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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보이후드>리뷰 : 시간의 흐름 속에 마주치는 순간들의 소중함



사랑스런 눈망울의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잔디에 누워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12년의 시간은 흘러, 이 아이는 18세의 대학생 신입생이 되어 미래의 순간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린다.

이렇게 12년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인되는 순간의 조각들이 결합되어, 165분의 기억에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영화가 만들어졌다. 

관객은 격정의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우리도 경험해 보았을 일상의 순간들과 담담히 조응한다.  그리고  지난 순간들의 소중함을 담백하게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메이슨은  상처를 받고 실연을 당하며, 불안과 실망의 혼돈에 휩싸인다. 하지만 따뜻한 위로의 순간들이 그를 감싼다. 그렇게 메이슨은  앞으로 다가 올 또 다른 순간들을  기꺼이 맞이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 


◆ 성장

12년은 메이슨에겐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의 시간이다. 

그의 12년간의 시간의 여행을 165분에 담아 낸 이 영화는  링클레이터 감독이 같은 배우들과 12년간 매년 15분씩의 영상을 만들어 완성되었다. 

이 인고의 시간들은 작품에 거짓 없는 진솔함을  품게 한다.  메이슨의 목소리는 낮고 굵어져 가고, 메이슨의 엄마도 허리가 두터워진다. 또한 아빠의 이마 주름은 깊어져 간다. 

진실된  삶의 여정을 기록하겠다는 감독의 예술가로서의 정열과 이에 호응하는  배우들의 진정성이 있었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프로젝트가 탄생하였다. 


◆ 성숙

또한 12년은 성숙의 기간이기도 하다.  씨앗이 바람과 비를 맞고,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받아 잎이 되고 꽃이 된다. 메이슨이 그렇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로  메이슨의 가슴은  이미 멍이 들어 있다. 하지만 남자가 필요한 메이슨의 엄마와 결혼한 이는 권위과 완벽주의로 메이슨을 숨막히게 한다. 걸핏하면 술주정으로 가족에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계부는 메이슨의 긴 머리를 밀어버리도록 한다. “왜 결혼 했냐고” 고 엄마에게 울먹이는 메이슨은 굴욕감에 온몸이 소나기를 만난 듯 젖어 있다. 

그런데 그의 젖은 몸을 말려주는 햇빛은 그의 생부이다. 그는 매주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를 만나 진지한 대화와 애정으로 아이들을 감싼다. 볼링을 하고, 럭비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며 야영을 한다.  생부는 메이슨의  위로이며 힘이었다. 

이러한 상처와 위로 가운데 꼬마 메이슨은 어른으로 성숙해 간다. 




◆ 시간과 순간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과 마주치는  순간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혹자는  시간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 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안정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성숙을 야기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러한 시간의 수동적인 경과와 이후의 산물은  인과의 오류라고 반박한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변화의 차이가 발견 될 뿐이라는 것이다. 

파블로프는 사람이 보편적인 일련의 발달단계를 지닌다는 시간의 선형성을  거부한다. 그는 성숙과 변화는  특정한 환경적 자극, 즉 상처와 회복의 순간들에  노출된 결과로 이해한다.  아무런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자극과 무조건 자극이 결합되면,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자극만으로도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 “Do we seize moments or do moments seize us?” 라는 질문을 받은 메이슨은 “순간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도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위치하는 우리가 순간들의 자극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갈 수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고통을 가하는 부정적인 충격에 대해  이를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요소가 영혼을 감쌀 때,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된다. 

‘순간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이러한 순간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우리는 변화된다는 설명이다. 


이제 메이슨은  끓는 피와 얼음 같은 이성으로 안개 자욱한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가위 누를 지라도  또 다른 위로와 힘을 공급받는 멋진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미래를 향한  벅찬 기대로  심장은 힘차게  약동할 것이다. 

(10월 23일 개봉, 165분)