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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여성

[페미니즘, 보봐르] 여성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 여성은 만들어진다

“정말 아름답군요.”
“스미스의 모순이지”
“스미스의 모순?”
“그렇소. 여자야말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전혀 비례하지 않는 예가 될 것이오. 즉 물, 공기등은 그것 없으면 인간이 당장 살 수 없지만 값은 거의 없거나 없는 것과 비슷하게 싼 대신, 여자는 보석 따위와 마찬가지로 별 쓸모도 없이 값만 비싸단 말이오. 그걸 위해 돈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이름을 더럽히고 몸을 망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바치는 것들이 숱한 걸 보면·····.”(「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위의 소설 속의 대화는 아담스미스의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을 말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살아가는데 필요불가결한 재화가 아님에도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반면 물은 생존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지만, 다이아몬드에 비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교환되고 있다. 스미스는 이를 파라독스라고 표현하였다. 

소설은 여성을 폄하했다기보다 남성의  여성이 지닌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무분별한 열정을 경고하고 있다.  

분별을 상실하면 상식적인 결정 기준을 무시하게 된다. 시간과 돈이라는 교환가치(비용)가 여성의 외모라는 사용가치(편익)를 뛰어넘게 되면, 순편익이 마이너스가 된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몸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 자를  ‘얼간이’ 라고 표현하였다.   

소설에서 말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보석 따위와 마찬가지로 별 쓸모도 없는 미’를 말한다.  즉 보기엔 화려하지만 지속적으로 갈증만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미를 일컫는다. 
세상의 목소리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무분별한 열정에 빠져 들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 남성에 대한 타자로서의 여성

문제는 여성의 자극적인 미가 여성의 독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은 주체의 선호에 따라 변천해왔다. 즉 세상의 중심인 남성의 욕구에 따라 아름다움이 결정된 것이다. 

남성은 과거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노동력의 공급을 위해 여성의 다산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남성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출산에 유리한 건강한 몸매, 포동포동한 얼굴이 된다. 

현대 남성은 부의 축적에 따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남성의 욕망에 따라 여성의 미적 가치는 성적인 매력으로 바뀐다.  여성의 미의 기준은 남성의 구미에 맞게 자극적인 몸매, 젓가락 같은 다리, 작은 얼굴이 된다. 

여성들은 남성의 선호에 순응하여 성적인 매력을 가꾸어 여자대신 ‘여인’으로 만들어 진다. 

이를 보봐르의 언어로 표현하면, 남성이 주체고 본질인 반면 여성은 타자이며 비본질이 된다. 여성은 주체인 남성의 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타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 여성은 만들어진다

이처럼 보봐르는 주체인 남성에 의해 타자인 여성은 길러진다고 간파한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보봐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표현을 인용한다. 존재는 되어 지고 존재가 자기의 본질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성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남성중심의 문명이 그녀의 운명에 개입하는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여자다움, 온순함, 수동적인 면을 교육받는다. 여자의 행복은 ‘남자 잘 만나 시집 잘가는 것’이라 세뇌된다. 여성은 가정의 부엌과 침실에 갇혀진 자이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을 위로하는 존재, 다소곳한 존재로 남성의 위로가 되며,  노동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충실한 존재로 키워진다. 여성의 역할은 가정과 육아에 매달리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 목표는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은 힘세고 활동적인 동물과 관련되어 있고 여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식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이 남성이 중심이며 여성은 주변이 되는 세계에 뿌리 내린다. 


◆ 끝없이 남성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대자적 존재로서의 여성

보봐르는 여성의 비극과 딜레마를 이야기 한다. 보봐르는 여성을 대자적 존재가 아닌 즉자적 존재로 본다.  

즉자적 존재는 그냥 있는 것, 안정된 것, 대상으로서의 모든 사물을 말한다. 반면 대자적 존재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의식, 이를 초월하려는 자유의식이다. 

하지만 여성은 ‘있다’라는 대상화된 즉자적 존재로 파악된다.  여성의 존재 이유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봐르는 이를 여성의 비극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보봐르는 여성자신이 진정한 자각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한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대자적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성의 통념에서 벗어나 객체 아닌 주체, 타자 아닌 자아, 비본질에서 본질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대한 타자로서, 남성의 기호를 맞추어 생존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주체와 자아로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과 남성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성이 남성과 함께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가 된다. 

이는 여성도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즉자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자립하여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대자적 존재라는 인식이다. 

결국 여성은 끝없이 남성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타자로 여겨졌던 사람들이 더 이상 타자로 간주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여성은 가부장이 만든 여성상을 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러진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 가를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꿔야만 자신감을 얻고 사회적 지위도 얻게 된다고 믿는 것은 여성이 하나의 육체적인 존재라는 남성 욕망에 대한 복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의 아름다움 대신 ‘당당한 아름다움’을 과시할 때이다. 이럴 때 남성 중심성을 해체시킬 수 있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중심의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세상의 주변인이 아닌 중심으로서 세상을 변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성이 수용하는 남성중심의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이에 저항하고 편견을 무너뜨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여성은 더 이상 노동에 위치하는 사적인 영역의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담당하는 장인으로서 또한 공적인 영역에서 소통과 말하기를 하는 시민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어느 날 두 마리 개구리가 깊은 우유 항아리에 빠졌다. 이 개구리들은 항아리에 빠진 현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운 것이 었느나 항아리 안에 있는 우유를 마시면서 이러한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항아리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 사실을 안 한 개구리는  체념한 채 우유 항아리에 빠져 죽는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포기하지 않고 밤새 우유 안에서 헤엄을 쳤다. 아침이 되고 태양이 떠오를 때 그 개구리는 자신의 발이 제법 단단한 버터덩이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미숙)

<참고문헌>
시몬는 드 보부아르, 이희영 옮김(2009), 「제2의 성」
캐럴 페이트만외 (2004), 「페미니즘 정치사상사」
이미숙(1997), “여성의 삶의 질”, 목포대학교여성문제연구소
이문열(2005), 「젊은 날의 초상」
이혜숙(2010), 「여성과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