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새 경제’를 주창하였다. 새 경제란 경제 생태계, 방법론, 그리고 철학을 모두 아우른 것이다. 즉 경제 생태계로서 공정한 경제, 성장방법론으로 소득주도 성장, 경제철학으로 사람중심의 경제를 내세운 것이 ‘새경제’의 의미이다.
홍종학 새정연 정책위 수석 부의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새경제를 진보정당이 추구해 온 경제정책과 철학들을 ‘새경제’라는 한 단어에 집약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 새경제의 생태계 - 공정성 : 불공정은 배분과 재배분의 불공정성을 초래해
우선 공정한 경제란 “고래는 큰 바다에서 놀고, 작은 민물고기는 시냇물에서 놀아야 합니다.”라는 표현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의 과실을 분배할 때,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공정’이란 단어는 안철수 의원의 공정 성장론을 일부 차용한 것이지만, 새정연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현실 인식을 정리한 것이다.
불공정은 시장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등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가 이루어지고, 골목상권이 붕괴되고 있다. 대기업의 하청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등이 불공정거래의 예이다. 이러한 불공정 시장에서는 독일 중소기업 같은 히든챔피언들이 나올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압축성장을 추구한 탓으로, 대기업에 압도적인 특혜가 주어졌다. 낮은 이자, 유리한 환율, 낮은 법인세, 조세 감면등으로 대기업은 유리한 사업 환경 하에서 어렵지 않게 이윤을 축적하였다.
이 불공정한 생태계의 폐혜는 분배의 불공정성과 재분배의 불공정성을 가져온다.
재벌 3개 기업, 즉 삼성 현대 기아가 법인 이익의 37.3%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의 이익증가율은 근로자의 소득증가율보다 가파르게 증가하여, 사내유보가 금융자산등 업무무관자산으로 누적되고 있다.
또한 이 불공정성은 재분배의 불공정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16%대인 상태에서, 낮은 법인세로 인한 복지재원 부족으로 재분배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공정환경을 중소기업의 제도적 지원, 법인세 정상화등으로 공정한 시장경제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새 경제의 방법론 : 소득주도 성장
소득주도 성장은 “지갑이 채워져야 소비가 늘고 기업도 살아난다.”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내수를 늘리고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해, 부채주도성장 대신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이상으로 인상 △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영세사업자 지원 △ 생활비 경감 :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주거비 부담 완화, 교육비와 양육비 지원등을 내세웠다.
◆ 새 경제 철학 : 사람 중심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새경제를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이는 장기성장에 대한 토대가 된다.
우선 물적자본보다 인적자본의 축적에 우선 투자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육, 교육, 직업훈련, 보건, 문화, 안전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확충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성장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은 높아지며, 소비와 투자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 야당의 선명성, 희석화 될 위험에 놓여
문재인대표가 주창한 새 경제는 특권층의 불공정이라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불공정성으로 인해 대기업등에 막대한 이윤이 축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불공정성은 소득 양극화를 초래하는 배분의 불공정성을 야기하였고, 대기업의 감세등으로 인하여 재배분의 불공정성도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경제, 사람중심의 경제가 새경제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새정연의 이 주장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데쟈뷰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이다.
유원내대표는 현실인식으로 특권층의 불공정성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는 대기업이 정부의 특혜로 성장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문대표의 공정한 경제와 일맥상통한 인식이다.
게다가 유원내대표는 중부담 중복지를 강조함에 따라, 사람을 먼저 내세운다는 새정연의 경제철학도 일부 공유하였다. 이 지점에서 문대표의 공정경제와 사람중심 경제는 유원내대표의 연설내용과 오버랩 되는 것이다.
유원내 대표와 문대표의 경제인식의 차이는 경제성장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점이다. 문대표가 소득주도성장으로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방식을 주장하였고, 유원내대표는 부채주도로 인한 단기 부양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결국 두 대표는 공정성에 대한 인식은 공유하면서 경제성장 방법론에서 차이점을 보인 것이다.
△ 유원내대표의 명연설
유원내대표의 연설은 야당대변인이 칭찬할 정도로 명연설로 평가받았다. 왜 유원내대표 연설에 후한 점수가 매겨졌을까?
이는 자기편의 주장은 절대선이고 상대편의 주장은 절대 악이라는 도그마를 깼다는 신선함에 있다 말할 수 있다. 유원내대표는 보수는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상식을 무너뜨리고, 진보 진영의 특화된 주장인 저소득층과 약자의 입장까지 품는 대범함을 보였다.
게다가 유원내대표는 여당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대기업증세 거부라는 성역화된 이데올로기조차 한방에 날려 보냈다.
또한 유대표는 안보면에서는 보수를 굳건히 강조하였다. 외교 안보등에서는 보수, 경제 복지등에서는 진보를 표방한 것이다.
이는 과거 독일을 통일시킨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연상하게 한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를 탄압하고, 병기(철)와 병력(혈)강화로 독일을 통일시켰다. 동시에 의료보험, 산업재해보험, 연금보험등 사회보장제도를 세계최초로 추진하였다.
결국 유원내대표는 새정연이 선점하였던 공정한 경제와 사람중심 경제를 공유하면서, 경제성장방식에서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강조함으로서 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상대의 장점을 원용하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에서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에서 김종인박사를 내세워 경제민주화를 선점한 것이 중도층 공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교훈을 새누리당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와 야의 인식의 공유는 야당의 운신을 좁게 한다. 새누리당의 좌클릭 전략은 보수의 외연 확장보다, 진보측의 지지층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지 않도록 유도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정책상 유사점으로 인해 진보층이 적극적 정치 의사를 내세우지 않는 한계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18대 대선처럼 진보측 지지자들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의 의사를 투표로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다.
여당은 자기반성과 아울러 야당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진일보하고 있다. 야당이 단기 수요측면의 성장에 매달리고 있는 사이에, 여당은 공정성과 중부담 중복지라는 철학에 장기 성장까지 분명히 제시함에 따라 오히려 야당의 선명성은 희석화되고 있다.
야당은 보수당이 선거 때는 좌클릭하면서 선거 후에 다시 원상으로 돌아오는 관성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유원내대표의 연설을 대변인 논평으로 칭찬하고 있다. 야당은 아직도 제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다시 여당의 야당 정체성에 대한 잠식으로 인해, 녹록지 않은 정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