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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리뷰 :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보리밥 된장국과 고무신 끌고 생활

수백을 헤아리는 걸인과 나환자들이 어머니! 어머니이!”하고 뒤를 따르는데 비행기 소리와도 같은 울부짖음에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평양과 서울에서도 많이 왔고 여기에 참례한 조객들은 기독교인이니 비기독교인이나 간에 전부가 저고리 소매에 검은 완장을 둘렀으며 인파는 오원 기념각에서 뒷동산 묘지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광주유사 이래 처음 갖는 사회장이었던 것이다.(천국에서 만납시다)

 

19346월 광주, 한센병 환자, 차별받는 여성등 버림받은 조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독일계 미국인 간호 선교사 서서평(Elisabeth J. Shepping, 1880~1934)의 장례식이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식장의 맨 앞자리에 있던 거지들, 나환자들, 평생 은혜를 입고 살았던 많은 회중들의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서평의 일대기를 그린 천국에서 만납시다의 저자 백춘성은 말한다.

 

서평선교사의 서거를 보도(1934628)한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慈善, 敎育사업에 일생 받힌(바친) 貧民慈母 서서평양 長逝(영면)”이었다.

 

그녀는 거지와 한센병 환자들의 이웃이었다. 양림천 거지들을 목욕탕에 데려가 묵은 때를 벗겨주고 옷과 음식을 제공하였고, 길에서 여자 한센 환자를 만나면 집으로 데려와 목욕시키고 밥을 먹였다. 영면하기 전, 그녀의 모포가 반장이 된 것은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을 가위로 반절로 잘라 나환자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서평은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거지의 어머니, 나환자들의 이웃, 조선간호부회를 창립한 조선간호학계의 개척자, 이일여성성경학교(현 한일 장신대)의 설립자 등이 그것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서평의 선교 활동을 統全(holistic)이라 칭한다. 서평은 개인구원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차별된 곳을 다시 회복시키는데 헌신한 것이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 오리엔탈리즘

 

서서평선교사의 조선에서의 삶은 조선에 들어온 일부 선교사들의 삶과 비교될 정도로 독특하였다. 서평은 철저히 조선인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동일화하였다.

 

서평이 조선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한 것과 달리, 일부 선교사들은 조선인과 분리된 삶을 살았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거주지역을 별도로 설립하여 미국 중산층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 선교사 특구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였다.(류대영) 그곳은 비누· 칫솔· 목욕통도, 연필· 종이도 없는 반개화된 조선의 사막 속에서, 재봉틀· 발전기· 오르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이층집등 각종 문명의 이기가 구비된 오아시스였다.

 

일부 선교사들의 만찬 식단은 미국 중산층의 그것과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기스프로 시작해서 커피로 마무리 되는 코스별 음식으로 구성되었다. (류대영)

 

선교사들이 조선인들과 거리를 둔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이분화를 부추겼다. 그럴 것이 조선의 거리는 사람과 짐승의 오물투성이었다. 도로 양옆의 시궁창에는 온갖 오물이 흐르면서 악취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 평민들의 집은 벌레와 해충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집 거리의 불결함은 온갖 병의 근원이었다. 1887년엔 콜레라가 온 나라를 휩쓸자 수천명이 쓰러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전한 선교구내 밖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풍토병에 걸려 순교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심지어 성경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실질적인 선교사업은 勸書로 대표되는 한국인 전도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선교사들은 권서들의 보고를 받는 2차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조선인과 거리를 둔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의 인식과 태도 에 있다는 지적이다. 성공 지향적 태도와 조선에 대한 부정적이고 우월적인 인식이 그들 성격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조선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평안한 삶을 살던 중산층 출신의 대학 나온 젊은이였다. 그들은 상류층 자녀들과 비교하여 더 위쪽으로 계층 이동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였다.(류대영)

 

일부 선교사들의 조선에 대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세계를 우리로 표현하고 서양 바깥의 다른 세계를 그들로 인식하는 서양 백인의 자문화중심주의를 말한다. ‘우리인 미국선교사들이 바라보는 그들조선인의 불결함과 가난함에 대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적 우월 의식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즐긴 조선인과 비교되는 격리된 서구의 삶은 이러한 배타적인 백인 우월주의에 기인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그들의 선교의 내면은 조선인 에서 조선을 ‘for 위한문명화의 선교를 이루겠다는 태도였다.

 

일부 선교사들은 상업의 탐험가요 개척자(explorers and pioneers of commerce)’라는 비판을 받았다.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금광을 미국 광산업자에게 넘겨 거액의 구전을 받았다. 석유 석탄 농기구를 수입하여 미국의 이익 확대에 기여하며 백만장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선교사들도 개인을 구원하고 학교와 병원을 짓고, 한글을 보급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들 행위의 이면에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상업성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물론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열심히 직업적 소명에 힘써 검약으로 정당한 부를 쌓는 행위는 신의 뜻과 합치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과 분리된 선교사들의 물욕적인 태도와 사치적인 삶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평범한 백성의 직업과 다름없는 허울뿐인 선교사의 소명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보리밥 된장국과 고무신 끌고 생활

 

하지만 서평선교사의 선교에 대한 태도와 조선에 대한 인식은 일부 선교사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서평의 삶은 예수의 그것과 같았다. 서평은 지극히 적고 가난한 자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머리 둘 곳도 없이 산 예수의 삶을 산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런 연유로 서평을 예수의 재생이라 표현하였다.

 

서평의 서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의 소제목은 보리밥 된장국과 고무신 끌고 생활, 자기 몸과 재산을 돌보지 않고 全心力敎育 慈善이었다.

 

서평은 무명베옷에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커피와 고기대신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었다. 게다가 매달 받는 선교비의 대부분을 교회와 걸인에게 기부하여, 생을 마친 후 강냉이가루 2, 동전 7, 모포 반장, 그리고 은행 당좌잔고 0을 남겼다.(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녀의 사인은 소화기계 풍토병인 스프루와 영양실조였다. 선교사의 하루 식대가 3원인데 반해 서평의 하루 식대는 언제나 10전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식대로 걸인들을 돌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종교에서 구제를 제해버린다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제는 사랑의 발로입니다. 제 아무리 십자가를 드높이 치켜들고 목이 터질 만큼 예수를 부르짖고 기독교 신자라 자처한다 할지라도 구제가 없다면 그것을 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라고 했다.(양창삼)

 

그는 또한 조선에 대한 서양인의 우월한 태도를 경계하였다.

 

동양적 생활의 높은 이상과 방식들을 과소평가하는 큰 실수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비기독교 동양인의 생활상태가 얼마나 비천하느냐와 상관없이 서구문명을 나름 이상화한 까닭에 과거에는 저평가하였지만 사실 동양에는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훌륭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고 했다. (양창삼)

 

이처럼 서평은 조선인보다 더욱 조선인다운 삶을 살며, 조선인의 삶 에서 그들과 함께’with 일하였다.

 

존 니스벳선교사는 서평의 장례식에 참석하던 날, 거실에 놓인 서평의 좌우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거실의 벽에 붙여진 좌우명은 이러하였다.

 

“NOT SUCCESS BUT SERVICE”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참고문헌>

류대영(2001), 초기미국선교사 연구 1884~1910

백춘성(1980), 천국에서 만납시다

양창삼(2012), 조선을 섬긴 행복 :서서평의 사랑과 인생

이종록(2015), “무명옷에 고무신 보리밥에 된장국

임희모(2015), “서서평 선교사의 성육신적 선교”,선교와 신학 36

차성환(2014), “근대적인 전문 사회사업의 선구자 서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