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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족구왕>리뷰 : 이야기의 몇겹을 벗겨내는 흥미로움

그 웃음 하나로도 세상을 초록빛으로 바꾼다



앞날의 고민으로 주눅 들고 시들어 있는 청춘들과 달리, 세상이 뭐라 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복학생 만섭은 없어진 족구장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총장에게 건의를 하는 등, 열정과 피 끓는 패기로 충만하다. 

만섭은 캠퍼스 퀸 안나의 남자친구이자 전 축구 국가대표선수인 강민을 족구시합에서 누른다.  설욕을 벼르는 강민과 만섭은 학교 족구대회에서 다시 맞선다. 

<족구왕>은 러시아 목각인형 마트료시카를 떠올리게 한다. 인형에 작은 인형이, 그 작은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이 겹 인형처럼, <족구왕>도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의 몇 겹을 벗겨야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낸다. 


◆ 한 겹

그 첫 겹은 애정의 삼각 관계이다.  여느 청춘들과 달리 때 묻지 않은 만섭의 순수에 이끌린 안나는 만섭에 관심을 보이고, 만섭과 강민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족구 시합을 벌인다.  

 학점2.1에 토익은 받아 본 적 없으나,  열정으로 가득 찬 파격 복학생 만섭과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강민 중 누가 공인 캠퍼스 퀸 안나를 쟁취할 지, 에필로그까지 팽팽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 두 겹 

하지만 이러한 러브 라인은 어쩐지 상투적이고 밋밋하다. 그래서 다시 한 겹을 벗겨본다. 그러자  청춘의 방황하고 좌절하는 맨 얼굴들이 나타난다. 

한 청춘은 과거의 상처로 신음한다. 부상으로 그의 모든 것인 축구를 포기한 전 국대선수 강민은 여전히 과거의 화려함을  과시하나  상처와 좌절의 응어리가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는 그저 허세뿐인 힘 빠진  청춘이다. 

또 다른 청춘은  미래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잔뜩 소심해지고 움츠러든  선배 복학생이다.  그는 베짱이처럼 살아가는 그를  질책하는 여자 친구와 3년 전 이별하고, 한 길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새싹처럼 용감하고 푸른 열정 대신, 두려움이 그를 휘감고 있다. 그의 여자 친구도 그와 이별 후 지나가는 계절의 변화에 무감각하게, 늘 겨울 파커만 입고 있다. 

과거의 생채기에 아파하고 미래의 압박에 숨 쉬기 조차 쉽지 않은 고단한 현실 앞에, 지친 영혼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 세 겹 

꽁꽁 얼어붙은 겹을 또 하나 제쳐본다. 그런데  지친 영혼들 앞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있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만섭이 족구공을 들고 있다. 이 족구공은 시들어진 가슴들을 푸르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복귀시키는 채널이다. 

가슴은 없고 머리로만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어느 시기에 있는가와 무관하게 늘 마음은 황혼이다. 

지금 현실은 한겨울의 시내를 맨발로 건너가는 듯한 통렬함이 가슴 한 구석을 찌르지만, 가슴의 또 한 구석에서 뜨겁고 치열한 열정이 솟구쳐 오른다면 당당하고 무모하게 그 차가운 물살을 헤치고 새싹 돋는 초원으로 건너 갈 수 있다. 

그렇다면 풀어 헤쳐진 흐릿한 정신을 팽팽히 당겨주는 그 무엇은 없단 말인가?

이 영화의 답은 만섭의 족구공이다. 과거의 실패와 좌절로 드러누워 있는 이들에게, 미래의 공포에 가위 눌려있는 자들에게, 족구공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횃불이 된다. 

만섭의 족구공은 강민과 선배에게 피 끓는 용솟음을 다시 안겨준다.  그래서 다시 사랑을 회복시켜준다.  모두 두터운 겨울 파커를 벗고 한 겹의 셔츠로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과거의 웅크림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그리고  “슬픔을 축구공처럼 저 만큼 날린다.” 

또한 미래의 냉기로 얼었던 가슴을 패기로 녹인다.   “히말라야 정상도 발 아래” 두며, “ 플라터너스 넓은 이파리 아래서도 그들의 꿈은 하늘을 덮는다.”

그래서 “그 웃음 하나로도 세상을 초록빛으로 바꾼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물음이 생긴다. 「나에게 준비된  족구공은 무엇인가?」

(개봉 8월21일, 1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