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변치 않는 사귐, 두터운 사귐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 칭합니다.
지란지교는 공자의 명심보감의 교우(交友)편에 나오는 아래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공자가 말하기를,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同化)된 것이고”」
지란지교는 위의 언급처럼 지초(芝草)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의 사귐을 말합니다.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
그렇다면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안진님의 시<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풍기는 친구는 어떠한 친구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전문: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103)
먼저 친밀감을 주는 친구입니다.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남의 얘기를 서로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는 친구,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친구 등이 상대를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친밀한 친구입니다.
또한 열정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명성・ 권세・ 재력보다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는 친구,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는 친구등에 매력을 느낍니다.
특히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풍기는 친구는 헌신적인 친구를 말합니다.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친구,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을 갖고 있는 친구, 자기의 유익을 위해 친구를 팔지 않는 친구,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는 친구등이 헌신과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친구입니다.
◆사랑의 구성요소 : 친밀감, 열정, 헌신과 결정
지란지교의 친구는 스턴버그(Strenberg)가 분석한 사랑의 유형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스턴버그(Strenberg)는 사랑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친밀감(intimacy), 열정(passion), 헌신과 결정(commitment/decision)로 분류합니다.
친밀감은 가깝고 진정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손이 닿아 전기가 오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는 것, 필요할 때 의지 할 수 있는 것, 서로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정서적 지원을 받고 역으로 상대를 지원하는 것등을 친밀감의 요소로 들 수 있습니다.
열정은 낭만적인 어떤 느낌으로 육체적인 매력등으로 인해 상대방을 향해 일어나는 감정을 말합니다. 사랑의 뜨거운 측면이 열정의 요소입니다.
헌신과 결정은 상대에 대한 약속과 책임을 말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돕고 견디는 것, 상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등 사랑의 이지적이고 차가운 측면을 말합니다.
◆ 호감, 얼빠진 사랑, 공허한 사랑
스턴버그는 이러한 사랑의 세가지 요소를 기초로 세 가지 사랑의 유형을 제시합니다.
①호감 (liking) : 친밀감만 있는 경우로서 뜨거운 열정과 상대에 대한 헌신적 행동은 없지만 따뜻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②얼빠진 사랑(infatuation) : 열정만 있는 것으로서, 우연히 어떤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즉흥적으로 생겨났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감정으로, 친밀감이나 헌신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풋사랑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짝사랑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③공허한 사랑 (empty love) : 헌신만 있는 경우입니다. 사랑 없이 중매결혼을 하여 열정과 친밀감 없이 결혼생활이 지속된다면, 이는 허울뿐인 사랑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혹은 열정이 식고 상대에 대한 실망으로 친밀감마저 사라지는 결혼생활도 공허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낭만적 사랑( 친밀감+ 열정), 허구적 사랑 (열정+헌신), 동반자의 사랑 (친밀감+헌신)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또 다른 사랑의 조합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낭만적 사랑( 친밀감+ 열정), 허구적 사랑 (열정+헌신), 동반자의 사랑 (친밀감+헌신)이 그것들입니다.
④낭만적 사랑(romantic love) : 친밀감+ 열정
#영희와 기영이는 대학 때 친구 소개로 만났습니다. 그들은 첫 눈에 반했습니다. 마치 얼이 빠진 듯 서로에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만남의 횟수가 늘자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열정에 친밀감이 더해진 낭만적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로맨틱한 사랑은 두 사람이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게 되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한 기영이는 영희와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였으나, 영희는 자신의 꿈을 찾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입니다.
결국 이 관계는 끝장나버렸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를 단절 시킨 것은 서로에 대한 헌신, 개입의 부재였습니다. 상대의 매력과 친밀감에 근거한 호감으로 두 사람이 끌렸을지라도, 사랑을 지키겠다는 약속과 헌신의 부재로 두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⑤ 허구적 사랑(fatuous love): 열정+헌신
# 순희와 철아는 유럽여행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몇 달 사이에 약혼하고 곧 결혼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였고, 남편과 아내로써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열정에 헌신이 더해진 사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헌신은 성숙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의 기초가 열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정의 불꽃이 꺼지자 서로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이는 헌신의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열정 없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파경의 원인은 오랜 관계에서 생성되는 친밀감의 부재였습니다. 열정이 관계를 지탱하다보니,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허구적 사랑이라 불립니다. 헌신이 열정에 기초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⑥동반자의 사랑(companionate love) :친밀감+헌신
# 해미와 종수는 20여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 왔습니다. 종수가 IMF외환위기로 실직을 하였지만, 두 사람은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20여년을 함께 살다 보니 어떤 커다란 열정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어려울 때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의지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한 눈을 판 일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친밀감에 헌신이 더해진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해미와 종수는 서로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정은 시들어졌지만, 친밀성은 지속되어 갔습니다. 열정은 친밀성에 의해 헌신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신뢰를 무너뜨리는 늦바람이 일지도 않았습니다. 두사람의 동반자적인 사랑이 열정이 사랑을 뒤집어엎는 배신을 막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결국 지란지교란 동반자적 사랑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물론 친밀감, 열정, 헌신이 균형 잡힌 ‘완전한 사랑’ (consummate love)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의 모델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은 모두가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이상적 사랑입니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사랑이 열정이 식은 후 친밀감과 헌신이 강조되는 지란지교의 동반자적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BEST FRIEND
그렇다면 지란지교의 동반자적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아래의 BEST FRIEND가 이에 대한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BEST FRIEND
B: Believe 항상 서로를 믿고
E: Enjoy 같이 즐길 수 있고
S: Smile 봐라만 봐도 웃을 수 있고
T: Thanks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F: Feel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R: Respect 서로 존경하면서
I: Idea 떨어져 있어도 생각하며
E: Excuse 잘못을 용서하고
N: Need 서로를 필요로 하는
D: Develop 서로의 장점을 개발해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