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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차이나타운>리뷰 : 엄마의 정치 - 이렇게 까지 해야 됩니까?

<차이나 타운>의 얼개는 어쩌면 낡은 작법으로 느껴 질 수도 있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져 이름이 일영이 된 그녀는  자신을 키워 준 조직의 엄마를 배신하고 엄마와 맞선다. 이런 전개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고만고만한 범죄영화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엄마와 일영의 대결이라는 영화의 중심 내러티브로 진입하게 된 배경이 단지 일영이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에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매끈한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다소 거친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미묘한 에너지가 솟구친다. 엄마(김혜수)와 일영(김고은)이 내뿜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만으로, 이 영화의 야심참을 설명할 수 없다. 





◆ 엄마의 法 

“이렇게 까지 해야 됩니까? 그래도 식군데.”

엄마의 심복인 우곤은 일영에 대한 엄마의 냉혹한 처사에 이렇게 묻는다. 혈육이나 다름없는 딸을 해치려하는 엄마의 생존의 방식을 우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여 유지되는 색은 처절한 핏빛이지만, 실제로  영화 전체를 감싸는 색감은 엄마의 색깔인 녹색이다. 오히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녹색이 목에서 뿜어 나오는 피의 선홍색을 압도한다. 

이곳은 도덕 원칙과 사사로운 감정을 실현하는 장이 아니다. 이 세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를 묻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는 자체가 지배도덕율이다. 

그래서 엄마는 이 세계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장식 없고 단순 명료한 원칙을 제시한다. ‘쓸모없으면 버려진다.’ 

즉 사람의 사용가치가 이 세계의 유일한 생존의 힘이다. 이처럼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는 계산을 통해 결합되어 있다.  도덕과 정이라는 붉은 윤리 개념은 세상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엄마가 다스리는 세계에는 사사로운 온정 대신 이 法이 군림하고 있다. 엄마는 주위의 회유와 개인적 애정에 좌우되어 이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만약 이 법이 외부의 힘에 의해 침식된다면, 조직의 기둥 또한 무너진다. 

그러므로 이 원칙하에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 엄마의 정치, 도덕의 역설 

이 영화는 개인의 부패와 탐욕에 초점을 두는 여타 범죄영화와 달리,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즉 조직의 리더십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영화에서 리더의 제일의 목표는 조직의 존속이다. 단지 이 목적을 실현 시키기 위해  리더는 법을 안고, 조직을 통제한다. 조직을 사수하기 위해 법을 붕괴시키는 방해물은 비록 식구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엄마에게 있어, 비윤리성은 제일의 가치인 조직의 사수, 존속, 그리고 승계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다. 
 
이러한 원칙은 중국의 한비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이 철학은 公을 위해 私는 희생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리더는 勢와 法으로 조직을 지배하고 術이라는 리더십으로 이를 운영한다고 강조한다. 세는 리더의 권한이다. 법은 리더의 철학이다. 술은 공을 세우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는 신상필벌의 원칙이다. 

심지어 公을 위해 리더 자신도 쓸모없다면 사라져야한다고 리더는 믿는다. 

이처럼 <차이나타운>은 부패한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리더의 관심은 탐욕의 흥건함 대신  조직의 생존이다. 그러므로 리더의 진정한 욕망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며, 조직의 계속성에 대한 불타는 애정이다. 

그래서 비윤리적 엄마의 정치는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개봉 4월 29일, 110분, 범죄드라마)
*이 영화는 오는  5월 13일에 개막하는 제54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공식 초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