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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터널>리뷰 : 진정한 서사는 관객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장르의 문법에 매몰되지 않는 것

좋은 스토리텔링은 상투성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관행의 추종대신 새로운 발명품을 고안해 낼 때, 관객과 스토리는 연대를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사에 빛나는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은 중층적인 장르의 변주로 관객들을 스토리에 감정을 싣게 한다. 스릴러물로 시작된 영화는 러닝 타임의  3/4이 흐른 시점에서 스릴러 내러티브에 결말을 맺고, 이어 서스펜스가 가미된 드라마로 장르의 변화를 꾀한다. 이러한 장르의 비틀기는 기대와 두려움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관객을 스토리 안으로 몰아넣는다. 

영화 <터널>도 단선적인 서사를 거부하고 상투성과의 전쟁을 치열히 치른다. 재난영화의 문법, 즉 영웅이 등장하여 장애를 뚫고 대중을 구한다는 화석화된 서사에 완강히 저항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수(하정우)는 완공된 지 며칠 안 된 터널의 붕괴로 매몰된다. 그는 휴대폰, 생수 두병, 딸에게 줄 생일 케이크로 구조를 기다려야한다. 

하지만 정수의 구조는 터널 부실공사의 탓으로 기약 없이 늦추어진다. 그 와중에 구조본부대장 경대(오달수)와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에  여론은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터널>의 장르의 변주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확장에서 출발한다. 재난영화가 일반적으로 단일의 공간을 고집하는 대신, <터널>은 터널 안과 터널 밖이라는 이중의 공간을 펼친다. 

이러한 복합설정은 갈등구조와 주제의 중층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폐쇄, 어둠, 두려움을 상징하는 터널 안에서 정수는 생존을 향한 사투를 벌인다. 터널 안에서 정수를 괴롭히는 적대자는 다름 아닌 정수 자신이다. 두려움과 고립은 절망에  자리를 내놓기 십상이지만, 그는 희망이라는 긍정의 동아줄을 쥐고 절망에 무릎 꿇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터널>은 재난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긴장과 공포의 연속 대신, 희망에 기댄 유머와 여유로 영화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을 노출하기보다. 사람 원래의 모습인 연대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반면, 또 다른 서사의 공간인 터널 밖 세상은 이해의 대립구조에 기초한다. 구조가 지연되자, 이야기의 갈등 구조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에 대한 갈등으로 전화된다. 

목숨의 가치 판단은 사람 숫자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논리, 즉 모든 이의 경제적 이익의 합이 한 사람의 생명의 포기라는 비용을 넘게 된다면 당연히 그 생명을 버린다는  다수의 횡포가 세상의 지배적 가치기준이 되어 서사의 적대자로 부각된다. 

이처럼 공간의 구분과 확장이라는 장르 비틀기는 갈등 구조의 역동성을 빚어낸다.  즉 터널 안의 내적 갈등과 터널 밖의 외적 갈등을 분리하여, 스토리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융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몸을 싣게 한다. 

갈등의 분리는 주제의 분리로 이어진다.  영화는 폐쇄와 두려움의 메타포인 터널에서 ‘울고만 있지 말고’, 웃음으로 주어진 어두움을 견뎌 나가라고 말한다. 또한 세상의 행위의 기준이 되어 온 ‘FM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고와 세상의 판단 기준인 다수의 편익 대 비용 비교라는 경제논리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결국 관객과 스토리의 연대는 고착화된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으로 비롯될 수 있다. 사고의 정형화와 선명성이 관객을 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칫 관객에 대한 영합으로 귀결될 수 있다. 

대신 진정한 서사는 관객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장르의 문법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서사의 독창성이 출연한다. 

(8월10일 개봉, 126분, 리얼재난드라마, 감독 김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