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영화

영화 <엘리자의 내일> 리뷰 : 나의 Ombra Mai Fu는 어디인가?

 

어디에도 없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무그늘이여

Ombra Mai Fu /Di Vegegabile/Care ed amaile/Soave piu

(결코 어디에도 없을(mai...fu) 그늘(ombra) /나무/소중하고 사랑스러우며 /더 부드러운)


https://youtu.be/N7XH-58eB8c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에서 페르시아왕 세르세는 아리아 “Ombra Mai Fu”를 부르며, 그의 안식처인 플라타나스 나무그늘을 찬미한다.

 

영화 <엘리자의 내일>에서 루마니아의 도시 외곽에 사는 외과의사 로메오는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Ombra Mai Fu>를 즐겨 듣는다. 그도 안식처에서 쉼을 얻고자 한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크의 공포정치로 젊은 시절을 보낸 로메오의 소망은 그의 딸 엘리자가 영국 캠브리지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하는 것이다. 엘리자는 마지막 졸업시험에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되면, 캠브리지대로 유학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엘리자는 시험전날 성폭행을 당할 뻔 한다. 저항으로 팔을 깁스한 엘리자는 정신적 충격이 더해져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상황이다.

 

로메오는 이때 도덕적 선택에 내몰린다. 금욕적이고 정직한 삶으로 평판이 자자한 로메오는 그의 딸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겠다는 욕망으로 인해, 부패와 타협의 길에 들어선다.

 

 

나의 Ombra Mai Fu는 어디인가?

 

로메오는 엘리자를 영국으로 유학 보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다. 이는 그의 마음의 쉼터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 밖의 영국이라는 의미이다.

 

현재의 이곳엔 나무벤치가 휘어져 있고 떠돌이 개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세상은 쓸모없는 규칙과 고장 난 시스템으로 뒤틀린 채, 활기를 잃었다는 의미이다.  연줄 연고등 크로니즘으로 작동되고 있는 사회에서, 집단의 구성원들은 법과 규칙을 지키기보다 부정과 공모로 자신들의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분노가 솟구칠 법하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로메오는 일그러진 이곳을 바꾸겠다는 열정보다 이곳에서 탈출하여 더 나아 보이는 저 곳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열심이 더 강하다. 현재 부패된 장소를 개혁하여 나와 우리의 Ombra Mai Fu로 만들기보다, 이곳에서 도망쳐 외부에서 안식처를 찾겠다는 것이다.

 

 

좋은게 좋은거야 ; 결과주의

 

로메오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과정의 정의로움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 행위가 부도덕하고 사회의 이익을 침해할지라도, 원하는 결과를 가져 오는 행위는 옳고 선한 결정이 된다.

 

이는 도덕적 선택의 기준에 대한 문제이다. 바라는 결과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의로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행위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행위는 비록 정의롭지 못해도 옳은 선택이 되는 것일까?

 

,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말하는 이의 주장에 대해, 행위의 옳고 그름은 기대되는 결과에 달려있다는 결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

 

로메오는 후자이다. 로메오는 간 이식을 기다리는 고위 공무원의 수술 순서를 앞으로 바꿔치기 해주고, 그 공무원은 시험감독관에게 엘리자의 점수 조작을 의뢰한다.

 

시스템의 허점을 자신의 우월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과 수단의 정의로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 벤담에 의하면, 행복은 전체 행복이며 이는 개인들의 행복의 총합이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는 각 개인이 각각 심각히 고려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각 개인은 하나로 간주되며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간주되어선 안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심각하게 고려해줄 것을 요구하는 도덕적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편향성은 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소수 부유한 계층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면 그 이외 사람들의 안정보장security은 자연스럽게 담보된다는 주장은 허구적 현실이 되었다.

 

이 영화는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심리적 이기심 대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해야 하며, 효율적 결과를 위해 어떠한 수단도 남용할 수 있다는 결과주의 대신 동기와 수단의 정의로움을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개봉: 8월 10일,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 128분,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