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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순천'] 자연과의 공존, 건강한 모성성




갯벌 위로 짱뚱어가 펄쩍 뛰어오른다. 집게발을 흔들며 게가 옆걸음으로 엉금엉금 뻘밭을 헤친다.  그 진흙 깊숙이 꼬막이 숨죽여 숨어있다.

갯벌 저편에  백로가 한껏 순백의 정갈의 자태를 뽐낸다.  오리들은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모든 시름 내려놓은 듯  흔들흔들 유유히 헤엄쳐 간다.  

갯벌은 바람에 순응하여 고개를 숙이는 갈대를 키우고 있다.  바람의 리듬에 따라 황금빛 갈대들이 흥겨이 군무를 춘다. 

동네 아낙들은 가슴 위로 차오르는 물속을 유유히 유영하며, 하늘이 그녀들에게 허락한 몫만을 받겠다는 듯, 하루의 양식을 위해 물고기를 낚는다. 

한없이 한가롭고, 정겨운 이곳.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그곳. 욕망과 다툼 대신 하늘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이  脫俗의 공간은 바로  順天만이다. 


순천만의 사계의 풍광을 과장 없는 카메라에 담담히 담아낸 이홍기 감독의  <순천>은 <무진기행>에서 타협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아를 깨닫게 하는  상상의 도시 ‘무진’을 연상하게 한다. 


<순천>은  갈등과 욕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 나가는 현대인들에게 공존과 섭리의 진리를 강요 없이 흡수하도록  이끈다. 


△ 이 영화는  단지 자연으로의 회귀만을 말하지 않는다. <順天>은 하늘에 순응함은 운명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母性이다.  모성은 현실의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고 자신이 연약한 자의 안식과 피난처를 자처하게 한다.  이는 무한한 사랑이며 건강함이다. 

<순천>은 홀로 목선을 타고 고기를 잡으며 혹은  갯벌에서 꼬막을  캐면서  ‘밥 안줘?’라며 아이처럼 투정하는 남편을 그녀의  가슴에 담는  칠순의 여자어부 윤 우숙의 넉넉함을 이야기한다. 

술로 평생을 보내며 가족의 생계를 내 팽개쳐 온 가장은  일 나간 아내를 집 앞 소파에서 기다린다.  ‘당신 때문에 내가 망했다’라는 원망의 소리 한번 할법 한대도, 그저 지아비에게 ‘술 마시지마’라는 타박으로 그치는 그녀에게 모성의 강인함을 발견한다. 

바다를 밑천삼아  혼자의 힘으로 1남 5녀를 키워 출가시키며 무능한 남편을 거두는 윤 할머니의 모성적 실천과 돌봄은 희생이 강요된 헌신이 아닌,  생명 키움의 기쁨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윤 할머니에 던져진  감당하기 힘든 고군분투는 행복으로 자리매김 된다.


이는 정지용의 <향수>의 한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여기서 이삭 대신 꼬막으로 대체하면 이 시구는  윤 할머니의 주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의 정에 대한  묘사가 될법하다. 


<순천>이 갯벌과 철새·갈대의 공존처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응을  눈부시게  묘사한 점과, 윤 할머니의 모성성의 건강함을 제시였다는 점이 2014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초청 되는, 그리고 포큐스꼬레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64분, 장르: 자연·휴먼 다큐, 상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