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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유의 언덕>리뷰 : 시간의 격렬한 뒤섞임 - 청년 정신으로 무장한 끝없는 실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반복의 전략으로 설명된다. 일부의 평자들은  주제의 반복과 구성의 반복으로  영화가 결국 무의미로 종착된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별것 없는  동어반복에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관객들은 훈련된 결과 그의 작품에 열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에서도 예의 반복이 내러티브 구성, 형식, 주제 등에서 동원된다.  

우선 기존의 고착화된 얼개를 차용한 것은 전작들과 다름없다. 이번 영화에도 ‘남자가 여행을 떠난다. →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섹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라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모리가 권을 찾아 서울 계동 북촌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 그런데 자유의 언덕이라는 카페에서 카페여주인 영선을 만난다. 이후 같은 숙소에서 사는 상원과 술을  마신다. 그리고 영선과 섹스를 한다.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자유의 언덕>의 형식도 감독의 장기인 인과관계의 혼돈으로 관객들의 내러티브의 정렬의 시도에 장애를 가한다. 원인 이후 결과라는 선입선출의 질서를 무시하고, 결과를 던지고 원인을 살며시 제시하는 배열의 뒤섞임을 추구한다.  

또한  비루하며 무책임한 남자가 삼각관계에 휘말리고, 섹스 후 다시 다음날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수컷의 욕망과,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대상을 찾아 배회하는 연약한 남자의 욕망을 주체인 여자가 품고 보듬는다는 일관된 주제가  전개된다. 

이처럼 구성, 형식, 주제 면에서 동어반복의 기운이 강렬한  이 작품은 따라서 과거 작품들의 아류에 불과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 반복 아닌, 미래를 향한 되새김

혹자는 홍감독의 작품 전략인 반복을 과거를 향하는 반복이 아닌, 앞쪽을  향해 나아가는 되새김으로 정의 내리기도 한다. 즉 미래를 향한 도약을 위한 생산적 되새김이라는 것이다. 

홍감독 자신도 이러한 반복의 비판에 대해 ‘카테고리는 같으나 디테일이 달라진다면 새로운 경험’이 된다고 설명한다.   

<자유의 언덕>의 새로운 경험은 무엇보다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배열에서 과거의  느슨한 비선형성 대신 강도 높은 톱니 형 전개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인  서사구조의 해체가 격렬하여, 시간의 엇박자가 연속성으로 이루어진다. 

이의 카오스적 효과는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영화를 가져오는  pull의 느낌대신, 영화가 관객들을 향해 push하는 영화의 자신만만함이 드러난다. 이는 관객들이 마침내 영화와 타협하는, 그 속으로의  동참이 형성된다.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 혹은 현재의 원인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인과관계의 정석에서 익숙해져온  관객들이  나름의 내러티브의 정렬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동시에 이에 굴복하지도 않는 영화와의 대등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러한 평등의 위치에서 비로소  스토리 시간의 순서와 플롯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 불균질 속에서 강렬한 희열과 정화를 체험한다.

또한 파편적인 인과관계의 역전도 관객들에게 예기치 않는 흥분을 제공한다. 즉 결과가 서둘러 나서면, 원인은 한참 후에야 그제야 빙긋이 얼굴을 드러낸다. 

전혀 단서로 느껴지지 않는  대화나 사소한 사건이 부지불식간에  툭 던져지고, 영화가 한참의 거리를 달린다. 이러한 시간의 효과로  그 실마리를 망각한 관객은 실제 문제에 부딪칠 때는  정작 이 해결의 실마리의 끈을 이미 놓은 상태에 놓여있다.  관객들은 자신의 느슨함에 자책을 하고  무의미한 일상에  정보적 가치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따라서  투명하고 제공 되어지는  고전적인 내러티브를 내려놓고, 격렬한 비선형 톱니구조의 진행을 제시한 이 영화는  과거의 답습으로의 반복이 아닌, 미래를 향한 되새김으로의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 청년 정신과 장인의 탐구 

이러한 형식의 비선형 서술만이 이 작품의 특징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자유의 언덕>은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발견되는 관계로부터 소외되는 현대인들의 삶의 단면을 다시금 관조한다. 

남자친구 광현을 두고도 마음의 울타리를 찾지 못하는 영선, 주변의 간섭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남희와 남희를 찾는 아버지 병주, 그리고 사람에게 다가섬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  의성등, 모두 관계 속에서 상처받거나 위로받는다. 이는 감독이 시간의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관습을  ‘곤충학자’의 섬세한 눈으로 관조한 결과일 테다. 

하지만 <자유의 언덕>은 기존의 열린 결말로 지금까지 관객들에게 사고의 울타리를 열어놓은 반면, 결말을 제시하여 그 관계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관객들의 사고의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와 사랑스런 아내와 함께하는 우리네 소박하고 정겨운  가족의 모습이다. 물론 이 방향성의 선호는  관객의 선택이다.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앞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장면이나 인물 등에 변화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욕망과 필요성을 내 스스로 느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이러한 결말의 파격은 감독 스스로가 이러한 정주의 욕망을 찾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 점도 비슷한 카테고리 속에서  디테일의 변화를 시도한  실험으로 읽혀진다. 

홍상수 영화는 주제와 얼개의 반복 속에서, 또 다른 미세한 발전과 진보의 요소를 찾아내어 관객들의 욕구를 새롭게 채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영화는 끝없는 실험이라는 청년 정신으로 무장하여,  세련되고 섬세한  손끝으로 빚어내는 장인의 탐구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