 필요한 것을 한다고 국민은 인식한다.
⑤공감의 정치를 펼친다. 시끄러운 소수가 아니라 조용한 다수를 위한 정치, 즉 생활인의 희망과 고통을 함께하는 공감의 정치를 펼친다.
⑥국민통합의 정당을 지향한다. 자연스런 수권정당의 스토리는 상대당 지지층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국민통합의 정당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