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열이 잘 맞춰진 책상 앞에서, 교사와 서로 마주한 채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교사의 강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학생들은 몇몇에 불과하다. 일부 학생들만 수업에 집중할 뿐, 나머지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핸드폰 문자를 보낸다.
이처럼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우리 학교의 모습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학교붕괴라고 꼬집는다.
학교 붕괴는 ‘학급에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생활지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황, 이러한 결과에서 나타나는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이 약화되는 현상’으로 정의 내린다.
학교 붕괴에는 ▲교사의 전문적 권위 붕괴, 학생들의 수업 참여 부진, 학생들의 과제 수행의 부진등을 나타내는 수업의 붕괴 ▲ 교사의 생활지도 불수용, 학생공동체의 응집력 균열등의 생활지도의 붕괴 ▲ 인성교육의 실패, 민주시민교육의 실패, 공동체성의 파괴, 공교육체제의 불신등의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의 붕괴 ▲ 학생에 대한 정보의 공유채널 파괴등의 교사-학부모의 파트너쉽 붕괴등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이라는 유기체와 학교라는 환경간의 상호작용으로 경험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고, 경험의 축적으로 성장을 이룬다는 교육의 본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식의 축적과 인성의 형성이라는 경험의 지속적인 재구성은 환경에서 열외된 학생들의 삶과 유리되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긴 세월 동안, 환경과 학생사이에 솟아 있는 두터운 높은 벽을 허물고, 소통의 물꼬를 트겠다는 각성은 경기도 남한산 초등학교등의 혁신학교에서 움트기 시작하였다.
단절과 소외에서 교육의 본질적 목표인 경험의 축적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깨달음과 헌신이 밑거름이 되어, 이제 혁신학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남한산초등학교의 한 졸업생은 “남한산초등학교에서 배운게 뭐냐?”라고 묻는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답하겠다고 말한다.
혁신학교는 수업에서 열외가 없는 소통의 장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친구들과 일상에 대한 나눔이 이루어지는 곳’, 이러한 행복한 학교를 꿈꾸고 있다.
혁신학교는 실험단계에서 이제 정착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학생과 학교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도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교육의 사례로 꼽히고 있는 외국 학교를 통해 혁신학교의 정체성을 다시금 정립해 볼 수 있다.
김승규교수는 일본의 타고우라 중학교에서 혁신학교의 모범을 찾는다.
◆ 아름다움에 도전한다.
이 학교의 교육철학은 ‘아름다움에 도전한다.“이다. 김교수는 아름다움을 ’학생들이 함께 서로 배움을 터득해 가고, 이를 통해 친구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일‘로 정의 내린다.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기초라는 믿음이다.
이 학교의 중점목표는 ‘사람의 말을 깊이 듣는다.’ ‘따뜻한 말로 서로 주고 받는다.’이다.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와 믿음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이 학교의 실천철학은 첫째로 ‘학생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한다.’이다, 둘째로 ‘수업에서 어느 한명의 학생도 배제하지 않는다.’이다. 한명도 제외됨이 없이 배움에 참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도 버리지 않고 모든 학생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존엄성의 구체적 실천적 모습은 교사의 ‘케어링’이다. 이 학교는 ‘사람은 케어링 받지 못하면 살아 갈 수 없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학생의 존엄을 소중히 여긴다는 케어링에는 교사가 ‘큰소리 내고 화내지 않기, 아이들의 이치를 조용히 들어보기’등이 있다. 교사는 학생들을 꾸짖기보다 따뜻하게 학생의 마음을 안아준다. 교사가 학생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 옆에서 친근감을 가지고 보살피며 도와준다.
세번째 철학은 교사도 쉼이 없이 배우면서 모두가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단순히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인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창조하는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 남녀 4인 혼합 소그룹
학생들은 4명의 혼합된 소그룹활동을 통해 경쟁보다 협동을 기른다. 이해가 빠른 친구와 더딘 친구들이 그룹을 이뤄, 함께 과제를 탐구하며 결론을 찾아낸다.
여러 명이 한 집단을 이루면 한 명의 특출한 리더가 나타나 주도적으로 팀을 이끌어 나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들러리가 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4명으로 한조의 인원수를 한정한다.
한조의 남녀 혼합구성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특징에 근거한다. 남학생은 결론을 도출하기 바쁘나 여학생들은 꼼꼼히 과정을 따진다는 것이다.
교사는 반드시 학생의 눈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보다 낮은 자세로 학생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 경우 교사들은 대개가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단지 학생들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등 탐구에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만 토의에 개입한다.
이 소그룹활동은 친구들 간에 서로 설명해주고 도와주는 깊은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어, 수업 속에서 생활지도가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교육 형태로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교실붕괴를 자연스럽게 방지할 수 있다.
◆ ‘공유’와 ‘점프’
이 학교는 사람을 깊이 존중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수월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를 위해 ‘공유’와 ‘점프’의 원리가 적용된다.
‘공유’는 모든 학생이 알아야 할 기초내용을 익히는 단계, ‘점프’는 안 것을 기초로 도약할 수 있는 응용력을 기르는 단계이다. 매 수업시간에 소그룹에서 학생들 간의 토의를 통해서 이해와 창의력을 배양한다.
수월성을 기르는 단계는 구체적으로 ‘앎의 4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알았다는 이해 단계, 내가 안 것에 대한 근거와 내용을 설명하는 단계, 내가 안 것을 내 말로 설명하여 설득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내가 안 것이 친구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고, 서로가 다르게 알고 있음을 지적하고 서로 다른 것을 배우고 조언해주는 단계이다.
이 모든 것은 소그룹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뒤처진 학생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이해가 빠른 학생들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다. 따라서 서로 협동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게 된다.
◆ 우리가 꿈꾸는 학교
김 교수는 학교가 학생에게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은 학생 개개인의 존엄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마음이 빈곤한 사람은 늘 어느 누구를 배제시키며 결국에는 자신까지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한 학생이라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나타내는 환경이 조성되어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야한다.
존 듀이는 교육의 과제는 능동적 미성숙 상태인 아동의 내부에 잠재력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아동이 성장하는 힘은 의존성과 가소성에 있다고 보았다. 의존성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의존성은 변화의 동인이 된다. 가소성은 경험으로부터 학습하는 능력이다. 경험의 결과에 기초하여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혁신학교의 목표도 이처럼 성장의 동인인 의존성과 가소성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타고우라 중학교의 케어링과 소그룹활동은 상호작용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학생 개개인들과 교사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또한 소그룹에서 친구들 간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의 학생도 버려지지 않는다. 이럴 때 학생들의 가소성이 발현된다.
결국 모두 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각각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들의 경험의 축적과 성장으로 사회의 한 축에서 소명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가치가 쓸모없이 버려지지 않고, 그들의 존엄을 소중히 하는 환경, 그리고 이러한 환경과 개인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곳, 이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