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영화

한국의 패션 선구자 노라 노 : 명자가 노라가 되기까지

한국의 '노라'들을 응원하며

 

한국 패션의 선구자며 혁명가인 노라 노는 어떻게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되었을까? 그녀의  성공이 부유한 집안의 딸로 미국 유학을 떠난 덕분이라  생각하기쉽다. 한국여성으로서 미국행 비행기를 탄 두 번째 인물이었다고 하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우선 그녀의 여고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녀는 수를 놓는 시간과 예법시간에 책을 읽고, 시험 기간에 하이힐을 신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등, 문학과 영화에 심취 했다.  비록  여성에게 강요된  전통의  길에서  일탈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과 영감을 기르게 된다. 그녀가 과감히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불확실성의 길을 선택한 용기는 그녀가 책과 영화를 통해서 습득한 영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노라노>의 GV에서 한 20대 초반의 관객이 자신도 이 영화를 보니 유학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고 말하자,  노라 노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끈 이 영화의 주인공 서은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어디를 가든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새로운 것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패션계의 고액연봉자의 한분도 한국 밖으로 떠난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또 하나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관련되어있다. 노라는 일본강점기에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모면하기위해 17살의 나이에 일본장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남편은 20여일의 결혼생활 후 전장으로 떠나게 되면서 평탄한 아내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19살에 그 당시 혼인하면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하는 강박에서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이혼의 혼돈과 고통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새로운 미지의 길을 걷기로 한다. 이 결정은 죽음의 끝에서의   구원이었다. 어느 누구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공포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갈망이었다.

 

무엇보다 노명자를 오늘의 노라로 이끈  동력은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이었다. 

 

역사의 변화의 주역들의 공통점은   현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노라노인 코코 샤넬이 71세의 나이로 패션계로 복귀한 컬렉션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실패작이었지만, <뉴요커>지는 그녀를 “결코 막을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생기. 그녀는 스무 살 여인이었다. ”라고 코코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변혁과 창조는 관습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자의 부산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라의 도전정신은 어디서 솟아난 것일까? 우선 그녀는  여성은 존엄한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졌다.그 믿음은 여성에게 자유를 허락해야한다는 신념이었다.

 

노라 노는  여성을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의 ‘노라’처럼   인형의 집에서 인형처럼 사랑받으며, 남편을 위해 노래 부르는 종달새가 아닌 자아를 찾는 가치로운 존재로 믿었다.그래서 그녀는 명자에서 노라로 개명한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음에도  자신의 명예를 먼저 지키려 한 남편의 배신에 각성을 하고 “두사람이 같이 살자면 진실한 결혼이 되어야 해요.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하고 가출을 한다. ‘노라’는 더 이상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각성으로, 새로운 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노라 노의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꿈은 옷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옷의 화려함보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의 실용성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진정으로 럭셔리 한 스타일이라면 편해야 한다. 편하지 않다면 럭셔리 한 것이 아니다.” 라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주장은, “옷이 사람보다 먼저 걸어 나와서는 안된다.” 라는 노라 노의 확신과 일치하였다.

 

코코는  억압된 여성들의 상징인 코르셋으로부터  무릎아래 옷단을 싹뚝 잘라 일하기 편한 검정스커트의 혁명을 일으켜 여성을 해방시킨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속박의 인습을 동시에 거세하였다.

 

노라는 긴치마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인습에 대항하여 미니스커트로 여성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또한 맞춤복 대신  여성이 일하기 편한 기성복을 도입하여, 여성이 더 이상 ‘인형의 집’에서의  깡총깡총 뛰는 앙증 맞는 다람쥐가 아닌 여성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를  갈구하였다.

 

노명자는 1947년 미국 유학을 위해 여의도 비행장의 트랩을 오른다. 그의 앞길은 안개 속에 가려 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명자’가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도전에 겁 없이 응전하는 ‘노라’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국의 ‘노라’들을 응원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